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5일 수요일

방순동 부고

▶방순동씨(전 경희대 사범대학장)별세,
방현수(동국대 교수).현준(사업).현택씨(삼성전자 부장)부친상
=2일 오전 2시 삼성서울병원,
발인 2006년4월4일 오전 6시, 3410-6902

작은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06년 2월 16일 목요일

퉁퉁마디(Salicornia herbacea L. 'S europeae L.')



얼마 전 아침 일찍 남편 친구부부와 함께 망둥이 낚시를 갔다가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멀리 넓은 갯벌에 붉게 널려있는 바다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창문너머로 보면서 들판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만큼이나 예쁘다고 한마디했더니 옛날에는 저 흔한 것도 뜯어다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는데 요즘은 먹거리가 많으니까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남편 친구가 말한다. 잘록한 마디가 꼭 채송화 잎과 흡사한 것이 마디마디 붙어있어서 퉁퉁 마디라고 부른다는 설명도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마트에 가면 해초 판매대에서 파는 파릇파릇한 것을 본적이 있기에 그렇다면 좀 뜯어 가자고 했다.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워 얼마 지나지 않아 낚시를 포기하고 되돌아오면서 퉁퉁 마디를 뜯으러 가자고 했다. 그러나 이미 차는 출발을 하였고 다음에 뜯으러 다시 오자고 하며 돌아왔다. 그날저녁 모 TV에서 몸에 좋은 함초에 관한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마디가 튀어나오므로 퉁퉁 마디라고 불린단다. 낯에 우리가 보고 이야기하고 뜯어오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던 그 퉁퉁 마디가 방송에 나오다니... 반가웠다. 건강식품으로 가공하여 이미 판매가 되고있으며 몸에 이롭고 비만이나 장이 안 좋은 사람, 고혈압, 당뇨, 신장 나쁜 사람에게는 치유에 도움도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바로 내가 먹어야 하는 거네? 좋았어! 다 내 꺼야!!!"

"그러게…. 그 벌판 당신 것이네? 내일 당장 철조망 사 가지고 가서 아무도 못 뜯어가도록 울타리부터 치자고!"

눈은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하게 세우고 TV에 빠져있는 나에게 남편은 계속 우스개 소리를 한다. 사실 몸에 좋다고 방송한번 나온 뒤에 장보러 가면 그 코너는 기본적으로 거쳐 가게되고 역시나 사람들은 북적거린다.

"드라이버 가져와 봐!"

"왜~에! 가만있어요 시끄럽게 하지 말고…."

"내가 자꾸 말하면 시끄러우니까 드라이버 가져와 봐…. TV뚜껑 열어줄게 아예 들어가라고!"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시청을 했는지 방송이 끝나자마자 남편의 다른 말은 기억 못하고 드라이버를 얼른 갖다 주었다. 그리고는 친구 부인에게 전화를 하며 낯에 우리가 이야기했던 퉁퉁 마디를 뜯으러 가자고 했다. 그쪽도 그 방송을 보았다고 했다.

"방송 보니까 분명히 몸에 좋은 거 맞지요? 일단은 소독약은 쓰지 않았으니 보증수표잖아요? 퉁퉁 마디 뿌리째 뽑아다 말려서 생식가루나 미숫가루처럼 직접 만들자고요."

우리의 전화 통화를 듣고있던 그이가 뒤로 넘어가듯 웃는 모습을 보면서 왜? 하는 제스처를 보여줬다. 우리는 결국 주말로 약속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이는 드라이버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가 이마를 한 대 때린다. 너무 아팠지만 다시 바닷가에 가기로 약속을 받았기에 참았다. 일년에 한 두 번 만나는 친구를 두 여자성화에 못이기고 그 바닷가를 가기 위해 이틀만에 다시 만났다. 나는 마트 쇼핑비닐봉지 10개를 챙겼다. 친구부인은 쌀자루를 가져왔다고 했다. 남편과 친구는 "야! 우리 너무 팔불출 아니냐?" 하면서 아내들의 요구를 들어준 생색을 내기도 하면서 즐거운 함초 추수 길에 올랐다. 함초는 명아주과 한해살이풀로서 10∼30㎝까지 키가 자라고 줄기는 원기둥처럼 생긴 마디가  전체녹색으로 8∼9월에 꽃도 녹색으로 핀다고 한다. 우리는 붉은 함초가 바람에 날리는 갯벌을 눈앞에 두고 자동차 트렁크에서 비닐봉투를 꺼낸 후 돈도 들이지 않고 수고도 하지 않은 우리의 함초를 추수하기 위하여 준비 운동으로 '야~호" 하고 크게 기지개를 켠 후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 곡식 모아 곳간 안에 들인 것이 없어도 세상 주관하는 주님 새를 먹여 주시니 너희 먹을 것을 위해 근심 할 것 무어냐.'

신이 나서 찬송도 불렀다. 그리고는 새가된 기분으로 우쭐대며 앞장서서 걸었다. 선두로 걷다보니 내 마음속에서는 교만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내가 옛날에 누구였는데…. 간호대학 출신 아닌가! 이 똑똑이가 하자는 대로하면 건강은 안심해도 된다고!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거예요. TV에도 방영되었지만 임상실험도 거친 것이고, 상식 선에서 보더라도 몸에 해로울 것이 없는 해초인 만큼 가공된 것보다 직접 채취해서 먹으면 그것이 정말 자연 식품이고 민간요법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뜯어다가 주스도 만들어먹고 분말도 많이 만들어 두고두고 밀려가면서 먹고 나물도 해먹고 우리 가족의 건강을 이제부터 해초 미인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렵니다. 이제부터 나 하는 똑똑한 짓을 잘 보라고!  내가 가는 길에는 건강한 미래가 있다. 나와 함께 갑시다, 우리의 해초 뻘로….  자!!!! 나를 따르라! 내 뒤를 따르라! 이 신나는 상상은 누가 말려주기 전에는 끝이 나지 않을 듯 했다. 언덕을 내려가고 뻘을 밟고 몇 분 후 당도한 퉁퉁 마디 벌판에는 우리말고도 10여명이 이미 와있었다. 그 사람들도 방송을 보고 왔다고 한다. 방송의 효과는 대단했다. 함초 벌판이 모두 내 것 이라고 집에서 맡아 놓았건만 다른 사람들이 이미 침범해있었다. 손에는 비닐봉투를 하나씩 들고….

'그래 사랑은 나누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건강해야지. 나 혼자 너무 건강해서 200살 살면 세상이 불공평하잖아?
이게 어찌된 일일까! 우리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궁시렁 대며 갈 길을 가고있었다. 나물은 절대로 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억세고 뻣뻣한 마른 들풀 그 자체다. 잎과 줄기가 진홍색으로 변해있는 함초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꽃이 진 뒤 그 속은 열매처럼 싸여있으며 검은색 씨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바람에 그 씨가 다시 떨어져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파란 싹을 틔우고 자라면서 그 마디마디에 적당한 염분을 비롯한 미네랄 등 많은 이로운 영양분을 빨아들여 우리의 식탁 위에 우리의 건강 보조식품으로 쓰임 받게 되는가보다.
돌아오는 길은 너무도 조용했다. 퉁퉁 마디 추수를 못한 것이 꼭 내 책임인 것처럼….
집에 돌아와 나는 그이에게 드라마에서 배운 대사를 오늘도 진지하게 읊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이봐라! 아직도 그 드라마 찍고있나! 그 말 또 다시 하면 정말 TV열고 집어 넣뿐다."

이틀 전 드라이버로 맞은 이마가 아직도 아프다.

월간 샘터 2006년3월호


2006년 2월 1일 수요일

어머나~~

한 달에 한번씩 모이는 친목회에 가면 뒤풀이는 항상 노래방을 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즐거운데 남편도 나도 노래를 제대로 끝까지 아는 것이 없고 부끄러움이 많아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언제나 고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출퇴근길에 차안에서 노래연습을 하기로 했다.
외근중인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래처 사람과 술을 한잔 마셨는데 가까운 곳에 있으니 곧 들어온다고 퇴근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퇴근길 운전은 내가해야 할 것 같아서 사무실에서 그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차례 전화를 했는데도 근처라고만 하면서 빨리 들어오지를 않았다. 오늘 일이 성사가 잘 안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남편의 수고가 안쓰럽기도 하여 깊은 밤까지 저녁도 안 먹고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크게 노래를 부르며 사무실 앞길을 지나가고 있다. 귀에 익은 목소리다. '아니, 저이가….'하면서 문을 열어보았더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어느 여자와 둘이서 어느새 저만큼 멀리 가로등 뿌연 불빛아래를 지나 왼편 골목길로 사라졌다. 꼭 남편 같기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얼마 후 남편이 들어왔다. 술을 잘 못마시는 사람이라 얼굴이 완전히 석류 알맹이 같다.

“그런데 여보, 조금 전에 누가 당신 요즘 연습하는 노래 '어머나'를 부르며 이 앞을 지나갔거든? 목소리도 뒷모습도 당신하고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당신인줄 알고 한참 쳐다봤다니까요? 하긴 집에서도 노래를 부르지 않는 당신이 길거리에서 그 음치 노래를 부를 일은 없지만…. 너무 똑같아서 도깨비에게 홀렸는지 알았다니까요?"

“아, 조금 전에 노래 부른 사람? 나였지. 도깨비한테 홀린 거 아니다. 내다.”

“그래요? 아니, 그게 당신이었단 말이에요? 그럼, 그 앞에 가던 여자는?”

“아~! 오늘 일이 잘 마무리 되서 기분이 좋았거덩? 그래서 노래를 불렀지. 처음에 그 여자가 내뒤에 오는지도 나는 몰랐어. 그런데 나를 쳐다보며 웃더니 내 앞으로 걸어가면서 노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듣는 것 같더라고, 내 느낌에…. 오늘따라 노랫말이 너무나 안 막히고 자꾸만 잘 생각났거덩... 진짜다. 그래서 저 아래 파출소 골목까지 가서 노래 끝내고 왔다.”

"그 여자는?"

"파출소에 볼일이 있는지 뛰어 들어 가더라."

"그래요? 노래는 아무나하나? 그 여자 당신 노래 듣기 싫어서 음치 잡아가라고 신고하러 들어간거 아닐까?"

"뭣이라? 음치?"

내 말에 서운했는지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각오라도 한 것처럼 그이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왠지 쓸쓸해 보였다. 나의 실수다. 어떻게든 그이의 서운한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여보! 지난번 모임 때 당신이 나 안고 노래할 때 감동했어요, 너무 행복했어…, 정말이야! 다음 모임 때는 둘이 함께 부르자고요."

그날에 듣던 노래도 음정 박자는 엉망이었지만 남편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고 진심이었다. 그이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흐흐 그렇게 하지 뭐! 우리가 같이 부르면 모두들 뒤로 나가 자빠질 끼다."

잘 불러서 자빠진다는 것인지 우리 음치화음에 놀라서 자빠진다는 것인지 남편의 말뜻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마음풀고 웃고 지나갔으니 항상 웃음이 넘치기를 소망한다.

2006년 1월 7일 토요일

엄마 아버지의 사랑



if,
훗날 저 세상에서 부모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햇빛 쨍쨍한 강가 모래사장이면 좋겠다. 아버지는 투망을 던지고 어머니는 양동이를 들고 나는 그곳에서 웃고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처럼 눈 내리는 밤은 어머니 떠난 생각에 마음이 메어온다. 
창문을 열고 얼굴이 붉어지도록 밖을 내다보았다. 

“아버지 난 눈이 내리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강아지 새끼처럼 그렇게도 눈 내리는 것이 좋니? 잠깐 마당에 나갔다와라.”


먼 옛날 추억속 아버지를 조르던 아이의 모습이 마음속에 그대로인데 아버지도 엄마도 모두 떠나고 나는 고아가되었다.
엄마 떠나신 동짓달 초나흘은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생신 날이다.
 본향으로 돌아가셨으니 생신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라도 자꾸만 연관 지어보고싶다.
 너무 다정했던 분들,
'아버지 생신에 엄마를 초대 하신것일까? 그리운 내 아버지! 그리운 내 어머니!

너무 외롭다.
나만 불행한 것 같은 느낌.
많은 사람들 중에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하라던 아버지 말씀을 되새김 해본다.
아버지 말씀대로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내 부모님처럼 긍정의 힘으로 잘살아낸 인생의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가길 소망한다.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2005년 12월 24일 토요일

어머니 소천



내 어머니는 그렇게 떠나셨다.
 
2005년의 하늘은 내게 모든것을 모두 빼앗아간다.
 
먼 미국의 하늘도 대한민국의 하늘도 내게는 없다.
 
난 아직 엄마를 보내드릴 수 없다.
 
마음만 따라 가고 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