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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2일 일요일

세계지도, 정화 지도 베껴 짜깁기?

한국지도의 역사(방동인 지음)한국의 고지도에 관한 개설서. 삼국시대조선시대에 제작된 지도를 중심으로 각 시기별 지도의 특성과 제작의도 등을 각종 문헌을 통해 비교 검토했다. 지도의 뜻, 기원, 표현방법등 지도의 개념을 비롯해 각 시기별 지도의 특성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05a84c83.gif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7pixel, 세로 16pixel | 기사입력 2003-12-31 00:00 | 최종수정 2003-12-31 00:00
 
[한겨레] 멘지스의 주장대로라면 아메리카의 존재를 담은 정화 함대의 오리지널 지도가 막상 중국에서는 버림받고 유럽에서는 채용된 결과 세계사의 서양화가 결정됐다는 추론으로 이어진다. 중국이 영국보다 수세기 앞서 미국을 식민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따라서 정화 함대의 지도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실제로 멘지스가 정화 함대의 지도를 베껴 짜깁기한 것으로 분석하는 주요 초기 세계지도는 현재 1천만달러에 거래되기도 한다. 이미 대항해시대가 400~500년씩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대한 지도는 당시 흔히 베끼거나 짜깁기 되곤 했다. 우리나라의 이회가 부분적으로 참여했다는 세계지도 <역대제왕혼일강리도>의 제작과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1402년 조선 태종 때 이회는 조선전도인 <팔도도>를 만들었다. 그해 조정에서 3년 전 명나라로부터 도입한 원나라 이택민의 <성교광피도>와 청준의 <혼일강리도>를 합쳐 하나로 만들도록 했다. 두 지도를 합치되 서로 틀리는 곳은 조화시키고 자세하게 더 조사해 교정하라는 것이다. 이 합쳐진 지도에다 다시 우리나라 지도를 특별하게 크게 넓히도록 했다. 여기에 1401년 일본에서 가져온 일본 전도인 <늑성신도>를 덧붙여 만든 것이 바로 <역대제왕혼일강리도>이다. 이회가 <강리도>를 종합하는 기간이 불과 3개월 안팎인 점을 미뤄볼 때 <강리도>의 조선 부분에는 <팔도도>를 그대로 옮겨 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방동인 지음 <한국의 지도>에서) 초기 세계지도도 이런 식의 베끼기나 짜깁기가 일반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겨레(http://www.hani.co.kr)

“독도, 1905년전 일본 땅인적 없다”


[한겨레]


관동대 학술세미나…백충현 교수 증거자료 제시

독도 문제는 역사문제이면서 영유권 분쟁의 측면에서 보면 국제법적인 문제다.

백충현 서울법대 명예교수의 말처럼 독도 영유권이 한국에 전적으로 귀속된다는

입증은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여 ‘국제법적으로 완결’하는 작업이다. 특히

일본이 1905년 각의 결정에 의한 영토 편입의 합법성을 강변하고 이를 근거로

1952년 이래 독도영유권을 공식 제기하면서 외교마찰을 불러왔다는 점에서도

국제법적인 대응과 준비가 요구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이사장과 백충현 교수는 독도문제 연구에서 환상의 콤비다. 명지대

석좌교수인 최 이사장이 수집한 독도에 관한 일본의 문헌자료와 지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관동대(총장 한동관)가 지난 25일 동해연구소 개소식을 기념해 강릉 관동대

행정연구동 대강당에서 ‘독도 및 동해상의 도서에 대한 재조명’을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최 이사장이 기조강연을, 백 교수가 발제를 맡았고 여기에

한국의 고지도란 책을 처음으로 발간한 방동인 관동대 사학과 명예교수까지

토론자로 나섰다.

사실 일본이 말하는 독도가 ‘고유영토’라는 주장과 1905년의 ‘편입영토’

결정은 상호 모순된다. 그 전에 고유영토가 아니었으니까 1905년에 편입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백 교수가 이날 주제발표에서 밝혔듯이 각의 결정문은

‘이번에’ ‘이제부터’ 다케시마란 이름의 섬으로 일본영토에 편입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본은 이 논리에 대해 그전에도 고유영토였지만 국제법적으로

재확인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백 교수는 고유영토인데 왜 국제법적으로

재확인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 논리를 따르면 왜 일본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섬은 물론이고 다른 무인도들은 편입 조처를 취하지 않았는가라는 것이다.

또 일본은 1905년 각의결정으로 독도를 편입하면서 마치 새로 발견한 무주지인

것처럼 위장취득했다. 토지사기꾼들의 수법과 다를 바가 없다. 역시 각의 결정문을

보면 프랑스 포경선의 이름을 따 서양에 알려진 독도의 다른 이름인

리앙쿠르(일본발음 량코) 섬을 취득한 것으로 돼 있는데, 일본은 그 전해인 1904년

군함을 보내 울릉도 현지인들이 독도(독섬)라고 부르는 사실을 이미 확인하고

있었다.

수많은 지도와 사료 가운데는 일본에 유리한 것들도 많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는 그 많은 자료 가운데 ‘국가차원에서 주권을 행사한 실적이

입증되는 자료’를 증거력이 높은 ‘직접증거’라 해서 구분한다. 백 교수는 이날

국가영역범위를 표시하는 일본 관찬 고지도의 사진본과 국가기록의 문헌자료 사본

등 이른바 직접 증거를 제시했다. 이 직접증거들은 1905년 이전에 독도가 일본

땅인 적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 토론에서 방 교수는 백 교수가 제시한 지도 등을

훌륭한 자료라고 높이 평가하고,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랫말 중의

‘세종실록지리지 50쪽 셋째줄’에 독도는 없다며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강릉/글·사진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200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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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신라 말 강릉호족에 무슨 일이?


-오늘 강릉학 학술세미나 강릉김씨 가문 사례 발표
【강릉】제7회 강릉학 학술세미나가 15일 `나말여초 강릉호족에 대한 재조명-8C 이후 김주원과 강릉의 지배세력'을 주제로 열린다.
 이날 오후3시 강릉문화원 세미나실에서 관동대 영동문화연구소(소장:김남현)와 강릉학회(회장:심재우)가 주관하고 강릉시와 강원일보사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세미나는 강릉지역 토성중의 한 성씨인 강릉김씨, 그리고 이와 관련된 나말여초 강릉호족의 존재양태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김남현 관동대 교수(사학과)의 사회로 진행되는 주제토론에서는 김갑동 대전대 교수(역사문화학과)가 `나말여초 강릉호족의 형성배경과 존재양태-강릉김씨 가문의 사례를 중심으로'를, 신호철 충북대 교수(역사교육학과)가 `후삼국기 강릉호족의 위상과 정치적 역학관계-왕순식·궁예·왕건과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각각 발표한다.
 또 방동인 전 관동대 교수(사학과), 김운경 강원일보 영동총지사장, 김창겸 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이 종합토론을 벌인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강릉학 학술세미나는 그동안 학문적인 테두리에서 소외받았던 강릉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모으는데 큰 기여를 해 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익기기자 


09.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