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30일 목요일

호상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정열이라는 까만 강아지가 똥차에 치어 죽었다. 
울고있는 나를 아버지 친구이신 새말(신사동) 아저씨가 보셨다. 딸이 없는 아저씨는 나를 보기만 하면 아버지에게 양딸로 달라고 데려가겠다고 하시며 친딸처럼 예뻐해 주셨다. 난 혹시 아저씨 집에 가게 될까봐 깍쟁이 짓을 하며 강력하게 싫다고 했다.
그런데 울고있는 나에게 귀가 번쩍 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아저씨 집에 개가 새끼를 세 마리 낳았는데 젖이 떨어지면 예쁜 강아지를 줄 테니 울지 말라고 손가락까지 걸어 약속해 주셨다. 울음을 뚝 그치니 엄마는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으실 뿐이었다. 아저씨가 가신 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아저씨네 강아지 새끼 낳은 거 맞아?"

"그래, 암놈은 없고 수놈만 세 마리 낳았다고 새끼도 못 낳는 숫놈들 얼른 길러서 잡아먹는다고 하시더라. 암놈이 아니라서 아마 주실 거다."

며칠 후 하얀 강아지가 우리 집에 왔다. 이름은 아저씨가 부르는 대로 백구라고 불렀다. 배가 고플까봐 엄마 몰래 내 밥을 덜어서 먹이고 밤이면 몰래 방으로 안고 와서 함께 자기도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엄마아버지는 질색을 하셨지만 가끔 목욕도 시켜주셨다.
나는 정열이의 죽음을 잊어버렸다.
백구와 행복하게 3개월쯤 지났다.
숙제하는 사이에 백구가 사라졌다. 아버지와 아저씨가 한강에 가셨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달려가다 털썩 주저앉았다.
저 멀리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너무 화가나서 울면서 아저씨가 타고 온 삼천리 자전거 앞 뒤 바퀴 바람을 다 빼버렸다.
40년 전에...

아저씨가 돌아가셨다.
93세의 호 상이다.
내 아버지 보다 20년을 더 사셨다.
우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나는 아버지 생각에, 옛날 생각에 눈물이 살짝 비쳤다.
상주인 아저씨 아들이 인사를 하다가 슬쩍 물어본다.

"아버님이 가끔 말하던 자전거 바람 빼 놓은 그 소녀?"

참, 왠 소녀...

까딱 했으면 상가 집에서 울다가 웃을 뻔했다. 말솜씨하며 보톡스를 맞았는지 너무 빵빵한 얼굴이 60 나이에 걸맞지 않게 보이는 그 오라버니를 보니 졸부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대단해보인다. 부의 여유라고나 할까? 순간적으로  그 옛날 양딸로 갈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을...ㅋㅋㅋ'

문상객들도 호상이라서 그런지 표정들이 그리 무겁지가않다.
아저씨의 영면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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