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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4일 월요일

숙주나물


외교관이신 부모님을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살고있는 딸의 후배가 연락도 없이 게릴라식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나간 딸이 데이트가 끝났다며 집에 들어온다는 전화다. 세상이 무섭다 보니 어디를 가는지 도착했는지 귀가 중인지 수시로 연락을 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귀찮기도 하지만 편리한 점이 많다. 저녁식사는 엄마 좋아하는 트위스터를 샀다며 밥은 짓지 말라고 한다. 영감은 늦는다고 하니 식사 준비는 안 해도 된다. 편하다. 비도 내리고 나가기 싫었는데 잘되었다. 편한 김에 주문도 한다. 콩나물 꼬리가 길지 않은 것으로 아주 조금 들어있는 작은 봉지로 골라서 사들고 오라고 했다. 이럴 때도 편하다. 오늘은 완전히 백수다. 콩나물냉 국을 만들어 시원하게 냉각시켰다가 내일 낮에 먹기만 하면 된다. 아이가 사온 트위스터와 콜라로 백수는 저녁을 먹었다. 배도 부르다.

"엄마 꼬리 짧은 콩나물이 훨씬 비싸던데요? 꼬리 긴 것은 많이 들었는데 2,400원이고 이것은 조금인데 3,900원이래요. 가격이 두 배예요. 냉 콩나물국 만들 때 머리 떼고 꼬리 자르고 다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이건 머리도 없고 통통한 것이 그냥 해도 될 것 같아서 엄마 편리 하라고 비싼 것으로 샀어요."

칭찬 받으려고 말하는 동생 말에 큰애가 꼬리를 단다.

"제발 아는 척 앞서가지 좀 말아라! 원래 콩나물은 길어야 좋은 거야, 키 큰사람 보면 콩나물 많이 먹었느냐고 말하는 거 못 들어 봤어? 그 말은 키큰 콩나물이 좋다는 의미라고."

선물로 받아온 인도네시아 전통그림이 새겨진 금빛 찬란한 bookmark가 아주 예쁘다. '어머니 성경책에 끼우세요.'라고 곱게 적은 메모카드를 읽고 만지고 콩나물은 신경도 안 썼다. 배가 부르니 아무 것도 하기 싫었지만 딸아이 말을 들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데 콩나물 냉국도 만들어야 먹지. 비싼 콩나물은 더 맛있나 어디 만들어 보자고...."

'키 크고 싱겁다는 말도 좋은 의미야?"
칭찬 없는 언니 말에 까칠한 반응을 보이는 조짐이다.
중재를 해야겠기에 한마디 거든다는 말이 작은 아이 편에서 이치에 맞지도 않은 말을 했다.
"원래 콩나물은 키 순서대로 값이 다른 거야. 덜 자란 것이 더 비쌀걸? 영계잖아."내 말에 큰아이가 발끈한다.

"엄마도 제발... 콩나물에 영계가 뭐여요?"

콩나물을 다듬으려고 쟁반에 쏟아놓고 트위스터 먹은 것이 소화가 다 될 정도로 웃고야 말았다. 머리도 없고 통통하고 키 작은 콩나물의 실체는 숙주나물이었다.
새댁이었을 때가 생각난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나는 갖추어진 제사음식을 못보고 살았다. 거기에 오랜 외국에서의 직장생활로 음식은 물론이고 신부로서는 점수를 받을 수 없는 너무 부족한 상태로 사랑 하나만 믿고 결혼했다. 시집가서 처음 제사 음식을 준비 할 때다. 부엌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있는데 손위 형님은 너무 분주했다. 숙주나물을 무치란다. 한 번도 안 해 본 음식이다. 고춧가루 통을 열어놓고 몇 숟가락 넣으면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동서는 친정에서 숙주나물도 안먹어봤어?"

먹어 본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기억이 없었기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무안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평소에 가끔 먹어보기는 했지만 콩나물과 숙주를 구별 못한 딸아이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훗날 오늘을 기억하고 웃을 것이다.
살림살이 아무 것도 가르치지 못하고 시집을 보낸것을 못내 안타까워하시며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밑반찬을 해서 나르시던 내 엄마를 생각한다. 딸은 엄마 삶을 많이 닮는다는데 나 역시 엄마로서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