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남편 친구들의 부부동반 모임 날이었다.
40십대까지만 해도 모임에 나가면 부부끼리 나란히 앉아서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모임의 나누는 화제도 공통이었다. 남편들과는 달리 부인들은 나이가 들쭉날쭉하다. 젊은 아내들은 남편과 나란히 앉아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며 누군가 우스개 소리라도 하면 다같이 장난스럽게 웃곤 했다. 그러다 보니 부부다툼이라도 있은 후에 모임에 가는 날은 나란히 앉아 좋은 사이인 척 하다보면 돌아 올 때는 저절로 화해가 되어 있기도 했다.
그런데 거의 모두가 오십 줄에 서다보니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그런데 거의 모두가 오십 줄에 서다보니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일단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르면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모여 앉고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모여 앉는다. 오랜 세월이 흐르다보니 나이는 대충 숨어버리고 서로가 함께 늙어 가는 사이쯤으로 변했다. 나누는 이야기도 세월 따라 많이 변했다. 조금 나이가 연상인 부인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바지를 훌떡 다리 위까지 올리기도 하면서 퇴행성관절염이다. 디스크다. 다리는 점점 가늘어지고 먹는 것도 별로 없는데 허리만 굵어진다는 둥, 여기 저기 고장난 몸, 삐거덕거리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든다.
나이는 좀 연하지만 자녀들을 일찌감치 출가시킨 부인들은 외손녀가 더 예쁘다느니 친손자가 예쁘다느니, 아이 보는 할망구로 전락하는 것이 두려워서 평생교육원에 학생이 되었다느니 듣다보면 모두가 그 말이 그 말이다. 얼마 전 외손녀를 본 친구가 침이 마르도록 손자 자랑을 하는데 나는 아직 아이들이 출가전이라서 그런지 손자가 없어서인지 여자들 이야기는 지루하다. 유명 제과점에서 크리스마스에 먹을 호도 케이크와 70년 산 와인을 주문 받기에 1등으로 주문을 했다는 이야기, 올 겨울에는 따뜻한 나라에서 두 달 정도 보내고 봄이 되면 돌아올 예정이라는 젊은 부인들의 이야기 또한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 같아서 재미없다.
남자들의 이야기를 슬쩍 커닝해서 들어보니 정치이야기를 넘어 요즘 화제의 여인 이야기로 넘어간다. 여자들을 나름대로 연구를 해 보았다며 머리스타일이 어떻고 옷차림이 어떻고 여자의 매력은 엉뚱한데 에서 보인다느니 여자들 쪽을 슬쩍 돌아다보면서 비밀스럽게 소곤거리기도 하는가 하면 이혼하는 연예인의 이야기까지 재미있게 말하며 웃고 떠든다. 몇 개월 전 이혼하고 젊은 아내를 맞아 재혼한 친구는 여자에 관한 무슨 대단한 지식이라도 깨우친 것처럼 농담을 섞어가며 열변을 토한다. 친구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부러운 눈길을 주고받는 모습은 높은 지위에 있는 친구도 지식인도 별수가 없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잡담이 여자들 오십 견 이야기보다는 재미있었지만 남자들의 화제도 별로 흥미는 없다.
돌아오는 길 운전하는 남편의 다리를 만지면서 슬며시 물어보았다.
"재혼한 그 친구 너무 행복한가봐요. 목소리가 제일 크던데요...말도 많이 하고."
모임에서 웃고 떠들 때와는 사뭇 다르게 아무 말도 못 들은 척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문을 연다.
"열 가지 행복 중에 열 가지를 모두 잃고 한가지 새로 얻은 것인데 행복하다한들 아픔이 안 숨어 있겠나, 빈깡통 소리처럼 목소리만 큰 거다. 100년도 살아내지 못하는 세상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기에도 너무 짧은데...그 녀석의 행복은 대체 무엇인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
점점 우리 사회는 빈깡통의 울림이 커져만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