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16일 금요일

며느리 밑씻개



가칠가칠한 가시가 송송 돋아난 이 풀은 옛 선조들의 장난기를 볼 수 있습니다. 며느리가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면 일안하고 화장실만 드나든다고 가시가 난 이 풀의 줄기를 휴지 대신 주곤 했다죠.

어머니는 늘 당당하시고 웃음소리가 크시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큰 목소리와 웃음소리는 집안에 활기가 넘쳐나게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골 풍경들, 이웃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이야기해 주신다. 
평소 조용한 나는 그런 어머니를 닮고 싶지만 그러나 천성이 조용한지라 늘 어머니는 말씀을 하시고 나는 듣는다. 
오늘도 그랬다. 어머니는 방문을 여시고 음식 만드는 것을 보시면서 "어멈아! 좀 쉬었다 하라고 하신다. 어머니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가서 눕는다. 
어머니는 방안에 앉으셨고 나는 방 밖에서 방 문지방을 가운데에 놓고 어머니 무릎을 베고서 누웠다. 이렇게 살 가운 며느리가 좋다고 아버님 살아생전에 아버님께 듣던 칭찬을 어머니가 하신다.
시골 이웃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분명 입도 조금 헤, 하고 벌어진 듯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나 졸음이 쏟아져 오는지 눈을 떴다 감았다 하고 있는데 개심 치레한 눈을 보셨는지 졸리느냐고 물으신다.

"아니에요. 음식 냄새 때문에 눈이 좀 피곤해요. 눈감고 들을 테니 어머니 계속 이야기하세요."

어머니가 크게 웃으면 나도 따라 웃고 이야기하시면 고개도 끄덕여 가면서, 네, 그래요?, 하며 대답은 모두 하면서 반은 잠들고 반은 깨어있는 상태였으리라.
그야말로 비몽사몽이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 아랫집 영란이네 집에 불이 나서 집이 모두 타고, 소 외양간도 타들어 가기에 처음 그 불길을 보신 어머니께서 "불이야! 불이야!" 하고 소리를 쳤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재연을 하셨다.
때맞추어 밖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무인 경비업체에서 지나갔든지 아니면 응급환자 수송 차량이 지나갔는가 보다.
비몽사몽 중에 '불이야!' 하는 소리가 얼마나 실감나게 들렸던지, 그 순간 놀라서 "어디냐고 소리치며 맨발로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머니도 놀라서 베개를 끌어안고 뛰어 나오셨다.

"아야! 왜 그러니.!"

"불이야! 했잖아요, 어머니가."
그야말로 흥분 상태다.
"하하하!!! 너 잠들었었구나? 들어가서 한숨 자거라."
재미있으신 지 한참을 웃으시는 어머니 한 말씀하신다.

"너희 아버지 살아 계셨으면 너희와 함께 살았을 건데, 너희랑 사신다고 했었는데."

평소 명랑하시고 털털하신 어머니에게서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쓸쓸함을 보았다. 
어머니에게 무슨 말인가를 한마디 건네고 싶은데 직접 표현 못하는 말을 이렇게 적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 채워 드릴 수는 없지만 도시 생활도 무료하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오세요.
'저희는 늘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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