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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일 수요일

점트리오의 우정


오늘손님 좀 있었어?”

그렇지 뭐아니 그런데 언니 벌써 퇴근 한 거야?”

벌써 라니 시간가는 줄도 모르는 것을 보니 오늘은 장사가 좀 되었나보군... 바빴어?”

하루 종일 사람의 발길이 뜸하던 가게에 퇴근길 몇몇 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탁자에 놓인 건강보험 고지서에 적힌 내 이름을 바라보던 언니는 몸을 뒤로 제쳐가며 한참을 웃는다.

너 이름이 이게 뭐냐~하하하이름한번 거시기 하구먼내 이름도 거시기한데...ㅋㅋㅋ~”

그 거시기한 언니 이름은 뭐예요?”

내 이름은 너무나 촌스러워서 아무에게도 안 알려주고 싶어우리 친정어머니는 내가 첫딸인데 이름을 왜 이렇게 성의 없이 지었을까 몰라동생들은 은자돌림인데 나만 그래.”

호호언니 그럼 개명해요.“

얘는 회갑 진갑 다 지나서 무슨 개명을 하니... 이 나이에 개명해서 누구한테 이름 자랑 할일 있니?“

이름 이야기를 하다가 이름 때문에 웃겼던 추억이 있었다며 언니의 이름 이야기가 시작 되었다.

막내 동생하고 서류 한 장 떼려고 관공서에 갔는데 주민증을 안 가져갔지 뭐야컴텨 앞에 앉아있던 직원이 그러면 주민번호를 대라는데 기억이 안 나는 거여그래서 모른다고 했지.”
주민증은 안가지고 오셨고 주민번호도 모르시고 성함은요?”

성함?”

네 이름 요.”

성은 박이요이름은 좀 거시기한데...”

주민번호는 모르시고... 이름은 거시기 하고...”

장난기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하는 남자 직원의 한마디.

혹시 점순 씨는 아니겠지요?”

함께 갔던 동생이 빵 터지며 주저앉으니까 그 직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그럼 정말 점순 씨이세요?”

우리나라의 여자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이 점순 이라고그래서 그렇게 말해 보았다는 남자 직원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언니 지인들 중에 점순 이라는 이름이 3명이나 있더라는 것이다이렇게 함께 웃고 있는데 나와 친구처럼 지내는 손님이 들어오면서 말한다.

언니도 오셨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나도 같이 웃자~~”

언니의 이름이 거시기에서 점순 으로 밝혀지는 이야기를 했더니 이 친구는 웃다가말고 심각하게 말한다.

언니이름이 어때서... 나는 점순 이라는 이름이 부러워그래서 나는 누가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면 최 점순 이라고 말해나를 아는 사람들은 보험회사 설계사 빼고는 거의 다 내 이름 점순 인줄 알 어우리 장군 아빠도 어떨 때에는 점순 으로 부른다니까?”

나도 그도 친구로 지내자고 한지 7년 정도 지났지만 이친구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우리는 애견이름을 따서 장군엄마로 나는 쭐래 엄마로 부르는 친구사이였다.

자네 이름이 뭔데... 실명이 뭐야?”

나도 점자가 들어간 이름이기는 한데 남자 이름이라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언니가 말한다.

그럼 자네 이름 점식이여?”

~언니 어떻게 알았어?”

점자 들어가는 남자이름이라면 점식이 뿐이 더 있냐?”

웃음소리가 신작로까지 들렸는지 손주 돌보고 퇴근한다는 언니가 들어오면서 같이 웃자고 했다점순이점식이 이름 때문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 언니 말을 자르며 하는 말에 허리를 펼 수 없도록 웃었다.

내 이름은 점돌이여~~”

우리 중늙은이 4사람은 순간 모두 요실금 환자가 되어 있었다.
웃음이 피어났던 그 날 급 결성된 방주인과 점 트리오는 지금도 변함없는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돌아온 벤자민

저는 작은 옷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 불경기다보니 가게 임대료도 못 맞추는 요즈음 더하기로 휴가철이기도해서 혼자 커피만 마시다가 퇴근을 하는 날들이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집을 나섭니다오늘도 추적추적 비 내리는 아침 우비까지 챙겨 입고 자전거를 타고 옷 방에 도착해보니 가게 앞 넓은 사각 행거 안쪽에 10년을 넘게 키워온 인삼 벤자민이 안보였습니다함께 있던 다섯 개의 화분도 옆집화분들도 모두 있는데... 순간 다리가 풀리면서 심장이 쿵~~ 합니다누가 도대체 왜 하필이면 가장 무겁고 큰 화분을 가져갔단 말인가같은 건물에 있는 미용실 문을 열고 "우리 화분을 누가 집어갔어요~~" 하니 여러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누가요?" 합니다.
112에 도난 신고를 했습니다.
여경과 남자경찰이 왔습니다상황 설명을 하고 도난신고 작성을 합니다.
햇수로 10년 넘게 키운 인삼 벤자민 이며 화분이 크기도 하지만 너무 무거워서 남자 두 분이 힘겹게 옮길 수 있는 무게라고 상세히 써내려갔습니다신고서 작성을 도와주던 여자 경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절도라고 해야 하느냐고 남자 경찰에게 묻습니다.
"그렇지 절도지.“
경찰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나는 그 칸에 도둑이라고 적고 피의자란에 내 이름을 적고 법대로 처분을 원한다고 적었어요피해자도 피의자도 구분 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많이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정정하여 적으면서 혼자 생각합니다화분 한개 잃어버리고 법석을 떤다고 젊은 경찰들이 생각하지는 않으려나이렇게 신고접수는 되었고 주변 cc tv설치 장소도 촬영을 한 후 경찰은 돌아갔지만 하루 종일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아 주변을 살피기도하고 혹시 아는 사람일까여러 인물들을 떠올려 보기도하고 며칠 전 너무 잘 키웠다고 탐난다며 누가 안 가져가느냐고 묻던 아저씨 모습을 떠올리려 집중해보기도 했습니다.
집이 좁아서 맑은 공기 마시고 살다가 늦은 가을 집으로 들어가자며 옮겨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드디어 담당 수사관이 정해졌다는 문자를 받고 하루도 빠짐없이 극성스럽게 전화를 해댔습니다전화는 자동 안내문 반복 3회로 매번 끊어지고 12일째 되던 날에야 드디어 통화를 했습니다저는 혼자 떠들었고 수사관은 조용히 저의 말을 들어주면서 피곤한 목소리로 말합니다일단은 너무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고 신고 된 사건 순서대로 처리하고 있다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합니다사실 제가 형사였어도 이런 대수롭지 않은 절도신고를 하고 범인 잡아달라고 매일 떠들어대면 얼마나 지루하고 한심할까 생각을 하면서도 저는 또 다시 떠들어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범인은 제가 잡을 테니 cc tv 지워지기 전에 확인만 해주세요가뜩이나 사건사고 많은 여름 장마철에 금 은 보화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화분 한개 잃어버렸다고 112에 신고하는 정신500년 나간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그 화분을 꼭 찾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2005년 돌아가신 친정 엄마를 모셨던 공원묘지에서 이장을 했고 그 과정에 복잡함이있는 나는 한줌의 흙을 간직하게 되면서 크고 하얀 화분을 마련하고 사람의 몸처럼 생긴 인삼 벤자민 아래 수목 장을 만들었습니다가세가 기울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수목장 화분을 가게 앞에 옮기게 되었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잘 견뎌주어 지인들은 지나가는 말로 옷가게 하지 말고 화원을 하라고 권유 할 정도로 정성스럽게 관리하고 있었습니다화분 속에는 옥함이 들어있고 무척 무거워서 옮기기 힘듭니다화분 중간에 매직으로 ooo옷방 이라고 굵게 써놓았습니다.) 라고 신고서에 적지 않은 이유를 말했습니다.
전화 통화가 끝나고 30분 정도 지나서 담당수사관 2분이 방문하였고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다음날 옆 상가 cc tv 주인이 화면을 확인하니까 화분을 가져간 사람은 2명이라고 했습니다그 아저씨 얼굴이 나온 모습을 내 휴대폰으로 보내주었고 그 모습을 관찰하면서 나 스스로 수사관이 되었습니다초록색 캡 모자에 주황색 운동화 빨강 줄무늬반팔 셔츠 검은 체크 반바지 흔하지 않은 어른의 패션으로 보아 한번쯤 본 듯했습니다사진을 눈여겨본지 이틀째 비가 오락가락하는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는데 찻길건너 골목에서 옷 방을 유심히 바라보며 뒷짐을 지고 걸어오는 아저씨 손에 초록색 모자를 손에 들려있고 주황색 운동화를 신고 있습니다옷차림은 달라도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한쪽 팔 중간을 잡은 뒷짐 진 모습이 cc tv 사진과 같습니다가게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찻길을 건너 쫒아가서 휴대폰으로 뒷모습을 촬영해서 cc tv사진과 비교하며 따라갔습니다스타일이 같습니다불러 세우고 휴대폰속의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아저씨 이 사진 아저씨 맞지요?”
몰라요나 아니요.”
아저씨는 손사래를 치며 뛰고 나는 따라갑니다담당 형사에게 전화하여 출동 요청을 하고 중계방송 수준으로 간판을 읽으면서 달렸습니다동네 골목이 그렇게 많은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큰 길로 나오고 sk 연구소 입구에서 제복을 입은 분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경찰차가 오고 있으니 저 사람 좀 붙들어 주세요~~”
왜 그러세요?”
도둑 이예요.”
그 분의 도움으로 잡힌 아저씨는 힘들었는지 길가 화단에 기절한척 하고 드러눕습니다저도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 이후 이렇게 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경찰이 도착하고 아저씨는 경찰서로 갔지요.
9시 화분 확인하러 가자고 경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우리 옷 방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아파트였습니다경찰서에서 아빠를 모시고 나온 딸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아저씨는 다람쥐처럼 나르듯 뛰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곧 쓰러질 것 같습니다딸이 말합니다.
아빠 계단 못 올라가지휠체어 길로 돌아서 올라가자 아빠.”
아니 저럴 수가... 딸이 평상시 내 아빠를 몰라서 저렇게 말할까참 기가 막혔습니다.
깨끗하게 정리된 집안에 많은 화분이 있었고 베란다안쪽 10여 그루의 대형화분 사이에 숨겨져 있는 화분을 내가 찾아내어 확인하니 ooo 옷방 이라는 매직글씨를 지우려고 칼로 긁었는지 험하게 긁힌 자국이 있고 그 위에 흰 페인트를 칠해 놓았더군요수사관 두 분이 끙끙대며 끌어내지만 녹녹치 않습니다.
왜 이렇게 무거워요 꿈쩍을 안 하네~~ 유골함이 들어있어서 그런가?”
현관입구로 화분을 옮기고 사진을 찍고 수사관의 설명을 듣습니다.
도난품은 바로 돌려줄 수가 없어서 경찰서에 압류되고 사건이 해결되면 절차에 의해서 돌려준다기에 수사관에게 화분만 깨지지 않게 조심해 달라고 부탁하고 돌아왔습니다다음날 아침 장대비가 내리는데 훼손이 우려되어 미리 돌려주겠다는 전화를 받고 가게로 나갔더니 수사관 두 분이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려줍니다이미 벤자민은 물을 주지 않아 연한잎사귀는 말라서 부서지고 가운데 무성한가지는 잘라져 사라졌고 다른 가지는 찢어져 있습니다찢어진 가지를 모아 테이프로 깊스를 해주고 화분을 보며 말했지요.
엄마 미안해요."

아침마당 방송

2007년 9월 2일 일요일

고등어가 먹고 싶어


8월 중순 삼계탕이나 함께 먹자며 친구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해가 지는, 조금은 이른 저녁에 친구에게서 금방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종합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입원을 하라고 하기에 준비도 없이 그냥 입원을 했다고 한다. 범상치 않은 직감이 들었지만 별일 아닐 것이라고 말을 해주며 필요한 것 말하라고 했더니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지루하고 잠이 너무 쏟아진다고 책을 갖다 달란다.
서점에 갔다. 워낙에 다독을 하는 친구라 좋은 생각, 행복한 동행, 작은 숲, 당신이 축복입니다. 샘터, 5권의 8월 호 월간지와 단행본 수필집 곰보빵 그리고 예쁘고 작은 빨강 성경책을 구입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면회를갔다. 친구는 조금 수척해 보였다. 검사 결과가 불안한지 내가 가지고 간 책을 침대에 주-욱 진열을 하며 독백하듯이 말한다.


"전부다 팔자다."

"큰 병 아닐 거야! 얘는 검사 받으면서 무슨 팔자 타령은? 성경 읽고 기도해!"

손가락으로 책에 써있는 8자를 가리키며 갑자기 친구가 빙긋이 웃는다. 월간지 다섯 권이 모두 8월 호, 나는 동문 서답을 한 것이다. 아침이 오고 검사 결과를 전해들은 후에도 친구의 그 웃음소리를 듣고싶었다.
그렇게 염려되는 밤이 지나고 또 다시 찾은 병실은 묻고 대답하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병실을 지키는 내게 미안했던지 남편이 금방 올 거라며 자꾸 집에 가라고 말한다. 어른이되어 만난 우리사이 친구사이가 되었지만 마음이 통하고 친 자매같은 사이가 되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이사를 한 후로는 매일 만나지 못해 늘 아쉬웠고 가끔 만나면 너무 좋아서 헤어지기 싫어 우리는 싱겁을 떨면서 장난 인듯 연극을 하면서 헤어지곤 했다.
내가 친구의  옷 끝자락을 꼭 잡고  내 곁으로 살짝 잡아당기며 장난끼 가득한 얼굴을 하고,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하면 매정한 표정으로 옷자락을 잡아채면서, "왜 이래...놓아라!  놓으라니까?"
우리가 헤어질 때면 장난치던 말들...
참고있던 눈물이 고여 시야가 흐릿해 진다.
우리는 힘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었다.

"가라."

"간다."

병실 침대 머리맡에 금식이라는 팻말을 걸어놓고 고등어 조림이 먹고 싶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나서 나는 저녁 반찬거리로 고등어 2마리를 샀다. 생선 담긴 검정 비닐 봉지를 디룽디룽 들고 발길이 멈춘 기도 실 입구에 서서 검정 비닐 봉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기분이 울적한 탓인지 작은 반찬거리도 내게 큰짐으로 느껴지는 날이다.
예의 상 건물 안에 비린내를 풍길 수 없어서 화단 나무에 잠시 걸어두고 들어갔는데 시간이 좀 지체되었나 보다. 집에 돌아오니 고등어가 땡볕아래서 찜질을 너무 오래 했는지 그 냄새를 도저히 용서 할 수가 없다.
'그래, 고등어가 먹고 싶다는 친구는 고통 중에 금식인데 몸에 좋다는 등 푸른 생선을 나만 먹으면 미안하다는 뜻이렷다?' 미련 두지 않고 버렸다.
밤이 깊었는데 어쩌라고 자꾸 생선구이에 하얀 밥이 생각난다.

"친구야, 힘내라. 퇴원하면 함께 먹자."

(월간 작은숲 12월호 )





2007년 7월 22일 일요일

만병 통치약


낮에 일하다 허리를 삐걱했다는 그이가 걱정이 되었지만 괜찮을 거라고 병원은 절대로 안가겠다고 버티더니 밤이 되니 꼼짝도 못했다. 집 앞이 한의원이니 문 닫기 전에 가자고 했더니 침은 무서워서 못 맞겠다고 버틴다. 뿌리고 바르고 붙이고 파스만 머리맡에 진열을 해놓고 번갈아 가며 붙들고 있으니 이제는 파스 냄새 때문에 머리까지 마비되는 것 같다. 머리 아파서 안되겠다고 파스를 모두 치우자고 말하니 "잠깐!"하더니 피할 겨를도 없이 내 이마에 물파스를 쓱~하고 문지른다.
순간 화끈하더니 눈을 뜰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슬쩍 밀쳤는데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그이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은 구급차 부르고 들것에 실려 응급실로 갔다. 옷을 들추니 궁둥이에서 허리를 거쳐 등까지 덕지덕지 붙어있는 파스가 보인다.

"도대체 몇 장이야. 많이도 붙이셨네...."

파스를 떼어 내는 간호사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지 계면쩍게 웃는 나를 흘깃 쳐다보며 덧니를 살짝 드러내고 약간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등에 털이 많으셔서 좀 따가울 텐데..."

간단한 절차를 밟고 결국은 입원했다.
삐걱했을 때 시간지체하지 말고 바로 병원에 왔으면 고생 덜했을 거라고 간호사의 말이다.

"파스만 믿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뭉갰네."

"파스가 무슨 만병 통치약이랍니까?"

꼼짝달싹도 못하고 누워있는 남편과 옥신각신 하며 시중드는 나의 모습이 천사 같다고 옆에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가 말한다. 칭찬을 받으니 쑥스럽기도 하고 더 잘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흘러가는데 아주머니가 또 한마디하신다.

"아픈 사람이야 환자니까 그렇다 치고 간호하는 사람이 더 힘들고 아프다고요. 저 다리 부운 것 좀 봐! 좀 앉아요,"

내 다리가 무 우 다리인 것을 이미 알고있는 남편이 눈동자를 옆으로 내려 깔며 빙그레 웃는다. 밝히지 말라는 뜻으로 귓전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내 다리는 너무 두꺼워, 대포 굴뚝같애, 그치!"

"아~하하하!!! 아고고고고.... 늬 내 죽이려고 작정했나~~"

환자 웃기지 말라고 간호사에게 한마디 들었다.

mbc 여성시대 2부 시그널 맨트 10월5일 방송

2007년 7월 12일 목요일

아이들의 건배놀이


오늘 아침 일찍 교회에 다녀오는 길가에 봄맞이 풀꽃이 곱게 피어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말처럼 나 또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잠시 쪼그리고 앉아있는데 어린이들의 엄마인 듯 젊은 여인3명과 유치 부 어린이 댓 명이 이야기를 나누며 서서히 지나간다. 그들은 주일학교에서 나누어 준 듯한 작은 음료수병과 과자를 각자 손에 들고 있었다. 여인들은 그들대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어린이들은 어린이들대로 시끄럽게 말한다.


"여보 한잔해!"

"그래 한잔하자고, 건배!"

어린이들은 음료수병을 부딪치며 몇 번의 건배를 외친다. 그때마다 무엇을 '위하여' 건배할까? 하며 서로 의논까지 한다.
 "불타는 이 밤을 위하여~~"

'러브 샷'을 하며 외칠 때는 웃고 넘기기에는 말도 표정도 좀 부담스러운 행동이다. 
시대가 시대니 만큼 아이들의 놀이문화도 달라지고 말하는 수준도 우리 때와 완연하게 다르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보여준 오늘의 놀이를 보면서 웃으며 지나쳐 오기는 했지만 너무 어른스러워서 당혹스러웠다.
사람은 4세 이전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이후 살아가는 동안의 일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저 어린이들처럼 취학 전에는 무엇을 하며 놀았을까? 소꿉놀이 밖에는 별다른 기억이 없지만 그래도 가끔 유년시절의 기억들을 어른이 된 지금도 어느 계기가 있을 때마다 기억해낼 때가 있다. 맹랑했던 일들이 기억날 때면 빙긋이 웃는 경우가 있다. 저들도 오늘의 일을 어른이 된 후에 기억한다면 얼마나 많이 웃을까?

한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 어른이 되기까지 가장 가까이 에서 사랑으로 보살피는 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머니 일 것이다. 열 달 동안 뱃속에 품어 주시고 해산의 고통 겪으며 낳아주시고 갖은 수고로 키워주신다. 그리고 어머니와 더불어 생활 속에서 생활을 배우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세상살이를 익히며 자란다. 그러므로 어른들의 사소한 말일지라도 아이들은 금방 따라하고 배울 수 있다. 아무런 뜻도 모르면서 어른들의 흉내를 내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그러나 엄마도 한잔하자며 음료수병을 들이대는 아들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며, "뜨거운 정열의 밤을 위하여"하며 함께 외쳐주는 젊은 엄마의 사랑방식이 오늘 나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이지만 가능하다면 어린이들은 어린이다운 말을 쓰도록 어른들의 조심스러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노파심일까?

☆ 월간-당신이 축복입니다.
2007년8월호 게재





2007년 7월 3일 화요일

입에는 말이적고



얼마 전 한 달에 한번 모이는 친목 모임이 있었다.
아끼는 후배가 가정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어 지난달에 이어 이번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남편과의 별거로 오랫동안 고민하고 갈등하고 마음 아파하는 그녀였다. 그러니 당연히 그녀는 수다 잔치의 재물이 되었다. 걱정으로 시작된 화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에 대한 나쁜 평가로 바뀌었다.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내용에 추정이 보태지고, 나쁜 의미의 말들이 덧붙여지기도 하더니 끝내는 험담을 즐기는 분위기로 막을 내렸다. 그 동안 몰랐던 많은 이야기를 들으니 놀랍기도 하고 그녀에게 크게 실망하게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되새기며 정곡을 찌르는 아픈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별거 동기가 너 때문이라면서? 너, 마귀가 씌었구나. 늬 남편과 차라리 이혼해라. 너 같은 인간을 나는 경멸한다. 여우 짓거리 그만 하고 정신 챙겨라."

너무 많은 자존심을 건드렸다. 더 심한 말도 했다.
그녀는 나에게라도 위로 받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바른말을 해 준다해도 듣는 입장에서는 싫은 것은 당연지사고 염려도 조언도 지나치면 서운한 것이다. 엎어 졌으면 뒤집어지지나 말든지. 그들과 함께 흉보고 돌아서서 불과 한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녀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 세워 모진 말을 뱉어 버렸다. 내뱉어 허물을 만들기보다 침묵하는 편이 나았을 것을...

"언니, 죄송해요."

그녀가 왜 나에게 죄송하다고 해야하는 것인지, 내가 왜 그녀에게 사과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이라면 침묵하고 있을 것을, 괜스레 나서서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야 말았다. 친하면 친할수록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조심해야 할 것이 말이건만,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보니 할 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후회가 남았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고 아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는데 내말 속에는 사랑이 없었다.

"마귀가 씌었구나!"

내가 내뱉은 말을 생각하고 또 하고 내 안에 사랑이 없었음을 후회했다. 그녀에게 해댄 폭언은 내게 몇 갑절 큰 아픔이 되어 돌아왔다.

`입안에는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성자도 될 수 있다.`

법정스님의 오두막편지 표지에 쓰여있는 글을 문득 다시 곱씹어본다.
성자는 고사하고 금세 후회할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앞으로 말을 조심해야 할 일이다.

2007년 샘터 7월호 게재


2007년 7월 2일 월요일

엄마는 왜 나만 혼내?



작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후배는 유난히 빵을 좋아한다. 거의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제과점으로 향한다. 그날도 그녀는  열댓 발짝 정도만 올라가면 건널목이 있는데도 귀찮다며 차가 띄엄띄엄 다니는 틈을 타서 무단횡단을 한다. 빵을 사들고 돌아올 때도 빵 봉지를 한들한들 흔들면서 건너온다.
위험하다며 건널목으로 신호 지켜서 건너라고 몇 번이나 충고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대답한다. 

"걱정 마세요. 내가 뭐 어린앤가요? 차도 별로 안다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를 마중 나가는 길 이엇다. 길 건너편에서 아이가 엄마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면서 뛰어오는 것 이었다. 깜짝놀라 소리를 지르는  순간 아이 앞에 승용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급 정거를했다. 소스라치게놀란 그녀는 황급히 달려가 아이를 부둥켜안고  다친 곳이 없나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는 운전자에게 큰 소리로퍼붓는다.

"사람이 지나가는데 속도를 좀 줄여야지요."

"죄송합니다. 아이가 갑자기 뛰어들어서요. 저기 위가  건널목인데..."

운전자도 많이 놀랐는지 창백한 얼굴로 미안하다 말 하면서도 황당한 모양이다.
그녀는 딸아이 등을 힘껏 후려치면서 호통을 쳤다.

"엄마가 뭐라고 했어! 차 조심하라고 했잖아. 신호등을 보고 건너야지,  여기가 건널목이야?"

아이는 엄마가 때린 등이 아팠던지 팔을 등뒤로 돌려 만지며  울면서 대꾸했다.

"엄마도 신호등 안보고 건너면서 왜 나만 혼내!"

맞는 말이다. 왜 아이만 혼내느냐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 보면서 그녀에게도 아이 에게도 무슨말인가 해주어야 할 것 같았지만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옛말에 자식을 알려면 부모를 보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와 엄마는 가까이에서 늘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진정한 가르침은 본보기를 통해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작은 숲
2007년7월호 게재


2007년 4월 28일 토요일

남편의 핍박




운동을 해야겠다.
아프지 말자는 뜻이다.
며칠 전 운동한답시고 좀 무리해서 걸었더니 몸살이 났다.
남편이 하는 말,

"어째 방아깨비 뛰듯 하더라."

졸지에 난 방아깨비가 되었다.

"그냥 평소대로 해라. 여러모로 관찰해본 결과로 당신은 매미처럼 사는 것이 주변사람 도와주는 기라."

평소에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고 조용하라고 하더니 매미라고 한다.
주사를 잘못 맞았는가 보다.
궁둥이가 딱딱하게 뭉친 건지 부운 건지 너무 아파 뒤척이는 사람에게 이번에는,

"엄살 좀 그만 하고 퍼뜩 일나라. 굼벵이처럼 뭉그적거리기는...."

이번에는 굼벵이다.
굼벵이가 아니란 것을 보여주려고 벌떡 일어나서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었다.

"어데 가는데... 늬 갈곳이나 있나?"

대답도 않고 보란 듯이 집을 나섰지만 그이 말대로 딱히 갈곳이 없다.
홈플러스에 가서 검정 쌀 1봉지와 두부 두 모 사들고 걸어오다 계단 위에서 넘어졌다.
두부 깨질까봐 버둥대다가 굴러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

"두부를 뭉그러뜨리지 팔을 부러뜨리는 곰탱이가 어디 있나?"

나 원 참! 이번에는 곰탱이다.
나의 인내심을 실험하려는지 계속해서 핍박이다.


"사람이 걸을 때 궁둥이를 살살 흔들면서 리듬을 타야지 목도개비처럼 뻣뻣하게 걸으니 허구 한날 넘어지지, 태생이 도도해 가지고는...쯧쯧"

이번에는 생명도 없는 나무 도개비로 변신했다.
보란 듯이 다시 매미로 변신하련다.
깁스한 팔 때문에 에어로빅은 못 따라하겠지만 맨손체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으 싸~~ 우~쌰! "

mbc 짧은글 긴 웃음)
2007년4월27일 강석우, 양희은의 여성시대3부 시그널 맨트 방송.
 

2006년 2월 16일 목요일

퉁퉁마디(Salicornia herbacea L. 'S europeae L.')



얼마 전 아침 일찍 남편 친구부부와 함께 망둥이 낚시를 갔다가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멀리 넓은 갯벌에 붉게 널려있는 바다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창문너머로 보면서 들판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만큼이나 예쁘다고 한마디했더니 옛날에는 저 흔한 것도 뜯어다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는데 요즘은 먹거리가 많으니까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남편 친구가 말한다. 잘록한 마디가 꼭 채송화 잎과 흡사한 것이 마디마디 붙어있어서 퉁퉁 마디라고 부른다는 설명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마트에 가면 해초 판매대에서 파는 파릇파릇한 것을 본적이 있기에 그렇다면 좀 뜯어 가자고 했다.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워 얼마 지나지 않아 낚시를 포기하고 되돌아오면서 퉁퉁 마디를 뜯으러 가자고 했다. 그러나 이미 차는 출발을 하였고 다음에 뜯으러 다시 오자고 하며 돌아왔다. 그날저녁 모 TV에서 몸에 좋은 함초에 관한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마디가 튀어나오므로 퉁퉁 마디라고 불린단다. 낯에 우리가 보고 이야기하고 뜯어오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던 그 퉁퉁 마디가 방송에 나오다니... 반가웠다. 건강식품으로 가공하여 이미 판매가 되고있으며 몸에 이롭고 비만이나 장이 안 좋은 사람, 고혈압, 당뇨, 신장 나쁜 사람에게는 치유에 도움도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바로 내가 먹어야 하는 거네? 좋았어! 다 내 꺼야!!!"

"그러게…. 그 벌판 당신 것이네? 내일 당장 철조망 사 가지고 가서 아무도 못 뜯어가도록 울타리부터 치자고!"

눈은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TV에 빠져있는 나에게 남편은 계속 우스개 소리를 한다. 사실 몸에 좋다고 방송한번 나온 뒤에 장보러 가면 그 코너는 기본적으로 거쳐 가게되고 역시나 사람들은 북적거린다.

"드라이버 가져와 봐!"

"왜~에! 가만있어요 시끄럽게 하지 말고…."

"내가 자꾸 말하면 시끄러우니까 드라이버 가져와 봐…. TV뚜껑 열어줄게 아예 들어가라고!"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시청을 했는지 방송이 끝나자마자 남편의 다른 말은 기억 못하고 드라이버를 얼른 갖다 주었다. 그리고는 친구 부인에게 전화를 하며 낯에 우리가 이야기했던 퉁퉁 마디를 뜯으러 가자고 했다. 그쪽도 그 방송을 보았다고 했다.

"방송 보니까 분명히 몸에 좋은 거 맞지요? 일단은 소독약은 쓰지 않았으니 보증수표잖아요? 퉁퉁 마디 뿌리째 뽑아다 말려서 생식가루나 미숫가루처럼 직접 만들자고요."

우리의 전화 통화를 듣고있던 그이가 뒤로 넘어가듯 웃는 모습을 보면서 왜? 하는 제스처를 보여줬다. 우리는 결국 주말로 약속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이는 드라이버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가 이마를 한 대 때린다. 너무 아팠지만 다시 바닷가에 가기로 약속을 받았기에 참았다. 일년에 한 두 번 만나는 친구를 두 여자성화에 못이기고 그 바닷가를 가기 위해 이틀만에 다시 만났다. 나는 마트 쇼핑비닐봉지 10개를 챙겼다. 친구부인은 쌀자루를 가져왔다고 했다. 남편과 친구는 "야! 우리 너무 팔불출 아니냐?" 하면서 아내들의 요구를 들어준 생색을 내기도 하면서 즐거운 함초 추수 길에 올랐다. 함초는 명아주과 한해살이풀로서 10∼30㎝까지 키가 자라고 줄기는 원기둥처럼 생긴 마디가  전체녹색으로 8∼9월에 꽃도 녹색으로 핀다고 한다. 우리는 붉은 함초가 바람에 날리는 갯벌을 눈앞에 두고 자동차 트렁크에서 비닐봉투를 꺼낸 후 돈도 들이지 않고 수고도 하지 않은 우리의 함초를 추수하기 위하여 준비 운동으로 '야~호" 하고 크게 기지개를 켠 후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 곡식 모아 곳간 안에 들인 것이 없어도 세상 주관하는 주님 새를 먹여 주시니 너희 먹을 것을 위해 근심 할 것 무어냐.'

신이 나서 찬송도 불렀다. 그리고는 새가된 기분으로 우쭐대며 앞장서서 걸었다. 선두로 걷다보니 내 마음속에서는 교만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내가 옛날에 누구였는데…. 간호대학 출신 아닌가! 이 똑똑이가 하자는 대로하면 건강은 안심해도 된다고!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거예요. TV에도 방영되었지만 임상실험도 거친 것이고, 상식 선에서 보더라도 몸에 해로울 것이 없는 해초인 만큼 가공된 것보다 직접 채취해서 먹으면 그것이 정말 자연 식품이고 민간요법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뜯어다가 주스도 만들어먹고 분말도 많이 만들어 두고두고 밀려가면서 먹고 나물도 해먹고 우리 가족의 건강을 이제부터 해초 미인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렵니다. 이제부터 나 하는 똑똑한 짓을 잘 보라고!  내가 가는 길에는 건강한 미래가 있다. 나와 함께 갑시다, 우리의 해초 뻘로….  자!!!! 나를 따르라! 내 뒤를 따르라! 이 신나는 상상은 누가 말려주기 전에는 끝이 나지 않을 듯 했다. 언덕을 내려가고 뻘을 밟고 몇 분 후 당도한 퉁퉁 마디 벌판에는 우리말고도 10여명이 이미 와있었다. 그 사람들도 방송을 보고 왔다고 한다. 방송의 효과는 대단했다. 함초 벌판이 모두 내 것 이라고 집에서 맡아 놓았건만 다른 사람들이 이미 침범해있었다. 손에는 비닐봉투를 하나씩 들고….

'그래 사랑은 나누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건강해야지. 나 혼자 너무 건강해서 200살 살면 세상이 불공평하잖아?
이게 어찌된 일일까! 우리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궁시렁 대며 갈 길을 가고있었다. 나물은 절대로 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억세고 뻣뻣한 마른 들풀 그 자체다. 잎과 줄기가 진홍색으로 변해있는 함초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이 진 뒤 그 속은 열매처럼 싸여있으며 검은색 씨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바람에 그 씨가 다시 떨어져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파란 싹을 틔우고 자라면서 그 마디마디에 적당한 염분을 비롯한 미네랄 등 많은 이로운 영양분을 빨아들여 우리의 식탁 위에 우리의 건강 보조식품으로 쓰임 받게 되는가보다.
돌아오는 길은 너무도 조용했다. 퉁퉁 마디 추수를 못한 것이 꼭 내 책임인 것처럼….
집에 돌아와 나는 그이에게 드라마에서 배운 대사를 오늘도 진지하게 읊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이봐라! 아직도 그 드라마 찍고있나! 그 말 또 다시 하면 정말 TV열고 집어 넣뿐다."

이틀 전 드라이버로 맞은 이마가 아직도 아프다.

월간 샘터 2006년3월호


2005년 9월 26일 월요일

소심한 아이를 위하여



 
지금은 많이도 변해있는 강남의 대모산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몇 해전 졸업을 했지만 가끔 토요일이면 중학생이던 나의 딸들은 봉사활동 이라는 명목으로 그곳에 간다.
비닐봉투와 집게를 들고 손에는 면장갑을 끼고 휴지를 줍는다.
그곳에 다녀오면 몇 시간의 봉사활동 점수가 주어지고 내신 성적에도 반영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때는 어떠했는가?
토요일이면 송충이를 잡으러 대모산에 올랐다.
짝꿍과 한팀이 되어 서로 상대방이 잡은 송충이를 세어준다.
점수도 주어지고 가장 많이 잡은 학생은 공책이 상으로 주어지기도 했다.
소나무 가지를 꺾어 젓가락을 만들고 물 담은 미제 깡통에 잡아넣는다.
칭찬받고 싶어서 열심히 잡는다.
송충이 털이 땀으로 젖은 목덜미나 팔에 묻으면 따갑고 쓰리고 벌겋게 부어오른다.
그래도 칭찬받으려고 열심히 잡는다.
개수를 세다가 행여라도 마릿수가 틀리게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한 마리 두 마리 큰소리로 상대방이 잡은 마릿수를 세어가며 잡는다.

18…. 내가 소리쳤다.
친구가 잡은 개수다.
19……. 친구가 소리쳤다.
내가 잡은 개수다.
한나절이 지나고
선생님께서 "자~ 그만" 하시면서 호루라기를 불어 우리를 부르셨고 몇 마리씩 잡았는지 본인이 잡은 숫자를 차례대로 말하라고 하셨다
친구와 나는 징그럽게 꾸물거리는 송충이깡통을 무슨 보물이라도 바라보듯 하면서 흡족해 하고 있었다.

"누가 제일 많이 잡았을까……."
하시며 깊이 파놓은 구덩이에 송충이를 쏟으라고 하셨다.
호명에 따라 숫자를 부르면 선생님은 기록을 하셨다.

"조 상열 몇 마리?" 19마리요." 오~ 많이 잡았구나! 아직까지는 상렬이가 1등이네……?"
"zooin 몇 마리?" 
'제가 19마리 구요…. 상렬 이는 18마리예요.'

일러바쳤다.
내가 1등이다.
공책은 내가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다음 차례 송충이를 구덩이에 쏟아 부으셨다.
나는 친구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선생님께 바로 말씀드리라고 말했지만 친구는 혓바닥만 낼롬 내밀 뿐 이었다.
순간 머릿속은 온통 송충이 한 마리를 바꾸어서 말한 상열 이의 비열함 때문에 울화가 치밀었다.
산에서 곧바로 종례를 하시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벌거숭이산을 푸른 산으로 만드는데 큰 몫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송충이 개수가 바뀐 것에 대하여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하교를 하고 집으로 오면서 송충이 한 마리 때문에 친구와 티격태격했다.
그렇지만 기운이 장사인 남자 친구와 결투를 하기에는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기에 끙끙 속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 엉엉 울기 시작했고 소심하기 짝이 없다는 꾸지람과 결국에는 아버지께 몇 차례 얻어맞고 훗날 큰 인물이 되려면 통이 커야 한다는 긴 설교로 끝이 났다.
얼마 후 여름방학을 하게 되었다.
생활 통지표 '학교에서 가정으로' 난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학업에 열심이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모든 일에 모범이 되는 학생입니다.
칭찬해주세요."

'가정에서 학교로' 난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쓰셨다.

"대모산 송충이 19마리는 우리 아이가 잡았답니다.
칭찬해 주십시오."

 
월간 샘터 2005년9월호 게재. 

2005년 6월 22일 수요일

기분 좋은날



딸의 친구들이 모여 시끌벅적하다.
젊음, 아름답고 싱그럽고 명민한 그젊음에 문득 부러움을느낀다. 

나도 그 시절을 보냈건만…!
거울 속에 비친 까칠해진 내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씁쓸하게 입맛을 '쩌~억' 하고 다셔본다. 
마음속에 이상을 가지면 영혼이 늙지 않는다는 어느  광고를 보며 '말도안돼. 나이가들면 몸도 영혼도 늙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나이든다' 는 것에 예민해져 간다.
깔깔 거리며 돌아가는 딸들의 인사를 받고 돌아서는데 이런 말이 들린다.

"사키야! 너랑 엄마랑 함께 밖에 나가면 자매라고 하겠다."

"뭐야! 내가 늙어보여?"

딸이 친구를 향해 항의하는 명쾌함 웃음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빙긋이 웃었다.
빈 말 일수도 있는 그말에 기분이 조금 맑아진다.
언제적 들었던 노래가 내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혼자 온갖 고뇌 다 지고 있는 것처럼 우울해 할때는 언제고 
신나는 유행가가 저절로 튀어 나오다니!
주책맞게 어린아이처럼 딸들의 말 한마디에 힘을 싣다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오늘은 커피 말고 녹차를 마시기로 하고 다구를 비켜두고 대접으로 한사발 마시고 무슨 불로초라도 들이킨 것처럼 "아자, 아자!" 소리내며 벌떡 일어난다.
하지만 무릎에서는 '우두둑 뚝뚝' 뼈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쉬이 지친다.

'이러면 곤란하지. 딸들의 그 대화가 무색 하네!

그 녀석들의 평가는 진심 이었을까?
예의상 한 말이었을까?'
내가 이렇게 순간 기쁨을 느끼는것이 주책일까?
어찌 되었든 고맙다.
예쁜 딸들아!!!

월간 함께가는세상 2005년5월호 게재.

2005년 4월 17일 일요일

어느 봄날의 추억



봄이 되면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아서 시댁에 갔던 날이 생각이 난다.
그날은 어느 날보다 화창하고 따뜻한 봄날이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시부모님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점심을 먹은 뒤, 남편과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개울가로 나갔다.그이는 쫄 대를 들고 나는 양동이를 들고 신이 나서 종종걸음을 걸었다. 논두렁 옆에 흐르는 도랑이 나오자 신이 난 김에 나는 껑충 뛰었다. 그런데 발 밑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예사롭지 않더니 "퍽"하고 미끄러져 엎어지고 말았다. 양동이는 도랑에 머리를 박았고 무릎에 피가 났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버둥대고있는데 저만치 앞으로 계속 걸어가고 있는 남편은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른 채 앞만 향해 전진하는 저 사람이 내 남편 맞나? 정말 얄미워서 부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한참을 가다가 그제야 내 부재를 눈치챘는지 뒤를 돌아본다. 마누라가 이렇게 엎어져 있으면 놀래서 달려와도 모자랄 판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한다.


"뭐해? 빨리 와!"


"나 못 가! 아프단 말이야!"


나도 모르게 철부지 아이처럼 소리를 질렀고 부랴부랴 달려온 남편이 그제야 물어본다.


"다쳤어?"


"보면 몰라?"


"어쩌다가 넘어졌어. 조심하지!"


"소똥에 미끄러졌어! 똥이 다 묻었어."


"하하, 하필이면 소똥에 넘어지냐?"


"그럼 어디에서 넘어져야돼?"


신경질이 나서 시비도 걸어보지만 남편은 연거푸 웃기만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얄미웠던 남편이 웃자 금방 내 마음도 풀렸다. 퉁퉁 부은 발목이 일어서지도 못하게 아파 물고기 잡는 건 포기하고 도랑물에 소똥 묻은 것을 닦아내고 그이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두고두고 남편은 그 일을 가지고 나를 놀려댔다.


"소똥에 미끄러져 넘어져 가지고는 손이며 바지에는 똥으로 범벅이 되어 가지고는…."


어찌나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지 이제는 두 손 발 다 들었다. 그런데 작년 봄 어느 날 뉴스에 멸종 위기에 있는 쇠똥구리가 나타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남편 야릇한 표정과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 "쇠똥구리? 흐흐흐" 한다.


"쇠똥구리가 뭐? 왜 그런 눈빛으로 나를 봐?"


"몰라서 물어? 쇠똥~ 소똥~ 흐흐흐"


남편은 그 저 그 이야기를 몇 번이나 우려먹는다. 쇠똥구리 뉴스에서 또 그 사건을 떠올릴 줄이야! 어쨌든 우리는 그날 맥주를 마시며 또 한번 고향 생각에 젖었다. 소똥에 미끄러져 넘어졌던 사건은 당연히 대화의 화 두였고 그로부터 시작해서 쇠똥구리를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밤 깊어 가는줄 모른다.
올 봄에도 시댁으로 봄나들이를 가야겠다.

2005년 3월 25일 금요일

별명


무릎인대가 늘어나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있던 나는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요즈음 다리도 아프고 콧속도 부르 터서 병원에 치료를 받는다고, 신세타령 하기에 마냥 좋은 친구다. 대학동창인 그 친구랑은 마음이 잘 맞아 바쁘더라도 한달 에 한번쯤은 꼭 보던 사이였는데 몇 년 사이 연락이 뜸했었다.

"어디가 아파? 나도 요즘 물리치료를 받는데…."

친구도 무릎하고 코가 아프단다.

"어쩜 우리 둘이 다 동시에 다리를 다쳤을까? 재미있다. 하하하!"

친구는 아픈 것이 뭐가 좋다고 어린아이처럼 깔깔대며 웃어댄다.
우리는 전화 통화를 하다가 곧 바로 만났다.
만나자마자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계집애, 계집애' 하며 시끄럽게 수 다를 떨었다.
친구는 대학 다닐 때 선배에게 코가 꿰어(?)졸업도 않은 채 결혼을 했다.
학교 내에서도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던 그들이 결혼 하려고 했을 때 우리친구들은 모두 반대했었다. 
이유인즉 그 선배가 아끼는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항상 소유물처럼 친구를 옆에 두려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게 사귀는 티를 많이 내는 것 또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었다.
한편 극진한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아무튼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학업마저 포기한 채 기어이 그 선배와 결혼을 했다.
줄줄이 4남매를 낳고 얼마 전에 손자까지 보았다.

"그래 네 남편은 여전히 너에게 극진히 잘해주고?"

"말 도마라."

지금도 친구 남편은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들과 이야기하거나 조금이라도 상냥하게 대하면 난리가 난다 고한다.

"아니, 결혼한지가 벌써 몇십 년인데...손자까지 있는 마당에......."

얼마 전 집 앞에 나갔는데 새로 이사온 이웃 남자가 재활용품 수거 장소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기에 대답해 주었단다. 그리고 베란다 쪽을 쳐다보았더니 남편이 자기를 쳐다보며 손을 흔들어 주더란 다. 그런데 그 순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손에 들고있던 바가지는 퉁겨 나가고 담겨있던 콩나물은 흩어지고 무릎도 손바닥도 깨진 것이다. 놀란 이웃 남자가 일으켜주고 콩나물도 주워 주었다. 무릎이 깨져 절룩거리며 들어오는데 남편이 하는 말,

"바가지는 안 깨졌어? 그 남자에게 뭘 잘 보이려다 그 앞에서 넘어져? 넘어지긴!"

여기 저기 깨진 상처보다 남편의 말이 더 아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그 유난스럽던 학창시절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세상에 네 남편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구나! 미안 하지만 네 남편 별명이 의처증이 였잖어!"

아직도 소녀같이 알콩달콩 사는 친구 앞에서 '의처증' 이라는 단어는 전혀 나쁜 의미가 아니었다. 
아직도 끔찍한 사랑을 과시하며 사는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늘, 항상 행복하기를…….


(월간 함께가는 세상 2005년4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