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22일 수요일

기분 좋은날



딸의 친구들이 모여 시끌벅적하다.
젊음, 아름답고 싱그럽고 명민한 그젊음에 문득 부러움을느낀다. 

나도 그 시절을 보냈건만…!
거울 속에 비친 까칠해진 내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씁쓸하게 입맛을 '쩌~억' 하고 다셔본다. 
마음속에 이상을 가지면 영혼이 늙지 않는다는 어느  광고를 보며 '말도안돼. 나이가들면 몸도 영혼도 늙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나이든다' 는 것에 예민해져 간다.
깔깔 거리며 돌아가는 딸들의 인사를 받고 돌아서는데 이런 말이 들린다.

"사키야! 너랑 엄마랑 함께 밖에 나가면 자매라고 하겠다."

"뭐야! 내가 늙어보여?"

딸이 친구를 향해 항의하는 명쾌함 웃음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빙긋이 웃었다.
빈 말 일수도 있는 그말에 기분이 조금 맑아진다.
언제적 들었던 노래가 내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혼자 온갖 고뇌 다 지고 있는 것처럼 우울해 할때는 언제고 
신나는 유행가가 저절로 튀어 나오다니!
주책맞게 어린아이처럼 딸들의 말 한마디에 힘을 싣다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오늘은 커피 말고 녹차를 마시기로 하고 다구를 비켜두고 대접으로 한사발 마시고 무슨 불로초라도 들이킨 것처럼 "아자, 아자!" 소리내며 벌떡 일어난다.
하지만 무릎에서는 '우두둑 뚝뚝' 뼈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쉬이 지친다.

'이러면 곤란하지. 딸들의 그 대화가 무색 하네!

그 녀석들의 평가는 진심 이었을까?
예의상 한 말이었을까?'
내가 이렇게 순간 기쁨을 느끼는것이 주책일까?
어찌 되었든 고맙다.
예쁜 딸들아!!!

월간 함께가는세상 2005년5월호 게재.

2005년 6월 18일 토요일

갯 메꽃

바다낚시를 자주 가는 친구부부의 안내로 우리부부는 영흥도라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사는 게 뭔지 늘 생각만 간절하던 바다낚시였었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드디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즐거움의 도가니였다.
큰고기 작은 고기 횟집에서 보았던 녀석들도 보이고 이름도 모르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를 잡았다. 낚시의 즐거움도 벅찬데, 보너스의 즐거움도 있다. 골뱅이 조개 게 해삼 성게 등을 잡는 것도 즐거움의 한 부분이었다. 물이 빠지면 왕성한 번식력을 가졌다는 어른 손바닥만한‘바다의 포식자 불가사리까지 놓치지 않고 사진에 담았다.

평소에 회는 별로 즐기지 않지만 그곳에서 먹는 회 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했다. 2박3일 동안 몸에 남아있는 에너지가  마지막까지 바닥 날만큼 낚시를 즐겼다. 바닷가 작은 산등성이에 해풍을 맞으며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의 아름다움도 일품이었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방파제 끝 비스듬한 언덕 돌 틈 사이에 갯 메의 푸르고 싱싱한 줄기들이 뻗어 내려와 자갈을 침상 삼아 기지개 펴듯 누워있는 모양은 그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곳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생선 비린내는 향수라 치더라도 생선 썩는 냄새가 참기 힘들게 악취를 냅다 풍기고있었다. 아무리 견디려 했지만 머리가 정신을 놓아버리려 한다.

"요것 봐! 요것 좀 봐봐!! 요따위짓거리 한 것들 뉘란 말이여 어!?
담배꽁초, 고추장 통, 비닐 봉지, 지렁이 상자…  에~구~ 김치 쪼가리도 있고…, 낚시꾼들 짓이여!!! 거럼! 낚시꾼들 짓이여! 쓰글 잡늠들 요따고 행동거지랄 하면 벌받을 기여! 하므….
오~메! 껌 밟았네, 요건 또 오똔 뇬 이 뱉은 겨… .
으~ 이구! 못해 먹것다. 못해 묵것써!"

아침나절 주차장근처 꽃밭 옆, 행 길을 청소하던 아주머니 두 분이 하이 소프라노 목소리로 낚시도구 챙기는 나를 향해 들으라는 듯이 하던 말이 머리 속에서 가시질 않아 씁쓸한데 이곳은 도대체 뉘 한 짓이란 말인가! 생선을 이리 많이 상자 채로 버리려면 왜 잡아 왔단 말입니까?
나는 바닷가방파제가 끝나는 그곳에 상자 채로 수북하게 버려져 썩고 있는 그 광경을 보면서 무슨 사정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좋았던 시간 한가운데 옥에 티로 남아있을 기억이다.

그 옆 돌 틈 사이에서 뻗어 내려온 아름다운 갯 메의 줄기는 힘차고 건강하게 뻗어 언덕 아래 자갈밭을 뒤덮고있었으나 식물도 냄새를 맡는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아무리 식물이지만 솔직히 인간의 비 양심을 보인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검은 해녀 복을 갖춰 입은 여인의 모습처럼 그렇게 싱그럽고 건강미가 넘치는 갯 메 덩굴, 다음해에도 그 자리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돌아왔다.
물론 쓰레기 더미는 버린 사람이 양심 껏 자진해서 치워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먼저 하면서 말이다.

아… 즐거움 또 하나,
똥꼬에 새끼손가락 만한 똥을 달고 꼬리 흔들며 따라다니던 식당에서 키우는 덧니 박이 시추 녀석도 웃음을 주었었다.


2005년 6월 13일 월요일

성형수술

마음도 울적하고 기분 전환을 하려고 미용실을 갔다가 옆자리에서 퍼머를하는 두 아가씨의 대화를 듣게되었다.

"언니, 언니~"

"어~왜?"

"언니는 어디 고치고 싶은데 없어?"

"......"

"내일 나랑같이 갈래?"

"어디를...?"

"병원에."

"어디 아파?"

"아니...눈하려고."

"아니 너 두 번씩이나 했잖아! 너 눈이 몇갠데  또해?"

"좀 마음에 안들어서..."

두번이라는 말에 거울 속 그녀를 슬쩍 훔쳐보았다. 수술 흔적이 남아있기는 해도 눈이 때꾼한것이 예쁘고 귀엽다. 잡지책을 보는둥 마는둥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날카롭게 책장을 넘기면서 수다는 계속되었다.

"의사가 뭐라고하는지 알아? 나같은 피부는 처음이라나?"

2005년 6월 11일 토요일

세상구경

신작로가 끝나는 화단 끝 지점 모퉁이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전봇대를 이전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광고지 한쪽이 떨어져 요란스럽게 펄럭이는 광고지를 보고서야 그곳에 전봇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봇대에 붙여놓은 광고 전단 지에는 초록색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최종 부도처리...전 품목 1.000원~ 선착순 100명에게 라면 1box….

혼자 그 글귀를 읽고 또 읽고 땅바닥을 발바닥으로 한번 힘주어 비벼보고 다시 한번 또 광고를 읽었다.

"10시부터라...요즈음 돈벌이도 시원치 않은데 내일 아침 일찍 저곳에나 가볼까?

도대체 1.000원 짜리 라니 무엇을 가져다 놓고 팔기에 이런 큰 광고지를 붙이고 다니는 걸까하고 정말 궁금했다. 천원 짜리 가 무엇인지 구경도하고 필요한 것이면 몇 개 구입하자는 마음으로 그곳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예전에 보았던 코미디가 생각났다.

"체면이 있지...! 내가 옛날에 누구였는데...그럼! 내가 옛날에 누구였는데…아니지. 코미디는 코미디고 공짜 라면이 한 상자라는데……."

그러나 10시가 넘고 다음날이 되었지만 나는 그곳에 갈 용기가 없었다. 1000원 이라는 광고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자꾸만 생각났다. 그냥 가보면 될 것을 1000원 이라는 글귀가 유혹을 하건만 더군다나 공짜라면 1 박스를 준다는 문구가 더욱 신경이 쓰이고 내심 공짜 라면을 받고 싶은 군침이 돌건만 그런 속마음을 누군가 알아차리면 무슨 창피인가 하는 서푼짜리 체면과 자존심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공짜를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진다는데, 은근히 공짜를 기대하는 자신이 쩨쩨한 생각도 들었지만 선착순 100명이라면 집이 가까우니 시간 맞춰 가면 분명히 받을 것 같았다. 행사장인 그 대형 할인매장은 바로 집 근처 이었으므로 다음날도 집 주변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주차 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교통정리 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천원 광고의 위력은 대단했다. 설마 나처럼 공짜 라면을 타러 차까지 몰고 왔단 말인가, 아니면 물건이 정말 천원일까? 궁금했다. 손해볼일은 없을 테지 하는 마음에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그곳에 갔다.
커다란 현수막에 이렇게 써있었다.

"폭삭 망했습니다. 그냥 가져가십시오."

입구부터 요란했다. 남대문 시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라이브, 손뼉치고 발 북을 치며 화장품을 파는가하면 책에서나 보아왔던 각가지 한방 전통차 한약재등 시골 장터를 방불케 했다. 1층부터 5층까지 둘러보았다. 내 눈에 1000원 이라고 쓰인 코너가 보였다. 얄궂은 물건들이 쓰레기 더미처럼 귀퉁이에 쌓여있다.
물 속에서 건졌는지 얼룩진 아가 옷, 짝도 없이 흐트러져있는 비닐 신발 등, 길에 내다 버려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물건들이 뒤엉켜있었다. 광고만 천원 일뿐 브랜드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두어 9.900원부터 99.000원 까지 있었다. 
이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쌈직한 물건들을 구입하려고 여기저기 코너마다 뒤적이고 있었다.
어느 두 여인이 이불 보따리 만한 옷 보따리를 옆에 놓아둔 채 땀까지 흘려가며 열심히 또 고르기에 물어보았다.

"옷 장사하세요?

내가 물어 본뜻은 너무 많이 사는 것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이 의외였다. 시내 번화가에서 옷 집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잘 고르면 10배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고했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옷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가 있을 때 많이 구입하여 수고를 조금하면 많은 수익을 올린다고 말한다. 10배의 수익이라는 말에 놀라는 나를 촌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옷은 브랜드가 돈이거든요. 명품 족들 보면 모르세요? 중고라도 몇십 만원 몇백 만원 없어서 못 팔아요.
짝 퉁 이라도 브랜드가 중요하거든요."

"그렇게 돈벌이가 되요? 그렇다면 해 볼만하군요!"

나의 질문이 하도 진지해 보여서 대답을 해주는 것이라고 인심 후하게 쓰는 투로 말한다.

"옷 장사 해보시게요? 우리 가게 내 놓았는데 생각 있으시면 구경오세요."

예쁜 옷이 그려진 명함을 한 장 주기에 받았다.
내가 모르던 세상구경을 실컷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하다.
그런데...공짜라면은 누가 받아갔을까……!? 


2005년 6월 7일 화요일

당신 떠난 그 아침에

당신 떠난 그 아침에 나는 물말이 밥을 
눈물과 섞어서 꾸역꾸역 한없이 퍼먹었습니다
마지막 잡은 하얗고 야윈 손은 이미 너무도 차가웠습니다.
털썩 주저앉은 채 다리를 일으킬 수도 없고 
손도 떨렸고 몸도 떨렸고 마음은 추웠습니다.

생사를 걸었던 애끓는 마지막 힘을 
무참히 덧없음으로 남기고 
나의 희망 당신은 어디론가 그렇게 가셨습니다
나의 애타는 마음을 너무도 잘 알면서
이별의 순간에도 전혀 모르는 타인처럼 
왜 그렇게 아무 말이 없으셨나요.

몸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진액 인양 
끝내 한쪽 눈에서 흘러내리던 눈물 한줄기
그것이 저를 아끼시는 당신의 마지막 사랑의 
표시이었음을 이제야 깨 닿습니다.

당신 얼굴도 
당신 모습도 
당신의 목소리도 함께 할 수 없음이 
너무 큰 슬픔이고 아픔입니다

그래도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기에
당신 떠난 그 아침에 
눈물 섞인 물말이 밥을 꾸역꾸역 퍼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