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탓
5월 향기가 대단하다. 길가에 앉은뱅이 가로수 쥐똥나무 흰색 꽃이 눈과 코를 즐겁게 한다. 다글다글 핀 하얀 꽃이 지면 꽃송이만큼의 작은 열매가 열리고 가을이 되면 열매는 검게 익는다. 그 열매가 쥐똥같이 생겨서 쥐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산과 들, 골짜기에서 자라던 나무가 언제부터인가 도시의 도로변이나 도심공원에서 단정하게 이발하고 조경으로 환영받는 나무가 되었다. 매연 속에서도 잘 견디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편은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서 조금 늦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지인이 경영하는 오리농장으로 출발했다. 아직은 모임이 끝날 시간이 안 되었는데 전화벨이 울리고 비밀 이야기를 하듯 작은 목소리로 질문한다.
“여보 그거 있잖아 길 가다가 당신이 좋아하는 향기 나는 나무 구청에서 나온 분들이 이발시키던 짱구 농장 울타리 나무 이름이 뭐지?”
”이발 한 나무? 쥐똥나무?“
지난해 봄에도 그곳 울타리에 심어져있는 쥐똥나무 꽃향기가 참 좋았었는데 모임 친구들이 향기에 취해서 이야기들을 하는가 보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남자들의 토론은 각자 동의보감을 쓴 허준 선생 역할을 하는 듯했다. 피 토하고 피 똥 싸는 사람에게 쓰인다는 한약 재료라며 조금 전에도 알았었는데 나무 이름이 생각 안 난다며 큰 목소리로 말하는 친구를 향해 남편은 더 큰 목소리로 쥐똥나무라고 알려준다. 꽃향기에 취해서일까 한잔 술에 취해서일까 듣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들만 있는 듯 말과 말이 뒤엉킨 채 무척 즐거운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직 초저녁인데 전화벨이 울리고 15분 후에 아파트 입구로 택시비 가지고 나와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의 전화가 끊겼다. 아직 귀가할 시간이 아닌데 혹시 농담인가? 하는 생각으로 전화 확인을 해보니 같은 말을 한다. 언젠가 지갑을 잃어버린 후로는 음주 후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결심이 각인된 그이의 멘트다.
"택시비가 없어요. 짱구 엄마가 콜 불러서 나 먼저 집에 가라네. 나 지금 택시 탔어."
아파트 안으로 택시가 들어오려면 절차가 여간 복잡하지 않기에 큰길가로 나가서 마중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만치 택시가 잠시 섰다가 내 앞을 지나가기에 큰소리로 부르니 택시가 섰다. 창문이 마침 열려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기사님에게 나는 죄인이 된 것처럼 눈치를 보며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몇 차례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추스르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기사님 돈 벌러 빨리 가셔야 하니까 얼른 내려와요."
안쓰럽게 그이와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그이의 술 취한 모습이 너무 창피하다. 술 취한 사람은 목소리가 크다. 말도 많이 한다. 한말 또 하고, 다시 또 하고 시스템이 그 자리에 멈추나 보다. 관리실을 지나치려니 창피해서 죽을 맛이다. 최대한 빨리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했기에 우는 아기 달래듯이 꼭 안고 들어왔다. 거의 인사불성 상태에서도 신종플루 때문에 손을 닦아야 한다고 떠든다. 크게 앓는 소리, 신음 소리,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가 걱정이 될 정도로 가슴을 주먹으로 친다. 그 주먹을 부여잡아 저지하면서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 발을 대충 닦이며 혼잣말을 한다. .
”술 깨고 나서 피 토하고 피 똥 싸면 약에 쓰려고 쥐똥나무 토론들을 했어요? 이런 날이 또 있으면 발가락부터 닦이고 손 닦이고 마지막에 입 닦아 줄줄 알아요. 녹음기 어디 있지? 녹음을 해 놓아야겠어!“
한 성질 하는 꼬챙이 같은 성격에 취중에도 자신의 주사를 증거로 남기기는 싫었는지 조용해지더니 잠들었다. 칡즙 들깨 찹쌀을 넣고 죽을 끓여 이른 아침 속을 달래 주었다. 절대로 잔소리는 안 하려고 했지만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은 남의 탓을 했다.
"허물없는 사이에 당신 술 약한 것 알면서 잠간 쉬게 하고 정신이 들면 보내주지 인사불성인 사람을 택시 태워 보내면 어떻게 해? 짱구엄마 정말 섭섭하네."
그이는 아무런 말이 없다.
남의 탓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