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10일 월요일

층간소음

얼마 전 입주한 이웃 여인의 높은 목소리에 잠을 설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무엇을 하기에 문 여닫는 소리는 셀 수 없이 쿵쾅거리고 나의 인내를 시험이라도 하는 듯 며칠 들 이로 새벽 서너 시만 되면 떠드는 소리에 너무 화가 난다.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밤낮이 바뀌어서 지금이 활동하는 시간이라고 하기에 어쩌다 한 두 번이겠지 하며 참고 조용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웃은 모두 곤히 잠들어있는 이른 새벽에 아무래도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술 취해서 커진 목소리는 그렇다 치고 고요한 한밤중에 남녀가 고래고래 웃고 떠들면 밤에 잠을 자야 하는 사람들은 어찌하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밤은 잠을 자라고 어두운 것인데 세상이 좋아 전깃불이 불야성을 이루고 대낮처럼 밝다 하여 낯으로 착각하면 좀 곤란한 것 아닐까? 이제는 이곳에서 살아야 할 날들이 염려에 앞서 두렵기까지 하다. 몇몇 사람들의 이기적인 무질서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다. 솔직하게 여자가 야심한 밤에 술 취한 모습이 자랑거리는 아니라고 본다. 조용히 들어와 이웃을 생각하는 예쁜 마음도 가져 보면 좋을 것을 조절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요즈음 세상은 남의 눈치 안보고 나 하고싶은 대로하고 사는 것이 개성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사회는 기본적인 상식이나 양심까지 무너져 제멋대로 사는 무질서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아니, 그런 모습이 이미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자신을 통제하지 않고 자기주장대로 산다면 서로 신경이 곤두서서 짜증스럽고 피곤한 일이 아닌가.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윗집 여인은 지금도 쿵쾅거리며 밤의 고요를 깨뜨리고 있다. 험한 세상을 향해 대항하며 반항하는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보는 듯하다.
혹시 나는 이웃에게 이런 혼란스러움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남의 눈의 티만 보고 내 눈에 들보는 못보고 사는 것은 아닌지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는 밤이었다. 

어느덧 아침이다.
윗집 여인덕분에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 여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2006년 6월 20일 화요일

서비스 휴지 하나주세요.

언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기에 급히 집을 나섰다. 광명인지 시흥인지 남부 경찰서 부근이라고 하기에 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강남 대로를 지나 사당을 지나 얼마쯤 가니 주유 비상등에 불이 켜졌다. 어제도 불이 들어 왔었는데 미쳐 생각을 못했다. 빨강 불이 들어오고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마음이 불안했다. 퇴근시간과 맞물려 어찌나 차가 많은지 마음만 급할 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만 벌어지고 있었다.
주유소도 보이지 않고 차는 계속 밀리고 엎친 데 덮친다고 배까지 살살 아파 왔다. 일단 가변차선으로 가면서 주유소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를 않았다.
차선변경도 못하겠고 엉뚱한 길로 우회했다. 한참을 비상 깜박이를 켠 채로 주유소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반대 방향에는 보이는데 이쪽은 왜 없을까 하며 원망을 하고 있을 때에 더 이상은 안 되려는지 음악이 들려온다. 처음 듣는 음악소리다. 기름이 없어서 차가 서기직전에 나오는 음악인 듯 했고 다행히도 음악소리를 들으며 드디어 주유소를 찾았다. 차를 세우고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 주유를 하려니 이런 변이 또 있단 말인가!
핸드백 속에 있던 지갑이 안 보인다. 집에 전화를 하니 집에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속상하고 약이 올라서 눈물도 찔끔 나오며 울컥 목에 뭔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 해야 하나하고 궁리 중에 차에 있던 동전들을 주섬주섬 모았더니 3천원이 되었다. 주유하는 총각이 아르바이트 학생 같았다.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학생 미안한데요, 지갑을 모르고 안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기름이 없어요. 정말 미안한데.... 3000원 어치만 넣어주면 안될까요? "

창피해서 그냥 미소지으며 조용히 말했더니 주유 원이 못 들었는지…,

"네 에? 다시 크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창피했지만 크게 다시 말했다.
그 총각 큰 목소리로 외친다.

"3번에 3000원 주유합니다."

주유 구를 열고 기름 줄을 수~욱 넣는 척 하더니 그냥 뺀다. 창피하게 다시 큰소리로 외친다.

"3000원 주유 끝났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기름을 가지고는 병 문안도 못 갈 것 같고 집으로도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 정신을 어디에 빼놓고 다니는 거야! 기름은 미리 미리 넣고 다녀야지 날도 이제 쌀쌀해 지는데 도대체 사람이 왜 그렇게 정신이 없어!"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계속 핍박하는 말이 이어지고 있다. 더 이상 듣고 있으려니 그이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야속하게만 들리고 준비성 없이 길을 나선 내 자신의 잘못을 망각한 채 남편이 밉고 원망스러워 신경질을 내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출발을 하려니 눈물이 주르륵 뺨 위로 흘러내렸지만 눈물을 닦으려니 손수건도 없다. 창문을 열고 주유소 총각에게 "휴지 안 줘요?" 하고 말했다. 쳐다보고 웃는다.

"서비스 휴지 하나주세요."

주유 원은 휴지를 2개 주면서 또 웃는다.
그런 사이 그이의 전화는 계속 울려왔지만 받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잘못은 내가하고 원망은 남편에게 하고있는 것은 무슨 못된 심보인지, 속썩이며 버티고 싶었지만 그래도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전화를 받았다. 주유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여 입금을 해준 그이의 배려로 주유를 무사히 할 수 있었다. 편한 세상 살다보니 이런 방법도 있었다.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다는데…. 들은 풍월은 있어서 오늘 구세주가 되어준 그이에게 드라마에서 배운 대로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곰퉁아! 지금 드라마 찍나? 정신 똑바로 챙기고 운전 조심해서 다니라구!"

오늘 나는 곰퉁이다.



2006년 5월 21일 일요일

어머니의 노래

누군가가 말했듯이 세계의 언어이고 우주의 춤이라는 노래, 어느 누구든 한두 곡쯤의 애창곡은 있을 테고 또한 즐겨 부를 것이다. 내 어머니께서도 찬송가 외에 다른 두세 곡 정도를 애창곡으로 부르셨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학도야! 학도야! 젊은 학도야….`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연못가에 묻어 주.`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그야말로 운동권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늘 혼자 부르셨다. 층층시하 힘든 시집살이를 이겨내기 위한 혼자만의 시위 음악이었을까? 어쨌든 어머니께서는 찬송가와 몇 곡의 고전 음악 외에 다른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뵌 적이 없었다.
내 어머니의 음성은 평소 말씀하실 때의 저음 목소리와는 아주 다른, 소녀처럼 청아한 소프라노 음성으로 변하신다. 어느해 봄 야유 예배가 있었던 5월의 산야는 파릇파릇 푸르고 아름다웠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가까운 야외로 소풍 길에 오른 많은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저마다 풀 한 포기의 싱그러움까지도 감탄하면서 천지 창조, 신의 섭리를 찬양했다. 그렇게 야유 예배를 마친 후 제2부로 즐거운 노래자랑 시간을 갖게 되었다. 순서에 의해 사회자의 간단한 인사와 심사기준, 상품 등이 소개되었고 마침내 노래자랑을 시작하였다.
`오늘 노래자랑만큼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여하시는 것으로 원칙을 정하겠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찬송가는 자제하시고 오늘만큼은 각자의 18번을 마음껏 뽐내어서 준비한 상품을 많은 분들이 타 가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만약에 찬송가588장 중에서 부르시는 분이 계시다면 하느님께서 무척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여기모인 우리도 기쁨을 누릴수 있도록 에헤헤!!! 알아서 불러 주십시오.`
노래자랑은 시작되고 수줍으면 수줍은 대로 씩씩한 사람은 더욱 흥겹고 신나게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어머니 차례가 되었다.
`저 분은 예외‥. 찬송가를 불러도 할 수 없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모든 분들이 같은 생각을 할 때쯤 마이크를 통해 산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음의 음성으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모두들 잔디밭에 나뒹굴며 쓰러졌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상상도할 수 없는 어머니의 다른 모습을 처음 보는 우리 자매를 비롯한 모든 분들은 폭소와 함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놀라움 자체이었다. 분위기는 술렁였고 예의 상 `앙코르`가 아닌 또 다른 기대의 재창을 목소리 높여 외쳤다.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이번에는 가무도 함께 다음 곡을 부르셨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어머니의 변신 앞에서 포복 졸도하던 그때 그 시절 기억을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어머니의 93세 생신 날 허전한 마음으로 추억합니다.
햇살이 아주 좋은 날입니다.


`엄마! 아무 근심 걱정 없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지요?
너무 보고 싶어요.`


2006년 4월 5일 수요일

방순동 부고

▶방순동씨(전 경희대 사범대학장)별세,
방현수(동국대 교수).현준(사업).현택씨(삼성전자 부장)부친상
=2일 오전 2시 삼성서울병원,
발인 2006년4월4일 오전 6시, 3410-6902

작은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06년 2월 16일 목요일

퉁퉁마디(Salicornia herbacea L. 'S europeae L.')



얼마 전 아침 일찍 남편 친구부부와 함께 망둥이 낚시를 갔다가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멀리 넓은 갯벌에 붉게 널려있는 바다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창문너머로 보면서 들판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만큼이나 예쁘다고 한마디했더니 옛날에는 저 흔한 것도 뜯어다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는데 요즘은 먹거리가 많으니까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남편 친구가 말한다. 잘록한 마디가 꼭 채송화 잎과 흡사한 것이 마디마디 붙어있어서 퉁퉁 마디라고 부른다는 설명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마트에 가면 해초 판매대에서 파는 파릇파릇한 것을 본적이 있기에 그렇다면 좀 뜯어 가자고 했다.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워 얼마 지나지 않아 낚시를 포기하고 되돌아오면서 퉁퉁 마디를 뜯으러 가자고 했다. 그러나 이미 차는 출발을 하였고 다음에 뜯으러 다시 오자고 하며 돌아왔다. 그날저녁 모 TV에서 몸에 좋은 함초에 관한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마디가 튀어나오므로 퉁퉁 마디라고 불린단다. 낯에 우리가 보고 이야기하고 뜯어오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던 그 퉁퉁 마디가 방송에 나오다니... 반가웠다. 건강식품으로 가공하여 이미 판매가 되고있으며 몸에 이롭고 비만이나 장이 안 좋은 사람, 고혈압, 당뇨, 신장 나쁜 사람에게는 치유에 도움도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바로 내가 먹어야 하는 거네? 좋았어! 다 내 꺼야!!!"

"그러게…. 그 벌판 당신 것이네? 내일 당장 철조망 사 가지고 가서 아무도 못 뜯어가도록 울타리부터 치자고!"

눈은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TV에 빠져있는 나에게 남편은 계속 우스개 소리를 한다. 사실 몸에 좋다고 방송한번 나온 뒤에 장보러 가면 그 코너는 기본적으로 거쳐 가게되고 역시나 사람들은 북적거린다.

"드라이버 가져와 봐!"

"왜~에! 가만있어요 시끄럽게 하지 말고…."

"내가 자꾸 말하면 시끄러우니까 드라이버 가져와 봐…. TV뚜껑 열어줄게 아예 들어가라고!"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시청을 했는지 방송이 끝나자마자 남편의 다른 말은 기억 못하고 드라이버를 얼른 갖다 주었다. 그리고는 친구 부인에게 전화를 하며 낯에 우리가 이야기했던 퉁퉁 마디를 뜯으러 가자고 했다. 그쪽도 그 방송을 보았다고 했다.

"방송 보니까 분명히 몸에 좋은 거 맞지요? 일단은 소독약은 쓰지 않았으니 보증수표잖아요? 퉁퉁 마디 뿌리째 뽑아다 말려서 생식가루나 미숫가루처럼 직접 만들자고요."

우리의 전화 통화를 듣고있던 그이가 뒤로 넘어가듯 웃는 모습을 보면서 왜? 하는 제스처를 보여줬다. 우리는 결국 주말로 약속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이는 드라이버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가 이마를 한 대 때린다. 너무 아팠지만 다시 바닷가에 가기로 약속을 받았기에 참았다. 일년에 한 두 번 만나는 친구를 두 여자성화에 못이기고 그 바닷가를 가기 위해 이틀만에 다시 만났다. 나는 마트 쇼핑비닐봉지 10개를 챙겼다. 친구부인은 쌀자루를 가져왔다고 했다. 남편과 친구는 "야! 우리 너무 팔불출 아니냐?" 하면서 아내들의 요구를 들어준 생색을 내기도 하면서 즐거운 함초 추수 길에 올랐다. 함초는 명아주과 한해살이풀로서 10∼30㎝까지 키가 자라고 줄기는 원기둥처럼 생긴 마디가  전체녹색으로 8∼9월에 꽃도 녹색으로 핀다고 한다. 우리는 붉은 함초가 바람에 날리는 갯벌을 눈앞에 두고 자동차 트렁크에서 비닐봉투를 꺼낸 후 돈도 들이지 않고 수고도 하지 않은 우리의 함초를 추수하기 위하여 준비 운동으로 '야~호" 하고 크게 기지개를 켠 후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 곡식 모아 곳간 안에 들인 것이 없어도 세상 주관하는 주님 새를 먹여 주시니 너희 먹을 것을 위해 근심 할 것 무어냐.'

신이 나서 찬송도 불렀다. 그리고는 새가된 기분으로 우쭐대며 앞장서서 걸었다. 선두로 걷다보니 내 마음속에서는 교만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내가 옛날에 누구였는데…. 간호대학 출신 아닌가! 이 똑똑이가 하자는 대로하면 건강은 안심해도 된다고!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거예요. TV에도 방영되었지만 임상실험도 거친 것이고, 상식 선에서 보더라도 몸에 해로울 것이 없는 해초인 만큼 가공된 것보다 직접 채취해서 먹으면 그것이 정말 자연 식품이고 민간요법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뜯어다가 주스도 만들어먹고 분말도 많이 만들어 두고두고 밀려가면서 먹고 나물도 해먹고 우리 가족의 건강을 이제부터 해초 미인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렵니다. 이제부터 나 하는 똑똑한 짓을 잘 보라고!  내가 가는 길에는 건강한 미래가 있다. 나와 함께 갑시다, 우리의 해초 뻘로….  자!!!! 나를 따르라! 내 뒤를 따르라! 이 신나는 상상은 누가 말려주기 전에는 끝이 나지 않을 듯 했다. 언덕을 내려가고 뻘을 밟고 몇 분 후 당도한 퉁퉁 마디 벌판에는 우리말고도 10여명이 이미 와있었다. 그 사람들도 방송을 보고 왔다고 한다. 방송의 효과는 대단했다. 함초 벌판이 모두 내 것 이라고 집에서 맡아 놓았건만 다른 사람들이 이미 침범해있었다. 손에는 비닐봉투를 하나씩 들고….

'그래 사랑은 나누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건강해야지. 나 혼자 너무 건강해서 200살 살면 세상이 불공평하잖아?
이게 어찌된 일일까! 우리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궁시렁 대며 갈 길을 가고있었다. 나물은 절대로 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억세고 뻣뻣한 마른 들풀 그 자체다. 잎과 줄기가 진홍색으로 변해있는 함초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이 진 뒤 그 속은 열매처럼 싸여있으며 검은색 씨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바람에 그 씨가 다시 떨어져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파란 싹을 틔우고 자라면서 그 마디마디에 적당한 염분을 비롯한 미네랄 등 많은 이로운 영양분을 빨아들여 우리의 식탁 위에 우리의 건강 보조식품으로 쓰임 받게 되는가보다.
돌아오는 길은 너무도 조용했다. 퉁퉁 마디 추수를 못한 것이 꼭 내 책임인 것처럼….
집에 돌아와 나는 그이에게 드라마에서 배운 대사를 오늘도 진지하게 읊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이봐라! 아직도 그 드라마 찍고있나! 그 말 또 다시 하면 정말 TV열고 집어 넣뿐다."

이틀 전 드라이버로 맞은 이마가 아직도 아프다.

월간 샘터 2006년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