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5일 토요일

인품도 명품이 되었으면

하얀 진이 묻어나는 상추 잎을 따고 마늘종을 뽑아 뚝뚝 자르고 찰 보리밥에 삼겹살을 노릇하게 구워 친구들을 행복하게 해주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를 만나고 오는 날은 신랑이 외박을 한다해도 용서가 되었을 정도로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넉넉한 친구였다. 배불리 먹고 더운 날씨에 뜨거운 숭늉까지 마시며, "돼지 똥 냄새 참 고약하다."고 말  하면 "너 돼지 고기 먹었어! 상추에도 마늘종에도 돼지 똥거름 준 거 너 모르고 먹었니?" 하며 친구들에게 늘 웃음도 주고 고기도 맘껏 먹여주던 풍요로운 친구였다. 몇 해 전부터 친구가 살던 곳이 신도시 개발로 승격되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신분도 상승되고 졸부가 되었다. 똥 돼지우리는 버섯 모양을 뒤집어쓴 멋진 별장으로 탈바꿈되어졌고 말로만 듣던 서울에 주상복합 대형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우리 집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친구의 집은 우리 집의 3배보다도 넓다. 집 구경하는 동안 무슨 미로 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어유! 정말 넓다. 너 집에서 신랑 부르려면 방송 해야하겠다."

"깔깔깔!!"

친구는 즐겁게 웃는다.
나는 부러움을 말하고 친구는 자랑만 하고 조상 님이 물려준 몇 만평의 땅, 버섯지붕 말고 강원도에 또 다른 별장과 농장, 제주도에 감귤농장 강남 빌딩에는 은행이 들어 왔다는 둥 자랑에 맞혀 대답하는데도 목이 아프다. 오늘은 친척 가족들이 집들이 겸 저녁을 먹는 날 이라서 옷에 신경을 좀 썼다며 어깨 위에는 붉은 장미도 한 송이 달려있는 잘잘 끌리는 드레스로 갈아입는다. 멋스럽다. 주책없이 그 분위기를 파악 못하고 일년에 두 번 봄가을로 복지관에 조금 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기금 마련을 위해 미숫가루와 여러 가지 현지 직송 농산물 주문을 받고 있다며 품목이 적힌 메모 지를 건네주며 권유했다. 촌스럽게 요즘 누가 미숫가루를 먹느냐고 말머리를 잘라버린다. "그래 난 촌스럽다. 너는 더 촌스럽던 돼지 똥이...?"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살지 않을 거라는 친구의 도도한 음성이 내 머리를 땅~하고 때리는 기분이다. 고생하지 말라며 남편이 불렀다는 출장 요리가 도착하고 뷔페 식단이 차려지고 왔다갔다 지시하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내 모습은 꿔다놓은 보리자루 같다. 저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별안간 돈이 많아지더니 세상이 콩알만해 보이는지 내 말은 안중에 없는 듯 건성으로 듣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섭섭했다.

"그만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너 똥(돈)통에서 너무 허구적대는 거 아냐?"

농담처럼 말하는 나에게 복지관 기금 참여는 다음에 생각해 보자고 한다.
"그래라, 내가 내년에도 이 짓하고 있으면 그때 보자."

예전 같았으면 억지라도 떠 맡겼을 텐데 말을 덮었다. 돈 많은 친구 앞에서 심사는 뒤틀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장만 점점 꽈배기처럼 꼬불꼬불 꼬인다. 오늘 아침까지도 부자된 친구가 자랑스러웠다. 몸은 비록 피곤하고 일에 파묻혀 살아도 늘 웃음 잃지 않고 넉넉하고 소박한 친구라고 많은 지인 들에게 칭찬하며 앞으로 좋은 일에 힘쓸 재목이라고 여기저기 여러 사람들에게 오지랍 펼쳐 잔뜩 기대하게 말을 해놓고 찾아간 친구는 예전 넉넉한 마음을 간직 하고있는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여러모로 본의 아니게 뻥쟁이가 된 것이다. 안 그런 것처럼 내숭을 떨려고 해도 친구 앞에서 표정 관리가 안 된다. 풍요에 넘치는 다른 세상을 사는 모습이 나를 주눅들게 했다. 의복도 가구도 고급, 고급, 고년의 성품도 고급으로 변한 듯 나보다 한술 더 뜨는 고상을 떨어 대니 돈이 좋긴 좋구나 인정을 하면서도 내 맘이 편치 않고 자꾸만 까칠해진다.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나는 도대체 뭐야! 나는 왜 물질복도 지지리도 없는 거야! 우리 신랑은 왜 땅도 없어! 울고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럽고 질투 났다.
대문 앞 넓은 입구 대리석에 내가 사 들고 간 빨래세제 선물 상자가 너무 작고 초라하게 덩그러니 놓여있다. 다시 들고 나오고 싶은 심정을 뒤로하고 뭐가 좋다고 방긋 웃으며 새집에서 행복 하라고, 가까이 살게 되었으니 자주 만나자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돌아섰다. 마음이 똥 돼지가 되어버린 친구에게 다른 어떤 것 하나도 부러워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은 하지만 정말 부럽다.

"오늘 아무래도 잔주름 몇 가닥과 검버섯도 추가로 생겼을 거야! 내일은 로또 복권이라도 한 장 사야지 이대로는 못 견디겠어!"

중얼중얼, 횡설수설, 터덜터덜 집으로 오는 길, 오늘따라 차도 많고 시끄럽고 큰길 하나 건너면 올 수 있는 길이 왜 이다지도 멀게만 느껴질까. 친구와 나를 저울질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도 마음도 무겁고 힘겹다.  빠른 걸음으로 만 보를 걷고 들어온 날도 내 튼튼한 대포 굴뚝 다리는 이렇게 아프지 않았다. 다리를 주무르며 다시 나를 가다듬는다. 이 모습 이대로의 행복을 감사하며 나누는 삶을 살자.
소크라테스의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그 재산을 자랑하고 있더라도,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있을 때까지는 그를 칭찬하지 말라." 

하루종일 샘나고 부러웠던 친구의 부를 마음 속에서 비우며 지금껏 살아왔던 나의 위치로 돌아간다. 바라건데 돈많은 친구의 인품도 명품 인품이라고 칭찬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2006년 7월 10일 월요일

층간소음

얼마 전 입주한 이웃 여인의 높은 목소리에 잠을 설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무엇을 하기에 문 여닫는 소리는 셀 수 없이 쿵쾅거리고 나의 인내를 시험이라도 하는 듯 며칠 들 이로 새벽 서너 시만 되면 떠드는 소리에 너무 화가 난다.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밤낮이 바뀌어서 지금이 활동하는 시간이라고 하기에 어쩌다 한 두 번이겠지 하며 참고 조용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웃은 모두 곤히 잠들어있는 이른 새벽에 아무래도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술 취해서 커진 목소리는 그렇다 치고 고요한 한밤중에 남녀가 고래고래 웃고 떠들면 밤에 잠을 자야 하는 사람들은 어찌하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밤은 잠을 자라고 어두운 것인데 세상이 좋아 전깃불이 불야성을 이루고 대낮처럼 밝다 하여 낯으로 착각하면 좀 곤란한 것 아닐까? 이제는 이곳에서 살아야 할 날들이 염려에 앞서 두렵기까지 하다. 몇몇 사람들의 이기적인 무질서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다. 솔직하게 여자가 야심한 밤에 술 취한 모습이 자랑거리는 아니라고 본다. 조용히 들어와 이웃을 생각하는 예쁜 마음도 가져 보면 좋을 것을 조절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요즈음 세상은 남의 눈치 안보고 나 하고싶은 대로하고 사는 것이 개성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사회는 기본적인 상식이나 양심까지 무너져 제멋대로 사는 무질서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아니, 그런 모습이 이미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자신을 통제하지 않고 자기주장대로 산다면 서로 신경이 곤두서서 짜증스럽고 피곤한 일이 아닌가.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윗집 여인은 지금도 쿵쾅거리며 밤의 고요를 깨뜨리고 있다. 험한 세상을 향해 대항하며 반항하는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보는 듯하다.
혹시 나는 이웃에게 이런 혼란스러움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남의 눈의 티만 보고 내 눈에 들보는 못보고 사는 것은 아닌지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는 밤이었다. 

어느덧 아침이다.
윗집 여인덕분에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 여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2006년 6월 20일 화요일

서비스 휴지 하나주세요.

언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기에 급히 집을 나섰다. 광명인지 시흥인지 남부 경찰서 부근이라고 하기에 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강남 대로를 지나 사당을 지나 얼마쯤 가니 주유 비상등에 불이 켜졌다. 어제도 불이 들어 왔었는데 미쳐 생각을 못했다. 빨강 불이 들어오고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마음이 불안했다. 퇴근시간과 맞물려 어찌나 차가 많은지 마음만 급할 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만 벌어지고 있었다.
주유소도 보이지 않고 차는 계속 밀리고 엎친 데 덮친다고 배까지 살살 아파 왔다. 일단 가변차선으로 가면서 주유소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를 않았다.
차선변경도 못하겠고 엉뚱한 길로 우회했다. 한참을 비상 깜박이를 켠 채로 주유소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반대 방향에는 보이는데 이쪽은 왜 없을까 하며 원망을 하고 있을 때에 더 이상은 안 되려는지 음악이 들려온다. 처음 듣는 음악소리다. 기름이 없어서 차가 서기직전에 나오는 음악인 듯 했고 다행히도 음악소리를 들으며 드디어 주유소를 찾았다. 차를 세우고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 주유를 하려니 이런 변이 또 있단 말인가!
핸드백 속에 있던 지갑이 안 보인다. 집에 전화를 하니 집에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속상하고 약이 올라서 눈물도 찔끔 나오며 울컥 목에 뭔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 해야 하나하고 궁리 중에 차에 있던 동전들을 주섬주섬 모았더니 3천원이 되었다. 주유하는 총각이 아르바이트 학생 같았다.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학생 미안한데요, 지갑을 모르고 안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기름이 없어요. 정말 미안한데.... 3000원 어치만 넣어주면 안될까요? "

창피해서 그냥 미소지으며 조용히 말했더니 주유 원이 못 들었는지…,

"네 에? 다시 크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창피했지만 크게 다시 말했다.
그 총각 큰 목소리로 외친다.

"3번에 3000원 주유합니다."

주유 구를 열고 기름 줄을 수~욱 넣는 척 하더니 그냥 뺀다. 창피하게 다시 큰소리로 외친다.

"3000원 주유 끝났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기름을 가지고는 병 문안도 못 갈 것 같고 집으로도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 정신을 어디에 빼놓고 다니는 거야! 기름은 미리 미리 넣고 다녀야지 날도 이제 쌀쌀해 지는데 도대체 사람이 왜 그렇게 정신이 없어!"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계속 핍박하는 말이 이어지고 있다. 더 이상 듣고 있으려니 그이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야속하게만 들리고 준비성 없이 길을 나선 내 자신의 잘못을 망각한 채 남편이 밉고 원망스러워 신경질을 내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출발을 하려니 눈물이 주르륵 뺨 위로 흘러내렸지만 눈물을 닦으려니 손수건도 없다. 창문을 열고 주유소 총각에게 "휴지 안 줘요?" 하고 말했다. 쳐다보고 웃는다.

"서비스 휴지 하나주세요."

주유 원은 휴지를 2개 주면서 또 웃는다.
그런 사이 그이의 전화는 계속 울려왔지만 받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잘못은 내가하고 원망은 남편에게 하고있는 것은 무슨 못된 심보인지, 속썩이며 버티고 싶었지만 그래도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전화를 받았다. 주유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여 입금을 해준 그이의 배려로 주유를 무사히 할 수 있었다. 편한 세상 살다보니 이런 방법도 있었다.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다는데…. 들은 풍월은 있어서 오늘 구세주가 되어준 그이에게 드라마에서 배운 대로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곰퉁아! 지금 드라마 찍나? 정신 똑바로 챙기고 운전 조심해서 다니라구!"

오늘 나는 곰퉁이다.



2006년 5월 21일 일요일

어머니의 노래

누군가가 말했듯이 세계의 언어이고 우주의 춤이라는 노래, 어느 누구든 한두 곡쯤의 애창곡은 있을 테고 또한 즐겨 부를 것이다. 내 어머니께서도 찬송가 외에 다른 두세 곡 정도를 애창곡으로 부르셨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학도야! 학도야! 젊은 학도야….`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연못가에 묻어 주.`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그야말로 운동권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늘 혼자 부르셨다. 층층시하 힘든 시집살이를 이겨내기 위한 혼자만의 시위 음악이었을까? 어쨌든 어머니께서는 찬송가와 몇 곡의 고전 음악 외에 다른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뵌 적이 없었다.
내 어머니의 음성은 평소 말씀하실 때의 저음 목소리와는 아주 다른, 소녀처럼 청아한 소프라노 음성으로 변하신다. 어느해 봄 야유 예배가 있었던 5월의 산야는 파릇파릇 푸르고 아름다웠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가까운 야외로 소풍 길에 오른 많은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저마다 풀 한 포기의 싱그러움까지도 감탄하면서 천지 창조, 신의 섭리를 찬양했다. 그렇게 야유 예배를 마친 후 제2부로 즐거운 노래자랑 시간을 갖게 되었다. 순서에 의해 사회자의 간단한 인사와 심사기준, 상품 등이 소개되었고 마침내 노래자랑을 시작하였다.
`오늘 노래자랑만큼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여하시는 것으로 원칙을 정하겠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찬송가는 자제하시고 오늘만큼은 각자의 18번을 마음껏 뽐내어서 준비한 상품을 많은 분들이 타 가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만약에 찬송가588장 중에서 부르시는 분이 계시다면 하느님께서 무척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여기모인 우리도 기쁨을 누릴수 있도록 에헤헤!!! 알아서 불러 주십시오.`
노래자랑은 시작되고 수줍으면 수줍은 대로 씩씩한 사람은 더욱 흥겹고 신나게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어머니 차례가 되었다.
`저 분은 예외‥. 찬송가를 불러도 할 수 없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모든 분들이 같은 생각을 할 때쯤 마이크를 통해 산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음의 음성으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모두들 잔디밭에 나뒹굴며 쓰러졌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상상도할 수 없는 어머니의 다른 모습을 처음 보는 우리 자매를 비롯한 모든 분들은 폭소와 함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놀라움 자체이었다. 분위기는 술렁였고 예의 상 `앙코르`가 아닌 또 다른 기대의 재창을 목소리 높여 외쳤다.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이번에는 가무도 함께 다음 곡을 부르셨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어머니의 변신 앞에서 포복 졸도하던 그때 그 시절 기억을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어머니의 93세 생신 날 허전한 마음으로 추억합니다.
햇살이 아주 좋은 날입니다.


`엄마! 아무 근심 걱정 없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지요?
너무 보고 싶어요.`


2006년 4월 5일 수요일

방순동 부고

▶방순동씨(전 경희대 사범대학장)별세,
방현수(동국대 교수).현준(사업).현택씨(삼성전자 부장)부친상
=2일 오전 2시 삼성서울병원,
발인 2006년4월4일 오전 6시, 3410-6902

작은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06년 2월 16일 목요일

퉁퉁마디(Salicornia herbacea L. 'S europeae L.')



얼마 전 아침 일찍 남편 친구부부와 함께 망둥이 낚시를 갔다가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멀리 넓은 갯벌에 붉게 널려있는 바다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창문너머로 보면서 들판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만큼이나 예쁘다고 한마디했더니 옛날에는 저 흔한 것도 뜯어다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는데 요즘은 먹거리가 많으니까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남편 친구가 말한다. 잘록한 마디가 꼭 채송화 잎과 흡사한 것이 마디마디 붙어있어서 퉁퉁 마디라고 부른다는 설명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마트에 가면 해초 판매대에서 파는 파릇파릇한 것을 본적이 있기에 그렇다면 좀 뜯어 가자고 했다.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워 얼마 지나지 않아 낚시를 포기하고 되돌아오면서 퉁퉁 마디를 뜯으러 가자고 했다. 그러나 이미 차는 출발을 하였고 다음에 뜯으러 다시 오자고 하며 돌아왔다. 그날저녁 모 TV에서 몸에 좋은 함초에 관한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마디가 튀어나오므로 퉁퉁 마디라고 불린단다. 낯에 우리가 보고 이야기하고 뜯어오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던 그 퉁퉁 마디가 방송에 나오다니... 반가웠다. 건강식품으로 가공하여 이미 판매가 되고있으며 몸에 이롭고 비만이나 장이 안 좋은 사람, 고혈압, 당뇨, 신장 나쁜 사람에게는 치유에 도움도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바로 내가 먹어야 하는 거네? 좋았어! 다 내 꺼야!!!"

"그러게…. 그 벌판 당신 것이네? 내일 당장 철조망 사 가지고 가서 아무도 못 뜯어가도록 울타리부터 치자고!"

눈은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TV에 빠져있는 나에게 남편은 계속 우스개 소리를 한다. 사실 몸에 좋다고 방송한번 나온 뒤에 장보러 가면 그 코너는 기본적으로 거쳐 가게되고 역시나 사람들은 북적거린다.

"드라이버 가져와 봐!"

"왜~에! 가만있어요 시끄럽게 하지 말고…."

"내가 자꾸 말하면 시끄러우니까 드라이버 가져와 봐…. TV뚜껑 열어줄게 아예 들어가라고!"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시청을 했는지 방송이 끝나자마자 남편의 다른 말은 기억 못하고 드라이버를 얼른 갖다 주었다. 그리고는 친구 부인에게 전화를 하며 낯에 우리가 이야기했던 퉁퉁 마디를 뜯으러 가자고 했다. 그쪽도 그 방송을 보았다고 했다.

"방송 보니까 분명히 몸에 좋은 거 맞지요? 일단은 소독약은 쓰지 않았으니 보증수표잖아요? 퉁퉁 마디 뿌리째 뽑아다 말려서 생식가루나 미숫가루처럼 직접 만들자고요."

우리의 전화 통화를 듣고있던 그이가 뒤로 넘어가듯 웃는 모습을 보면서 왜? 하는 제스처를 보여줬다. 우리는 결국 주말로 약속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이는 드라이버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가 이마를 한 대 때린다. 너무 아팠지만 다시 바닷가에 가기로 약속을 받았기에 참았다. 일년에 한 두 번 만나는 친구를 두 여자성화에 못이기고 그 바닷가를 가기 위해 이틀만에 다시 만났다. 나는 마트 쇼핑비닐봉지 10개를 챙겼다. 친구부인은 쌀자루를 가져왔다고 했다. 남편과 친구는 "야! 우리 너무 팔불출 아니냐?" 하면서 아내들의 요구를 들어준 생색을 내기도 하면서 즐거운 함초 추수 길에 올랐다. 함초는 명아주과 한해살이풀로서 10∼30㎝까지 키가 자라고 줄기는 원기둥처럼 생긴 마디가  전체녹색으로 8∼9월에 꽃도 녹색으로 핀다고 한다. 우리는 붉은 함초가 바람에 날리는 갯벌을 눈앞에 두고 자동차 트렁크에서 비닐봉투를 꺼낸 후 돈도 들이지 않고 수고도 하지 않은 우리의 함초를 추수하기 위하여 준비 운동으로 '야~호" 하고 크게 기지개를 켠 후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 곡식 모아 곳간 안에 들인 것이 없어도 세상 주관하는 주님 새를 먹여 주시니 너희 먹을 것을 위해 근심 할 것 무어냐.'

신이 나서 찬송도 불렀다. 그리고는 새가된 기분으로 우쭐대며 앞장서서 걸었다. 선두로 걷다보니 내 마음속에서는 교만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내가 옛날에 누구였는데…. 간호대학 출신 아닌가! 이 똑똑이가 하자는 대로하면 건강은 안심해도 된다고!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거예요. TV에도 방영되었지만 임상실험도 거친 것이고, 상식 선에서 보더라도 몸에 해로울 것이 없는 해초인 만큼 가공된 것보다 직접 채취해서 먹으면 그것이 정말 자연 식품이고 민간요법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뜯어다가 주스도 만들어먹고 분말도 많이 만들어 두고두고 밀려가면서 먹고 나물도 해먹고 우리 가족의 건강을 이제부터 해초 미인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렵니다. 이제부터 나 하는 똑똑한 짓을 잘 보라고!  내가 가는 길에는 건강한 미래가 있다. 나와 함께 갑시다, 우리의 해초 뻘로….  자!!!! 나를 따르라! 내 뒤를 따르라! 이 신나는 상상은 누가 말려주기 전에는 끝이 나지 않을 듯 했다. 언덕을 내려가고 뻘을 밟고 몇 분 후 당도한 퉁퉁 마디 벌판에는 우리말고도 10여명이 이미 와있었다. 그 사람들도 방송을 보고 왔다고 한다. 방송의 효과는 대단했다. 함초 벌판이 모두 내 것 이라고 집에서 맡아 놓았건만 다른 사람들이 이미 침범해있었다. 손에는 비닐봉투를 하나씩 들고….

'그래 사랑은 나누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건강해야지. 나 혼자 너무 건강해서 200살 살면 세상이 불공평하잖아?
이게 어찌된 일일까! 우리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궁시렁 대며 갈 길을 가고있었다. 나물은 절대로 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억세고 뻣뻣한 마른 들풀 그 자체다. 잎과 줄기가 진홍색으로 변해있는 함초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이 진 뒤 그 속은 열매처럼 싸여있으며 검은색 씨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바람에 그 씨가 다시 떨어져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파란 싹을 틔우고 자라면서 그 마디마디에 적당한 염분을 비롯한 미네랄 등 많은 이로운 영양분을 빨아들여 우리의 식탁 위에 우리의 건강 보조식품으로 쓰임 받게 되는가보다.
돌아오는 길은 너무도 조용했다. 퉁퉁 마디 추수를 못한 것이 꼭 내 책임인 것처럼….
집에 돌아와 나는 그이에게 드라마에서 배운 대사를 오늘도 진지하게 읊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이봐라! 아직도 그 드라마 찍고있나! 그 말 또 다시 하면 정말 TV열고 집어 넣뿐다."

이틀 전 드라이버로 맞은 이마가 아직도 아프다.

월간 샘터 2006년3월호


2006년 2월 1일 수요일

어머나~~

한 달에 한번씩 모이는 친목회에 가면 뒤풀이는 항상 노래방을 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즐거운데 남편도 나도 노래를 제대로 끝까지 아는 것이 없고 부끄러움이 많아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언제나 고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출퇴근길에 차안에서 노래연습을 하기로 했다.
외근중인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래처 사람과 술을 한잔 마셨는데 가까운 곳에 있으니 곧 들어온다고 퇴근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퇴근길 운전은 내가해야 할 것 같아서 사무실에서 그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차례 전화를 했는데도 근처라고만 하면서 빨리 들어오지를 않았다. 오늘 일이 성사가 잘 안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남편의 수고가 안쓰럽기도 하여 깊은 밤까지 저녁도 안 먹고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크게 노래를 부르며 사무실 앞길을 지나가고 있다. 귀에 익은 목소리다. '아니, 저이가….'하면서 문을 열어보았더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어느 여자와 둘이서 어느새 저만큼 멀리 가로등 뿌연 불빛아래를 지나 왼편 골목길로 사라졌다. 꼭 남편 같기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얼마 후 남편이 들어왔다. 술을 잘 못마시는 사람이라 얼굴이 완전히 석류 알맹이 같다.

“그런데 여보, 조금 전에 누가 당신 요즘 연습하는 노래 '어머나'를 부르며 이 앞을 지나갔거든? 목소리도 뒷모습도 당신하고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당신인줄 알고 한참 쳐다봤다니까요? 하긴 집에서도 노래를 부르지 않는 당신이 길거리에서 그 음치 노래를 부를 일은 없지만…. 너무 똑같아서 도깨비에게 홀렸는지 알았다니까요?"

“아, 조금 전에 노래 부른 사람? 나였지. 도깨비한테 홀린 거 아니다. 내다.”

“그래요? 아니, 그게 당신이었단 말이에요? 그럼, 그 앞에 가던 여자는?”

“아~! 오늘 일이 잘 마무리 되서 기분이 좋았거덩? 그래서 노래를 불렀지. 처음에 그 여자가 내뒤에 오는지도 나는 몰랐어. 그런데 나를 쳐다보며 웃더니 내 앞으로 걸어가면서 노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듣는 것 같더라고, 내 느낌에…. 오늘따라 노랫말이 너무나 안 막히고 자꾸만 잘 생각났거덩... 진짜다. 그래서 저 아래 파출소 골목까지 가서 노래 끝내고 왔다.”

"그 여자는?"

"파출소에 볼일이 있는지 뛰어 들어 가더라."

"그래요? 노래는 아무나하나? 그 여자 당신 노래 듣기 싫어서 음치 잡아가라고 신고하러 들어간거 아닐까?"

"뭣이라? 음치?"

내 말에 서운했는지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각오라도 한 것처럼 그이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왠지 쓸쓸해 보였다. 나의 실수다. 어떻게든 그이의 서운한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여보! 지난번 모임 때 당신이 나 안고 노래할 때 감동했어요, 너무 행복했어…, 정말이야! 다음 모임 때는 둘이 함께 부르자고요."

그날에 듣던 노래도 음정 박자는 엉망이었지만 남편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고 진심이었다. 그이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흐흐 그렇게 하지 뭐! 우리가 같이 부르면 모두들 뒤로 나가 자빠질 끼다."

잘 불러서 자빠진다는 것인지 우리 음치화음에 놀라서 자빠진다는 것인지 남편의 말뜻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마음풀고 웃고 지나갔으니 항상 웃음이 넘치기를 소망한다.

2006년 1월 7일 토요일

엄마 아버지의 사랑



if,
훗날 저 세상에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햇빛 쨍쨍한 강가 모래사장이면 좋겠다. 아버지는 투망을 던지고 어머니는 양동이를 들고 나는 그곳에서 웃고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처럼 눈 내리는 밤은 어머니 떠난 생각에 마음이 메어온다. 
창문을 열고 얼굴이 붉어지도록 밖을 내다보았다. 

“아버지 난 눈이 내리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강아지 새끼처럼 그렇게도 눈 내리는 것이 좋니? 잠깐 마당에 나갔다와라.”


먼 옛날 추억속 아버지를 조르던 아이의 모습이 마음속에 그대로인데 아버지도 엄마도 모두 떠나고 나는 고아가되었다.
엄마 떠나신 동짓달 초나흘은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생신 날이다.
 본향으로 돌아가셨으니 생신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라도 자꾸만 연관 지어보고싶다.
 너무 다정했던 분들,
'아버지 생신에 엄마를 초대 하신것일까? 그리운 내 아버지! 그리운 내 어머니!

너무 외롭다.
나만 불행한 것 같은 느낌.
많은 사람들 중에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하라던 아버지 말씀을 되새김 해본다.
아버지 말씀대로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내 부모님처럼 긍정의 힘으로 잘살아낸 인생의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