담 모퉁이를 돌아 신작로를 향해 골목을 빠져 나오는 딸을 한 순간이라도 더 보려고 발걸음 바쁘게 따라 나오신다. 손을 몇 번이나 내 저으며 들어가시라고 해보건만 두 손을 겹쳐 허리 뒤춤에 대고 남의 집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딸자식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계신다.
나이 들어 함께 늙어 가는 처지가 되었어도 형편이 어려워진 막내딸을 보는 것은 늘 안타까움 뿐 이리라.
살아생전에 몇 번이나 더 만들어 먹일 수 있겠느냐며 나 좋아하는 만두를 급히 빚은 엄마사랑 표 김치만두와 구미 챙겨주신 밑반찬을 들고 친정집을 나서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지만 닦을 수가 없었다. 내 손이 얼굴을 만지면 멀리서 보아도 엄마는 내가 울고 있음을 눈치 채시고 더욱 가슴 아파하실 것을 나는 안다.
오래전 언니가 힘들어 할 때 팔아서 요긴하게 쓰라며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몇 개의 패물과 소싯적 쌍가락지까지 꺼내 주셨던 그날도 언니가 가는 뒷모습을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 보셨다. 그때, 그날처럼 막내 딸자식 멀리 사라져 보이지도 않는 빈 거리를 한참동안 그렇게 바라보셨으리라.
자식들이 가뭄에 콩 나듯이 쥐꼬리만큼 드린 용돈을 얼마 동안을 쓰지도 않고 모아 놓으셨을까. 하얀 봉투가 누렇게 변하고 가장자리가 닳아서 속이 보일 것 같은 봉투를 누가 볼세라 내 가방에 얼른 찔러 넣으신다. 싫다며 완강히 거부하지만 아무소리 말라는 엄마와 나의 손 싸움은 인기척으로 인해 주춤 멈추고 입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하다 멈추느냐는 둘째 언니 말에 언니 흉을 보다 들켰다는 궁색한 대답을 했다.
언니도 그랬고 오빠도 그랬고 나 까지도 몇 년 사이에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사업장 문을 닫게 되고 경제가 힘들다보니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잘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이 효도인데 그 간단한 효도도 못 보여 드리다니...
어머니에게 해 드려야 할 것이 걱정 말고는 없단 말인가?
“ 건강하기만 하면 살 수 있어. 근심 걱정 지나치게 하다 건강 잃지 말고 힘내라. 노력한 만큼 돌아올 날이 있다.”
신신 당부와 위로를 해주시는 내 어머니 앞에 어린아이처럼 고개만 끄덕이며 다시 또 다른 기도의 제목을 안겨드렸다. 안타까움에 떨리는 손길로 등을 쓸어주시던 그날 엄마를 힘껏 안아 볼 것을 아니, 안아 드릴 것을 ...
살아생전에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한번 해 볼 것을...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왜 그다지도 감정 표현에 인색하고 말없고 애교가 없었을까?
내 평생에 가장 아픈 후회로 남아있다.
늦둥이 쉰둥이로 태어나 부모님께 아픈 손가락 이였던 딸자식에게 사랑 한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리사랑 짝사랑만 하시다가 그렇게 가셨다.
"엄마!
엄마!
사랑해요.“
소리 내어 울어보아도 흐느껴보아도 이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엄마라는 이름의 최 어진 여사는 대답이 없다.
철들자 망령 든다는 옛말이 있듯이 엄마 떠나신 그 나이가 되어서야 거울 같은 내 자식들을 보면서 내 부모님을 간절하게 그리워한다.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에 핑계를 대고 내 설음에 훌쩍인다.
*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들 딸 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부모님 살아생전에 많이 만지고 손잡아 드리고 안아주세요.
사랑한다는 표현에 인색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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