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9일 화요일

하늘 부


그대 하늘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도대체 몇 번을 불렀을까.
14년전 헤어진 아이들 아버지다.
가뜩이나 잠이 오지 않아 와인을 한잔 마시려고 하는 중이었는데 사람을 더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집이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어디세요 물으니 가락시장 앞이라고 걸어가며 전화를 하는 듯 음성이 흔들린다.
부부 다툼했느냐고 하니 아니라고.
차를 잘못 탔느냐고 하니 그렇다고.
나는 계속 질문을 했고 그는 단 답으로 대답을 한다. 울고있는 것인지 걷느라고 숨이 가뿐 것인지 한참동안 아무런 말없이 숨소리만 들리는 전화기를 붙들고 그렇게 있었다.

"할말없으면 끊어요."

착 가라앉은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참았다가 터진 흐느낌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전철을 타고 집에 들어가는 길인데 깊이생각을 하느라고 두 정거장을 더 지나쳐서야 내렸다고 했다. 끝내 흐느낌과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저려왔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그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목이 메이다못해 숨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 내 모양새를 행여 라도 들키지 않으려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이들 보고 싶으면 보면 될 것을... 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담담하게 말을 했지만 사실은 얼굴 위로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이 되어 주르륵 턱 밑으로 떨어졌다. 돌리다말고 놓아둔 와인 병마개의 팽창된 콜크 주둥이가 꼭 내 목구멍처럼 느껴졌다. 이상해진 내 목소리를 그에게 들킬세라 전화기 충전 시켜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끊었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어젯밤 그의 떨리듯 울먹이는 목소리와 힘들고 지쳐있는 모습을 사진 보듯이 떠올리면서 마음도 다스릴 겸 사진기를 들고 아파트 뒤 낮은 산자락을 향해 올라갔다. 봄맞이꽃이 활짝 피었다. 

봄맞이는 앵초과 한해살이풀로 전국의 낮은 산기슭이나 들판, 논둑 같은 약간 습한 곳에서 자란다. 둥근 반원형모양의 잎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고 10cm정도 긴 꽃자루 끝에는 1cm 남짓한 작은 꽃자루가 다시 돌려 붙어있었다. 그 끝에 4-10송이씩 흰 꽃이 피었다.
봄맞이와 애기 봄맞이는 비슷하나 애기 봄맞이는 애기라서 그런지 털이 없다.
자료를 찾아보니 앵초과의 식물들에는 트리테르페노이드 사포닌이 들어 있어서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애기 봄맞이나 봄맞이의 전초를 달여 폐결핵이나 인후가 아플 때 또는 찢긴 상처에 바르기도 하고 마시기도 한다고 적혀있다.

오늘 근심 걱정 모두 벗어버리고 작은 풀꽃과 더불어 하루를 살았다. 봄맞이와 애기 봄맞이를 모두 만났으니 내 마음상처에는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발라야 치유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하지 않으련다. 이미 좋은 생각에 나를 기대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으므로...
그를 위해 기도한다.
하루속히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소원한다.
문자를 보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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