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28일 월요일

바보 같은 남자

'똑똑!' 달래 왔어요.
언니 힘내세요. 언니는 힘든 글을 쓰셨는데 달래는 언니의 글을 보면서 아픔까지도 샘이 나고 때로는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해요.
언니의 글이 없는 날은 이곳을 하루종일 들락거리게 된답니다.'

몇 해전 어느 공개일기장에 일기를 쓸 때였다. 나의 이름은 보리 그녀의 이름은 달래 둘 다 촌스럽지만 정감 있는 이름이었다. 남편의 외도로 터져 나갈 것 같은 속내를 남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일기는 부끄럽게도 하루도 빠짐없이 톱 자리에 올라와 있었고 댓 글은 원 글의 몇 배씩 달렸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이 그러했다면 아마도 하버드대학에서 장학생으로 보 쌈해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지금은 불법이라 할 수 없는 음악파일도 내 마음대로 소스를 만들어 슬픈 글에는 슬픈 음악을 바람난 남편을 미행하는 스릴 있는 글에는 나름대로의 영화음악을 첨부하였고 내 마음이 청승맞게 느껴지는 날 신세타령에는 울밑에선 봉선화를 삽입해 틀어놓고 눈물을 흘려 가면서까지 나를 추스리는 방편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있었다. 여러 장르의 음악과 그림까지 여기저기에서 스크랩 해다가 공부 잘하는 모범 학생이 된 듯 정성을 다해서 글을 올리면 하루 몇백의 클릭수가 올라가고 거기에 심리학, 철학, 신학, 의학의 강의가 댓 글 창에 펼쳐진다. 어느 변호사는 법적인 해결책을 메일로 보내 주기도 했고 지금은 손을 씻었지만 자신이 조폭 이었었다며 요청만 하면 힘으로 맛을 보여 줄 수도 있노라고 호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주 팔자에 당사 주까지 무료로 봐 줄 테니 부부의 출생한 해와 달과 날과 시를 알려달라는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있었고 장문의 설교를 보내주는 성직자도 있었다.



어떤 이는 남편이 바람난 여인들끼리 동병상련의 아픔을 함께 모아 오프라인에서 만나자는 제의도 해왔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서 뭘 어쩌자는 건가. 난 거절했다.
내가 남편을 얼굴 없는 온라인 속에서 수 차례 모르는 사람들에게 참담한 모습으로 발가벗길 때 달래는 세상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끝내 나의 모습은 남편 간수 못한 칠칠맞은 여편네였음을 나 스스로 판단하고있을 때 달래는 나를 부럽다고 했다. 그후 인터넷상의 모든 곳을 탈퇴했지만  달래와의 메일만은 주고받았다. 1년 정도 거의 매일 자신의 심정을 담담하게 적어 메일로 보내주던 슬픈 달래를 달래면서 나를 돌아보기 도하고 남편의 실수와 허물만 꼬집고 할퀼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닿기도하고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허물도 사랑으로 감싸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달래로 부터 느닷없이 '이 시대의 마지막 순정파 남자를 만나러 서울 갑니다.' 라는 색 다른 메일을 받았다.

강원도 산골에 산다던 그녀의 서울 나들이는 나를 필요로 했고 설레게 까지 했다. 온라인 상에서 만난 지 3년하고도 6개월 드디어 그녀를 만났다. 검은 얼굴에 고3 아들이 있다는 40대 여인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를 먼저 알아본 것은 달래였다. 그 동안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80% 라고 말하는 달래와는 달리 내가 생각한 달래의 모습은 20% 정도만 비슷했다. 작고 귀여웠으며 도시에서도 흔히 볼수없는 귀티나는 인물이었다. 강원도 산골에서 옥수수 따다 팔아서 아들 운동화를 사주었다는 옥수수 따는 여인이 아니었다. 내가 알아 맞춘 것은 얼굴이 가무잡잡한 것 뿐이었다. 달래가 20년을 잊지 못하고 살았다는 첫사랑, 그 남자도 달래를 한날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아왔노라는 고백을 받고 달래는 서울행을 결심했던 것이다. 
달래가 말하는 이 시대의 마지막 순정파 남자를 만나러 발걸음도 가볍게 명동으로 향했다. 얼굴이 빨그레 사춘기 여학생처럼 들떠 있는 듯 달래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달래의 기분은 물론이고 나는 한술 더 떠서 그 남자도 혼자이길 은근히 바랬다. 젊은 날 이루지 못한 사랑을 나이가 들어서라도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랬다. 내가 꼭 중신애비가 된듯 착각에 빠진것 같기도하고 달래가 좋아하니 나는 덩달아 좋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옛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던 중 그 순정파 남자는 가방 속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 보였다.

"달래야! 황토 침대 싸게 해서 하나 구입해라."

달래와 나는 깜짝 놀랬다. 20년을 간직해온 그리운 만남의 기대가 산산조각 깨어지는 순간, 달래의 표정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급히 말을 가로챘다.

"얼마예요?"

"400만원 밖에 안 합니다. 1000만원 넘는 건데 달래 건강을 생각해서 특별히 빼돌려 놓았거든요. 어릴 때 달래가 워낙 약했거든요."

도대체 뭘 특별히 빼돌려 놓았다는 것일까? 결코 싼 물건도 아닐 뿐더러 첫사랑의 환상을 예의상 으로라도 느낄수있도록 시간 이라도 조금 늘려줘야 하는거 아닐런지. 현기증 동반한 착잡한 침묵의 시간이 얼마정도 흘렀을까….

"달래야 기회가 좋으니 놓치지 마라! 사모님도 어떻게… 하나, 결심 하셨습니까?"
"……."

(결심은 무슨…  안 사요.) 속으로 대답했다.
달래의 마음을 달래줄 방법을 찾아야 할텐데 혼자서는 묘안이 안 떠오른다.
아! 나쁜 남자.. 



2005년 2월 10일 목요일

그림 같은 꽃


어둠이 깔리기 전 저수지 근처 길가 화단에 하루종일 비바람 맞고 덩그런히 피어있는 장미의 모습은 중후한 중년의 여인상을 느끼게 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들 한다. 사람의 내면도 외면의 아름다움도 꽃에 비유한다.
그래서 일까? 꽃이 피고 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일생을 그대로 비유하고 있는 것 처럼 보여진다.  
아무리 화려한 꽃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들꽃도 그렇게 피었다가 그렇게 가는 것.
온실에서 곱게 피어 고운 사랑 받은 꽃이나 이름없이 보는 이도 없이 들판에 핀 꽃이나 우리 모두의 끝은 그곳인 것을….
어찌 보면 측은하게 까지 보이는 비에 흠뻑 젖은 장미꽃을 사진으로 남기기는 하였으나 아무리 보아도 물감으로 그려진 것 같은 모양이다. 빨간빛도 분홍빛도, 그렇다고 노랑 빛도 아닌 물감 뒤섞인 듯한 야성의 매력을 주는 장미를 만나게되어 한동안 기쁨 안에 서 있었다.
꽃잎이 떨어질 듯 말 듯한 노화된 장미꽃에서 순간 나의 모습을 본다.

화성 천천리 저수지에서.


2005년 2월 9일 수요일

그녀의 이름은 은총


성직자의 며느리
정씨 가문의 맏며느리
부모의 기도가 축복이 되고
행복의 열매는 넘치고도 흐른다.
사랑 안에서의 행함 나눔의 섬김
솔선하고 전파하는 사랑의 파수꾼

목소리도 활기찬 행복 선교사
눈물의 기도를 타국에 뿌리며
가족의 그리움을 뒤안길에 숨긴 채
이별의 아픔을 기도하는 언니로
엄마의 무언까지도 알아듣는 딸로

착한 남편의 눈망울을 

사랑하며 살아온 세월.
부인 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물
아들과 딸 보물의 소유자

남편의 모습 속에 어릴 적 키우던
황소를 연상하는 여인
어머니의 모습도 반려자의 모습도
적당히 닮아 가는 샤론의 장미꽃
사랑의 여인

그 이름 은총.
고기 싫어 풀 먹을래.
풀 싫어 고기 줘!
세월 속에 타협은 자연히 이뤄지어
풀과 고기를 함께 먹을 수 있는
화평 속에 여인

그 이름 은총

2005년 2월 3일 목요일

주문진 오징어

일요일 말들이 없다. 
책한 권씩 잡고 하루를 보냈다. 
귀에는 각자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눈은 책을 들여다보고 세 식구의 모습이 똑같다. 
휴일인데 그이는 오늘도 바쁘기만 하고, 나라 임금님 보기보다도 힘들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보다. 저녁에는 뭐 특별한 식사라도 기대 하고싶은데 희망 사항일 뿐이고 또 무얼 먹을까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대답을 안 한다. 
"경포대 갈까?"

내 말에 아이들이 또-오? 하며 시큰둥한 표정들이다.
"결심했어! 저녁은 경포대 가서 먹기로 하는 거야!"

이렇게 큰 소리로 말했지만 믿지도 않는다. 
며칠동안 경포대 갈까? 정동진 갈까? 해돋이 보러 갈까? 벼르기만 하고 한사람이 모른 척 신경을 안 쓰니 이제는 모두들 포기했는지 나의 말을 짜증스럽게 받아들인다.
아이들 반응이 더욱 속상한 마음이 들어 그이에게 전화를 걸어 일방적으로 통보하길 여행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7시까지 사무실로 가겠으니 기다리라고 일요일인데 뭐 그리 쉬지도 못하고 바쁘냐는 질문까지 미처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숨 가쁘게 해댔다.
디카 챙기고 모두 모자 달린 잠바를 입고 혹시 그이 추울까봐 무스탕도 여벌로 챙기고 목도리까지 준비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공부 판이 깨졌는지 직원4명과 중국에서 여행 나온 친한 친구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공부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중국어로 말하는 것을 대충 들으니 그림 맞추기 공부란다. 화가 났지만 좋은 기분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달렸다. 경포대에서 저녁을…! 오~우 고함을 치면서 웃고 떠들고 다 큰 녀석들이 시끄럽다.
용인 휴게소에서 요기를 하기로 하고 들어간 식당에서 가락국수 김밥 자장면 짬뽀옹, 이렇게 각기 다르게 시켰다. 도대체가 음식도 통일이 안 된다. 아유! 요즘 시쳇말로 쪽팔린다고 해야하나?

하루를 즐기고 서울로 돌아오는 맞은편 차량행렬이 볼만하다. 남들은 휴일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을 우리는 출발하였으니 반대 차선과는 달리 차가 별로 없었으니까 신나게 1등 하면서 달렸다. 휴게소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낸 관계로 경포대까지 4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경포대에서 하늘 한번 쳐다보고 검은 바다 한번 쳐다보고 바로 차를 돌려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정동 진으로 갔다.
횟집에서 모듬 회와 매운탕으로 저녁을 거하게 먹고 새벽2시 노래방이 한 건물에 있는 민박으로 방을 정하고 노래방으로 갔다. 아이들은 일본노래 엄마는 이 정석의 '첫눈이 오네요' 를 그이는 '정주고 내가 우네' 를 불렀다. 휴게소에서 음식 시킬 때처럼 노래부르는 취향도 각자 개성대로 부르는 것이 재미있어 웃기도 하지만 그이의 노래가 너무 웃긴다. 누가 정주고 울라고 시킨 것처럼 심각하게 부르는 모습을 보니 마음에 안 들었다. 여행 중 예의에 벗어나는 노래라고 생트집을 잡았다. 여행 중에 생트집 잡는 것이 예의 지키는 사람 이냐며 버럭 화를 내며 나가버리는 그이를 따라 방바닥이 뜨끈뜨끈한 온돌방으로 돌아왔다. 
벼르고 벼르다 떠나온 여행지의 밤은 구들장을 짊어지고 잠을 자는 것으로 조용해졌다.

7시42분이 해뜨는 시각이라면서 아이들은 5시30분부터 나가자고 보챈다. 2시간이 넘도록 모진 바람을 맞으며 모래사장에 서서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모두들 딸기코를 해 가지고 동태 되기 직전에 해님얼굴 보았다. 일출을 카메라에 담고 둘이서도 한 장 찰깍, 네 식구가 함께 한컷 "찰칵" 사진으로 남기고 아침은 주문진에서 먹기로 하고 또 달렸다. 그 유명한 황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부두에 배 들어올 시간이, 1시간쯤 더 기다려야 한다기에 건어물을 여러 가지 구입했다.
오징어 배가 도착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내 팔뚝만한, 살아있는 국산 동해오징어 만원에 7마리라는 말에 직원들에게도 준다며 40마리를 스티로폼 상자에 가득 샀다. 첫손임이라고 5마리 더 주셨다. 그리고 돈에다 퉤퉤 하며 침을 퉁긴다. 꽁치는 40(사십) 마리에 만원, 포장하는데 5 천원 그것도 샀다. 오징어가 하늘 향해 먹물을 쏘는 바람에 옷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즐거웠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 일어났다. 
일단은 점심을 먹은 후에 사무실 직원들 나누어주러 간다는 그이는 오징어 5마리를 꺼내어 오징어 회를 만들라고 했다. 다리가 손에 자꾸 달라붙고 살아 움직이는 오징어를 도저히 만질 수가 없었다. 꿈틀거려서 회를 못하겠다고 횟집에 가서 먹는 것이 절대로 비싼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삶아 먹으면 안되겠느냐고 하니 살아있으니 회로 먹고 싶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슬쩍 기절만 시킬 생각으로 약간 뜨겁게 온수 물을 틀어서 담가놓았다.
슬그머니 와서 보던 그이 버럭 소리친다.

"지난번 잉어처럼 또, 뜨거운 물에 담가놨지!"

어찌나 크게 말하는지 순간 죄인처럼 싱크대 코너에 쭈뼛이 차려 자세로 서 있었다.

"나 미치겠다. 미치겠다." 하며 한숨을 길게 쉬더니 오징어 상자를 들고 나가버렸다.
난 죽여서 자르려고 했는데. 




2004년 10월 13일 수요일

으름


충주에 다녀온 그이는 으름 한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아침 선산에 다녀오는 길에 산에서 따 가지고 온 모양이다. 
몸에 좋다기에 씨를 오도독하고 씹었다가 사망하는줄 알았다.
우~~c~~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해서 감기 약  2캡슐을 주었다. 
오후 사무실에서 전화가 온다 속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고 낚시나 가자고 한다. 
어천 방죽에 갔다. 
밤새워 잉어 한 마리 붕어 한 마리 잡아들고 돌아왔다. 
밤새우기에 체력이 달린다는 말에 마음이 저려온다. 
"아프지 말아요...제발, 사실은 나도 체력이 딸린다오."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