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문을 닫고 우리 가족은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져 집을 정리해야 할 상황이 되면서 난처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였습니다. 10평 오피스텔 작은 거처를 임시로 마련했지만 애완견 2마리와 함께 기거 할 수없는 곤란한 상황이라서 여러모로 궁리를 해보아도 가슴 아픈 일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헤어져야 하는 현실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주변에서 산목숨을 향해 매정하게 하는 말은 마음에 상처를 더하기하다 못해 곱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저기 의탁하고 의뢰하고 부탁해 보지만 녹녹치가 않습니다. 다행이 생각 좀 해보겠다던 오빠의 승낙이 전해오고 고마움과 죄송한 마음으로 두 녀석을 데리고 길 떠날 준비를 했지요. 사료와 아이들 집, 몇 개 안되는 장난감과 옷가지를 대충 챙기는데 애들은 우리의 헤어짐을 알기나 하듯이 불안해 보였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주는 길을 두 시간쯤 달려서 꿈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 강원도 홍천 깊은 산속에 위치한 교회 수양 관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오빠가 관리인으로 숙식을 하고 계신 오빠의 직장입니다.
달려오는 동안 뒷좌석에 앉아있던 바리와 구리는 차멀미를 하고 눈물까지 흘리고 있고 안스럽고 불쌍해서 오빠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울기부터 했습니다.
8년 전에 차들이 쌩쌩 달리는 4차선 아스팔트 중간에 앉아 벌벌 떨고 있어서 교통사고 날까봐 데리고 왔다며 음식배달 오토바이 아저씨가 우리 사무실 마당에 내려놓고 간 아이 입니다. 길을 잃었는지 버림을 받은 아이인지 모르는 상태였고 며칠을 굶었는지 배는 홀쭉하게 달라붙었고 생김새도 특이해서 강아지인지 너구리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고 겁에 질린 듯 벌벌 떠는 모습이 안타까워 타월로 감싸 안으니 얌전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강아지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너구리라고 합니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보니 의사도 고개를 갸우뚱 하시고 확답을 안하시더라고요.
”너구리보다는 귀가 크네요. 어차피 너구리도 개과이니 그냥 키워 보세요.“
기본검사 후 생후 1년 미만이라는 이 아이를 목욕시키고 예방접종을 하여 데리고 와서 가족들에게 소개를 시켰는데 온 가족이 만장일치로 찬성하여 우리 가족이 되었답니다. 이름은 자연스럽게 너구리에 너를 빼고 구리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렇게 가족으로 받아 들인지 8년이 되었지요.
13년 된 반려 견 바리는 아빠처럼 동생처럼 구리를 잘 보살펴주었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심장이 약하여 잘 놀랬고 내 품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는 얌전한 마마보이였답니다.
오빠와 아이들에 관한 이런저런 부탁을 했지만 오빠가 두 녀석 모두를 거두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한 녀석만 두고 가라는 말에 다시 데려갈 수도 없고 두 녀석 중에 나이 먹고 늙은 바리만 다시 데리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오빠가 잘 돌봐 준다고 했지만 겁 많은 구리를 혼자 떼어놓는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턱 아래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마음이 찢기는것처럼 아프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오빠 구리가 심장이 약한데 큰 목소리로 혼내지 말고 잘 챙겨줘요. 정리 되는대로 데리러 올게요. 미안해 오빠!“
사랑하는 구리와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말 못하는 아이를 향해 비굴한 변명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조용한 이곳은 너의 심장도 튼튼하게 만들어 줄 거야. 잘살고 있어 구리야! 엄마가 형편이 나아지면 꼭 너를 찾으러 올 테니까.“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주시하는 구리를 오빠에게 부탁하고 차 시동을 걸었습니다.
헤어지는 것을 눈치 챈 아이가 발버둥을 치며 따라 오겠다고 울부짖는데 오빠가 점퍼를 열어 가슴에 꼬~옥 안고 나를 배웅합니다.
구리를 뒤로하고 늙은 바리만 데리고 돌아오는 마음이 형용 할 수없이 무겁고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이 선택이 최선이었고 차선의 방법은 없었어요.
구리야~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세상 끝 날까지 책임 질 수없는 엄마를 용서해라.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오빠와 나는 서로의 생사만 확인하며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늦은 시간에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안부를 묻기도 전에 오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리는 편하게 잘 갔으니 가슴에 묻고 좋았던 날들만 추억하면서 살도록 해.“
아직 함께 살수는 없지만 만나서 안아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세상에서의 이별은 이렇게 아쉬움만 남기고 소리 소문없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행복한 동행을 기원하면서 살아온 8년.
그리고...
9개월의 이별을 아픔으로 남기고 나의 구리는 그렇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갔습니다.
”구리야~~
대신해줄 수 없는 고통이지만 가까이에서 마음을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구리야.
엄마는 하늘만큼 땅만큼 구리를 사랑했단다.
사랑받지 못한 기억은 모두 잊어주기로...
사랑받던 순간들만 기억하기로 하 자.
엄마는 구리때문에 많이 행복했어.
오늘도 가슴속에 묻어놓은 너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리움을 달래련다.
우리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는 그때까지 항상 엄마 지켜주고 매일매일 새벽기도시간에 만나는 걸로...ok?
구리야~~
평안하게 잘 자거라.
사랑해!“
불러도 대답 없는 기억 속에 이름 구리에게 편지 한통을 보내며 그 이름을 기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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