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누이 부부와 조카님들은 휴가 쓰는 날짜를 서로 맞추어 집안에 대장인 남편에게 통보를 한다. 그렇게 해마다 집안의 대사처럼 여름 휴가를 즐기는 시집의 풍경은 우리 가족들뿐만이 아니고 동네사람들의 부러움이기도 하다. 아들이 귀한 집안이라 집안에는 늘 딸들의 왕래가 많고 어머니는 사위를 아들로 생각하신다. 남편도 매제들과의 모임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데 올해는 나의 불참으로 경우가 달라졌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인솔해야하는 수련회 일정과 가족들의 휴가가 겹쳐졌기에 사흘 후에 합류하여 하루라도 함께 하겠다는 내 말에 "일없다." 퉁명스레 한마디 던지고 좋지 않은 내색으로 헤어진지 사흘째 서로가 감감 무소식이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별다른 변동사항이 없는 한 수해가 심했던 강원도 쪽으로 대이동을 했을 것이라는 것뿐이다. 내가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문자를 보냈을 때는 불러달라는 뜻이었는데 몇 번 시도를 해 보건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초조하고 외톨이가 된 내 모습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역시 자존심에 가느다란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휴가가 끝난 후 후유증 없이 지내려면 자존심 따위는 모두 버리고 또다시 내 존재를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일단은 백기를 들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보더라도 내 마음이 이랬었다는 것을 알아 달라는 뜻으로 약간의 아부 성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전화통화를 하게되면 목소리에 너무 속내가 적나라하게 보여질 것 같아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장세희 시인의 시를 메일에 남기기로 했다.
*그거 알아요?
나 지금 아주 많이 병이 깊어져 있다는 거
약이 없다네요
그 어느 약국에도 병원에도.
병명은 후천성 그리움 증후군이고요
치료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
당신뿐이라는데
혹 알아요 당신
그거 알아요?
나 어제도 오늘도 내내 이 불치병에
신음하고 있다는 거,
신열에 들뜬 이마로 눈물지으며
당신 하염없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거.
사랑하는 거 알아요?
내가 아직도 당신 사랑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그거 알아요?
나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만을
숙명처럼 사랑할 거라는 거
혹시 알아요? *
깜짝 놀라고 말았다. 메일 전송한지 5분도 안되었는데 전화가 온 것이다. 동생 집에 도착하여 메일확인을 해보니 내가 아프다는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는 것이다.
"뭔 헛소리고? 아프나..."
"나 많이 아픕니다. 후천성 그리움 증후군이라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병이 걸렸다고요."
"외로운 전염병? 그런데 왜, 뭣을 잘못 먹었기에 하필 전염병이 걸렸느냐 말이다. 어찌해야한단 말이고. 참, 곤란한 사건이네?"
"사랑해요. 미안해요. 그리고..."
"또...또, 조용해라. 늬 지금 개그하나?" 사랑하는 것은 용서하는데 머리 시끄럽게 뭣이, 그런 병도 있나? 금방 죽을 사람처럼 신음소리 내지 마라. 아무 곳에도 소문 내지 말고, 알았나?"
"병은 자랑해야 된다면서요. 벌써, 진작에 소문 다 냈어요."
"시끄럽다. 조용해라! 전염병이라며 소문 냈드나! 너는, 용서가 안 된다 카니…."
"사랑하는 것이 용서받을 일인가요? 치료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 당신뿐이라는데…."
웃음 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전화를 받을 때와 다르게 점점 답답한 말이 오가고 조금 더 지나면 다툼이 될 것 같은 분위기다. 메일로 보낸 시를 대충 읽고는 내 상황으로 착각한 그이는 몹시 심각했다.
"뭐 그리 희한한 병도 다 있어, 후천성이 증후군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이 재수 없이, 왜, 걸려 가지고..."
수련회를 하루 다녀왔으면 끝내야지 왜 또 오지랖넓게 갔느냐는 그이의 말이 서운한 나머지 가슴속 깊숙한 곳에 커다란 구멍을 뻥하고 뚫어 놓는것 같다.
"혹시 지금 당신귀에 들리지 않나요? 내 고막 터지는 소리?"
"내는 안 들린다. 늬 단단히 중병에 걸렸구나! 고막도 터졌나? 내일 전문 병원 알아봐야겠다. 정신도 몽롱하나? 전염병이면 아마도…, 소록도로 가야하나? 늬 갔던 병원에서는 뭐라 카드나! 격리 수용해야 한다 하드나? 내 지금 간다."
이말 저말 농담도 이 정도라면 너무 곤란한 거 아닌가?
교양 있는 척 하려니 너무 힘들고 약이 올라 막가파 버전으로 소리를 질렀다.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당신이야말로 코미디언이다. 들어만 와봐라! 내 손에 죽을 줄 알라고…! 얼른 빨리 소록도에 연락해놔요."
농담 삼아 할망구라고 내게 말 할 때면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나는 말했다. 젊게 살려고 이리도 부단한 노력을 하건만 쉰내 나는 할망구라고 말하던 그이는 영락없는 할방구 짓을 하고있으니 나이는 결코 숫자일 수만은 없는가보다.
그러나, 동문서답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아직도 나는 이런 상상을 한다.
한번쯤은 단 둘이 여름 바닷가에서 얼굴을 반쯤 가리는 촌스러운 검정 색 선글라스를 쓰고 두꺼비 등 짝 같은 당신손안에 내 작은 손을 꼭 잡힌 채 모래사장을 같이 걷고싶다.
마른 가을 바람이 가슴을 훑어 버릴 것 같은 날에는 길다란 머플러가 등뒤로 바람에 날리는 영화속 주인공처럼 발걸음 짝 맞추어 낙엽을 함께 밟고 싶다.
눈 내리는 겨울날에는 당신의 팔짱을 낀 채 과천청계 산 빙어 회 포장마차에도 가보고 싶었다. 가는 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끼고있던 팔짱을 꼭 잡은 채 죽기 살기로 매달리어 함께 넘어져 눈 위를 나뒹구는 촌극도 한번쯤 만들어서라도 경험하고 싶고, 뻘건 초고추장에 미나리 줄거리와 함께 버무려진 살아서 펄떡거리는 빙어를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쩝쩝 소리내어 볼썽 사납게 환장한 듯 먹어볼까? 아니면 '징그러워서 어떻게…해...!"하며 내숭도 한번쯤 떨어 보고, 설령 내 주량이 술항아리일지라도 더 심한 내숭을 떨며 '못 먹는 술이지만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건배! 건배!! 큰소리로 소리치며 술잔도 부딪쳐보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는 술 취한 핑계를 대면서 매미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매달려 걸으면서 `여보 나 당신 너무 많이 사랑하나봐! 콧소리 섞인 응석도 한번쯤 부려보고 싶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불타는 밤의 정사로 멋진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 그날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나의 상상을 엿보기라도 한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들어오는 그이 하는 말,
"잘 하고 왔나?"
나 역시 의미를 알아채지 못할 웃음을 섞어 말을 던졌다.
"당신도 나처럼 좋은 마음으로 come back home 하기를 기도했어."
"날씨가 덮다."
"비 엄청 왔지요?" 서로가 계속 동문서답을 했다.
올해 여름, 가족 휴가는 못 갔지만 받은 은혜 감사하는 행복한 여름으로 기억 될 것이다.
여름이 가고있다.
*그거 알아요?
나 지금 아주 많이 병이 깊어져 있다는 거
약이 없다네요
그 어느 약국에도 병원에도.
병명은 후천성 그리움 증후군이고요
치료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
당신뿐이라는데
혹 알아요 당신
그거 알아요?
나 어제도 오늘도 내내 이 불치병에
신음하고 있다는 거,
신열에 들뜬 이마로 눈물지으며
당신 하염없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거.
사랑하는 거 알아요?
내가 아직도 당신 사랑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그거 알아요?
나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만을
숙명처럼 사랑할 거라는 거
혹시 알아요? *
깜짝 놀라고 말았다. 메일 전송한지 5분도 안되었는데 전화가 온 것이다. 동생 집에 도착하여 메일확인을 해보니 내가 아프다는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는 것이다.
"뭔 헛소리고? 아프나..."
"나 많이 아픕니다. 후천성 그리움 증후군이라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병이 걸렸다고요."
"외로운 전염병? 그런데 왜, 뭣을 잘못 먹었기에 하필 전염병이 걸렸느냐 말이다. 어찌해야한단 말이고. 참, 곤란한 사건이네?"
"사랑해요. 미안해요. 그리고..."
"또...또, 조용해라. 늬 지금 개그하나?" 사랑하는 것은 용서하는데 머리 시끄럽게 뭣이, 그런 병도 있나? 금방 죽을 사람처럼 신음소리 내지 마라. 아무 곳에도 소문 내지 말고, 알았나?"
"병은 자랑해야 된다면서요. 벌써, 진작에 소문 다 냈어요."
"시끄럽다. 조용해라! 전염병이라며 소문 냈드나! 너는, 용서가 안 된다 카니…."
"사랑하는 것이 용서받을 일인가요? 치료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 당신뿐이라는데…."
웃음 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전화를 받을 때와 다르게 점점 답답한 말이 오가고 조금 더 지나면 다툼이 될 것 같은 분위기다. 메일로 보낸 시를 대충 읽고는 내 상황으로 착각한 그이는 몹시 심각했다.
"뭐 그리 희한한 병도 다 있어, 후천성이 증후군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이 재수 없이, 왜, 걸려 가지고..."
수련회를 하루 다녀왔으면 끝내야지 왜 또 오지랖넓게 갔느냐는 그이의 말이 서운한 나머지 가슴속 깊숙한 곳에 커다란 구멍을 뻥하고 뚫어 놓는것 같다.
"혹시 지금 당신귀에 들리지 않나요? 내 고막 터지는 소리?"
"내는 안 들린다. 늬 단단히 중병에 걸렸구나! 고막도 터졌나? 내일 전문 병원 알아봐야겠다. 정신도 몽롱하나? 전염병이면 아마도…, 소록도로 가야하나? 늬 갔던 병원에서는 뭐라 카드나! 격리 수용해야 한다 하드나? 내 지금 간다."
이말 저말 농담도 이 정도라면 너무 곤란한 거 아닌가?
교양 있는 척 하려니 너무 힘들고 약이 올라 막가파 버전으로 소리를 질렀다.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당신이야말로 코미디언이다. 들어만 와봐라! 내 손에 죽을 줄 알라고…! 얼른 빨리 소록도에 연락해놔요."
농담 삼아 할망구라고 내게 말 할 때면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나는 말했다. 젊게 살려고 이리도 부단한 노력을 하건만 쉰내 나는 할망구라고 말하던 그이는 영락없는 할방구 짓을 하고있으니 나이는 결코 숫자일 수만은 없는가보다.
그러나, 동문서답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아직도 나는 이런 상상을 한다.
한번쯤은 단 둘이 여름 바닷가에서 얼굴을 반쯤 가리는 촌스러운 검정 색 선글라스를 쓰고 두꺼비 등 짝 같은 당신손안에 내 작은 손을 꼭 잡힌 채 모래사장을 같이 걷고싶다.
마른 가을 바람이 가슴을 훑어 버릴 것 같은 날에는 길다란 머플러가 등뒤로 바람에 날리는 영화속 주인공처럼 발걸음 짝 맞추어 낙엽을 함께 밟고 싶다.
눈 내리는 겨울날에는 당신의 팔짱을 낀 채 과천청계 산 빙어 회 포장마차에도 가보고 싶었다. 가는 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끼고있던 팔짱을 꼭 잡은 채 죽기 살기로 매달리어 함께 넘어져 눈 위를 나뒹구는 촌극도 한번쯤 만들어서라도 경험하고 싶고, 뻘건 초고추장에 미나리 줄거리와 함께 버무려진 살아서 펄떡거리는 빙어를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쩝쩝 소리내어 볼썽 사납게 환장한 듯 먹어볼까? 아니면 '징그러워서 어떻게…해...!"하며 내숭도 한번쯤 떨어 보고, 설령 내 주량이 술항아리일지라도 더 심한 내숭을 떨며 '못 먹는 술이지만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건배! 건배!! 큰소리로 소리치며 술잔도 부딪쳐보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는 술 취한 핑계를 대면서 매미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매달려 걸으면서 `여보 나 당신 너무 많이 사랑하나봐! 콧소리 섞인 응석도 한번쯤 부려보고 싶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불타는 밤의 정사로 멋진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 그날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나의 상상을 엿보기라도 한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들어오는 그이 하는 말,
"잘 하고 왔나?"
나 역시 의미를 알아채지 못할 웃음을 섞어 말을 던졌다.
"당신도 나처럼 좋은 마음으로 come back home 하기를 기도했어."
"날씨가 덮다."
"비 엄청 왔지요?" 서로가 계속 동문서답을 했다.
올해 여름, 가족 휴가는 못 갔지만 받은 은혜 감사하는 행복한 여름으로 기억 될 것이다.
여름이 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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