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24일 화요일

빈손의 의미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놓거나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는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그 동안 내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만큼 잡았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어둠이 몰고 오는 조용함의 위압감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공허한 침묵 속으로 나를 몰아넣고 오만과 욕심만 가득 찬 나를 묶어버린다,
어차피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걸 무엇을 욕심 내고 무엇이 못마땅한가,
오만과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내 손을 잡아 줄리 없고 용서와 배려를 모르는 한 어느 누구에게도 손내밀 수 없다,
얼마만큼 더 비우고 없어야 빈손이 될 수 있을까...


2005년 5월 20일 금요일

접시나물

지난 봄날 들판에 나가 나물을 뜯어 왔다.
집 주변 들판에 너무도 흔한 풀 포기를 예쁜 바구니도 아닌 검정 비밀 봉투에 꾹꾹 눌러 많이도 뜯어왔다. 남편이 먹어도 되는 나물이냐고 물어 보기에 접시나물 이라고 알려주었다. 오랜 시간을 다듬고 씻고 데치고, 물에 담가 놓았다가 참기름 냄새를 풍기며 접시 가득 그날 저녁 밥상에 올려 졌다. 
접시나물은 나른한 봄날 잃어버린 입맛을 돋구어 주는데 충분했다.
고추장을 넣고 냉면 대접에 썩썩 비벼서 그이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한 숟가락 남았을 때까지 집요하게 끝까지 수저를 붙들고 있었다.

"비빔밥 함께 먹을 때는 마지막까지 먹는 사람이 일찍 죽는 대요. 한날 한시에 죽으려면 마지막 한 수저는 남깁시다."

나의 말을 듣고 그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말 누가 만들어낸 말이야? 내가 새로 만든 말로 하자면 똑같이 나누어서 동시에 먹으면 한날 한시에 죽는다고... 남기기는 왜 남겨?"

그릇 긁는 소리에 둘이 마주 쳐다보며 웃음보를 터트리던 봄날이 생각난다. 성전 꽃꽂이 소재를 준비하던 나는 길가에 멋없이 피어있는 희고 작은 야생화를 한아름 안고 들어와 다듬기 시작했다.

" 뭐 그런 것도 꽃이라고 꽃꽂이 소재로 삼나?"

그이는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를 던진다.

"봄날 맛있게 먹었던 그 접시 나물이 자라서 이렇게 예쁜 꽃이 피었답니다."

꽃은 작아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꽃은 다른 크고 예쁜 꽃들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해바라기. 씀바귀. 구절초. 들국화 등, 크기만 다를 뿐 자세히 보면 모양은 거의 비슷하다. 아니? 내 눈에는 더 예쁘게 보였다. 키도 아주 크고 날씬하게 쭉쭉 하늘을 향해 자라서 계란 후라 이를 붙여 놓은 것처럼 생긴 작은 꽃이 앙증 맞기까지 하다. 나는 이 꽃을 참 좋아한다. 청순 가련하면서도 거칠어 보이고 야성적이면서도 진실해 보이고 사람들의 시선은 많이 받지 못하는 들꽃이지만 뿌리째 뽑아다 물에 담아 놓고 지저분한 이파리를 정성스럽게 다듬었다. 한동안 바라보던 그이는 바쁘게 서재로 들어가 시집을 찾아 가지고 나오더니 차려 자세를 하고 서서 시 한 구절을 읊어 주었다.

옥수수 닢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 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 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생략)
꽃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도종환 시인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썼다는 시인데 살아 있는 나에게 느닷없이 무슨 접시꽃 당신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참 매력 없기는? 내 마음을 몰라주다니 야속하다. 아무리 요즈음 불경기라서.... 돈을 좀...못 벌어다 준다고 감정까지 메말랐단 말이요?

"봄날 맛있게 먹었던 그 나물도 생각나고 해서 시 한 구절 읊조렸더니 비웃었단 말이지? 할망구 다 되었군."

크게 웃었다. 접시나물이라는 말에 접시꽃 당신을 읽어준 것이다.

"깔깔깔! 그런데 접시나물의 꽃은 접시꽃이 아니고 망초 꽃이랍니다, 그것도 개망초 꽃, 그 시에도 등장하네...시인이 논두렁에 난 망촛대와 잡풀 사이에 멍하니 서있었다고 거기, 시에 써 있잖어요."

"잉?? 그런데 왜...나물을 접시나물이라 하는 거야?"

"글쎄요. 남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그런 줄 알고있지만 어쩌면 나물 이름을 내가 틀리게 알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봄날 나물을 준비하던 모습도 지금 꽃을 다듬는 모습도 사랑스러워 보였다며 잠시 기쁘게 해주려고 시를 읽어 주었다는 그이의 말을 들으며 행복하다.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된답니다. 
오늘 당신을 시인으로 임명합니다.
통계청 뒤뜰에 올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접시꽃이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았는데 내일은 그이와 함께 접시꽃 사진을 찍으러 가야겠다.

* tip
개망초의 '개-'는 접두사가 아니고 실제로 뜻을 가진 실질형태소로서 "모두, 다"라는 뜻을 가진 '다 皆' 자입니다.


순수한 마음

시골양반 동창 가족모임으로 남이 섬에 도착했다. 
12년만에 와보는 곳이다.
60대에서 유아까지 그야말로 세대를 초월한 소풍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수건돌리기와 보물찾기 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수건돌리기에 걸리면 걸린 사람이 지적하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가운데로 나가서 장기를 자랑하며 흥겹게 놀도록 사회자가 리드를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공연을 펼쳤다. 노래는 물론이고 춤추는 몸짓은 환상 적이다.

우리가 자랄 때는 상상도 못했겠지만 만약에 있었다면 옛 어른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를 생각하면서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함을 새삼 느꼈다. 부모들도 자녀들도 즐거움으로 충만할 뿐 수줍음 따위는 없다. 악기도 필요 없이 입으로 악기소리를 내고 손과 발로 박자를 맞추고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빠른 랩을 부르고 연체동물에서나 봄직한 유연한 몸놀림의 축제는 답답하고 고단했던 어제의 일들을 모두 날려보내기에 충분했다. 잠시 내 머릿속은 촌스럽던 내 어린 시절 소풍을 떠올렸다.

상상 속 타임 머신을 타고 옛날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도 수건돌리기에 걸리면 가운데로 나아가서 노래를 불렀다. 물론 춤을 춘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아니 춤 자체를 몰랐던 것 같다.쭈뼛쭈뼛 앞으로 나가서 몸을 서너 차례 비비틀고 고개를 숙이고 얼굴은 발갛게 상기된 채 선생님께서 유도하는 사회에 맞추어서 노래 한 곡을 겨우 겨우 못내 불러야했었다.

"무슨 노래할까요?"

나의 대답은 선생님 외에는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개미 목소리로 제목을 말한 뒤 몸가짐을 추스른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한숨 섞인 심호흡을 하고 손바닥은 '쫘~악' 펴고 차려 부동자세를 한 뒤 고개를 반짝 치켜들면 시선은 저~멀리 허공을 향하고 눈을 끔뻑거리면서 뻣뻣하게 서 있으면 선생님께서 '시~작' 하고 외쳐주신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아~ 아~ 흑…!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 내어 불러 보건만 얼굴은 경련이 일어나 씰룩거리고 노래를 마치기전 눈물이 뚝 떨어지기 일수다. 즐거운 소풍날 점심 시간도 되기 전에 어두움이 찾아와 외롭고 쓸쓸한 분위기로 숙연해진다. 너나할것없이 거의 그랬었다. 동요나 가곡의 분위기가 그랬고 어른들 노래를 아이들은 잘 부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소풍날이므로 가라앉은 분위기는 금방 사라진다. 어디서 배웠는지 박수와 함께 앙코르하고 외친다. 외롭고 쓸쓸한 그 노래를 또 부르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노래 부른 이의 수고를 칭찬하려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앙코르, 이 부분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다.

다시 수건돌리기는 시작되고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쁘다는 친구가 걸렸다. 그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얌전히 걸어나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들릴 듯 말 듯 노래한다. "뜸북뜸북 뜸북새 숲에서 울고 따옥따옥 따오기...슬피 울건만...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가랑잎만 우수수수 떨어집니다. 그 친구 역시 곧 눈물이 떨어질 듯 말듯….하뿔사! 타임머신을 열고 추억 속을 헤매 이 다가 그만, 수건돌리기에 걸리고 말았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스스로도 싫어하는 부끄러움은 도대체 고쳐지질 않는다. 머리 속을 복잡하게 하는 순간의 긴장을 체념하듯 벌떡 일어섰지만 뾰족이 내세울 장기가 없다. 난 도저히 저들의 레퍼토리를 따라갈 수 없는 음치, 몸 치가 아닌가! 할 수 없이 어린 시절 그대로 재연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지금껏 보여졌던 나의 다른 모습에 순간 모두들 나뒹굴기 시작한다.
왜 눈물은 웃어도 나오는 걸까?

하하하….
우리들의 순수한 마음이여!내 마음의 노래여!



2005년 5월 19일 목요일

괭이밥


내가 어렸을 때우리 집 장독대 주변에 소복소복 돋아나 있던 괭이밥을 오늘 아파트 화단에서 담 아래에서 만났다. 노랑꽃이 피고 지고 곁에 가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톡'하고 터져 흩어지는 아주 작은 씨앗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괭이밥을 자세한 이름을 몰라서 어른들이 부르는 대로 나도 셩 이라고 불렀었다. 아마도 싱아처럼 신맛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었나보다.
괭이밥은 전국의 길섶이나 들판에서 자란다. 하트모양의 쪽 잎이 거꾸로 3개 모여 잎자루가 길게 뻗은 끝에 한 장의 잎으로 어긋나게 붙어있다. 클로버의 모양과 비슷하지만 털이 없다. 이른 여름과 가을에 노란색의 꽃이 핀다. 지금 아파트 화단 양지쪽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꽃이 지면 창 모양의 열매가 생기고 그 껍질이 마르면 등 부분이 갈라져 종자를 퍼뜨린다. 전초에 레몬산, 말레인산, 포도주산, 칼슘, 싱아산 성분이 들어있다, 특히 봄철에는 잎에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지만 싱아 산은 1/10 정도로 적게 들어 있다.     
   
동의에는 괭이밥 전초를 구충약, 수렴 약, 월경주기 조절 약으로 쓰지만 그러나 갑상선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쓰지 않는다고 기록되어있다.
민간에서는 괭이밥 전초를 이뇨, 건위, 식욕 촉진 약으로,. 적리, 간담도, 열성 질병에 달여 먹으며 전초를 찧어서 옴이나 사마귀를 없애는데, 벌레 물린 곳에 붙이기도 하고 상처에 바른다고 전해진다.
그 옛날 먹거리가 귀해서 그랬을까? 괭이밥을 한 움큼씩 뜯어서 시다고 찡그려 가면서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요즈음은 웰빙 식단용 샐러드에 괭이밥이 쓰이기도 한다. 

2005년 5월 15일 일요일

수염가래꽃

들판에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리 잠잠하고 무척 귀엽다.
신시가지 영통에 있는 녹색가게에 볼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 이었다. 미처 개발이 안된 논과 밭이 있는 벌판을 지나는데 길가에 파릇파릇한 초록색의 싱그러운 쑥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저녁 준비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인지라 집으로 돌아오던 길을 다시 되돌려 논과 밭 사이로 들어섰다. 모내기를 하려는지 논을 갈아 엎어놓았다. 논두렁에는 쑥 냄새가 향기롭고 냉이와 꽃다지 꽃도 한창 피어있다. 갈아엎은 논 흙더미에는 미나리 싹이 삐쭉 올라와 있었다. 자연적으로 자라는 봄 미나리의 향이 너무 좋았다.

'미나리가 담배 피는 사람에게 좋다는데 한 움쿰 뜯어다 저녁 밥상에 올리고 칭찬 좀 받아 볼까나?'

혼자 중얼거리며 한참을 미나리를 찾아 뜯고 있는데 처음 보는 식물이 내 눈에 발견되었다. 잔디나 융단처럼 땅에 달라붙듯이 줄기가 뻗어 나있고 반짝거리기까지 한다. 너무도 작고 귀여운 녹색의 줄기 식물 입사귀가 쫙 깔려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 희고 분홍빛도 감도는 작은 꽃이 줄기마다 피어있다. 그런데 너무도 예쁜 꽃이 이상하게도 모두 반쪽 뿐이다. 
처음에는 논을 갈아엎을 때 다쳤는가 보다 하며 사진기를 들이댔다가 다시 온전히 핀 꽃을 찾아 찍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녔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모두가 꽃이 반쪽 짜리 뿐이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환경 때문에 기형이 되었는가보다, 생각하면서 그냥 별 신경 쓰지 않고 대충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꽃이 너무 작아서 그중 크게 핀 꽃으로 가까이 에서 찍었더니 반쪽 짜리 꽃 모양이 제대로 보였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컴퓨터 화면에 쏟아 놓고 있는데 딸아이가 반가운 사람 만난 듯 "어머! 어디서 수염가래 꽃을 찍었대요? 식물원 다녀오셨어요?"한다.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아이의 말을 듣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 생김새가 마치 어릴 적 학예회 때 색종이를 오려 만든 종이 수염을 코밑에 붙이고 연극하던 그 모양새다. 자료를 찾아보니 내 느낌이 맞았다. 수염을 만들어 코밑에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하여 '수염처럼 갈라진 꽃'이라는 의미로 수염가래 꽃이라 한다는 것이다.

반쪽 꽃으로 볼 때는 기형이라고 생각했는데 꽃의 뜻을 알고 보니 꽃 모양이 마치 철새가 떼지어 날아가는 모양 같기도 하고 정말 귀엽고 예뻤다. 뿌리는 한방에서 호흡곤란, 천식, 백일해, 관장약, 흥분제 등 약용으로 쓴다고 한다. 처음 신기한 모양의 수염 가래 꽃을 발견했을 때는 잎사귀가 귀여워서 관심이 갔지만 모처럼 야생식물에 관한 또 한가지를 배우게 된 것이 큰 기쁨으로 남는다.
열흘쯤 지났을까? 그곳에 다시 가보니 그 무더기는 온데간데없고 그곳에는 파란 벼가 자라고있었다. 아쉬웠다. 내년에도 그곳에 가보려고 한다. 만약에 다시 만나게 되는 기쁨이 주어진다면 가능하면 논 바닥을 뒤집기 전에 집으로 옮겨와서 멋지게 한번 길러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습기만 확보해주면 집에서 기르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는 여러해살이 풀꽃이라서 가정에서 관상용으로 심어도 잘 자란다고 한다.

(검색 자료)
숫잔 대과에 속하며 세미초(細米草)·과인초(瓜仁草)·반변하화(半邊荷花)수염가리꽃 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독사에 물리거나 벌에 쏘였을 때 해독제로서 생초(生草)를 문질러서 바른다. 호흡곤란, 천식, 백일해 등에도 약용한다.
피는 시기:5월~9월
산아래 낮은 곳 골짜기, 습기 많은 논둑에 특히 많다.
꽃은 흰색에 연한 보랏빛이 나는 줄이 있어 약간 보랏빛을 띤다.
멀리서 보면 흰색으로 보인다.
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땅에 닿으면 뿌리가 내린다.
높이는 5~15cm.뿌리가 약용으로 쓰이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꽃이 피면서 꽃잎이 갈라지는 모습이 특이하다.



2005년 5월 10일 화요일

내리사랑

이탈리아의 작가 지오반니 파피니가 무서운 병에 걸렸을 때 그의 소식을 들은 어떤 사람이 그의 어머니에게 인육(人肉)을 먹여보라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칼로 자기의 허벅지 살을 잘라 요리해 아들에게 먹였다고 한다. 엽기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인하여 병이 차츰 낫기 시작하자 그는 그 고기를 또 한번 먹기 원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또, 자신의 살을 베려다가 그만 동맥을 잘라 정신을 잃고 말았다. 외출에서 돌아온 지오반니 파피니는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어머니, 지난번에 먹은 고기도 어머니의 살이었군요!”하며 오열했고 어머니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아들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당부했다고한다.

“나는 죄 많은 몸으로 너를 구했지만 예수님은 죄 없는 몸으로 우리를 위해서 살을 찢기시고 피 흘리셨단다. 그러니 너는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 후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지오반니 파피니는 ‘그리스도의 이야기’ ‘떡과 포도주’ 등을 저술하였고 남은 여생을 복음 을 전파하며 살게 되었다고한다.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의 힘때문 이었다.
이 글을 접하며 나를 들여다보니 부모님께 받은 사랑은 당연지사(當然之事)로 알고 살아간다. 
얻어들은 풍월은 있어서 자식사랑 내리사랑이라고 말은 청산유수(靑山流水)로 잘도 주절거리지만 사실 어머니 나이 많아 새벽 전화 울릴 때면 가슴 철렁 내려앉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전화벨에 심장 떨어뜨릴 바에야 얼른 달려가 뵈면 될 것을 핑계거리 왜 이리 많은지 그게 잘 안 되는 것도 병중에 몹쓸 큰 병이다.
이런 자식 위해 맘졸이며 염려하고 기도하시는 어머니사랑을 알게 모르게 외면한 채 살아간다.
부모에게 효도를 더디 하지 말라는 성인의 말씀은 한 줄의 책으로만 읽었을 뿐, 실천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마음만 무슨 연고로 간절한 척 하는지!

순간, 
"온라인으로 용돈 부쳤어 예 엄니!"

"택배로 옷 한 벌 사서 보냈어 예 엄니!"

나 나름대로 방식 만들어 이것이 효도인양 위세를 떨어보고 가끔은 큰 소리로 떠들어대지만 착각이다.
얼굴보기 포기하고 전화 목소리라도 길게 잡으실라 치면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것 처럼 다시 전화하겠노라 통화종료 꾹 누르고 내 새끼 옆에 달고  좋아하는 야구장으로 달려가 목구멍 울대가 거부할 때까지 궥궥 떠든다. 성대가 찢어졌다나 부었다나 고까짓 아픔에 내 자식 남겨두고 나는 어찌 눈감을까 하는 염려로 임종을 눈앞에 둔 것처럼 눈물 바람 일으키며 또 힘 뺀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부모님 앞에서 말썽만 피우던 청소년 시절도 좀 산다고 거들먹거리던 한때도 되돌아보면 어리석음 투성일 뿐이다.  100년도 못살아낼 인생살이 젊음은 어디 갔는지 그 세월 모두 떠나 버리고 나도 어느덧 언덕 아래를 바라보는그 길에 줄서기 한다. 순간적으로 이럴 때는 제 정신 옳게 돌아온 듯 잠시 어머니 생각에 전화기 숫자 꾹꾹 누른 후 전화기 으스러질 정도로 힘주어 움켜지고 응석 섞인 말투로 "엄마" 하고 불러보니 반갑고 행복한 어머니의 음성이 표정까지 그대로 보이는듯한데 기껏 또 이 무슨 해괴한 언사란 말인가!

"엄마, 나 목이 찢어졌대요. 치료받고 좀 나으면 갈게요."

이런, 또... 생각 없이 전했다.
아프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눈두덩이 뜨겁고 목이 메이신 모양이다.

"효도라는 말은 이제 그만 두라고...! 마음 편케 해 드리는 것이 효도지..."
스스로를 또 혼낸다.
어머니가 내려주는 사랑을 '꿀꺽' 받아 삼킬 줄만 아는 불효자 늘 생각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말일수도 있겠다. 나는 또 내리사랑에 짓눌려 잠시 후면 어머니의 마음을 잊어버릴 지도 모르므로...
알면서 실천 없음이 더욱 나쁜 것, 머지않아 땅 치며 후회 할 모습이 뻔히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크신사랑 앞에 백만분의일 이라도 보답해야지. 잘해야지! 다짐하고 다짐한다.
엽기적이긴 했지만 살신 사랑 살신 전도를 했던 지오반니 파피니의 어머니처럼 내 어머니의 떨리는 간곡한 음성이 들려온다.

"목소리는 괜찮구나! 그만하길 다행이다. 범사에 감사해라. 쉬지 말고 기도해라.
그리고 목구멍이 찢어진데는 똥물을 먹으면 빨리 낫는 다는데 어디가서 구할꼬...?"  
 


2005년 5월 7일 토요일

노래도 세대 차이

티비를 보는데 아주 어린아이가 가요, 팝송을 너무 잘 부른다. 
보는 이들이 모두 놀랜다. 방청객들은 '우~~~우~~" 소리를 친다. 춤도 잘 춘다. 낙지 다리가 저리도 유연할까... 
그 어린이는 사랑의 표시를 손으로 만들어 입 맞추고 앞을 향해 그 사랑을 뿌리는 제스츄어를 멋지게 한다.

놀랜 표정을 짓고있는 내 입에 남편의 손가락이 들어왔다가 나갈 만큼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내가 저 만할 때는 무슨 노래를 불렀을까. 
기억을 더듬어본다.

가요? 기억에 없다.
팝송? 기억이 안 난다.
완전히 정치인들 청문회 대답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기억들도 있다.

초등학교 때 소풍가면 빠지지 않고 꼭 수건돌리기를 한다. 
걸리면 노래를 시킨다.
맨처음 남자 친구가 걸렸다.
친구들이 둥글게 앉은 가운데로 나가 서서, 차렷! 경례...선생님 구령에 맞춰 인사를 하고 손바닥은 쭈~욱 펴서 다리 옆에 철썩 붙이고 누가 밀어도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부동 자세로 노래를 부른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으~앙~ 울어버린다.

즐거운 소풍날 달을 쳐다보며 외로움을 노래하다 기어이 울어버린다.
그 다음 내가 걸렸다. 나도 구령에 맞춰 인사를 한 다음 두 손을 모아 꼭 쥐고 배꼽과 가슴 중간쯤에 얹어 놓은 자세로 다리를 폈다 오므렸다 하며 부르는 부른다.

뜸북뜸북 뜸북새 산에서 울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 적에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으~앙~~나도 울어 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웃음이 난다.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밝은 대낮에 달을 보며 외롭다는 노래를 부르고 봄 소풍에서 가을을 노래하며 울어버리던 순진했던 우리세대의 모습은 지금 어린이 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놀랍다.


2005년 5월 6일 금요일

봄처녀의 마음으로

사람의 발길이 무수히 지나다니는 아파트 입구 화단 옆 돌 틈 사이로 여러 차례 밟힌 상처흔적이 남아있는 민들레 한 포기가 예쁘게 웃고있다. 
잎사귀 가운데로 꽃대가 벌줌 하니 여러 개 올라와 노랑꽃을 피웠다. 봄이 오면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민들레꽃이건만 언제 사람들 발길에 밟힐지 모르는 곳에서 피어난 민들레 노랑 꽃 은 더욱 예쁘고 귀여웠다.

"너. 생명력 참 대단하다."
 
혼잣말을 하고있는데 사내아이가 피아노 학원 가방을 들고 내 옆에 서서 말한다.

"아줌마 저번 날 내가 밟았는데 또 살아났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민들레야! 미안하다' 그렇게 내가 말했어요. 그래서 꽃 핀 거예요. 우리 엄마에게 말했더니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이제는 안 밟아요."

금세 여러 명의 어린이가 몰려들어 예쁘다는 말을 한마디씩 해준다. 아이는 큰 목소리로 말한다.

"너희 이 꽃 밟지 말고 조심해서 다녀!"

부탁인지 명령인지 힘있게 한마디를 남기고 학원 늦었다며 뛰어가는 사내아이의 모습이 제법 의젓해 보인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민들레는 노랑 민들레, 흰 민들레, 서양민들레, 한라 민들레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요즘은 우리 것이 아닌 서양민들레가 많다고 한다. 우리 민들레나 서양 민들레나 꽃의 색깔, 잎의 모양은 거의 비슷하지만 꽃을 받쳐주는 꽃받침 잎이 다르다. 우리 민들레는 차분하고 질서 있게 꽃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지만 서양민들레는 꽃받침 잎이 밑으로 젖혀져 있기 때문에 꽃을 받쳐주기 싫어서 어깃장 놓는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일편단심 민들레야'라는 대중가요 노랫말도 있듯이 우리 땅에서 자란 토종 민들레 절개가 굳은 식물이라서 서양 민들레와는 사랑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토종 민들레는 자기가 좋아하는 신랑감도 토종 민들레의 꽃가루가 날아오지 않으면 절대로 받아드리지 않으며 일편단심으로임 을 그리다가 끝내는 처녀임신을 하여 씨를 날려보내어 결국 그 민들레 씨는 발아되지 못한다고 한다. 달걀로 치자면 무정란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일편단심 토종 민들레는 차츰 그 개체수가 줄어드는 형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양민들레는 어찌나 고집스러운지 10개의 잎이 나온 것을 모두 잘라내면 즉시 11개의 잎을 만들어 자라며 뿌리를 여러 토막으로 잘라서 땅에 뿌리면 모두 각자 새싹이 나오고 한 포기의 민들레로 다시 태어나는 생명력을 지녔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토종이고 잡종이고 가리지 않고 모두 날아오는 대로 받아들여 거의 100% 발아가 되므로 수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 기후에 맞게 변화되어 토종? 이 되어간다고 한다. 하긴 우리 땅의 정기를 받고 자라면 우리의 것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민들레는 만병통치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가지 질병에 민간요법이나 한방에서 약으로 쓰이고 있으며 몸에 좋은 식물이다 보니 동서양 어디에서나 먹거리로 이용하는 예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프랑스요리에는 민들레 샐러드 인기가 대단하다는데, 오늘 내 몸이 요구하는 보약을 구하러 들판으로 나가보련다.

봄처녀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