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행복을 안겨주는 아침
무더위에 잡초들은 모두 타들어 간 여름 끝자락에
보란 듯이 자태를 뽐내며 아침을 맞는 화초 양귀비
작은 바람결에도 곧 찢어질 듯 하늘하늘 수줍은 붉은 얼굴
아름답다.
장하다.
그대이름 양귀비
청순한 너
가녀린 너
순수한 너 나였으면 좋겠다.
2018년 8월 19일 일요일
2018년 6월 8일 금요일
아바바
세월이 참 빠르다.
15년 전 6월 6일 난 무엇을 했던가....
아득한 그날의 아픔.
구급차를 타고 달리며 정신 줄을 놓았던 그날 나도 함께 갔어야 했는데 참 모질게도 아직도 세상과 싸우고 있구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마라 이쁜아~~
지금은 그 누구도 이쁜이라고 불러주는 이가 없네.
꿈길에서라도 강가에서 만나면 예쁜이라고 불러 주세요.
아바바~~~
Time is so fast.
What did I do on June 6, 15 years ago ...
The pain of that far day.
I had to go with the ambulance on the same day that I had lost my mind, but I'm still fighting the world.
Even if life deceives you, don't be sad or angry.
Nobody calls anyone pretty right now.
Please call me pretty when you meet at the river even on a dream road.
Ababa ~~~
2018년 6월 5일 화요일
엄마의 혼잣말
나는 자식들을 어떻게 뭘 먹여 키웠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고 원통한 세상을 살았어.
요즘 엄마들처럼 자식을 안고 사랑한다는 말 한번 해준 기억이 없고 소처럼 일만 지겹게 하고...
애가 학교에 다녀와서 어두워지기 전에 숙제 한다고 앉아있으면 꼴 베어오라고 땔나무 져 오라고...
배는 등짝에 맞붙고 새까맣고 조막만한 얼굴을 하고 입 꼭 다물고 질질 끌리는 지게를 지고 나가지.
어느 날은 먹일 것이 없어 막 담근 열무 물김치한사발을 먹여 보냈더니 배탈이 났는지 토하고 설사하고...
추~욱 늘어져서 잠든 것을 봐도 어떻게 해 줄 수도 없지 뭐! 숨을 쉬나하고 코밑에 손을 갖다 대보고...
이런 세상을 살았어.
아침에 퀭한 눈을하고 학교 간다고...
우리 큰애는 엄마 아버지에게 정도 없겠지...
2018년 5월 21일 월요일
개똥박사
나 어렸을 때 학교에 다녀오면 부모님은 바쁜 농사일에 늘 집에 안계셨다.
배가고파 부억에 가보면 붉은 해당화 꽃이 그려져 있는 동그란 양은 밥상에 베 보자기가 덮여있었다. 고추장, 간장, 그리고 신 김치 국물...
며칠 전에도 어제도 오늘도 기본 메뉴다.
장독대에 가보면 깡 보리를 삶아 소쿠리에 담아 역시 베보자기로 덮어놓고 내 어머니는 일하러 나가셨다. 아마도 저녁밥을 지을 준비를 해놓은 것이었을 것이다. 2살 차이나는 언니와 나는 소쿠리 째 들어다가 옆에 놓고 양푼에 담아 고추장과 신 김치 국물을 넣고 비비고 텃밭에서 제일 작은 풋고추를 따서 대충 물로 헹구어 그것도 고추장을 찍어 먹는 것이 유일한 반찬이었다. 먹다보면 작은 고추에는 오므린 꽃이 붙어있기도 했다. 요즘처럼 위생? 개념 없었다.
배불리 먹고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다보면 잠이 들곤 했다.
일마치고 들어온 내 어머니는 늘 혼잣말을 하셨다.
“어머나 저녁꺼리를 다 먹어치웠네...”
그런 날은 엄마는 밀가루 반죽을 해서 수제비를 끓이셨다.
지금에서야 안 사실은 나와 언니는 보리곱삶이 밥을 먹은 것이 아니라 한번 삶아놓은 꽁보리를 먹은 것이었다는...
내가 추억하는 1960년대 후반의 기억이다.
* 보리곱삶이 밥이란 보리를 2번 삶아서 지은 밥이란 뜻이라고 한다.
꽁보리라는 뜻은 자세히 서술된 문건은 없지만 보리에 꼬리가 달려있어서 지어진 이름이 아 닐까? 라는 오빠의 글을 읽었다.
어제는 먹자 모임에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된장찌개 산채나물이 유명하다는 꽁보리밥 집으로 가자는 3명의 여인들과 막국수를 먹자는 3명의 여인네들 의견에 나는 보리밥도 싫고 비도 내리고 눅눅한 날씨이니 뜨거운 국물을 먹자고 했다. 그래서 정한 곳이 막국수에 뜨거운 국물이 나온 다나 어쩐 다나 다수에 끌려서 간곳이 막국수 집이다.
“여기 쟁반국수 주세요.”
“네 쟁반 7인분요~~”
“네 막국수 7인분요. 뜨거운 국물 2주전자 주시구요...”
여자들은 시끄럽다. 주문하는데도 제각기 떠든다.
나도 질세라 거들었다.
“저는 메밀 막국수 주세요.”
얄밉게 감초여인이 내 말을 막는다.
“언니! 여기는 메밀 막국수라고 말 안 해도 막국수고 쟁반국수고 메밀국수 주는 집 이야요. 메밀국수하고 메밀전병 밖에 없어요.”
뜨거운 갈비탕이 먹고 싶었던 나는 몹시 마땅치 않았기에 감초 여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나는 잘 난 척을 했다.
“이보시게 아우님 막국수를 시킬 때는 메밀 막국수 또는 밀 막국수라고 정확하게 하는 것이 맞는 거야.”
내친김에 보리밥이 무공해영양식으로 각광받는 정확한 이유를 알고 먹으라는 강의로 이어졌다.
“보리는 농약 없이 재배하는 작물이지. 그래서 무공해 밥상으로 사랑 받는 거라고...
보리밥을 먹으면 방구 장이가 되기는 하지만 보리밥 먹고 체해서 죽었다는 대한 뉴스 본적 있거나 들은 적 있는지?“
순간 경청하던 옷 나라 옷가게 여인이 훈수를 둔다.
“개똥박사에게 박수! 박수~~ 짝짝짝~~“
개똥박사...
별명이 되었다.
먹자 모임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기분이 흐뭇했다.
늘,
항상 오늘 배운 지식은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기로...
2017년 8월 14일 월요일
꿈에
아버지는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 서계신다.
두루마기 없는 옥색 한복을 입으시고 조끼 작은주머니에 한 손을 넣으셨다.
잔잔히 물 흐르는 바위위에 맨발로 서서 나를 가엾게 바라보셨다.
“주인아 저 집에 가서 살거라~~”
“아버지 나 저 집 무서워서 싫어~~”
“괜찮아 저기 가서 살면 편하게 살 수 있어.”
아버지가 알려준 재개발 지역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온지 대체 몇 해인가!
나에게는 아무 발전이 없었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 내가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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