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침 일찍 남편 친구부부와 함께 망둥이 낚시를 갔다가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멀리 넓은 갯벌에 붉게 널려있는 바다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창문너머로 보면서 들판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만큼이나 예쁘다고 한마디했더니 옛날에는 저 흔한 것도 뜯어다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는데 요즘은 먹거리가 많으니까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남편 친구가 말한다. 잘록한 마디가 꼭 채송화 잎과 흡사한 것이 마디마디 붙어있어서 퉁퉁 마디라고 부른다는 설명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마트에 가면 해초 판매대에서 파는 파릇파릇한 것을 본적이 있기에 그렇다면 좀 뜯어 가자고 했다.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워 얼마 지나지 않아 낚시를 포기하고 되돌아오면서 퉁퉁 마디를 뜯으러 가자고 했다. 그러나 이미 차는 출발을 하였고 다음에 뜯으러 다시 오자고 하며 돌아왔다. 그날저녁 모 TV에서 몸에 좋은 함초에 관한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마디가 튀어나오므로 퉁퉁 마디라고 불린단다. 낯에 우리가 보고 이야기하고 뜯어오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던 그 퉁퉁 마디가 방송에 나오다니... 반가웠다. 건강식품으로 가공하여 이미 판매가 되고있으며 몸에 이롭고 비만이나 장이 안 좋은 사람, 고혈압, 당뇨, 신장 나쁜 사람에게는 치유에 도움도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바로 내가 먹어야 하는 거네? 좋았어! 다 내 꺼야!!!"
"그러게…. 그 벌판 당신 것이네? 내일 당장 철조망 사 가지고 가서 아무도 못 뜯어가도록 울타리부터 치자고!"
눈은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TV에 빠져있는 나에게 남편은 계속 우스개 소리를 한다. 사실 몸에 좋다고 방송한번 나온 뒤에 장보러 가면 그 코너는 기본적으로 거쳐 가게되고 역시나 사람들은 북적거린다.
"드라이버 가져와 봐!"
"왜~에! 가만있어요 시끄럽게 하지 말고…."
"내가 자꾸 말하면 시끄러우니까 드라이버 가져와 봐…. TV뚜껑 열어줄게 아예 들어가라고!"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시청을 했는지 방송이 끝나자마자 남편의 다른 말은 기억 못하고 드라이버를 얼른 갖다 주었다. 그리고는 친구 부인에게 전화를 하며 낯에 우리가 이야기했던 퉁퉁 마디를 뜯으러 가자고 했다. 그쪽도 그 방송을 보았다고 했다.
"방송 보니까 분명히 몸에 좋은 거 맞지요? 일단은 소독약은 쓰지 않았으니 보증수표잖아요? 퉁퉁 마디 뿌리째 뽑아다 말려서 생식가루나 미숫가루처럼 직접 만들자고요."
우리의 전화 통화를 듣고있던 그이가 뒤로 넘어가듯 웃는 모습을 보면서 왜? 하는 제스처를 보여줬다. 우리는 결국 주말로 약속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이는 드라이버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가 이마를 한 대 때린다. 너무 아팠지만 다시 바닷가에 가기로 약속을 받았기에 참았다. 일년에 한 두 번 만나는 친구를 두 여자성화에 못이기고 그 바닷가를 가기 위해 이틀만에 다시 만났다. 나는 마트 쇼핑비닐봉지 10개를 챙겼다. 친구부인은 쌀자루를 가져왔다고 했다. 남편과 친구는 "야! 우리 너무 팔불출 아니냐?" 하면서 아내들의 요구를 들어준 생색을 내기도 하면서 즐거운 함초 추수 길에 올랐다. 함초는 명아주과 한해살이풀로서 10∼30㎝까지 키가 자라고 줄기는 원기둥처럼 생긴 마디가 전체녹색으로 8∼9월에 꽃도 녹색으로 핀다고 한다. 우리는 붉은 함초가 바람에 날리는 갯벌을 눈앞에 두고 자동차 트렁크에서 비닐봉투를 꺼낸 후 돈도 들이지 않고 수고도 하지 않은 우리의 함초를 추수하기 위하여 준비 운동으로 '야~호" 하고 크게 기지개를 켠 후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 곡식 모아 곳간 안에 들인 것이 없어도 세상 주관하는 주님 새를 먹여 주시니 너희 먹을 것을 위해 근심 할 것 무어냐.'
신이 나서 찬송도 불렀다. 그리고는 새가된 기분으로 우쭐대며 앞장서서 걸었다. 선두로 걷다보니 내 마음속에서는 교만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내가 옛날에 누구였는데…. 간호대학 출신 아닌가! 이 똑똑이가 하자는 대로하면 건강은 안심해도 된다고!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거예요. TV에도 방영되었지만 임상실험도 거친 것이고, 상식 선에서 보더라도 몸에 해로울 것이 없는 해초인 만큼 가공된 것보다 직접 채취해서 먹으면 그것이 정말 자연 식품이고 민간요법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뜯어다가 주스도 만들어먹고 분말도 많이 만들어 두고두고 밀려가면서 먹고 나물도 해먹고 우리 가족의 건강을 이제부터 해초 미인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렵니다. 이제부터 나 하는 똑똑한 짓을 잘 보라고! 내가 가는 길에는 건강한 미래가 있다. 나와 함께 갑시다, 우리의 해초 뻘로…. 자!!!! 나를 따르라! 내 뒤를 따르라! 이 신나는 상상은 누가 말려주기 전에는 끝이 나지 않을 듯 했다. 언덕을 내려가고 뻘을 밟고 몇 분 후 당도한 퉁퉁 마디 벌판에는 우리말고도 10여명이 이미 와있었다. 그 사람들도 방송을 보고 왔다고 한다. 방송의 효과는 대단했다. 함초 벌판이 모두 내 것 이라고 집에서 맡아 놓았건만 다른 사람들이 이미 침범해있었다. 손에는 비닐봉투를 하나씩 들고….
'그래 사랑은 나누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건강해야지. 나 혼자 너무 건강해서 200살 살면 세상이 불공평하잖아?
이게 어찌된 일일까! 우리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궁시렁 대며 갈 길을 가고있었다. 나물은 절대로 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억세고 뻣뻣한 마른 들풀 그 자체다. 잎과 줄기가 진홍색으로 변해있는 함초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이 진 뒤 그 속은 열매처럼 싸여있으며 검은색 씨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바람에 그 씨가 다시 떨어져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파란 싹을 틔우고 자라면서 그 마디마디에 적당한 염분을 비롯한 미네랄 등 많은 이로운 영양분을 빨아들여 우리의 식탁 위에 우리의 건강 보조식품으로 쓰임 받게 되는가보다.
돌아오는 길은 너무도 조용했다. 퉁퉁 마디 추수를 못한 것이 꼭 내 책임인 것처럼….
집에 돌아와 나는 그이에게 드라마에서 배운 대사를 오늘도 진지하게 읊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이봐라! 아직도 그 드라마 찍고있나! 그 말 또 다시 하면 정말 TV열고 집어 넣뿐다."
이틀 전 드라이버로 맞은 이마가 아직도 아프다.
월간 샘터 2006년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