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22일 일요일

만병 통치약


낮에 일하다 허리를 삐걱했다는 그이가 걱정이 되었지만 괜찮을 거라고 병원은 절대로 안가겠다고 버티더니 밤이 되니 꼼짝도 못했다. 집 앞이 한의원이니 문 닫기 전에 가자고 했더니 침은 무서워서 못 맞겠다고 버틴다. 뿌리고 바르고 붙이고 파스만 머리맡에 진열을 해놓고 번갈아 가며 붙들고 있으니 이제는 파스 냄새 때문에 머리까지 마비되는 것 같다. 머리 아파서 안되겠다고 파스를 모두 치우자고 말하니 "잠깐!"하더니 피할 겨를도 없이 내 이마에 물파스를 쓱~하고 문지른다.
순간 화끈하더니 눈을 뜰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슬쩍 밀쳤는데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그이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은 구급차 부르고 들것에 실려 응급실로 갔다. 옷을 들추니 궁둥이에서 허리를 거쳐 등까지 덕지덕지 붙어있는 파스가 보인다.

"도대체 몇 장이야. 많이도 붙이셨네...."

파스를 떼어 내는 간호사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지 계면쩍게 웃는 나를 흘깃 쳐다보며 덧니를 살짝 드러내고 약간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등에 털이 많으셔서 좀 따가울 텐데..."

간단한 절차를 밟고 결국은 입원했다.
삐걱했을 때 시간지체하지 말고 바로 병원에 왔으면 고생 덜했을 거라고 간호사의 말이다.

"파스만 믿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뭉갰네."

"파스가 무슨 만병 통치약이랍니까?"

꼼짝달싹도 못하고 누워있는 남편과 옥신각신 하며 시중드는 나의 모습이 천사 같다고 옆에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가 말한다. 칭찬을 받으니 쑥스럽기도 하고 더 잘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흘러가는데 아주머니가 또 한마디하신다.

"아픈 사람이야 환자니까 그렇다 치고 간호하는 사람이 더 힘들고 아프다고요. 저 다리 부운 것 좀 봐! 좀 앉아요,"

내 다리가 무 우 다리인 것을 이미 알고있는 남편이 눈동자를 옆으로 내려 깔며 빙그레 웃는다. 밝히지 말라는 뜻으로 귓전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내 다리는 너무 두꺼워, 대포 굴뚝같애, 그치!"

"아~하하하!!! 아고고고고.... 늬 내 죽이려고 작정했나~~"

환자 웃기지 말라고 간호사에게 한마디 들었다.

mbc 여성시대 2부 시그널 맨트 10월5일 방송

2007년 7월 18일 수요일

여름날의 기억

다섯 시누이 부부와 조카님들은 휴가 쓰는 날짜를 서로 맞추어 집안에 대장인 남편에게 통보를 한다. 그렇게 해마다 집안의 대사처럼 여름 휴가를 즐기는 시집의 풍경은 우리 가족들뿐만이 아니고 동네사람들의 부러움이기도 하다. 아들이 귀한 집안이라 집안에는 늘 딸들의 왕래가 많고 어머니는 사위를 아들로 생각하신다. 남편도 매제들과의 모임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데 올해는 나의 불참으로 경우가 달라졌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인솔해야하는 수련회 일정과 가족들의 휴가가 겹쳐졌기에 사흘 후에 합류하여 하루라도 함께 하겠다는 내 말에 "일없다." 퉁명스레 한마디 던지고 좋지 않은 내색으로 헤어진지 사흘째 서로가 감감 무소식이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별다른 변동사항이 없는 한 수해가 심했던 강원도 쪽으로 대이동을 했을 것이라는 것뿐이다. 내가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문자를 보냈을 때는 불러달라는 뜻이었는데 몇 번 시도를 해 보건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초조하고 외톨이가 된 내 모습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역시 자존심에 가느다란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휴가가 끝난 후 후유증 없이 지내려면 자존심 따위는 모두 버리고 또다시 내 존재를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일단은 백기를 들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보더라도 내 마음이 이랬었다는 것을 알아 달라는 뜻으로 약간의 아부 성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전화통화를 하게되면 목소리에 너무 속내가 적나라하게 보여질 것 같아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장세희 시인의 시를 메일에 남기기로 했다.


*그거 알아요?
나 지금 아주 많이 병이 깊어져 있다는 거
약이 없다네요
그 어느 약국에도 병원에도.

병명은 후천성 그리움 증후군이고요
치료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
당신뿐이라는데
혹 알아요 당신
그거 알아요?

나 어제도 오늘도 내내 이 불치병에
신음하고 있다는 거,
신열에 들뜬 이마로 눈물지으며
당신 하염없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거.

사랑하는 거 알아요?
내가 아직도 당신 사랑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그거 알아요?
나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만을
숙명처럼 사랑할 거라는 거
혹시 알아요? *


깜짝 놀라고 말았다. 메일 전송한지 5분도 안되었는데 전화가 온 것이다. 동생 집에 도착하여 메일확인을 해보니 내가 아프다는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는 것이다.

"뭔 헛소리고? 아프나..."

"나 많이 아픕니다. 후천성 그리움 증후군이라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병이 걸렸다고요."

"외로운 전염병? 그런데 왜, 뭣을 잘못 먹었기에 하필 전염병이 걸렸느냐 말이다. 어찌해야한단 말이고. 참, 곤란한 사건이네?"

"사랑해요. 미안해요. 그리고..."

"또...또, 조용해라. 늬 지금 개그하나?" 사랑하는 것은 용서하는데 머리 시끄럽게 뭣이, 그런 병도 있나? 금방 죽을 사람처럼 신음소리 내지 마라. 아무 곳에도 소문 내지 말고, 알았나?"

"병은 자랑해야 된다면서요. 벌써, 진작에 소문 다 냈어요."

"시끄럽다. 조용해라! 전염병이라며 소문 냈드나! 너는, 용서가 안 된다 카니…."

"사랑하는 것이 용서받을 일인가요? 치료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 당신뿐이라는데…."

웃음 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전화를 받을 때와 다르게 점점 답답한 말이 오가고 조금 더 지나면 다툼이 될 것 같은 분위기다. 메일로 보낸 시를 대충 읽고는 내 상황으로 착각한 그이는 몹시 심각했다.

"뭐 그리 희한한 병도 다 있어, 후천성이 증후군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이 재수 없이, 왜, 걸려 가지고..."

수련회를 하루 다녀왔으면 끝내야지 왜 또 오지랖넓게 갔느냐는 그이의 말이 서운한 나머지 가슴속 깊숙한 곳에 커다란 구멍을 뻥하고 뚫어 놓는것 같다.

"혹시 지금 당신귀에 들리지 않나요? 내 고막 터지는 소리?"

"내는 안 들린다. 늬 단단히 중병에 걸렸구나! 고막도 터졌나? 내일 전문 병원 알아봐야겠다. 정신도 몽롱하나? 전염병이면 아마도…, 소록도로 가야하나? 늬 갔던 병원에서는 뭐라 카드나! 격리 수용해야 한다 하드나? 내 지금 간다."

이말 저말 농담도 이 정도라면 너무 곤란한 거 아닌가?
교양 있는 척 하려니 너무 힘들고 약이 올라 막가파 버전으로 소리를 질렀다.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당신이야말로 코미디언이다. 들어만 와봐라! 내 손에 죽을 줄 알라고…! 얼른 빨리 소록도에 연락해놔요."

농담 삼아 할망구라고 내게 말 할 때면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나는 말했다. 젊게 살려고 이리도 부단한 노력을 하건만 쉰내 나는 할망구라고 말하던 그이는 영락없는 할방구 짓을 하고있으니 나이는 결코 숫자일 수만은 없는가보다.
그러나, 동문서답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아직도 나는 이런 상상을 한다.

한번쯤은 단 둘이 여름 바닷가에서 얼굴을 반쯤 가리는 촌스러운 검정 색 선글라스를 쓰고 두꺼비 등 짝 같은 당신손안에 내 작은 손을 꼭 잡힌 채 모래사장을 같이 걷고싶다.
마른 가을 바람이 가슴을 훑어 버릴 것 같은 날에는 길다란 머플러가 등뒤로 바람에 날리는 영화속 주인공처럼 발걸음 짝 맞추어 낙엽을 함께 밟고 싶다.
눈 내리는 겨울날에는 당신의 팔짱을 낀 채 과천청계 산 빙어 회 포장마차에도 가보고 싶었다. 가는 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끼고있던 팔짱을 꼭 잡은 채 죽기 살기로 매달리어 함께 넘어져 눈 위를 나뒹구는 촌극도 한번쯤 만들어서라도 경험하고 싶고, 뻘건 초고추장에 미나리 줄거리와 함께 버무려진 살아서 펄떡거리는 빙어를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쩝쩝 소리내어 볼썽 사납게 환장한 듯 먹어볼까? 아니면 '징그러워서 어떻게…해...!"하며 내숭도 한번쯤 떨어 보고, 설령 내 주량이 술항아리일지라도 더 심한 내숭을 떨며 '못 먹는 술이지만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건배! 건배!! 큰소리로 소리치며 술잔도 부딪쳐보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는 술 취한 핑계를 대면서 매미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매달려 걸으면서 `여보 나 당신 너무 많이 사랑하나봐! 콧소리 섞인 응석도 한번쯤 부려보고 싶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불타는 밤의 정사로 멋진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 그날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나의 상상을 엿보기라도 한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들어오는 그이 하는 말,

"잘 하고 왔나?"

나 역시 의미를 알아채지 못할 웃음을 섞어 말을 던졌다.

"당신도 나처럼 좋은 마음으로 come back home 하기를 기도했어."

"날씨가 덮다."

"비 엄청 왔지요?" 서로가 계속 동문서답을 했다.

올해 여름, 가족 휴가는 못 갔지만 받은 은혜 감사하는 행복한 여름으로 기억 될 것이다.
여름이 가고있다.

췌장암

1년 전쯤 대궐 같은 친구 집에 놀러갔던 날 종류별로 식구별로 수납 약장에 세워놓은 각종 비타민, 철분제, 영양제를 부럽게 쳐다보았었다.

"이거 미제니?"

"거기 있는거 다아~~비싼거야~~!!"

동문서답만 하며 저녁을 한다기에...

"집에서도 매일 먹는 밥, 밥은 뭬하러 하니 약이나 종류별로 꺼내라 밥 대신 나도 한번 먹어보자...."

몇 번이고 만지작거려도 약은 나눠 먹는 것이 아니라며 한 알갱이도 안주던 얄미운 가스나이~~!!
그 영양제 한 알갱이 먹어보고 싶었던 그날, 약병에 과일 그림을 심통으로 살짝 찢어놓고 세침 떼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다이어트 약이라며 왜 약병 그림을 찢었느냐고 따지기에 병뚜껑이 안열려서 찢었다고 변명했더니 조류라고... 새대가리라고... 지치지도 않고 놀려 대더니 부자 집 마나님이 오늘 이 더운 날에 어지러워서 입원을 했다는 전화를 받고 퇴근길에 잠시 들렀다.

"스트레스 어지럼증 같아!"

"부자도 쓰러질 정도로 북 받치는 스트레스를 받니기집애야엄살떨지 말어풍요로움 속에서 쓰러지는 스트레스 나는 단 하루만이라도 겪어보고 싶다."

환자가 뒤바뀐 것처럼 친구는 명랑하게 말하고 나는 힘없이 의자에 걸터앉았다가 돌아왔다.

며칠이 지났다.
전화기 속에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재수 없게  췌장암 같다는데 너 어떻게 생각하니너무 외롭고 쓸쓸하고 무섭고... 보고 싶다 친구야!"

숙아!
힘내라.
속히 건강 되찾기를 기도한다.
조류라고, 새대가리라고 놀리면서 잘난척하는 네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2007년 7월 12일 목요일

아이들의 건배놀이


오늘 아침 일찍 교회에 다녀오는 길가에 봄맞이 풀꽃이 곱게 피어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말처럼 나 또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잠시 쪼그리고 앉아있는데 어린이들의 엄마인 듯 젊은 여인3명과 유치 부 어린이 댓 명이 이야기를 나누며 서서히 지나간다. 그들은 주일학교에서 나누어 준 듯한 작은 음료수병과 과자를 각자 손에 들고 있었다. 여인들은 그들대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어린이들은 어린이들대로 시끄럽게 말한다.


"여보 한잔해!"

"그래 한잔하자고, 건배!"

어린이들은 음료수병을 부딪치며 몇 번의 건배를 외친다. 그때마다 무엇을 '위하여' 건배할까? 하며 서로 의논까지 한다.
 "불타는 이 밤을 위하여~~"

'러브 샷'을 하며 외칠 때는 웃고 넘기기에는 말도 표정도 좀 부담스러운 행동이다. 
시대가 시대니 만큼 아이들의 놀이문화도 달라지고 말하는 수준도 우리 때와 완연하게 다르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보여준 오늘의 놀이를 보면서 웃으며 지나쳐 오기는 했지만 너무 어른스러워서 당혹스러웠다.
사람은 4세 이전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이후 살아가는 동안의 일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저 어린이들처럼 취학 전에는 무엇을 하며 놀았을까? 소꿉놀이 밖에는 별다른 기억이 없지만 그래도 가끔 유년시절의 기억들을 어른이 된 지금도 어느 계기가 있을 때마다 기억해낼 때가 있다. 맹랑했던 일들이 기억날 때면 빙긋이 웃는 경우가 있다. 저들도 오늘의 일을 어른이 된 후에 기억한다면 얼마나 많이 웃을까?

한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 어른이 되기까지 가장 가까이 에서 사랑으로 보살피는 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머니 일 것이다. 열 달 동안 뱃속에 품어 주시고 해산의 고통 겪으며 낳아주시고 갖은 수고로 키워주신다. 그리고 어머니와 더불어 생활 속에서 생활을 배우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세상살이를 익히며 자란다. 그러므로 어른들의 사소한 말일지라도 아이들은 금방 따라하고 배울 수 있다. 아무런 뜻도 모르면서 어른들의 흉내를 내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그러나 엄마도 한잔하자며 음료수병을 들이대는 아들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며, "뜨거운 정열의 밤을 위하여"하며 함께 외쳐주는 젊은 엄마의 사랑방식이 오늘 나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이지만 가능하다면 어린이들은 어린이다운 말을 쓰도록 어른들의 조심스러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노파심일까?

☆ 월간-당신이 축복입니다.
2007년8월호 게재





2007년 7월 8일 일요일

클럽에서 생긴일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을 한다. 실제로 내 자신을 생각해보더라도 조그마한 일에 노여워하고 쉽게 토라지는 등 어린아이같이 행동하는 모습에 나 스스로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출근하는 남편을 뒤따라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나서면서 단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는 죄송스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함이 분명하다. 옳지 않은 행동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지만 억지로 입을 있는 대로 빼물고 말 한마디 못한 채 고개만 한번 끄덕이는 것으로 출근길을 바라본다.

일과 연결되어 차마 거부하지 못하여서 라는 핑계를 대고 빗속을 가르고 나이트클럽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한 두 번 가보았던 곳을 30여 년만에 간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깊이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젊은이들이나 가는 곳이려니 하고 알고 있었다. 그런 곳에 갈 기회도 없었지만 가고싶다는 생각도 해 본적이 없는 그곳을 얼떨결에 중년의 여자 다섯 명안에 끼어서 겁 없이 그곳에 들어갔다. 

절대로 나이트라는 나라에는 경제위기로 힘든 사람들은 없다. 밖에 비가 오든 천둥이치든 집채가 떠나가든 알 턱이 없다. 먹고 마시고 흔들고 모두가 행복한 웃음만이 있는 나라다. 마음은 금방 20대로 돌아가 있었고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교만하게도 나 자신 스스로 젊게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지천 명을 살아낸 내가 어느새 30대로 전락하여 부킹이라 일컫는 교제의 시간도 주어지고 어느덧 30대 젊은 남자들과 반은 반말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주위 사람들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각 개인의 감추어진 끼나 유흥 적인 면이 이런 경우가 닥치면 가감 없이 드러나게 된다. 마치 억눌려 있던 용수철이 퉁겨 올라오듯이 감추어져 있던 인격이 불쑥 드러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나름대로 고상한 척 하려고 했었는데 순식간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었다. 

"얼른, 일어나! 앞으로 나가. 흔들어...춤을 춰!'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그 무언가가 나를 조정하는 것 같았다. 일행이 손을 잡아 끌었다.

:어서 일어나요. 즐겁게 놀자구~"

"에잇 모르겠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춤을 출 거야. 하나님 오늘만 눈감으세요." 

이미 내 마음은 내가 아니었다. 
한때는 사회나 가정에서 큰일들을 성취해내기도 하고 존경받던 날이 내게도 있었건만 저들 앞에 나이 값도 못하고 성숙치 못한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부비부비 춤까지 추며 환락의 시간을 즐겼다. 대체 왜 그랬을까? 즐거움은 잠시, 시간이 흐르다보니 내 정신이 차츰 돌아왔다. 동행자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며 겁이 덜컥 났다. 나를 돌아다보았다. 엎어졌으면 뒤집히지나 말든지 시간이 흐를수록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나를 채근했다. 

과감한 행동들 앞에 간담이 철렁 내려앉는다. 순간 무서운 세상의 뉴스거리도 생각나고 이성 앞에 두려움도 앞서고 더 이상 시간이 흐르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분위기로 흘러갔다. 숨기고 싶은 순간들, 감추고싶은 몇 시간의 행적은 남편에게sos를 청함으로 이실직고되었고 내가 배신한 것인지 일행들이 배신한 것인지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돌아왔다. 남편의 뒤를 따라 걷는 내 꼬락서니는 마치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저승사자를 따라가는 망자의 모양새다. 

"에구! 신경질나라."

"늬 똥 밟았나... 입 다물어라!"

어느 누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줏대 없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사실자체에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내면의 성숙이 오늘 잠시 멈추었어. 
아니, 후퇴했어.
아냐! 이게 내 모습이야. 
한번쯤 망가지고 싶던 날이 나에게도 있었어..... 
저 양반 그늘 아래서 한번쯤 이렇게 퉁겨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좀더 젊었을 때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잘 한 거야! 혁명, 대 혁명이지. 흐흐흐!!) 
여기까지 생각할 즈음 깜짝 놀랬다. 그이는 내 생각까지 꿰뚫고있었다.

"그래, 고따구로 해 보니 소원 성취 됐나! 젊도 늙도 않은 것들이 뒤엉켜 꾸겨져서 놀아보니 만족 됐나? 노는 행우지 들이 껍데기는 멀쩡해도 뱃속 깊숙이 들여다보면 쌘 노랗게 썩은 기라... 실패한 사람들이 맞지 싶다.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그리 소원 이었나? 다시는 활동 마라. 이제는 밖에 얼씬도 말고 손들고 무릎꿇고 반성해라!"

어떤 말을 해도 아무 대답도 못했다. 
그 뿐 인가. 일행들에게는 남편의 출현이 빅 뉴스가 되어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고리타분하게 이조 백자, 고려 청자시대 여성도 아니고 남편에게 안겨 가다니 어린아이냐는 자유부인 들의 비아냥거림 전화가 빗발쳤다. 그렇지만 개인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을 내 잣대에 맞지 않는다고 뭐라 나무랄 수는 없지 않은가. 나 역시 남의 눈에 티만 보일 뿐, 내 눈의 들보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을....

"분위기가 무서워서..."궁색한 변명을 했다. 배신자가 감수해야하는 몫이다. 

나 나름대로 대인 관계의 균형을 똑바로 잡고 두루두루 완숙에 도전하는 인격을 갖추려고 했었는데 순간의 쾌락 앞에서 그 균형이 삐거덕거리고 말았다니 생각만으로도 부끄럽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나도 인간이기에 솔직히 잠깐동안 미쳐서 춤추던 순간만은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더니 철딱서니없는 행동을 하고야 말았으니 반성하는 의미로 될수 있으면 조용히 있으려고 평소에 안보던 드라마를 틀어놓고 보는데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말없는 분위기를 깨우려고 애견을 안으면서 "시월아! 사랑해" 했더니 "끄~응" 한다.
남편에게 말했다.

"시월 이가 사랑한다는 말을 알아듣고 끙하고 대답했어." 아무 대꾸가 없다.

"시월 이는 내가 안아주면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해도 저를 사랑하는 거 다 알아차리고 끄~응 하고 어리광한다니까...?" 또 아무 대꾸가 없다.

"요즘은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사랑한다는 말을 참 많이도 하든데 평생에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못 들어본 여자는 세상에 나 밖에 없을 거야!" 

말을 해 놓고 보니 정말 그렇다. 
그이도 이제서야 알아차렸는지 말한 사람 민망하게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하는 말,

"당신이 날 사랑한다며..." 너무 웃기는 대답이다. 

"뭬 라고요?"

"늬도 안아주면 시월이 같이 끄~응 하드만, 말 안 해도 다 알아듣는 거 아니가.?" 

"내가 강아지예요?" 반성하는 기간임을 망각한채 날세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강쥐 쌔끼가 왜 생트집이고~ 나이트 클럽 한번 더 가고 싶나?" (버럭!)

"깨갱~ 깨갱~" 
에~구!! 조용히 입다물고 있을 것을 잠자는 사자 코털 건드린 영락없는 강아지 신세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