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에는 코스모스 꽃이 피면 가을이라고 했다.
여름날 어쩌다 코스모스 꽃을 한 송이라도 보면 집에 돌아와 자랑삼아 말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어찌된 일인지 삼복더위 속에서도 여기저기 씨 뿌려 가꾼 코스모스 동산을 보면서 가을 아닌 가을 기분을 미리 맛보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를 대변이라도 하는 듯이 계절도 미리 보기를 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외곽 들길을 달리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언덕 배기에 만발한 코스모스 꽃이 시원한 바람과 어우러져 한들거리는 풍경이야말로 눈으로만 바라보기가 아쉬워 입에서 시 낭독하듯이 말이 새어나온다.
외곽 들길을 달리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언덕 배기에 만발한 코스모스 꽃이 시원한 바람과 어우러져 한들거리는 풍경이야말로 눈으로만 바라보기가 아쉬워 입에서 시 낭독하듯이 말이 새어나온다.
`아~ 가을인가!`
아름다운 꽃동산을 그냥 지나치기 섭섭하여 잠시 차를 멈추었다. 삼복더위에 보던 그 꽃의 느낌과는 달랐다. 가을을 마음으로 느끼고 눈으로 확인하고 나름대로 기뻐하고 있을 때 노출된 팔과 다리의 맨살을 간질이며 스쳐 가는 짓궂은 가을바람의 살랑거림은 소싯적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의 그 감정을 되새김하기에 충분했다. 형형색색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곁에는 노랑나비 흰나비의 느릿한 날개 짓도 여유가 있어 보이고 윙윙거리며 꽃 속을 더듬는 벌들의 속삭임과 꽃 속 깊숙이 입맞추는 모습도 질투 나게 정겹다. 구경이라도 하는 듯이 빙빙 돌다 가볍게 꽃잎 끝에 가느다란 다리를 살짝 내려놓지만 꽃잎이라도 찢어질세라 다시 날개 짓하며 다시 공중을 비행하는 고추잠자리의 평화로운 모습도 한 폭의 그림 같은 가을의 선물이다.
코스모스 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릴 적 일이 생각났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음악 시간으로 기억된다.
살랑살랑 실바람을 잡아타고서
오색 가을 넘실넘실 넒 날아오네
산에도 들에도 예쁜 꽃으로 수를 놓으며
바다건너 산너머로 가을이 오네
소를 모는 목동들은 노래부르고
코스모스 방실방실 웃으며 맞네
선생님께서 쳐주시는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한 소절씩 따라 부른 뒤에 다 같이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울컥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노래는 물론 부를 수 없었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신 선생님이 내 곁으로 오시면서 교실 안은 술렁거렸다. `왜 울어! 어디 아프니?` 머리를 만져보시는 선생님의 근심 어린 염려 앞에 딱히 뭐라 이유를 댈 수 없었다.
`열은 없는데 체했나?`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었고 순간에 배 아픈 아이가 되어 있었다. 한쪽 손은 배를 움켜쥐고 한쪽 다리는 약간 저는 듯한 모습을 하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오만상을 찌그린 채 짝꿍의 부축을 받으며 양호실로 보내졌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연극을 하게 되었다. 양호 선생님께서 청진기를 이리저리 옮겨 진찰하시며, `체한 것 같지는 않은데, 배가 아프니? 화장실 안 가도 되니? `감기 몸살인가? 어디 좀 두고 보자.`
고개를 몇 번씩 갸우뚱하실 때마다 연극이 들통날까 봐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선생님께서 누런 알약을 한 움큼 주실 때는 숨이 멎을 것 같았지만 먹어야 했고 검은 가죽침대 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 시간을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어야만했다. 쉬는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도 양호실에 오시어 걱정스럽게 쳐다보시며 말씀하셨다.
`얼굴이 창백하구나…. 좀 괜찮니?`
그때 나의 얼굴이 창백했던 것은 멀쩡한 몸에 한 움큼의 알약을 먹은 것이 불안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의심 많고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나로서는 약을 목으로 넘긴 후부터 진짜 아프기 시작했다. 수돗가로 달려가 쓰디쓴 약물과 뱃속의 있는 많은 것을 토해낸 후에야 양호실에서 잠이 들었고 급기야는 조퇴를 하고야 말았다. 동요를 부르다가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이 목이 메이던 그 어린 날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머리카락 희끗희끗 반백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지금, 코스모스 꽃동산에 서서 그 어린 날을 추억하며 그래도 감성만은 그대로 내 안에 살아남아 있음을 스스로 자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코스모스 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릴 적 일이 생각났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음악 시간으로 기억된다.
살랑살랑 실바람을 잡아타고서
오색 가을 넘실넘실 넒 날아오네
산에도 들에도 예쁜 꽃으로 수를 놓으며
바다건너 산너머로 가을이 오네
소를 모는 목동들은 노래부르고
코스모스 방실방실 웃으며 맞네
선생님께서 쳐주시는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한 소절씩 따라 부른 뒤에 다 같이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울컥 알 수 없는 감정이 솟구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노래는 물론 부를 수 없었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신 선생님이 내 곁으로 오시면서 교실 안은 술렁거렸다. `왜 울어! 어디 아프니?` 머리를 만져보시는 선생님의 근심 어린 염려 앞에 딱히 뭐라 이유를 댈 수 없었다.
`열은 없는데 체했나?`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었고 순간에 배 아픈 아이가 되어 있었다. 한쪽 손은 배를 움켜쥐고 한쪽 다리는 약간 저는 듯한 모습을 하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오만상을 찌그린 채 짝꿍의 부축을 받으며 양호실로 보내졌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연극을 하게 되었다. 양호 선생님께서 청진기를 이리저리 옮겨 진찰하시며, `체한 것 같지는 않은데, 배가 아프니? 화장실 안 가도 되니? `감기 몸살인가? 어디 좀 두고 보자.`
고개를 몇 번씩 갸우뚱하실 때마다 연극이 들통날까 봐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선생님께서 누런 알약을 한 움큼 주실 때는 숨이 멎을 것 같았지만 먹어야 했고 검은 가죽침대 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 시간을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어야만했다. 쉬는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도 양호실에 오시어 걱정스럽게 쳐다보시며 말씀하셨다.
`얼굴이 창백하구나…. 좀 괜찮니?`
그때 나의 얼굴이 창백했던 것은 멀쩡한 몸에 한 움큼의 알약을 먹은 것이 불안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의심 많고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나로서는 약을 목으로 넘긴 후부터 진짜 아프기 시작했다. 수돗가로 달려가 쓰디쓴 약물과 뱃속의 있는 많은 것을 토해낸 후에야 양호실에서 잠이 들었고 급기야는 조퇴를 하고야 말았다. 동요를 부르다가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이 목이 메이던 그 어린 날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머리카락 희끗희끗 반백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지금, 코스모스 꽃동산에 서서 그 어린 날을 추억하며 그래도 감성만은 그대로 내 안에 살아남아 있음을 스스로 자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