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3일 목요일

주문진 오징어

일요일 말들이 없다. 
책한 권씩 잡고 하루를 보냈다. 
귀에는 각자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눈은 책을 들여다보고 세 식구의 모습이 똑같다. 
휴일인데 그이는 오늘도 바쁘기만 하고, 나라 임금님 보기보다도 힘들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보다. 저녁에는 뭐 특별한 식사라도 기대 하고싶은데 희망 사항일 뿐이고 또 무얼 먹을까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대답을 안 한다. 
"경포대 갈까?"

내 말에 아이들이 또-오? 하며 시큰둥한 표정들이다.
"결심했어! 저녁은 경포대 가서 먹기로 하는 거야!"

이렇게 큰 소리로 말했지만 믿지도 않는다. 
며칠동안 경포대 갈까? 정동진 갈까? 해돋이 보러 갈까? 벼르기만 하고 한사람이 모른 척 신경을 안 쓰니 이제는 모두들 포기했는지 나의 말을 짜증스럽게 받아들인다.
아이들 반응이 더욱 속상한 마음이 들어 그이에게 전화를 걸어 일방적으로 통보하길 여행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7시까지 사무실로 가겠으니 기다리라고 일요일인데 뭐 그리 쉬지도 못하고 바쁘냐는 질문까지 미처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숨 가쁘게 해댔다.
디카 챙기고 모두 모자 달린 잠바를 입고 혹시 그이 추울까봐 무스탕도 여벌로 챙기고 목도리까지 준비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공부 판이 깨졌는지 직원4명과 중국에서 여행 나온 친한 친구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공부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중국어로 말하는 것을 대충 들으니 그림 맞추기 공부란다. 화가 났지만 좋은 기분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달렸다. 경포대에서 저녁을…! 오~우 고함을 치면서 웃고 떠들고 다 큰 녀석들이 시끄럽다.
용인 휴게소에서 요기를 하기로 하고 들어간 식당에서 가락국수 김밥 자장면 짬뽀옹, 이렇게 각기 다르게 시켰다. 도대체가 음식도 통일이 안 된다. 아유! 요즘 시쳇말로 쪽팔린다고 해야하나?

하루를 즐기고 서울로 돌아오는 맞은편 차량행렬이 볼만하다. 남들은 휴일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을 우리는 출발하였으니 반대 차선과는 달리 차가 별로 없었으니까 신나게 1등 하면서 달렸다. 휴게소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낸 관계로 경포대까지 4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경포대에서 하늘 한번 쳐다보고 검은 바다 한번 쳐다보고 바로 차를 돌려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정동 진으로 갔다.
횟집에서 모듬 회와 매운탕으로 저녁을 거하게 먹고 새벽2시 노래방이 한 건물에 있는 민박으로 방을 정하고 노래방으로 갔다. 아이들은 일본노래 엄마는 이 정석의 '첫눈이 오네요' 를 그이는 '정주고 내가 우네' 를 불렀다. 휴게소에서 음식 시킬 때처럼 노래부르는 취향도 각자 개성대로 부르는 것이 재미있어 웃기도 하지만 그이의 노래가 너무 웃긴다. 누가 정주고 울라고 시킨 것처럼 심각하게 부르는 모습을 보니 마음에 안 들었다. 여행 중 예의에 벗어나는 노래라고 생트집을 잡았다. 여행 중에 생트집 잡는 것이 예의 지키는 사람 이냐며 버럭 화를 내며 나가버리는 그이를 따라 방바닥이 뜨끈뜨끈한 온돌방으로 돌아왔다. 
벼르고 벼르다 떠나온 여행지의 밤은 구들장을 짊어지고 잠을 자는 것으로 조용해졌다.

7시42분이 해뜨는 시각이라면서 아이들은 5시30분부터 나가자고 보챈다. 2시간이 넘도록 모진 바람을 맞으며 모래사장에 서서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모두들 딸기코를 해 가지고 동태 되기 직전에 해님얼굴 보았다. 일출을 카메라에 담고 둘이서도 한 장 찰깍, 네 식구가 함께 한컷 "찰칵" 사진으로 남기고 아침은 주문진에서 먹기로 하고 또 달렸다. 그 유명한 황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부두에 배 들어올 시간이, 1시간쯤 더 기다려야 한다기에 건어물을 여러 가지 구입했다.
오징어 배가 도착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내 팔뚝만한, 살아있는 국산 동해오징어 만원에 7마리라는 말에 직원들에게도 준다며 40마리를 스티로폼 상자에 가득 샀다. 첫손임이라고 5마리 더 주셨다. 그리고 돈에다 퉤퉤 하며 침을 퉁긴다. 꽁치는 40(사십) 마리에 만원, 포장하는데 5 천원 그것도 샀다. 오징어가 하늘 향해 먹물을 쏘는 바람에 옷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즐거웠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 일어났다. 
일단은 점심을 먹은 후에 사무실 직원들 나누어주러 간다는 그이는 오징어 5마리를 꺼내어 오징어 회를 만들라고 했다. 다리가 손에 자꾸 달라붙고 살아 움직이는 오징어를 도저히 만질 수가 없었다. 꿈틀거려서 회를 못하겠다고 횟집에 가서 먹는 것이 절대로 비싼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삶아 먹으면 안되겠느냐고 하니 살아있으니 회로 먹고 싶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슬쩍 기절만 시킬 생각으로 약간 뜨겁게 온수 물을 틀어서 담가놓았다.
슬그머니 와서 보던 그이 버럭 소리친다.

"지난번 잉어처럼 또, 뜨거운 물에 담가놨지!"

어찌나 크게 말하는지 순간 죄인처럼 싱크대 코너에 쭈뼛이 차려 자세로 서 있었다.

"나 미치겠다. 미치겠다." 하며 한숨을 길게 쉬더니 오징어 상자를 들고 나가버렸다.
난 죽여서 자르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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