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1일 수요일

어머나~~

한 달에 한번씩 모이는 친목회에 가면 뒤풀이는 항상 노래방을 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즐거운데 남편도 나도 노래를 제대로 끝까지 아는 것이 없고 부끄러움이 많아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언제나 고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출퇴근길에 차안에서 노래연습을 하기로 했다.
외근중인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래처 사람과 술을 한잔 마셨는데 가까운 곳에 있으니 곧 들어온다고 퇴근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퇴근길 운전은 내가해야 할 것 같아서 사무실에서 그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차례 전화를 했는데도 근처라고만 하면서 빨리 들어오지를 않았다. 오늘 일이 성사가 잘 안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남편의 수고가 안쓰럽기도 하여 깊은 밤까지 저녁도 안 먹고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크게 노래를 부르며 사무실 앞길을 지나가고 있다. 귀에 익은 목소리다. '아니, 저이가….'하면서 문을 열어보았더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어느 여자와 둘이서 어느새 저만큼 멀리 가로등 뿌연 불빛아래를 지나 왼편 골목길로 사라졌다. 꼭 남편 같기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얼마 후 남편이 들어왔다. 술을 잘 못마시는 사람이라 얼굴이 완전히 석류 알맹이 같다.

“그런데 여보, 조금 전에 누가 당신 요즘 연습하는 노래 '어머나'를 부르며 이 앞을 지나갔거든? 목소리도 뒷모습도 당신하고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당신인줄 알고 한참 쳐다봤다니까요? 하긴 집에서도 노래를 부르지 않는 당신이 길거리에서 그 음치 노래를 부를 일은 없지만…. 너무 똑같아서 도깨비에게 홀렸는지 알았다니까요?"

“아, 조금 전에 노래 부른 사람? 나였지. 도깨비한테 홀린 거 아니다. 내다.”

“그래요? 아니, 그게 당신이었단 말이에요? 그럼, 그 앞에 가던 여자는?”

“아~! 오늘 일이 잘 마무리 되서 기분이 좋았거덩? 그래서 노래를 불렀지. 처음에 그 여자가 내뒤에 오는지도 나는 몰랐어. 그런데 나를 쳐다보며 웃더니 내 앞으로 걸어가면서 노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듣는 것 같더라고, 내 느낌에…. 오늘따라 노랫말이 너무나 안 막히고 자꾸만 잘 생각났거덩... 진짜다. 그래서 저 아래 파출소 골목까지 가서 노래 끝내고 왔다.”

"그 여자는?"

"파출소에 볼일이 있는지 뛰어 들어 가더라."

"그래요? 노래는 아무나하나? 그 여자 당신 노래 듣기 싫어서 음치 잡아가라고 신고하러 들어간거 아닐까?"

"뭣이라? 음치?"

내 말에 서운했는지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각오라도 한 것처럼 그이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왠지 쓸쓸해 보였다. 나의 실수다. 어떻게든 그이의 서운한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여보! 지난번 모임 때 당신이 나 안고 노래할 때 감동했어요, 너무 행복했어…, 정말이야! 다음 모임 때는 둘이 함께 부르자고요."

그날에 듣던 노래도 음정 박자는 엉망이었지만 남편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고 진심이었다. 그이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흐흐 그렇게 하지 뭐! 우리가 같이 부르면 모두들 뒤로 나가 자빠질 끼다."

잘 불러서 자빠진다는 것인지 우리 음치화음에 놀라서 자빠진다는 것인지 남편의 말뜻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마음풀고 웃고 지나갔으니 항상 웃음이 넘치기를 소망한다.

2006년 1월 7일 토요일

엄마 아버지의 사랑



if,
훗날 저 세상에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햇빛 쨍쨍한 강가 모래사장이면 좋겠다. 아버지는 투망을 던지고 어머니는 양동이를 들고 나는 그곳에서 웃고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처럼 눈 내리는 밤은 어머니 떠난 생각에 마음이 메어온다. 
창문을 열고 얼굴이 붉어지도록 밖을 내다보았다. 

“아버지 난 눈이 내리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강아지 새끼처럼 그렇게도 눈 내리는 것이 좋니? 잠깐 마당에 나갔다와라.”


먼 옛날 추억속 아버지를 조르던 아이의 모습이 마음속에 그대로인데 아버지도 엄마도 모두 떠나고 나는 고아가되었다.
엄마 떠나신 동짓달 초나흘은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생신 날이다.
 본향으로 돌아가셨으니 생신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라도 자꾸만 연관 지어보고싶다.
 너무 다정했던 분들,
'아버지 생신에 엄마를 초대 하신것일까? 그리운 내 아버지! 그리운 내 어머니!

너무 외롭다.
나만 불행한 것 같은 느낌.
많은 사람들 중에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하라던 아버지 말씀을 되새김 해본다.
아버지 말씀대로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내 부모님처럼 긍정의 힘으로 잘살아낸 인생의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2005년 12월 24일 토요일

어머니 소천



내 어머니는 그렇게 떠나셨다.
 
2005년의 하늘은 내게 모든것을 모두 빼앗아간다.
 
먼 미국의 하늘도 대한민국의 하늘도 내게는 없다.
 
난 아직 엄마를 보내드릴 수 없다.
 
마음만 따라 가고 싶을 뿐.

2005년 12월 7일 수요일

시츄 입양

저녁나절 아직은 어려 보이는 떠돌이 시츄가 우리 집에 오게되었다.
집 근처 대학교 맞은편 복권 방 아저씨가 먹다 남은 피자 조각을 주면서 털이 뭉칠 대로 뭉친 강아지에게 말한다.

"먹고 저리 가라! 학생손님들이 네놈 때문에 안 들어온다."

일주일째 길에서 헤매고 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복권 방 기슭에서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안을 기웃거리면서 드나드는 사람들을 쳐다본다고 했다. 상상하기로 아마 주인이 복권을 사러 많이 드나들었던가 아니면 옆에 피자 집을 많이 다녔던가 그 장소에 버려졌던가….
그곳에서 떠나지 못하고 추운 날씨에 거의 보름동안 자동차 밑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다. 아무튼 안쓰러웠다. 개 좋아하면 데려다 기르라는 복권방 주인의 말대로 웬만하면 데려다 기르겠지만. 집에 있는 두 마리도 표현하기 좀 뭐 하지만 정이 들을 대로 들어서 그야말로 이제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녀석들을 볼 때마다 다시는 동물에게 정주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터라 고개를 내 저었다.

그랬는데….
저녁이 되니 눈이 내리고 그 떠돌이 강아지가 눈에 밟힌다. 그렇다면 오늘만 데려다가 집에 털 깎는 기계가 있으니 뭉친 털이라도 깎아주자 하는 생각에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다시 길거리로 내 놓으려니 안타까운 마음에 보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목욕 시켜서 병원에 데려가 예방주사 맞혀 데리고 왔다.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남편 하는 말, 있는 놈도 없애라니까 버려진 개까지 주워 온다고 싫은 내색을 한다. 내다 버리라고 호통이라도 치면 어쩌나 하고 눈치보면서 말했다.

"사내 녀석이야…! 숫놈…!

"내가 아들을 낳고 싶다고 했지 개새끼 숫놈 주워 오라 했나?"

순간 아들 없는 것이 나만의 큰 잘못인양 어깨가 옴츠려든다. 그런데 이 녀석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그이에게 우~우~웅. 무슨 의사표시를 한다.

"어, 이 녀석 말하네…?"

늙은 두 녀석은 방에 얼씬도 못하게 하는 사람이 웬일로 번쩍 안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문지방에 턱 고이고 쳐다보는 두 녀석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고있네,'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음력으로 동짓달이니 이름은 동지라고 부르자 했더니 나를 흘깃 쳐다보며 한마디하는 남편,

"어이구! 개 엄마 한동안은 또 개소리만 하시겠네!"

다행히 갖다 버리라는 말을 안 한다.
오늘 이렇게 새 식구를 받아들이고 행운의 숫자 7(일곱) 식구가 되었다.
우리 집에 입양인지, 입주인지 하게된 떠돌이 강아지 동지 입장에서는 행운일수도 있겠지만 그 녀석의 재롱을 보게된 우리가족은 가끔씩 순간의 행복을 느낄 것이다.
네잎 Clover의 꽃말은 행운, 세잎 Clover의 꽃말은 행복이라는데 Clover라는 낱말 안에 'love'를 품고 있어 서란다. 작은사랑이라도 사랑 안에서만이 행운도 행복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은 굿이 불행해야 할 이유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떠돌이 강아지 동지가 깨우쳐준 마음의 변화, 이해가 가기 전에 계획하고 깊이 생각하고 기도한 후 새해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꼭 닮은 아들을 입양할 계획이다.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고 흥분된다. 왜 진작에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나 자신이 행복을 위해서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련다.
.

2005년 11월 29일 화요일

하늘 부


그대 하늘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도대체 몇 번을 불렀을까.
14년전 헤어진 아이들 아버지다.
가뜩이나 잠이 오지 않아 와인을 한잔 마시려고 하는 중이었는데 사람을 더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집이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어디세요 물으니 가락시장 앞이라고 걸어가며 전화를 하는 듯 음성이 흔들린다.
부부 다툼했느냐고 하니 아니라고.
차를 잘못 탔느냐고 하니 그렇다고.
나는 계속 질문을 했고 그는 단 답으로 대답을 한다. 울고있는 것인지 걷느라고 숨이 가뿐 것인지 한참동안 아무런 말없이 숨소리만 들리는 전화기를 붙들고 그렇게 있었다.

"할말없으면 끊어요."

착 가라앉은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참았다가 터진 흐느낌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전철을 타고 집에 들어가는 길인데 깊이생각을 하느라고 두 정거장을 더 지나쳐서야 내렸다고 했다. 끝내 흐느낌과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저려왔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그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목이 메이다못해 숨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 내 모양새를 행여 라도 들키지 않으려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이들 보고 싶으면 보면 될 것을... 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담담하게 말을 했지만 사실은 얼굴 위로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이 되어 주르륵 턱 밑으로 떨어졌다. 돌리다말고 놓아둔 와인 병마개의 팽창된 콜크 주둥이가 꼭 내 목구멍처럼 느껴졌다. 이상해진 내 목소리를 그에게 들킬세라 전화기 충전 시켜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끊었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어젯밤 그의 떨리듯 울먹이는 목소리와 힘들고 지쳐있는 모습을 사진 보듯이 떠올리면서 마음도 다스릴 겸 사진기를 들고 아파트 뒤 낮은 산자락을 향해 올라갔다. 봄맞이꽃이 활짝 피었다. 

봄맞이는 앵초과 한해살이풀로 전국의 낮은 산기슭이나 들판, 논둑 같은 약간 습한 곳에서 자란다. 둥근 반원형모양의 잎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고 10cm정도 긴 꽃자루 끝에는 1cm 남짓한 작은 꽃자루가 다시 돌려 붙어있었다. 그 끝에 4-10송이씩 흰 꽃이 피었다.
봄맞이와 애기 봄맞이는 비슷하나 애기 봄맞이는 애기라서 그런지 털이 없다.
자료를 찾아보니 앵초과의 식물들에는 트리테르페노이드 사포닌이 들어 있어서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애기 봄맞이나 봄맞이의 전초를 달여 폐결핵이나 인후가 아플 때 또는 찢긴 상처에 바르기도 하고 마시기도 한다고 적혀있다.

오늘 근심 걱정 모두 벗어버리고 작은 풀꽃과 더불어 하루를 살았다. 봄맞이와 애기 봄맞이를 모두 만났으니 내 마음상처에는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발라야 치유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하지 않으련다. 이미 좋은 생각에 나를 기대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으므로...
그를 위해 기도한다.
하루속히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소원한다.
문자를 보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