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운전면허 시험 보러 갔을 때이다.
그때는 아이가 어려서 남편이 월차를 내고 아이를 돌보아 주고 아침 9시시간을 맞추어 면허 시험장으로 갔다.
필기시험 교실에200명이 시험을 보았다. 집에서 교재를 사서 읽고 문제집도 몇 장 풀어보았는데 공부 안 해도 상식으로 충분히 합격할 듯한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문제 지를 받아보니 그 말이 그 말이고 정답은 아리송한 것이 읽고 또 읽고 신중하게 풀었다. 모두들 다 나갔는데 감독관이 시험지를 내라고 독촉할 때까지 나 혼자 끝까지 남아서 최선을 다했다.
몇 분간 휴식이 있고 채점 결과를 알려주면서 합격자는 실기 시험 볼 자격을 주고 불합격자는 게시판에 점수를 게시해 놓았으니 궁금하면 참고하라는 방송과 함께 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도 있고 불합격에 힘없는 사람도 있다. 속상했다. 불합격이라며 건네주는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 게시판 쪽으로 향해 걸어가면서 설마 한 두 문제 상관에 떨어졌겠지 했다. 인파를 헤집고 앞으로 다가가서 위에서부터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내 수험번호를 찾아 점수를 확인했다. 42점, 다시 훑어봐도 40점 대는 없다.
고등학교 1차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담 모퉁이에 서서 훌쩍거리던 기억이 휙 하고 머리를 스쳐갔다. 공부 한 건 다 뭐지? 오늘은 머리가 안 열려 주었을 뿐이야! 아니면 시험 운이 없는 거야. 혼자 머리를 쥐어박다가 스스로 위로를 하다가 탱크 만한 휴대폰을 꺼내서 집에다 전화를 했다.
"시험 잘 봤나?
"200등 했어요."
"그게 무슨 말 이가, 등수에 들었으면 합격했나?"
"우리 교실에 200명이 시험 봤다고요."
"멋이? 200명이?"
"그랬다고요."
"퍼뜩 택시 타고 오너라. 딸 아가(딸) 자꾸 울 때 알아봤다."
월차 내어 아이까지 봐주는데 필기 시험에서 떨어져서 실망했다는 강한 표시다.
그때 당시에는 운전하는 여자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내가 면허시험을 보러간 것이 이웃에서 화젯거리가 되어있었다. 택시에서 막 내리는데 우리 집 동 앞에 아줌마 몇 명이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사랑이 아빠한테 물어보니까 200등 했다고 그라던데 합격한 거야?"
"우리 신랑이 그라는데 만점 받고 합격하면 억울한 거래. 딱 80점으로 합격해야 기분 좋은 거래."
"왜?"
"만점 받는다고 면허증 2개 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주는 것도 아니고..."
"몇 점 나왔어?"
각자 하고싶은 말들을 하면서 나의 합격 여부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한 교실에서 200명이 시험 쳤는데 나 200등 했지."
우는 아이를 안고 베란다에서 수다떠는 나를 쳐다보는 남편을 발견하고는 바삐 뛰어 가는 뒤로 아줌마들은 허리를 구부리고 웃어젖힌다. 그 후 실기 시험포함해서 9전10기 딱 1년 걸려서 10번만에 면허증을 받았다. 참, 천지를 다 얻은 기분 이였다. 면허증을 얼마나 쓰다듬었던지 그 기쁨은 알 사람만 알 것이다.
다른 사람들 면허증 국적 란을 보면 대한민국이라고 적혀있는데 내 면허증에는 어찌된 일인지 국적 한국이라고 적혀있다.
1992년 6월7일 15년 전 바로 오늘의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