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 들판에 너무도 흔한 풀 포기를 예쁜 바구니도 아닌 검정 비밀 봉투에 꾹꾹 눌러 많이도 뜯어왔다. 남편이 먹어도 되는 나물이냐고 물어 보기에 접시나물 이라고 알려주었다. 오랜 시간을 다듬고 씻고 데치고, 물에 담가 놓았다가 참기름 냄새를 풍기며 접시 가득 그날 저녁 밥상에 올려 졌다.
접시나물은 나른한 봄날 잃어버린 입맛을 돋구어 주는데 충분했다.
고추장을 넣고 냉면 대접에 썩썩 비벼서 그이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한 숟가락 남았을 때까지 집요하게 끝까지 수저를 붙들고 있었다.
접시나물은 나른한 봄날 잃어버린 입맛을 돋구어 주는데 충분했다.
고추장을 넣고 냉면 대접에 썩썩 비벼서 그이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한 숟가락 남았을 때까지 집요하게 끝까지 수저를 붙들고 있었다.
"비빔밥 함께 먹을 때는 마지막까지 먹는 사람이 일찍 죽는 대요. 한날 한시에 죽으려면 마지막 한 수저는 남깁시다."
나의 말을 듣고 그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말 누가 만들어낸 말이야? 내가 새로 만든 말로 하자면 똑같이 나누어서 동시에 먹으면 한날 한시에 죽는다고... 남기기는 왜 남겨?"
그릇 긁는 소리에 둘이 마주 쳐다보며 웃음보를 터트리던 봄날이 생각난다. 성전 꽃꽂이 소재를 준비하던 나는 길가에 멋없이 피어있는 희고 작은 야생화를 한아름 안고 들어와 다듬기 시작했다.
" 뭐 그런 것도 꽃이라고 꽃꽂이 소재로 삼나?"
그이는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를 던진다.
"봄날 맛있게 먹었던 그 접시 나물이 자라서 이렇게 예쁜 꽃이 피었답니다."
꽃은 작아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꽃은 다른 크고 예쁜 꽃들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해바라기. 씀바귀. 구절초. 들국화 등, 크기만 다를 뿐 자세히 보면 모양은 거의 비슷하다. 아니? 내 눈에는 더 예쁘게 보였다. 키도 아주 크고 날씬하게 쭉쭉 하늘을 향해 자라서 계란 후라 이를 붙여 놓은 것처럼 생긴 작은 꽃이 앙증 맞기까지 하다. 나는 이 꽃을 참 좋아한다. 청순 가련하면서도 거칠어 보이고 야성적이면서도 진실해 보이고 사람들의 시선은 많이 받지 못하는 들꽃이지만 뿌리째 뽑아다 물에 담아 놓고 지저분한 이파리를 정성스럽게 다듬었다. 한동안 바라보던 그이는 바쁘게 서재로 들어가 시집을 찾아 가지고 나오더니 차려 자세를 하고 서서 시 한 구절을 읊어 주었다.
옥수수 닢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 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 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생략)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 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 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생략)
꽃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도종환 시인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썼다는 시인데 살아 있는 나에게 느닷없이 무슨 접시꽃 당신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참 매력 없기는? 내 마음을 몰라주다니 야속하다. 아무리 요즈음 불경기라서.... 돈을 좀...못 벌어다 준다고 감정까지 메말랐단 말이요?
"봄날 맛있게 먹었던 그 나물도 생각나고 해서 시 한 구절 읊조렸더니 비웃었단 말이지? 할망구 다 되었군."
크게 웃었다. 접시나물이라는 말에 접시꽃 당신을 읽어준 것이다.
"깔깔깔! 그런데 접시나물의 꽃은 접시꽃이 아니고 망초 꽃이랍니다, 그것도 개망초 꽃, 그 시에도 등장하네...시인이 논두렁에 난 망촛대와 잡풀 사이에 멍하니 서있었다고 거기, 시에 써 있잖어요."
"잉?? 그런데 왜...나물을 접시나물이라 하는 거야?"
"글쎄요. 남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그런 줄 알고있지만 어쩌면 나물 이름을 내가 틀리게 알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봄날 나물을 준비하던 모습도 지금 꽃을 다듬는 모습도 사랑스러워 보였다며 잠시 기쁘게 해주려고 시를 읽어 주었다는 그이의 말을 들으며 행복하다.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된답니다.
오늘 당신을 시인으로 임명합니다.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된답니다.
오늘 당신을 시인으로 임명합니다.
통계청 뒤뜰에 올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접시꽃이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았는데 내일은 그이와 함께 접시꽃 사진을 찍으러 가야겠다.
* tip
개망초의 '개-'는 접두사가 아니고 실제로 뜻을 가진 실질형태소로서 "모두, 다"라는 뜻을 가진 '다 皆' 자입니다.
개망초의 '개-'는 접두사가 아니고 실제로 뜻을 가진 실질형태소로서 "모두, 다"라는 뜻을 가진 '다 皆'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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