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인대가 늘어나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있던 나는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요즈음 다리도 아프고 콧속도 부르 터서 병원에 치료를 받는다고, 신세타령 하기에 마냥 좋은 친구다. 대학동창인 그 친구랑은 마음이 잘 맞아 바쁘더라도 한달 에 한번쯤은 꼭 보던 사이였는데 몇 년 사이 연락이 뜸했었다.
"어디가 아파? 나도 요즘 물리치료를 받는데…."
친구도 무릎하고 코가 아프단다.
"어쩜 우리 둘이 다 동시에 다리를 다쳤을까? 재미있다. 하하하!"
친구는 아픈 것이 뭐가 좋다고 어린아이처럼 깔깔대며 웃어댄다.
우리는 전화 통화를 하다가 곧 바로 만났다.
만나자마자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계집애, 계집애' 하며 시끄럽게 수 다를 떨었다.
친구는 대학 다닐 때 선배에게 코가 꿰어(?)졸업도 않은 채 결혼을 했다.
학교 내에서도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던 그들이 결혼 하려고 했을 때 우리친구들은 모두 반대했었다.
이유인즉 그 선배가 아끼는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항상 소유물처럼 친구를 옆에 두려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게 사귀는 티를 많이 내는 것 또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었다.
한편 극진한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아무튼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학업마저 포기한 채 기어이 그 선배와 결혼을 했다.
줄줄이 4남매를 낳고 얼마 전에 손자까지 보았다.
우리는 전화 통화를 하다가 곧 바로 만났다.
만나자마자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계집애, 계집애' 하며 시끄럽게 수 다를 떨었다.
친구는 대학 다닐 때 선배에게 코가 꿰어(?)졸업도 않은 채 결혼을 했다.
학교 내에서도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던 그들이 결혼 하려고 했을 때 우리친구들은 모두 반대했었다.
이유인즉 그 선배가 아끼는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항상 소유물처럼 친구를 옆에 두려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게 사귀는 티를 많이 내는 것 또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었다.
한편 극진한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아무튼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학업마저 포기한 채 기어이 그 선배와 결혼을 했다.
줄줄이 4남매를 낳고 얼마 전에 손자까지 보았다.
"그래 네 남편은 여전히 너에게 극진히 잘해주고?"
"말 도마라."
지금도 친구 남편은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들과 이야기하거나 조금이라도 상냥하게 대하면 난리가 난다 고한다.
"아니, 결혼한지가 벌써 몇십 년인데...손자까지 있는 마당에......."
얼마 전 집 앞에 나갔는데 새로 이사온 이웃 남자가 재활용품 수거 장소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기에 대답해 주었단다. 그리고 베란다 쪽을 쳐다보았더니 남편이 자기를 쳐다보며 손을 흔들어 주더란 다. 그런데 그 순간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손에 들고있던 바가지는 퉁겨 나가고 담겨있던 콩나물은 흩어지고 무릎도 손바닥도 깨진 것이다. 놀란 이웃 남자가 일으켜주고 콩나물도 주워 주었다. 무릎이 깨져 절룩거리며 들어오는데 남편이 하는 말,
"바가지는 안 깨졌어? 그 남자에게 뭘 잘 보이려다 그 앞에서 넘어져? 넘어지긴!"
여기 저기 깨진 상처보다 남편의 말이 더 아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그 유난스럽던 학창시절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세상에 네 남편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구나! 미안 하지만 네 남편 별명이 의처증이 였잖어!"
아직도 소녀같이 알콩달콩 사는 친구 앞에서 '의처증' 이라는 단어는 전혀 나쁜 의미가 아니었다.
아직도 끔찍한 사랑을 과시하며 사는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아직도 끔찍한 사랑을 과시하며 사는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늘, 항상 행복하기를…….
(월간 함께가는 세상 2005년4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