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6일 일요일

부고

신문에 난 부고를 보고 찾아간 스승님의 빈소 앞에 
국화꽃 한 송이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여비의 몽땅 이었다.
각지고 커다란 허연 봉투를 큰 궤짝 속에 집어넣고
바쁜 걸음 되짚어 떠나버리는 스승의 제자들은 그리도 많건 만은

세상의 눈물이 말라버렸나,
눈물의 씨앗이 말라버렸나!

그래도 누군가가 울고 있는 지
천둥 번개 비바람이 들러리하며 지나간다.
명복 하소서!

2007년 9월 2일 일요일

고등어가 먹고 싶어


8월 중순 삼계탕이나 함께 먹자며 친구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해가 지는, 조금은 이른 저녁에 친구에게서 금방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종합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입원을 하라고 하기에 준비도 없이 그냥 입원을 했다고 한다. 범상치 않은 직감이 들었지만 별일 아닐 것이라고 말을 해주며 필요한 것 말하라고 했더니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데 지루하고 잠이 너무 쏟아진다고 책을 갖다 달란다.
서점에 갔다. 워낙에 다독을 하는 친구라 좋은 생각, 행복한 동행, 작은 숲, 당신이 축복입니다. 샘터, 5권의 8월 호 월간지와 단행본 수필집 곰보빵 그리고 예쁘고 작은 빨강 성경책을 구입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면회를갔다. 친구는 조금 수척해 보였다. 검사 결과가 불안한지 내가 가지고 간 책을 침대에 주-욱 진열을 하며 독백하듯이 말한다.


"전부다 팔자다."

"큰 병 아닐 거야! 얘는 검사 받으면서 무슨 팔자 타령은? 성경 읽고 기도해!"

손가락으로 책에 써있는 8자를 가리키며 갑자기 친구가 빙긋이 웃는다. 월간지 다섯 권이 모두 8월 호, 나는 동문 서답을 한 것이다. 아침이 오고 검사 결과를 전해들은 후에도 친구의 그 웃음소리를 듣고싶었다.
그렇게 염려되는 밤이 지나고 또 다시 찾은 병실은 묻고 대답하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병실을 지키는 내게 미안했던지 남편이 금방 올 거라며 자꾸 집에 가라고 말한다. 어른이되어 만난 우리사이 친구사이가 되었지만 마음이 통하고 친 자매같은 사이가 되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이사를 한 후로는 매일 만나지 못해 늘 아쉬웠고 가끔 만나면 너무 좋아서 헤어지기 싫어 우리는 싱겁을 떨면서 장난 인듯 연극을 하면서 헤어지곤 했다.
내가 친구의  옷 끝자락을 꼭 잡고  내 곁으로 살짝 잡아당기며 장난끼 가득한 얼굴을 하고,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하면 매정한 표정으로 옷자락을 잡아채면서, "왜 이래...놓아라!  놓으라니까?"
우리가 헤어질 때면 장난치던 말들...
참고있던 눈물이 고여 시야가 흐릿해 진다.
우리는 힘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었다.

"가라."

"간다."

병실 침대 머리맡에 금식이라는 팻말을 걸어놓고 고등어 조림이 먹고 싶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나서 나는 저녁 반찬거리로 고등어 2마리를 샀다. 생선 담긴 검정 비닐 봉지를 디룽디룽 들고 발길이 멈춘 기도 실 입구에 서서 검정 비닐 봉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기분이 울적한 탓인지 작은 반찬거리도 내게 큰짐으로 느껴지는 날이다.
예의 상 건물 안에 비린내를 풍길 수 없어서 화단 나무에 잠시 걸어두고 들어갔는데 시간이 좀 지체되었나 보다. 집에 돌아오니 고등어가 땡볕아래서 찜질을 너무 오래 했는지 그 냄새를 도저히 용서 할 수가 없다.
'그래, 고등어가 먹고 싶다는 친구는 고통 중에 금식인데 몸에 좋다는 등 푸른 생선을 나만 먹으면 미안하다는 뜻이렷다?' 미련 두지 않고 버렸다.
밤이 깊었는데 어쩌라고 자꾸 생선구이에 하얀 밥이 생각난다.

"친구야, 힘내라. 퇴원하면 함께 먹자."

(월간 작은숲 12월호 )





2007년 8월 3일 금요일

주말과부


늦은 밤 남편과 함께 뉴스를 보는데 처음 보는 리포터가 나왔다.

"자기야! 못 보던 여자네? 그런데 저 리포터 얼굴이 너무 길어. 왠지 어딘가 2%부족해 보이는 것 같다. 그치?"

"내 보기엔 괜찮은데 뭣이, 예쁘구만..."

"머리는 단정치 못하게 너무 길어...그 치?"

"머리 예쁜데 뭣이..."

"당신취향 참 독특하네, 예쁘긴 뭐가 예뻐, 광대뼈도 나오고 어딘지 모르게 얼굴이 뽀족해 보이잖아! 저 여자 턱 깎은 거 아닐까?"

"그럼, 늬도 턱 깎았드나? 똑 같이 생겼구먼 당신하고..."

"얼라? 어디가 똑 같은데?"

"탁 한눈에 봐도 당신 얼굴과 닮았잖아. 아래만 다르지."

" 아래? 아래 어디 가 다른데요? 턱 말이야?"

"얼굴 말고 몸매 말이다. 저 여자는 s라인이고 당신은 i라인이다 그런 말이다."

"그래요. 나 i라인 통나무 예요!"

"i라인이고 통나무고 당신은 어째서 꽃들만 보면 뽄때없는 샘을 부리노? 아직 나팔꽃 필시간 멀었다. 나팔 그만 불고 퍼뜩 자라!"

잠시 삐쳐있는 사이에 새벽같이 혼자 낚시 떠나버렸으니 나만 또 심심하게 생겼다.
혼자 이뿐 척하다가 본전도 못 찾고 또 주말과부 신세가 되었다.
입 다물고 있었으면 따라갈 수 있었는데...
아니다, 낚시터 땡볕에 앉아 있으려면 고생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한다.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대청소나 해 볼까나?



2007년 7월 22일 일요일

만병 통치약


낮에 일하다 허리를 삐걱했다는 그이가 걱정이 되었지만 괜찮을 거라고 병원은 절대로 안가겠다고 버티더니 밤이 되니 꼼짝도 못했다. 집 앞이 한의원이니 문 닫기 전에 가자고 했더니 침은 무서워서 못 맞겠다고 버틴다. 뿌리고 바르고 붙이고 파스만 머리맡에 진열을 해놓고 번갈아 가며 붙들고 있으니 이제는 파스 냄새 때문에 머리까지 마비되는 것 같다. 머리 아파서 안되겠다고 파스를 모두 치우자고 말하니 "잠깐!"하더니 피할 겨를도 없이 내 이마에 물파스를 쓱~하고 문지른다.
순간 화끈하더니 눈을 뜰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슬쩍 밀쳤는데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그이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은 구급차 부르고 들것에 실려 응급실로 갔다. 옷을 들추니 궁둥이에서 허리를 거쳐 등까지 덕지덕지 붙어있는 파스가 보인다.

"도대체 몇 장이야. 많이도 붙이셨네...."

파스를 떼어 내는 간호사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지 계면쩍게 웃는 나를 흘깃 쳐다보며 덧니를 살짝 드러내고 약간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등에 털이 많으셔서 좀 따가울 텐데..."

간단한 절차를 밟고 결국은 입원했다.
삐걱했을 때 시간지체하지 말고 바로 병원에 왔으면 고생 덜했을 거라고 간호사의 말이다.

"파스만 믿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뭉갰네."

"파스가 무슨 만병 통치약이랍니까?"

꼼짝달싹도 못하고 누워있는 남편과 옥신각신 하며 시중드는 나의 모습이 천사 같다고 옆에 입원한 환자의 보호자가 말한다. 칭찬을 받으니 쑥스럽기도 하고 더 잘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흘러가는데 아주머니가 또 한마디하신다.

"아픈 사람이야 환자니까 그렇다 치고 간호하는 사람이 더 힘들고 아프다고요. 저 다리 부운 것 좀 봐! 좀 앉아요,"

내 다리가 무 우 다리인 것을 이미 알고있는 남편이 눈동자를 옆으로 내려 깔며 빙그레 웃는다. 밝히지 말라는 뜻으로 귓전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내 다리는 너무 두꺼워, 대포 굴뚝같애, 그치!"

"아~하하하!!! 아고고고고.... 늬 내 죽이려고 작정했나~~"

환자 웃기지 말라고 간호사에게 한마디 들었다.

mbc 여성시대 2부 시그널 맨트 10월5일 방송

2007년 7월 18일 수요일

여름날의 기억

다섯 시누이 부부와 조카님들은 휴가 쓰는 날짜를 서로 맞추어 집안에 대장인 남편에게 통보를 한다. 그렇게 해마다 집안의 대사처럼 여름 휴가를 즐기는 시집의 풍경은 우리 가족들뿐만이 아니고 동네사람들의 부러움이기도 하다. 아들이 귀한 집안이라 집안에는 늘 딸들의 왕래가 많고 어머니는 사위를 아들로 생각하신다. 남편도 매제들과의 모임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데 올해는 나의 불참으로 경우가 달라졌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인솔해야하는 수련회 일정과 가족들의 휴가가 겹쳐졌기에 사흘 후에 합류하여 하루라도 함께 하겠다는 내 말에 "일없다." 퉁명스레 한마디 던지고 좋지 않은 내색으로 헤어진지 사흘째 서로가 감감 무소식이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별다른 변동사항이 없는 한 수해가 심했던 강원도 쪽으로 대이동을 했을 것이라는 것뿐이다. 내가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문자를 보냈을 때는 불러달라는 뜻이었는데 몇 번 시도를 해 보건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초조하고 외톨이가 된 내 모습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역시 자존심에 가느다란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휴가가 끝난 후 후유증 없이 지내려면 자존심 따위는 모두 버리고 또다시 내 존재를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일단은 백기를 들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보더라도 내 마음이 이랬었다는 것을 알아 달라는 뜻으로 약간의 아부 성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전화통화를 하게되면 목소리에 너무 속내가 적나라하게 보여질 것 같아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장세희 시인의 시를 메일에 남기기로 했다.


*그거 알아요?
나 지금 아주 많이 병이 깊어져 있다는 거
약이 없다네요
그 어느 약국에도 병원에도.

병명은 후천성 그리움 증후군이고요
치료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
당신뿐이라는데
혹 알아요 당신
그거 알아요?

나 어제도 오늘도 내내 이 불치병에
신음하고 있다는 거,
신열에 들뜬 이마로 눈물지으며
당신 하염없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거.

사랑하는 거 알아요?
내가 아직도 당신 사랑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그거 알아요?
나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만을
숙명처럼 사랑할 거라는 거
혹시 알아요? *


깜짝 놀라고 말았다. 메일 전송한지 5분도 안되었는데 전화가 온 것이다. 동생 집에 도착하여 메일확인을 해보니 내가 아프다는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는 것이다.

"뭔 헛소리고? 아프나..."

"나 많이 아픕니다. 후천성 그리움 증후군이라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병이 걸렸다고요."

"외로운 전염병? 그런데 왜, 뭣을 잘못 먹었기에 하필 전염병이 걸렸느냐 말이다. 어찌해야한단 말이고. 참, 곤란한 사건이네?"

"사랑해요. 미안해요. 그리고..."

"또...또, 조용해라. 늬 지금 개그하나?" 사랑하는 것은 용서하는데 머리 시끄럽게 뭣이, 그런 병도 있나? 금방 죽을 사람처럼 신음소리 내지 마라. 아무 곳에도 소문 내지 말고, 알았나?"

"병은 자랑해야 된다면서요. 벌써, 진작에 소문 다 냈어요."

"시끄럽다. 조용해라! 전염병이라며 소문 냈드나! 너는, 용서가 안 된다 카니…."

"사랑하는 것이 용서받을 일인가요? 치료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 당신뿐이라는데…."

웃음 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전화를 받을 때와 다르게 점점 답답한 말이 오가고 조금 더 지나면 다툼이 될 것 같은 분위기다. 메일로 보낸 시를 대충 읽고는 내 상황으로 착각한 그이는 몹시 심각했다.

"뭐 그리 희한한 병도 다 있어, 후천성이 증후군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이 재수 없이, 왜, 걸려 가지고..."

수련회를 하루 다녀왔으면 끝내야지 왜 또 오지랖넓게 갔느냐는 그이의 말이 서운한 나머지 가슴속 깊숙한 곳에 커다란 구멍을 뻥하고 뚫어 놓는것 같다.

"혹시 지금 당신귀에 들리지 않나요? 내 고막 터지는 소리?"

"내는 안 들린다. 늬 단단히 중병에 걸렸구나! 고막도 터졌나? 내일 전문 병원 알아봐야겠다. 정신도 몽롱하나? 전염병이면 아마도…, 소록도로 가야하나? 늬 갔던 병원에서는 뭐라 카드나! 격리 수용해야 한다 하드나? 내 지금 간다."

이말 저말 농담도 이 정도라면 너무 곤란한 거 아닌가?
교양 있는 척 하려니 너무 힘들고 약이 올라 막가파 버전으로 소리를 질렀다.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당신이야말로 코미디언이다. 들어만 와봐라! 내 손에 죽을 줄 알라고…! 얼른 빨리 소록도에 연락해놔요."

농담 삼아 할망구라고 내게 말 할 때면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나는 말했다. 젊게 살려고 이리도 부단한 노력을 하건만 쉰내 나는 할망구라고 말하던 그이는 영락없는 할방구 짓을 하고있으니 나이는 결코 숫자일 수만은 없는가보다.
그러나, 동문서답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아직도 나는 이런 상상을 한다.

한번쯤은 단 둘이 여름 바닷가에서 얼굴을 반쯤 가리는 촌스러운 검정 색 선글라스를 쓰고 두꺼비 등 짝 같은 당신손안에 내 작은 손을 꼭 잡힌 채 모래사장을 같이 걷고싶다.
마른 가을 바람이 가슴을 훑어 버릴 것 같은 날에는 길다란 머플러가 등뒤로 바람에 날리는 영화속 주인공처럼 발걸음 짝 맞추어 낙엽을 함께 밟고 싶다.
눈 내리는 겨울날에는 당신의 팔짱을 낀 채 과천청계 산 빙어 회 포장마차에도 가보고 싶었다. 가는 길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끼고있던 팔짱을 꼭 잡은 채 죽기 살기로 매달리어 함께 넘어져 눈 위를 나뒹구는 촌극도 한번쯤 만들어서라도 경험하고 싶고, 뻘건 초고추장에 미나리 줄거리와 함께 버무려진 살아서 펄떡거리는 빙어를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쩝쩝 소리내어 볼썽 사납게 환장한 듯 먹어볼까? 아니면 '징그러워서 어떻게…해...!"하며 내숭도 한번쯤 떨어 보고, 설령 내 주량이 술항아리일지라도 더 심한 내숭을 떨며 '못 먹는 술이지만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건배! 건배!! 큰소리로 소리치며 술잔도 부딪쳐보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는 술 취한 핑계를 대면서 매미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매달려 걸으면서 `여보 나 당신 너무 많이 사랑하나봐! 콧소리 섞인 응석도 한번쯤 부려보고 싶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불타는 밤의 정사로 멋진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 그날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나의 상상을 엿보기라도 한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들어오는 그이 하는 말,

"잘 하고 왔나?"

나 역시 의미를 알아채지 못할 웃음을 섞어 말을 던졌다.

"당신도 나처럼 좋은 마음으로 come back home 하기를 기도했어."

"날씨가 덮다."

"비 엄청 왔지요?" 서로가 계속 동문서답을 했다.

올해 여름, 가족 휴가는 못 갔지만 받은 은혜 감사하는 행복한 여름으로 기억 될 것이다.
여름이 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