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도의 역사(방동인 지음)〓한국의 고지도에 관한 개설서. 삼국시대∼조선시대에 제작된 지도를 중심으로 각 시기별 지도의 특성과 제작의도 등을 각종 문헌을 통해 비교 검토했다. 지도의 뜻, 기원, 표현방법등 지도의 개념을 비롯해 각 시기별 지도의 특성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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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7pixel, 세로 16pixel | 기사입력 2003-12-31 00:00 | 최종수정 2003-12-31 00:00
[한겨레] 멘지스의 주장대로라면 아메리카의 존재를 담은 정화 함대의 오리지널 지도가 막상 중국에서는 버림받고 유럽에서는 채용된 결과 세계사의 서양화가 결정됐다는 추론으로 이어진다. 중국이 영국보다 수세기 앞서 미국을 식민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따라서 정화 함대의 지도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실제로 멘지스가 정화 함대의 지도를 베껴 짜깁기한 것으로 분석하는 주요 초기 세계지도는 현재 1천만달러에 거래되기도 한다. 이미 대항해시대가 400~500년씩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대한 지도는 당시 흔히 베끼거나 짜깁기 되곤 했다. 우리나라의 이회가 부분적으로 참여했다는 세계지도 <역대제왕혼일강리도>의 제작과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1402년 조선 태종 때 이회는 조선전도인 <팔도도>를 만들었다. 그해 조정에서 3년 전 명나라로부터 도입한 원나라 이택민의 <성교광피도>와 청준의 <혼일강리도>를 합쳐 하나로 만들도록 했다. 두 지도를 합치되 서로 틀리는 곳은 조화시키고 자세하게 더 조사해 교정하라는 것이다. 이 합쳐진 지도에다 다시 우리나라 지도를 특별하게 크게 넓히도록 했다. 여기에 1401년 일본에서 가져온 일본 전도인 <늑성신도>를 덧붙여 만든 것이 바로 <역대제왕혼일강리도>이다. 이회가 <강리도>를 종합하는 기간이 불과 3개월 안팎인 점을 미뤄볼 때 <강리도>의 조선 부분에는 <팔도도>를 그대로 옮겨 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방동인 지음 <한국의 지도>에서) 초기 세계지도도 이런 식의 베끼기나 짜깁기가 일반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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