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9일 화요일

하늘 부


그대 하늘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휴대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도대체 몇 번을 불렀을까.
14년전 헤어진 아이들 아버지다.
가뜩이나 잠이 오지 않아 와인을 한잔 마시려고 하는 중이었는데 사람을 더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집이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어디세요 물으니 가락시장 앞이라고 걸어가며 전화를 하는 듯 음성이 흔들린다.
부부 다툼했느냐고 하니 아니라고.
차를 잘못 탔느냐고 하니 그렇다고.
나는 계속 질문을 했고 그는 단 답으로 대답을 한다. 울고있는 것인지 걷느라고 숨이 가뿐 것인지 한참동안 아무런 말없이 숨소리만 들리는 전화기를 붙들고 그렇게 있었다.

"할말없으면 끊어요."

착 가라앉은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참았다가 터진 흐느낌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전철을 타고 집에 들어가는 길인데 깊이생각을 하느라고 두 정거장을 더 지나쳐서야 내렸다고 했다. 끝내 흐느낌과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저려왔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그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목이 메이다못해 숨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 내 모양새를 행여 라도 들키지 않으려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이들 보고 싶으면 보면 될 것을... 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담담하게 말을 했지만 사실은 얼굴 위로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이 되어 주르륵 턱 밑으로 떨어졌다. 돌리다말고 놓아둔 와인 병마개의 팽창된 콜크 주둥이가 꼭 내 목구멍처럼 느껴졌다. 이상해진 내 목소리를 그에게 들킬세라 전화기 충전 시켜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끊었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어젯밤 그의 떨리듯 울먹이는 목소리와 힘들고 지쳐있는 모습을 사진 보듯이 떠올리면서 마음도 다스릴 겸 사진기를 들고 아파트 뒤 낮은 산자락을 향해 올라갔다. 봄맞이꽃이 활짝 피었다. 

봄맞이는 앵초과 한해살이풀로 전국의 낮은 산기슭이나 들판, 논둑 같은 약간 습한 곳에서 자란다. 둥근 반원형모양의 잎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고 10cm정도 긴 꽃자루 끝에는 1cm 남짓한 작은 꽃자루가 다시 돌려 붙어있었다. 그 끝에 4-10송이씩 흰 꽃이 피었다.
봄맞이와 애기 봄맞이는 비슷하나 애기 봄맞이는 애기라서 그런지 털이 없다.
자료를 찾아보니 앵초과의 식물들에는 트리테르페노이드 사포닌이 들어 있어서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애기 봄맞이나 봄맞이의 전초를 달여 폐결핵이나 인후가 아플 때 또는 찢긴 상처에 바르기도 하고 마시기도 한다고 적혀있다.

오늘 근심 걱정 모두 벗어버리고 작은 풀꽃과 더불어 하루를 살았다. 봄맞이와 애기 봄맞이를 모두 만났으니 내 마음상처에는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발라야 치유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는 하지 않으련다. 이미 좋은 생각에 나를 기대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으므로...
그를 위해 기도한다.
하루속히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소원한다.
문자를 보냈다.
힘내세요.'

2005년 11월 24일 목요일

잊을수없는이름 구리

사업장 문을 닫고 우리 가족은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져 집을 정리해야 할 상황이 되면서 난처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였습니다. 10평 오피스텔 작은 거처를 임시로 마련했지만 애완견 2마리와 함께 기거 할 수없는 곤란한 상황이라서 여러모로 궁리를 해보아도 가슴 아픈 일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헤어져야 하는 현실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주변에서 산목숨을 향해 매정하게 하는 말은 마음에 상처를 더하기하다 못해 곱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저기 의탁하고 의뢰하고 부탁해 보지만 녹녹치가 않습니다. 다행이 생각 좀 해보겠다던 오빠의 승낙이 전해오고 고마움과 죄송한 마음으로 두 녀석을 데리고 길 떠날 준비를 했지요. 사료와 아이들 집, 몇 개 안되는 장난감과 옷가지를 대충 챙기는데 애들은 우리의 헤어짐을 알기나 하듯이 불안해 보였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주는 길을 두 시간쯤 달려서 꿈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 강원도 홍천 깊은 산속에 위치한 교회 수양 관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오빠가 관리인으로 숙식을 하고 계신 오빠의 직장입니다.
 
달려오는 동안 뒷좌석에 앉아있던 바리와 구리는 차멀미를 하고 눈물까지 흘리고 있고 안스럽고 불쌍해서 오빠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울기부터 했습니다.
 
 
 
8년 전에 차들이 쌩쌩 달리는 4차선 아스팔트 중간에 앉아 벌벌 떨고 있어서 교통사고 날까봐 데리고 왔다며 음식배달 오토바이 아저씨가 우리 사무실 마당에 내려놓고 간 아이 입니다. 길을 잃었는지 버림을 받은 아이인지 모르는 상태였고 며칠을 굶었는지 배는 홀쭉하게 달라붙었고 생김새도 특이해서 강아지인지 너구리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고 겁에 질린 듯 벌벌 떠는 모습이 안타까워 타월로 감싸 안으니 얌전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강아지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너구리라고 합니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보니 의사도 고개를 갸우뚱 하시고 확답을 안하시더라고요.
 
너구리보다는 귀가 크네요. 어차피 너구리도 개과이니 그냥 키워 보세요.“
 
기본검사 후 생후 1년 미만이라는 이 아이를 목욕시키고 예방접종을 하여 데리고 와서 가족들에게 소개를 시켰는데 온 가족이 만장일치로 찬성하여 우리 가족이 되었답니다. 이름은 자연스럽게 너구리에 너를 빼고 구리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렇게 가족으로 받아 들인지 8년이 되었지요.
 
13년 된 반려 견 바리는 아빠처럼 동생처럼 구리를 잘 보살펴주었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심장이 약하여 잘 놀랬고 내 품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는 얌전한 마마보이였답니다.
 
오빠와 아이들에 관한 이런저런 부탁을 했지만 오빠가 두 녀석 모두를 거두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한 녀석만 두고 가라는 말에 다시 데려갈 수도 없고 두 녀석 중에 나이 먹고 늙은 바리만 다시 데리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오빠가 잘 돌봐 준다고 했지만 겁 많은 구리를 혼자 떼어놓는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턱 아래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마음이 찢기는것처럼 아프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오빠 구리가 심장이 약한데 큰 목소리로 혼내지 말고 잘 챙겨줘요. 정리 되는대로 데리러 올게요. 미안해 오빠!“
 
 
 
사랑하는 구리와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말 못하는 아이를 향해 비굴한 변명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조용한 이곳은 너의 심장도 튼튼하게 만들어 줄 거야. 잘살고 있어 구리야! 엄마가 형편이 나아지면 꼭 너를 찾으러 올 테니까.“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주시하는 구리를 오빠에게 부탁하고 차 시동을 걸었습니다.
 
헤어지는 것을 눈치 챈 아이가 발버둥을 치며 따라 오겠다고 울부짖는데 오빠가 점퍼를 열어 가슴에 꼬~옥 안고 나를 배웅합니다.
 
구리를 뒤로하고 늙은 바리만 데리고 돌아오는 마음이 형용 할 수없이 무겁고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이 선택이 최선이었고 차선의 방법은 없었어요.
 
 
구리야~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세상 끝 날까지 책임 질 수없는 엄마를 용서해라.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오빠와 나는 서로의 생사만 확인하며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늦은 시간에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안부를 묻기도 전에 오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리는 편하게 잘 갔으니 가슴에 묻고 좋았던 날들만 추억하면서 살도록 해.“
 
 
아직 함께 살수는 없지만 만나서 안아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세상에서의 이별은 이렇게 아쉬움만 남기고 소리 소문없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행복한 동행을 기원하면서 살아온 8.
 
그리고...
 
9개월의 이별을 아픔으로 남기고 나의 구리는 그렇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갔습니다.
 
 
구리야~~
 
대신해줄 수 없는 고통이지만 가까이에서 마음을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구리야.
 
엄마는 하늘만큼 땅만큼 구리를 사랑했단다.
 
사랑받지 못한 기억은 모두 잊어주기로...
 
사랑받던 순간들만 기억하기로 하 자.
 
엄마는 구리때문에 많이 행복했어.
 
오늘도 가슴속에 묻어놓은 너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리움을 달래련다.
 
우리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는 그때까지 항상 엄마 지켜주고 매일매일 새벽기도시간에 만나는 걸로...ok?
 
구리야~~
 
평안하게 잘 자거라.
 
사랑해!“
 
 
불러도 대답 없는 기억 속에 이름 구리에게 편지 한통을 보내며 그 이름을 기억 합니다.
 


 

2005년 11월 4일 금요일

살며 사랑하며

한해를 시작하는 정초에는 누구나 한해를 잘 살기위해 계획하고 소원하며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빌고 기도하고 저마다 희망찬 한해를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마무리하는 연말의 세상소식은 참으로 가슴 치며 탄식하게 한다. 세계 속의 우리도 나라안에 우리도 각자의 가정에서의 우리도 왜 이렇게 서로 헐뜯고 상처 내고 피내고 자해하면서 과연 얼마만큼 망가지는 모습이 인간의 마지막 모습일까! 요즘 우리 사회는 망가지는 경쟁이라도 하는 듯 하다. 땅덩어리 작고 딱히 내놓을 자원도 별로 없는 그야말로 가진 것은 단단하고 영특한 머리뿐인데 ...
가슴 치고 통탄할 일만 생긴다.

아버지 추도예배를 마치고 나누는 우리 육 남매의 담소는 토론장을 방불케 했다. 줄기세포 연구에대한 논란으로 세상이 떠들석한 안타까운 심정을 시작으로 모처럼 우리는 가상의 정치가가 되어있기도 하고 연구원도 되어보기도 하고 재산 싸움하는 의리 없는 형제도 되었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늦도록 이야기는 이어졌다.
얼마 전 학계정년 퇴직을 하신 내 오라버니께서 이제 나이 많아 평생 담아놓은 지식도 세상 하직하는 날 함께 없어진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목 디스크 수술을 하고도 책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시며 잔인한 말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장기 이식처럼 지식창고 머리를 그대로 떼어 남길 수 있는 이식 수술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오늘처럼 혹독하게 몹시 춥던 어느 해 겨울 타국에서 일하던 때가 생각난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일찍 출근하여 청소를 마쳐야했던 날 걸레를 빨아 유리창을 닦는데 걸레 자체가 유리문에 척 들러붙고 물걸레가 지나 간 자리는 허옇게 얼어붙어 열심을 다한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소를 안 하니만 못한 경우가 있었다. 당황한 내게 상사가 출근하여 하는 말이 `무슨 일이든 하기 전에 충분한 생각을 하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렇다. 작은 일에도 큰일에도 먼저 충분한 생각과 정확한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 이 많은 피해가 이 상처가 얼어붙은 유리창의 흔적처럼 남았을 지라도 다시 따뜻한 햇볕 을 받아 깨끗이 청소되기를 희망한다.

땅 덩어리 때문에 초로의 삼남매가 죽었다는 또 다른 뉴스를 접하며 부모님께 감사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서 산삼으로 깍두기를 담아 먹고 곰쓸개에서 발바닥까지 모두 먹고 후식으로 뱀탕을 마셔 댄다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가 가는 길은 이미 정해져 있을 진데 꼭 그래야만 했을까? 그 땅덩어리 `내 꺼`라고 맡아 놓은들 뭐할 것인가! 강건하면 환갑 장수해봐야 100세 살아내기도 힘들다는 인생을 60년을 넘게 살아온 사람들이 그것도 핏줄을 내 형제를 재산 때문에 죽이고 죽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 무슨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일인가…!? 욕심 많은 삼남 매는 모두 북망산을 넘어갔으나 그 땅덩어리가 그 후손들에게 더 큰 화를 남기지는 않을는지!
만약에 우리 형제들을 공부 안 시키고 그 많은 강남의 땅덩어리 그대로 붙들고 살았다면 지금쯤은 졸부가 되어 호의호식하고 뻐기며 살는지는 모르지만 형제간에 코피 터지는 재산싸움이 끊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재산 없어도 형제간 우애 있고 머리에 지식 넣어주신 아버지에게 감사한다고 큰 오라버니께서 하신 말씀에 우리 형제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죽거든 묻을 때 손을 밖으로 내놓고 묻어 달라.`

천하를 거머쥔 알렉산더 대왕이 병마와 싸울 때 소생의 기미가 없음을 알고 그의 주변 사람들을 모아놓고 유언을 하게 되었다. 유언을 목 빼고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은 이상한 유언에 놀랍기도 하고 재산이나 물질에 대한 언급도 없는 것에 실망하며 그 이유를 물었다. 알렉산더가 말하길 `천하를 다 가진 사람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날 수밖에 없음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것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는 동안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살아가라는 평범한 진리의 메시지가 아닌가!
알렉산더 대왕의 재산은 누가 차지했을까?
별게 다 궁금하다.

한해를 상쾌한 기분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끔 좋은 세상소식이 들려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헤르만 헤세가 말하기를,
`세상에는 단 하나의 마술, 단 하나의 힘, 단 하나의 행복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
.
.
사랑.

2005년 10월 31일 월요일

문득 찾아온 외로움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야생의 들꽃들이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며 활짝 피어있고 이름도 알 수 없는 들풀과 들꽃들의 아름다움이 주변에 지천이건만 계절이 주는 느낌은 참으로 쓸쓸하다. 며칠 전 저수지 주변 언덕에 유홍초 빨강 꽃이 무리 지어 피어있는 것을 보고 온지라 그 꽃이 지기 전에 사진을 찍고 싶었다. 
늦은 밤 낚시도구를 챙겨 그곳으로 향했다. 조금 전 까지도 보이던 달님은 어느 순간 숨어버리고 캄캄한 저수지에 보일 듯 말 듯한 낚싯대 끝, 캐 미 불빛을 쳐다보며 찬 공기를 한껏 들이마셔본다.

물가를 돌아가며 연기처럼, 구름처럼, 회오리 치듯이 물안개가 피어나고 그 안에서 자연의 신비로움을 본다.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과,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찬 자연의 신비로운 감동을 신음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아~ 하고 감탄해 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침묵은 깊어지고 새벽이 오려는지 찬 공기가 온 몸을 감싸며 한기가 느껴진다.
두터운 점퍼를 덧입으며 차가운 공기를 차단해 보지만 물안개가 지나가니 옷이 흠뻑 젖어 서 인지 떨리기까지 했다.
어느새 동녘의 하늘은 노을보다 더 붉게 물들여지고 행여, 그 장면을 놓칠세라 급히 카메라의 셧터를 눌러 순간을 남기고 지난번 보았던 유홍초 꽃을 찾아 주변을 맴돌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풀만 깎았으면 좋았을 터인데 작고 귀여운 유홍초 꽃동산도 모두 밀어버렸다.
겨우 발견한 애기 나팔꽃 한 송이를 사진으로 남기며 왠지 꼭 나의 말을 들을 것 같은 생각에 '외롭지 말아라.' 이렇게 속삭여 주었다.
새벽녘 돌아오는 길도 군데군데 안개가 자욱하다.
피곤이 밀려오고 눈꺼풀이 쳐진다.
누가 시켜서 이 짓을 하는 걸까!?

"우리들의 무기는 육체가 안이요. 그러나 강하오, 참으로 강하오!"
달리는 차창 밖을 주시하면서 마음속에 강력한 기도의 외침을 묵상할 즈음, 안개 낀 새벽의 고요는 무참히 깨져버렸다.
고속도로 휴게소표 테이프가 쿵짝, 쿵짝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새벽의 고요는 그렇게 흐트러져버렸다.
노랫말이 재미있다.
♪여자는 모르지. 남자가 왜 혼자 여행을 떠나는지! ♪`~
끝까지 다 들었지만 노랫말 속에는 해답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궁시렁 댔다.

"여자는 왜 혼자 여행을 떠날까? 난 그이유도 모르겠단 말이지."

혼자서 궁시렁 거리던 혼잣말을 빼고 밤새 나누었던 우리들의 대화는 같은 말 두어 번 뿐이다.

'입질한다'
......"진 개미야!"

'또, 입질한다.'
....."진 개미 새끼야!"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난 그대가 그립다.' 원 태연 시인의 시집을 생일 선물로  받았던 때에도 첫사랑의 아픔을 겪었을 때에도 그냥 한 문장의 글씨였던 문구가 이제 와서 지금 내게 꼭 맞춤의 글귀로 뻥 뚫린 공활한 가슴 한복판에 똬리를 튼다.
지천명, 쉰내 난다는 중늙은이 대열에 서서 우리들의 침묵은 노화 현상으로 인해 쑤시는 삭신보다도 더욱‥  더 아프게 가슴 저 깊숙한 곳을 콕콕 쑤셔댄다.
나이가 들어가고 얼굴의 주름살이 늘어갈 때에 소녀 같은 마음도 함께 발 맞추어 늙어 가면 얼마나 좋으련만 몸은 늙어도 늙지 않는 감성 때문에 이 계절이 더 외롭고 쓸쓸한 지도 모르겠다.

"그래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외롭답니다. 돋보기를 쓰고서야 신문을 들여다보는 당신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나를 외롭게 하고 낚시터에 함께 앉아 침묵하는 것도 나를 외롭게 합니다."

살면서 한번도 들어본적없는 사랑한다는 말을 새삼 이나이에 듣고싶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넌즈시 손이라도 한번 잡아 주었으면 하는 작은바램이 있건만 묵묵히 아침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문득 찾아온 외로움.
이것이 진정 나이 들어간다는 표시일까?

2005년 10월 30일 일요일

은행잎 가을냄새

어김없이 올해도 가을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거리마다 노란 은행나무 단풍이 한창이다.
나무를 올려다보니 다닥다닥 달려있는 은행 알이 힘에 부치는지 축 늘어진 가장구도 있었다.
어쩌면 그리도 환한 노란빛으로 물들 수 있을까!
머지않아 노란 이파리를 거리 가득 떨어뜨리면 연인들은 사랑을 키우며 그 길을 걸을 테고, 외로운 사람은 쓸쓸함을 달래고자 고운 노란색 길을 따라 걸으며 잠시 한 구절의 시를 읊조려도 좋으리라.
 
'시몬 너는 좋아하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길가 은행나무 아래에 작은 살구처럼 생긴 동그란 은행열매가 바닥에 몇 개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주웠다.
내 모습을 보고 지나가는 어르신이 한 말씀하신다.
 
"은행 잘못 만지면 옻 올라요, 조심해. 맨손으로 만지면 고생 좀 하지! 구린내도 난다고!"
 
냄새가나고 옷이 오른다는 어르신의 말을 듣고 얼른 바닥에 던져 버리고는 손을 바라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물티슈를 꺼내서 손을 문질러 대며 순간 호들갑을 떨어가면서도 욕심이 발동하여 길가에 떨어진 은행열매를 조심스럽게 휴지로 싸서 주워 가지고 돌아왔다. 집에 들어오자 마자 은행에서 왜 냄새가 나며 옻은 왜 오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 인터넷을 여기저기 검색했다.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지식에 여러 지식을 올려준 네티즌들에게 먼저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아래 글은 여러 곳의 지식을 읽고 간단하게 내 의견을 더하기하여 적었다.

그 구린 냄새는 동물이나 곤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나는 냄새이며 또한 '비오 볼'이라는 독성 물질이 들어 있어서 옻이 오른 것 같은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킨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백과(白果)라 하여 진해, 그담, 알츠하이머병이나 노인성치매에도 약으로 쓰이며 흔히 술안주나 자양제(滋養劑)로도 복용하지만 청산배당체(靑酸配糖體)를 함유하고 있으므로 은행을 많이 먹으면 중독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하루에 5알 정도를 권유 한다 고한다.

은행나무의 역사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형성되었는데 중생대의 쥬라기(jurasic)에서 신생대 3기에 이르는 기간에 지구 위엔 무수히 많은 은행나무 종류들이 발생했지만 신생대 3기에 지구 전체에 엄청난 빙하가 덮치면서 양쯔강 하구 남쪽 천목산(天目山)근처에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은행나무는 귀화했다는 설도 있고 자생했다는 말도 있지만 어떻게 자리잡게 되었는지 정확한 자료는 없다고 한다. 어쨌든 은행나무는 대단한 나무이다.

우선 세계적으로 은행나무 과 에는 오직 은행나무 1종만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며 나무 몸 속에 "플라보노이드"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서 갖가지 벌레의 유충이나 식물에 기생하는 곰팡이 바이러스 등을 죽이거나 억제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은행잎을 집에 두면 바퀴벌레나 다른 해충이 없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공해에 대한 적응력도 매우 강하고 아황산가스, 납 성분을 정화하는 능력이 플라타너스보다 2배나 높아 언제부터인가 우리 나라에서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졌다 고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은행나무와에 다른 어떤 관계된 피붙이? 가없으니 외로운 나무임이 분명하니 어찌 보면 많은 사람들이 쓸쓸하고 허전함을 많이 느끼는 가을의 나무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 오랜 옛날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단한 생명력의 소유자이기도 하기에 은행나무를 화석 나무라고도 부른다. 은행나무의 한자 은행(銀杏)은 열매가 살구를 닮았지만 흰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 이름도 실버 어프리코트(Silver apricot) 또는 메이든 헤어 트리(Maiden hair tree)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잎이 오리발을 닮아 압각수(鴨脚樹), 열매를 손자 대에 가서야 얻는다고 하여 공손수(公孫樹)라고도 한다.

은행나무에서 혈액순환촉진성분이 발견되어 어느 제약회사에서 징코민이라는 의약품으로 나와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자란 은행나무만이 유효성분이 많아 제품화한 것에 대한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한반도는 참 특별한 땅이고 복 받은 땅이다.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문화적 연구자료가 될 뿐만이 아니라 생물학적 보존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가운데도 은행나무가 가장 많은 19건이나 되며 노거수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는 것은 자그마치 813그루에 달한다고 한다. 그 중에는 육십 미터가 넘어 동양에서 가장 크고 1,300살에 달해 가장 오래된 용문사의 은행나무도 있다. 어느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새가 앉지 못하게 할 정도로 위엄시 하기도 한다고 한다.

고무장갑을 끼고 겉껍질을 벗기는데 포장된 덩어리 치즈를 벗길 때 나는 구린 냄새와 버금가는 냄새가 났지만 그 다음에 반들반들한 은행 알이 나왔다. 다시 은행의 단단한 부분을 깨뜨리고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 쫄깃하기까지 한 그 맛을 보고야말았다.

내일은 길가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 여러장 주워 다가 책갈피마다 넣어야겠다. 예쁘기도 하지만 살충 작용을 한다고 하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은행나뭇잎에서는 가을 냄새만 풍길 뿐, 절대로 치즈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