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친정아버지 생신인데 일산 기독교공원묘지에 다녀오고 싶어요.“
”이 위험한 시기에 어딜 돌아다니려고 해?“
”그러니까 당신이 태워다 주면 되잖아요.“
”나 원 참! 돌아가신 분의 생신은 안 챙기는 거야. 추도식이라면 몰라도... 날씨도 춥고 전염병이 도는데 어디를 돌아다니겠다고...“
우리 남자는 신경질정도로 단호하게 돌아가신 분의 생신은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며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기념이 아니고 기억하겠다는데 왜 그래요? 잠간 태워다주면 될 것을... 칫!“
결국에는 공원묘지에 못가고 찔끔찔끔 몇 방울의 눈물을 훔치면서 혼자 마음을 달래고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1개월 남짓 지나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전염병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마스크 구매 줄서기가 한창인데 이 몸도 그 긴 줄 중간쯤에 서서 약국 문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옵니다.
”마스크 2장사는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고~오?“ 엄마 생신이라고 음식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잠간 산에만 갔다 오자는데 빨리빨리 준비하라니까 마스크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아까부터 줄서서 기다렸는데 약국 문을 아직 안 열었어요. 1시간은 더 걸릴 듯해요.“
”그냥 와! 비닐로 칭칭 싸매고 다니자고.“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어이상실입니다.
친정아버지 생신에는 돌아가신 분의 생신은 없는 거라고 불과45일전에 말한 사람이 당신 어머니 생신에는 선산에 가야한다고 시간 지체하지 말고 빨리 들어오라고 호통 이십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약국에 마스크가 오후에 들어온다는 약사님의 말씀에 마스크 구입을 포기하고 집으로 급히 달려가니 성격 급한 사람 차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더군요.
급히 신발을 바꾸어 신고 따라나섰지만 이 남자 얼굴은 이미 굳어있습니다.
하루 이틀 겪어온 성격도 아니고 뛰는 놈 위에 날라 차는 년 여기 있다.
도도한 목소리로 명령을 했습니다.
”이 기사 운전해!“
요즘에는 동네에도 사람이 없는데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주말인데도 차가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구간에서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아서 1등으로 달렸습니다.
박수도 쳐주면서 말해줍니다.
”당신 운전 참 잘한다. 우리가 1등으로 달린다. 야~홋!!“
심통 난 얼굴을 하고 있던 남자는 기분이 풀렸는지 빙긋이 웃더라고요.
”풍악도 울려 봐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준비했다는 듯 음악버튼을 꾸~욱 누릅니다.
어머니 어머니 우리어머니
내 몸과 내 동생 낳아주시고
사랑과 수고로 길러주시네.
언제 준비했는지 어머니라는 동요가 들립니다.
(에~효 아동 스럽기는...) 하고 생각했지만 조용히 3절까지 귀 기울이고 들었지요.
자기만 엄마가 그리운 것이 아닌데 내 아버지 생신은 모른척하더니 노래까지 준비하면서 엄마 생신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 섭섭하고 노여워 순간 울컥하기도 했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 돌아가시고 한풀 꺾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남편이 측은했습니다.
이어서 내가 소싯적 즐겨듣던 john Lannon Mother 제목이 스크린에 보입니다.
나를 위해서 준비 했답니다.
”아니 이 노래 어디서 구했어요?“
”어제 애들한테 당신 좋아하는 노래 usb에 넣어달라고 했지.“
나름대로 미안했었는지 정성껏 신경써준 것 같아 서운하고 섭섭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는가 싶었는데 또 한마디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뭐 이렇게 궥궥거리는 힘든 노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헐~~“
그런데... 라고 비위 거슬리는 말은 안했어도 좋으련만...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긁다가 웃다가 티격태격하면서 시부모님이 계신 선산에 다녀왔습니다.
산속이라서 사람들은 만나지 못했지만 자연의 귀함을 만나고 왔습니다. 낙엽 사이에서 파릇파릇 새싹들이 올라오고 나무들은 가지마다 잎들을 틔우고 있었어요. 산 아래 마을에 들어서니 목련꽃이 탐스럽습니다.
산들거리는 바람도, 적당히 따뜻한 햇살도 그곳은 코로나19의 걱정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산을 내려오다가 봄에는 노랑꽃 피는 쓴 나물이 몸에 좋다는 어머니 말씀이 생각나서 냉이와 민들레, 씀바귀, 고들빼기, 달래를 비닐봉투에 한가득 캐고 제비꽃도 몇 개 따왔지요.
집에 돌아와 제비꽃을 넣어 화전을 부치고 민들레, 씀바귀, 고들빼기 냉이 데쳐서 나물 무치고 달래 썰어 양념간장 만들고 피곤함도 잊고 늦은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식탁에 앉고 보니 고추장에 참기름 들기름 섞어 넣어 비빔밥 비벼주시던 친정아버지의 그리운 목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우리 예쁜이 많이 먹어라!
꼭꼭 씹어 먹어라
목 메이지 않게 쑥국 국물도 마셔라.
우리 예쁜이는 먹는데 복이 붙었어.”
매운 것을 참느라고 어깨를 들썩이며 받아먹던 아버지 사랑표 봄나물 비빔밥을 오늘은 옆지기를 위해 내가 비비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비비고 왼쪽으로 비비고~~돈 주고도 먹을 수 없는 봄 처녀의 비빔밥~~ ”
장난스럽게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비벼대지만 예쁜이라 불러주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랑 표현 메마른 바리톤의 음성이 들립니다.
"밥 더 넣어라~ 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