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환상속의 그대
나무 목발을 짚고 해맑게 웃으며 들어오는 재수를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하고 웃음부터 나온다.
”오랜만이세요. 아니 왜 목발을...”
장난인 듯 목발을 짚은 채 환상속의 그대를 부르며 춤을 춘다. 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저 웃음 뒤에 어떤 아픔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누나 서태지 좋아해?”
“서태지 춤추다 넘어졌어요? 서태지랑 싸웠어요?“
네 여인의 다툼 때문에 뛰어가다가 삐끗했는데 새끼발가락에서 발목 올라가는 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너무 많이 부어서 붓기를 가라앉히고 오늘에서야 깁스를 했다며 응석담긴 목소리로 말을 한다.
”호~ 해줘 누나!”
“호 해줘서 나을 병은 아닌 것 같고 네 여인들은 모두 누구예요?”
커피를 마시며 네 여인의 이야기를 대충 들려준다. 소싯적 남녀 친구들과 야영을 갔다가 싸움이 벌어져서 인사 사고가 났다고 한다. 오랫동안 그 죄 값을 치루고 사회에 복귀한지 2년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고 아직 집행유예기간이라는 자신의 비밀을 친 누나에게 털어놓듯 담담하게 말해준다. 네 여인은 그때 함께 야영을 갔던 여자 친구들이란다. 그 여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고를 낸 재수를 고맙게 생각하여 오랜 세월 돌아가며 옥바라지를 했던 여인들이라고 했다. 결혼을 하여 잘 살고 있는 친구, 돌 싱이 된 친구, 재혼한 친구, 그리고 자신의부인 이렇게 네 여자라고 했다. 재수가 사회에 복귀한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 재수 어머니 집에 모여 어머니와 밥을 해먹고 헤어진다고 했다. 아마도 네 여인들은 재수가 집에 없는 동안 연세 높으신 어머니를 그렇게 위로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의리 있는 사람들이 왜 경찰서에 갈만큼 심하게 싸웠을까요?”
“우리 엄마 때문이지 뭐! 아니 내 탓이지 뭐!”
어머니는 며느리를 싫어 하셨다고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딸 둘을 낳았지만 인물만큼이나 뭇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약간 유흥 적이고 개방적이라서 어른 눈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더욱 미움을 받게 된 발단은 자신의친구들을 재수 친구들에게 소개 시켜주면서 함께 야영을 떠나게 되었기에 어머니는 며느리를 더욱더 미워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재수가 오래도록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딸들과 함께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고 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했던가? 말이 많다보면 찬반이 있게 마련이고 오해도 생기기 마련이다. 돌 싱인 여인이 재수를 흠모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둘 사이가 석연치 않았는지 소문과 오해? 이런저런 시끄러운 이야기가 오가고 있던 중에 재수의 딸들과 이혼한 전처가 합류하면서 대란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아무도 그대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하지만...)
장난기 가득한 몸짓을 섞어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어느 사이에 담담하게 이야기를 한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목발을 짚고 춤을 추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진지함에 나도 몰래 집중하고 있었다.
노래 제목처럼 환상속의 그대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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