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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9일 수요일

10ㅡ사람향기ㅡ환상속의 그대

10. 환상속의 그대

나무 목발을 짚고 해맑게 웃으며 들어오는 재수를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하고 웃음부터 나온다.
 
오랜만이세요. 아니 왜 목발을...”
 
장난인 듯 목발을 짚은 채 환상속의 그대를 부르며 춤을 춘다. 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저 웃음 뒤에 어떤 아픔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누나 서태지 좋아해?”
 
서태지 춤추다 넘어졌어요? 서태지랑 싸웠어요?“
 
네 여인의 다툼 때문에 뛰어가다가 삐끗했는데 새끼발가락에서 발목 올라가는 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너무 많이 부어서 붓기를 가라앉히고 오늘에서야 깁스를 했다며 응석담긴 목소리로 말을 한다.
 
~ 해줘 누나!”
 
호 해줘서 나을 병은 아닌 것 같고 네 여인들은 모두 누구예요?”
 
커피를 마시며 네 여인의 이야기를 대충 들려준다. 소싯적 남녀 친구들과 야영을 갔다가 싸움이 벌어져서 인사 사고가 났다고 한다. 오랫동안 그 죄 값을 치루고 사회에 복귀한지 2년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고 아직 집행유예기간이라는 자신의 비밀을 친 누나에게 털어놓듯 담담하게 말해준다. 네 여인은 그때 함께 야영을 갔던 여자 친구들이란다. 그 여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고를 낸 재수를 고맙게 생각하여 오랜 세월 돌아가며 옥바라지를 했던 여인들이라고 했다. 결혼을 하여 잘 살고 있는 친구, 돌 싱이 된 친구, 재혼한 친구, 그리고 자신의부인 이렇게 네 여자라고 했다. 재수가 사회에 복귀한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 재수 어머니 집에 모여 어머니와 밥을 해먹고 헤어진다고 했다. 아마도 네 여인들은 재수가 집에 없는 동안 연세 높으신 어머니를 그렇게 위로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의리 있는 사람들이 왜 경찰서에 갈만큼 심하게 싸웠을까요?”
 
우리 엄마 때문이지 뭐! 아니 내 탓이지 뭐!”
 
어머니는 며느리를 싫어 하셨다고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딸 둘을 낳았지만 인물만큼이나 뭇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약간 유흥 적이고 개방적이라서 어른 눈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더욱 미움을 받게 된 발단은 자신의친구들을 재수 친구들에게 소개 시켜주면서 함께 야영을 떠나게 되었기에 어머니는 며느리를 더욱더 미워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재수가 오래도록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딸들과 함께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고 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했던가? 말이 많다보면 찬반이 있게 마련이고 오해도 생기기 마련이다. 돌 싱인 여인이 재수를 흠모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둘 사이가 석연치 않았는지 소문과 오해? 이런저런 시끄러운 이야기가 오가고 있던 중에 재수의 딸들과 이혼한 전처가 합류하면서 대란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아무도 그대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하지만...)
 
장난기 가득한 몸짓을 섞어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어느 사이에 담담하게 이야기를 한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목발을 짚고 춤을 추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진지함에 나도 몰래 집중하고 있었다.
노래 제목처럼 환상속의 그대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삶이란 무엇인가!

2020년 4월 3일 금요일

표현 하세요.

담 모퉁이를 돌아 신작로를 향해 골목을 빠져 나오는 딸을 한 순간이라도 더 보려고 발걸음 바쁘게 따라 나오신다. 손을 몇 번이나 내 저으며 들어가시라고 해보건만 두 손을 겹쳐 허리 뒤춤에 대고 남의 집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딸자식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계신다.
나이 들어 함께 늙어 가는 처지가 되었어도 형편이 어려워진 막내딸을 보는 것은 늘 안타까움 뿐 이리라.
 
살아생전에 몇 번이나 더 만들어 먹일 수 있겠느냐며 나 좋아하는 만두를 급히 빚은 엄마사랑 표 김치만두와 구미 챙겨주신 밑반찬을 들고 친정집을 나서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지만 닦을 수가 없었다. 내 손이 얼굴을 만지면 멀리서 보아도 엄마는 내가 울고 있음을 눈치 채시고 더욱 가슴 아파하실 것을 나는 안다.
 
오래전 언니가 힘들어 할 때 팔아서 요긴하게 쓰라며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몇 개의 패물과 소싯적 쌍가락지까지 꺼내 주셨던 그날도 언니가 가는 뒷모습을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 보셨다. 그때, 그날처럼 막내 딸자식 멀리 사라져 보이지도 않는 빈 거리를 한참동안 그렇게 바라보셨으리라.
 
자식들이 가뭄에 콩 나듯이 쥐꼬리만큼 드린 용돈을 얼마 동안을 쓰지도 않고 모아 놓으셨을까. 하얀 봉투가 누렇게 변하고 가장자리가 닳아서 속이 보일 것 같은 봉투를 누가 볼세라 내 가방에 얼른 찔러 넣으신다. 싫다며 완강히 거부하지만 아무소리 말라는 엄마와 나의 손 싸움은 인기척으로 인해 주춤 멈추고 입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하다 멈추느냐는 둘째 언니 말에 언니 흉을 보다 들켰다는 궁색한 대답을 했다.
 
언니도 그랬고 오빠도 그랬고 나 까지도 몇 년 사이에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사업장 문을 닫게 되고 경제가 힘들다보니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잘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이 효도인데 그 간단한 효도도 못 보여 드리다니...
어머니에게 해 드려야 할 것이 걱정 말고는 없단 말인가?
 
건강하기만 하면 살 수 있어. 근심 걱정 지나치게 하다 건강 잃지 말고 힘내라. 노력한 만큼 돌아올 날이 있다.”
 
신신 당부와 위로를 해주시는 내 어머니 앞에 어린아이처럼 고개만 끄덕이며 다시 또 다른 기도의 제목을 안겨드렸다. 안타까움에 떨리는 손길로 등을 쓸어주시던 그날 엄마를 힘껏 안아 볼 것을 아니, 안아 드릴 것을 ...
살아생전에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한번 해 볼 것을...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왜 그다지도 감정 표현에 인색하고 말없고 애교가 없었을까?
내 평생에 가장 아픈 후회로 남아있다.
 
늦둥이 쉰둥이로 태어나 부모님께 아픈 손가락 이였던 딸자식에게 사랑 한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리사랑 짝사랑만 하시다가 그렇게 가셨다.
  
"엄마!
엄마!
사랑해요.“
 
소리 내어 울어보아도 흐느껴보아도 이제는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엄마라는 이름의 최 어진 여사는 대답이 없다.
철들자 망령 든다는 옛말이 있듯이 엄마 떠나신 그 나이가 되어서야 거울 같은 내 자식들을 보면서 내 부모님을 간절하게 그리워한다.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에 핑계를 대고 내 설음에 훌쩍인다.
 
*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들 딸 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부모님 살아생전에 많이 만지고 손잡아 드리고 안아주세요.
사랑한다는 표현에 인색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