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2일 월요일

엄마는 왜 나만 혼내?



작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후배는 유난히 빵을 좋아한다. 거의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제과점으로 향한다. 그날도 그녀는  열댓 발짝 정도만 올라가면 건널목이 있는데도 귀찮다며 차가 띄엄띄엄 다니는 틈을 타서 무단횡단을 한다. 빵을 사들고 돌아올 때도 빵 봉지를 한들한들 흔들면서 건너온다.
위험하다며 건널목으로 신호 지켜서 건너라고 몇 번이나 충고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대답한다. 

"걱정 마세요. 내가 뭐 어린앤가요? 차도 별로 안다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를 마중 나가는 길 이엇다. 길 건너편에서 아이가 엄마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면서 뛰어오는 것 이었다. 깜짝놀라 소리를 지르는  순간 아이 앞에 승용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급 정거를했다. 소스라치게놀란 그녀는 황급히 달려가 아이를 부둥켜안고  다친 곳이 없나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는 운전자에게 큰 소리로퍼붓는다.

"사람이 지나가는데 속도를 좀 줄여야지요."

"죄송합니다. 아이가 갑자기 뛰어들어서요. 저기 위가  건널목인데..."

운전자도 많이 놀랐는지 창백한 얼굴로 미안하다 말 하면서도 황당한 모양이다.
그녀는 딸아이 등을 힘껏 후려치면서 호통을 쳤다.

"엄마가 뭐라고 했어! 차 조심하라고 했잖아. 신호등을 보고 건너야지,  여기가 건널목이야?"

아이는 엄마가 때린 등이 아팠던지 팔을 등뒤로 돌려 만지며  울면서 대꾸했다.

"엄마도 신호등 안보고 건너면서 왜 나만 혼내!"

맞는 말이다. 왜 아이만 혼내느냐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 보면서 그녀에게도 아이 에게도 무슨말인가 해주어야 할 것 같았지만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옛말에 자식을 알려면 부모를 보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와 엄마는 가까이에서 늘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진정한 가르침은 본보기를 통해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작은 숲
2007년7월호 게재


2007년 7월 1일 일요일

패륜아

오늘 날씨를 보려고 TV를 켜는 순간 아버지를 폭행했다는 남자의 난동 피는 장면이 나온다. 기물을 던지는데 화면이 깨지는 줄 알았다. 38 세면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아버지에게 돈 벌어다 드려야 할 나이에 돈 내놓으라고 아버지를 폭행하다니 어떻게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같은 사람의 탈을 쓰고 그따위 짓을... 쯧쯧.
그런 사람 잡아다 다른 방법으로 벌주면 뭐합니까. 그따위로 살다가 죽게 내버려두던지 소리 소문 없이 잡아다 격리 수용을 시키든지 해야지 하필이면 아침에 일어나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이 그따위 뉴스랍니까? 그런 뉴스는 아침뉴스에 보도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니 그런 뉴스는 아예 보도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은 빨리 따라하는 것 같아서... 
혹시라도 또 다른 패륜아들이 본다면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모방하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자신이 잘못 살고있는 것을 모르는 폐륜아, 
세상이 뒤숭숭하다보니 별의별 인간들의 별의별 세상 탓을 다 접하고 있다.
오늘 아침 인사는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 땅에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침묵이다.

2007년 6월 21일 목요일

국적 한국 운전면허

15년전 운전면허 시험 보러 갔을 때이다.
그때는 아이가 어려서 남편이 월차를 내고 아이를 돌보아 주고 아침 9시시간을 맞추어 면허 시험장으로 갔다.
필기시험 교실에200명이 시험을 보았다. 집에서 교재를 사서 읽고 문제집도 몇 장 풀어보았는데 공부 안 해도 상식으로 충분히 합격할 듯한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문제 지를 받아보니 그 말이 그 말이고 정답은 아리송한 것이 읽고 또 읽고 신중하게 풀었다. 모두들 다 나갔는데  감독관이 시험지를 내라고 독촉할 때까지 나 혼자 끝까지 남아서 최선을 다했다.
몇 분간 휴식이 있고 채점 결과를 알려주면서 합격자는 실기 시험 볼 자격을 주고 불합격자는 게시판에 점수를 게시해 놓았으니 궁금하면 참고하라는 방송과 함께 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도 있고 불합격에 힘없는 사람도 있다. 속상했다. 불합격이라며 건네주는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 게시판 쪽으로 향해 걸어가면서 설마 한 두 문제 상관에 떨어졌겠지 했다. 인파를 헤집고 앞으로 다가가서 위에서부터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내 수험번호를 찾아 점수를 확인했다.
 42점, 다시 훑어봐도 40점 대는 없다.
고등학교 1차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담 모퉁이에 서서 훌쩍거리던 기억이 휙 하고 머리를 스쳐갔다. 공부 한 건 다 뭐지? 오늘은 머리가 안 열려 주었을 뿐이야! 아니면 시험 운이 없는 거야. 혼자 머리를 쥐어박다가 스스로 위로를 하다가 탱크 만한 휴대폰을 꺼내서 집에다 전화를 했다.

"시험 잘 봤나?

"200등 했어요."

"그게 무슨 말 이가, 등수에 들었으면 합격했나?"

"우리 교실에 200명이 시험 봤다고요."

"멋이? 200명이?"

"그랬다고요."

"퍼뜩 택시 타고 오너라. 딸 아가(딸) 자꾸 울 때 알아봤다."

월차 내어 아이까지 봐주는데 필기 시험에서 떨어져서 실망했다는 강한 표시다.
그때 당시에는 운전하는 여자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내가 면허시험을 보러간 것이 이웃에서 화젯거리가 되어있었다. 택시에서 막 내리는데 우리 집 동 앞에 아줌마 몇 명이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사랑이 아빠한테 물어보니까 200등 했다고 그라던데 합격한 거야?"

"우리 신랑이 그라는데 만점 받고 합격하면 억울한 거래. 딱 80점으로 합격해야 기분 좋은 거래."
"왜?"

"만점 받는다고 면허증 2개 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주는 것도 아니고..."

"몇 점 나왔어?"

각자 하고싶은 말들을 하면서 나의 합격 여부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한 교실에서 200명이 시험 쳤는데 나 200등 했지."

우는 아이를 안고 베란다에서 수다떠는 나를 쳐다보는 남편을 발견하고는 바삐 뛰어 가는 뒤로 아줌마들은 허리를 구부리고 웃어젖힌다. 그 후 실기 시험포함해서 9전10기 딱 1년 걸려서 10번만에 면허증을 받았다. 참, 천지를 다 얻은 기분 이였다. 면허증을 얼마나 쓰다듬었던지 그 기쁨은 알 사람만 알 것이다.
다른 사람들 면허증 국적 란을 보면 대한민국이라고 적혀있는데 내 면허증에는 어찌된 일인지 국적 한국이라고 적혀있다.
1992년 6월7일 15년 전 바로 오늘의 기쁨이었다.

 

포르노 테잎


대충 내용이 돈을 구하기 위하여 처녀를 파는 내용 같았다.
그녀의 희고 긴 목선이 아름답다. 
반짝이는 가느다란 금목걸이에 두 팔 벌려 매달린 예수 형상의 십자가 추가 보인다. 
덜렁덜렁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함께 흔들린다. 
고통스런 표정으로 여자가 눈물을 흘린다.
갑자기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환희 뒤에 그 남자는 그녀 이마에 입맞춤하고 목걸이 추를 조심스레 잡고 다시 한번 입맞춤을 한다.
예수 형상인 줄 알고 입맞춤을 한 것일까? 

그녀의 멋스러운 목선이 질투날 정도로 아름답다.
남자는 그녀 머리에 손을 얹고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무슨 말인가를 한다. 
나도 따라 T.V 화면에 손을 대고 그 남자 에게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했다. 

"너의 죄를 사 하노라!" 

2007년 5월 31일 목요일

5월은 가는데...



5월에 얻은 첫째 딸 건강했으면 좋겠다.
5월에 선물 두 번째 딸 행복했으면 좋겠다.
탄생의 기쁨으로 벅찬 눈물을 두 번씩이나 흘렸던5월 이다.
몇해가 흐른건가! 아득하기만 한데...
나는 5월이면 기쁨의 아픔을 몸으로 느낀다.

5월!
봄의 푸름을 회색 빛으로 바꾸고 따뜻한 봄날을 뜨거운 눈물로 받아드려야 하는 슬픈 운명.
나의 사랑, 나의 일을 그렇게 접게된 운명의 장난도 5월의 사건이다.
오늘도 또렷한 이유도 없으면서 이렇게 누군가를 기다리며 5월의 마지막날을 보낸다.
나이들어가는 표시인가?
몸이 자꾸 아프다.
계절의 여왕 5월이라는 계절에 나는 과연 여왕의 계절을 느끼며 살았던가?
누가 5월을 눈부시다고 말했지?
누가 5월을 희망이라고 말 했느냐고...
꿈을 꾸듯이 이상은 높은데 현실이 따라주질 않고 마음의 방황은 골이 깊어지고,
나의 앞길은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슬프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목놓아 울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