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8일 일요일

클럽에서 생긴일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을 한다. 실제로 내 자신을 생각해보더라도 조그마한 일에 노여워하고 쉽게 토라지는 등 어린아이같이 행동하는 모습에 나 스스로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출근하는 남편을 뒤따라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나서면서 단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는 죄송스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함이 분명하다. 옳지 않은 행동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지만 억지로 입을 있는 대로 빼물고 말 한마디 못한 채 고개만 한번 끄덕이는 것으로 출근길을 바라본다.

일과 연결되어 차마 거부하지 못하여서 라는 핑계를 대고 빗속을 가르고 나이트클럽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한 두 번 가보았던 곳을 30여 년만에 간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깊이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젊은이들이나 가는 곳이려니 하고 알고 있었다. 그런 곳에 갈 기회도 없었지만 가고싶다는 생각도 해 본적이 없는 그곳을 얼떨결에 중년의 여자 다섯 명안에 끼어서 겁 없이 그곳에 들어갔다. 

절대로 나이트라는 나라에는 경제위기로 힘든 사람들은 없다. 밖에 비가 오든 천둥이치든 집채가 떠나가든 알 턱이 없다. 먹고 마시고 흔들고 모두가 행복한 웃음만이 있는 나라다. 마음은 금방 20대로 돌아가 있었고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교만하게도 나 자신 스스로 젊게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지천 명을 살아낸 내가 어느새 30대로 전락하여 부킹이라 일컫는 교제의 시간도 주어지고 어느덧 30대 젊은 남자들과 반은 반말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주위 사람들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각 개인의 감추어진 끼나 유흥 적인 면이 이런 경우가 닥치면 가감 없이 드러나게 된다. 마치 억눌려 있던 용수철이 퉁겨 올라오듯이 감추어져 있던 인격이 불쑥 드러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나름대로 고상한 척 하려고 했었는데 순식간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었다. 

"얼른, 일어나! 앞으로 나가. 흔들어...춤을 춰!'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그 무언가가 나를 조정하는 것 같았다. 일행이 손을 잡아 끌었다.

:어서 일어나요. 즐겁게 놀자구~"

"에잇 모르겠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춤을 출 거야. 하나님 오늘만 눈감으세요." 

이미 내 마음은 내가 아니었다. 
한때는 사회나 가정에서 큰일들을 성취해내기도 하고 존경받던 날이 내게도 있었건만 저들 앞에 나이 값도 못하고 성숙치 못한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부비부비 춤까지 추며 환락의 시간을 즐겼다. 대체 왜 그랬을까? 즐거움은 잠시, 시간이 흐르다보니 내 정신이 차츰 돌아왔다. 동행자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며 겁이 덜컥 났다. 나를 돌아다보았다. 엎어졌으면 뒤집히지나 말든지 시간이 흐를수록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나를 채근했다. 

과감한 행동들 앞에 간담이 철렁 내려앉는다. 순간 무서운 세상의 뉴스거리도 생각나고 이성 앞에 두려움도 앞서고 더 이상 시간이 흐르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분위기로 흘러갔다. 숨기고 싶은 순간들, 감추고싶은 몇 시간의 행적은 남편에게sos를 청함으로 이실직고되었고 내가 배신한 것인지 일행들이 배신한 것인지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돌아왔다. 남편의 뒤를 따라 걷는 내 꼬락서니는 마치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저승사자를 따라가는 망자의 모양새다. 

"에구! 신경질나라."

"늬 똥 밟았나... 입 다물어라!"

어느 누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줏대 없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사실자체에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내면의 성숙이 오늘 잠시 멈추었어. 
아니, 후퇴했어.
아냐! 이게 내 모습이야. 
한번쯤 망가지고 싶던 날이 나에게도 있었어..... 
저 양반 그늘 아래서 한번쯤 이렇게 퉁겨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좀더 젊었을 때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잘 한 거야! 혁명, 대 혁명이지. 흐흐흐!!) 
여기까지 생각할 즈음 깜짝 놀랬다. 그이는 내 생각까지 꿰뚫고있었다.

"그래, 고따구로 해 보니 소원 성취 됐나! 젊도 늙도 않은 것들이 뒤엉켜 꾸겨져서 놀아보니 만족 됐나? 노는 행우지 들이 껍데기는 멀쩡해도 뱃속 깊숙이 들여다보면 쌘 노랗게 썩은 기라... 실패한 사람들이 맞지 싶다.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그리 소원 이었나? 다시는 활동 마라. 이제는 밖에 얼씬도 말고 손들고 무릎꿇고 반성해라!"

어떤 말을 해도 아무 대답도 못했다. 
그 뿐 인가. 일행들에게는 남편의 출현이 빅 뉴스가 되어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고리타분하게 이조 백자, 고려 청자시대 여성도 아니고 남편에게 안겨 가다니 어린아이냐는 자유부인 들의 비아냥거림 전화가 빗발쳤다. 그렇지만 개인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을 내 잣대에 맞지 않는다고 뭐라 나무랄 수는 없지 않은가. 나 역시 남의 눈에 티만 보일 뿐, 내 눈의 들보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을....

"분위기가 무서워서..."궁색한 변명을 했다. 배신자가 감수해야하는 몫이다. 

나 나름대로 대인 관계의 균형을 똑바로 잡고 두루두루 완숙에 도전하는 인격을 갖추려고 했었는데 순간의 쾌락 앞에서 그 균형이 삐거덕거리고 말았다니 생각만으로도 부끄럽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나도 인간이기에 솔직히 잠깐동안 미쳐서 춤추던 순간만은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더니 철딱서니없는 행동을 하고야 말았으니 반성하는 의미로 될수 있으면 조용히 있으려고 평소에 안보던 드라마를 틀어놓고 보는데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말없는 분위기를 깨우려고 애견을 안으면서 "시월아! 사랑해" 했더니 "끄~응" 한다.
남편에게 말했다.

"시월 이가 사랑한다는 말을 알아듣고 끙하고 대답했어." 아무 대꾸가 없다.

"시월 이는 내가 안아주면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해도 저를 사랑하는 거 다 알아차리고 끄~응 하고 어리광한다니까...?" 또 아무 대꾸가 없다.

"요즘은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사랑한다는 말을 참 많이도 하든데 평생에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못 들어본 여자는 세상에 나 밖에 없을 거야!" 

말을 해 놓고 보니 정말 그렇다. 
그이도 이제서야 알아차렸는지 말한 사람 민망하게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하는 말,

"당신이 날 사랑한다며..." 너무 웃기는 대답이다. 

"뭬 라고요?"

"늬도 안아주면 시월이 같이 끄~응 하드만, 말 안 해도 다 알아듣는 거 아니가.?" 

"내가 강아지예요?" 반성하는 기간임을 망각한채 날세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강쥐 쌔끼가 왜 생트집이고~ 나이트 클럽 한번 더 가고 싶나?" (버럭!)

"깨갱~ 깨갱~" 
에~구!! 조용히 입다물고 있을 것을 잠자는 사자 코털 건드린 영락없는 강아지 신세 되었다. 


개새끼 때문에

견이 똥을 쌌다고 아침에 큰아이가 호들갑스럽다.
세상에 태어나서 개가 똥 싸 놓은 거 처음 본 것처럼 오늘따라 경망스럽게 큰소리로 말한다.

"엄마 와서봐요! 느낌표야."

"어떤 모양이라고? 느낌표?"하면서 딸아이 말이 살그머니 궁금해지기에 토스트를 굽다 말고 베란다로 가보니 정말 느낌표다. 크게 하나 쬐끔 아래에 하나 똑 떨어뜨린 것이 영락없이 붓글씨로 써 놓은 것 같은 느낌표다.

"후후 예쁜 것…, 똥도 예쁘게도 쌌네."

아침식탁에 둘러앉아 딸과 다시 느낌표이야기를 무심코 하는데, 남편 벌떡 일어나며 밥도 아닌 빵 주면서 아침부터 맛 떨어지는 소리만 하고있다고 화를 낸다. 너무 무안해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아침을 안 먹고 일어나더니 출근 준비를 하며 혼자 궁시렁 궁시렁,

"어유, 난 개보다 못한 인생이야…, 내는 방귀만 껴도 환풍기 틀고 창문 열고 두드려 패기까지 하면서 개새끼는 똥도 예쁘다고?" 그냥 나간다.

아무 것도 안 붙어있는 저고리 뒤를 털어 내는 시늉을 하며 지하 주차장까지 따라가 콧소리도 약간 섞어 말했다.

"나 원 참...! 삐쳤어요? 어쩌라고 매일 그렇게 강아지한테 스트레스를 받고 그랍니까? 당신이 아무리 그래도 예쁜데 그럼 어쩌라고요. 뭐라 하지 말아요. 제발.... 알았지?"

"알았으니 들어가라. 코미디 그만하고,"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말문을 딱 자르면서 또 화를 낸다.

"늬 닭 대가리가? 말 할 때 마다... 그 드라마 대사 다시 한번 하면 TV 뚜껑 열고 넣뿐다고 내가 말 안했드나?"

히히 하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뛰어 들어오다가 주차장 자동차 바퀴 걸림 막에 걸려 넘어져 정갱이 허물이 벌겋게 벗겨졌다. 저만치 사라지는 자동차 뒤꽁무니를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애견에게 인지 남편에게 인지 모를 화풀이 욕을 했다.

"으이구! 아침부터 개새끼 때문에…."

정갱이만 벗겨진 줄 알았더니 손목도 시큰거린다.
개새끼 때문에...

(고운말을 사용하자.)


2007년 7월 5일 목요일

자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무어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자살'이라고 말한다.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목숨을 제 정신으로 끊는 다는 것은 정말로 모질고 힘든 것이다.
조사 통계로 보더라도 실제로 자살자의 90%가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고 정신병 환자는 보통 사람보다 10배나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특히 혼자된 중년 남자로 만성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이 겹치면 자살의 위험도가 무척 높아진다고 한다. 자살은 인간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독특한 자해행위로 다른 동물계에서 볼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종교의 영향이 거세던 중세기엔 자살을 하면 죽은 뒤에도 죄인 취급을 받았다. 아직도 보수성향이 짙은 미국은 자살 행위를 일종의 사회 병으로 규정하여 정신과 의사의 정신감정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현실적이지 못한 행동이 복잡한 여러 가지 감정에 섞여서 계획적이기보다는 대부분 순간적인 충동으로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다.

며칠 전 아침 입고있던 면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눈이 떠졌다.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은데 총소리도 울린 것 같고 옷자락을 찢어 둥근 끈을 만들어 들고있는 남편친구의 모습이 희미하게 기억났다. 이불 속에서 짧은 기도를 하고 일어났지만 꿈자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저녁나절 아이들이 혈압에 좋은 약주라며 홍보하기에 사왔다는 오가피주를 남편과 한잔씩 마시고 붉어진 얼굴을 마사지 해주면서 새벽 꿈 생각이 나기에 슬쩍 물어보았다.

"차 사장은 어때요? 요 근래 다녀왔어요?"

"열흘전에 만났는데 며칠 내로 한번 가봐야지."

검고 깡마른 얼굴이 내 꿈에 보인지 닷새만인 오늘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다.
그분은 형제간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 유산 문제로 형제간에 법정싸움을 했고 다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들과 화해 할 수 없었던 것을 법정에서 가려지길 그래서 억울함이 풀어지길 원했던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형제간에 배신감과 본인의 자존심을 찾을 수 있으리라 고대하고 기대하고 오랜 기간을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법은 그를 외면했고 그후에 결과는 비극으로 끝을 마쳤다. 사람의 죄 성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악해 질 수 있는 것일까. 대가족이 모이는 특별한 설날에 차례를 지내려고 참석하였다가 사건이 벌어졌다. 부모님이 남겨준 유산은 그들을 얽어매었었고 소중했던 피를 피로 물들이는 참극을 만들었고 기쁨은 슬픔이 되고 사랑은 미움이 되고 형제는 원수가 되고 사망은 또 다른 사망을 낳아 사랑하는 가족도 모두 버리고 그렇게 떠났다.

 형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동생도 목매어 자살한 형님도 세상 살아가는 동안 자유하지 못한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몇 잔의 술이 오고가자 가슴에 품어둔 응어리들이 터져 나와 한탄의 소리를 하더라는 그분은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편이 되어준 친구에게 이렇다할 어떤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그분도 알콜과 많이 친해있던 분이고 죄인 되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과 떨어져 격리되어 있었으니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 이 아닌가싶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는 남겨놓고 못내 떠나기가 아쉬운지 비가 많이 쏟아진다. 남겨진 가족들의 아픔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욕심은 사망을 낳고 죄는 죄를 낳고..."
잊고싶은 단어들이다.
친구의 사정을 모두 알고있는 내 남자가 마음 아파하니 나도 아프다.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고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고 기쁨은 함께 하면 두 배, 세 배 좋은 말을 찾아서 주문을 외우듯이 혼자서 중얼거려본다.
"차 사장님 많이 안타깝습니다.

2007년 7월 3일 화요일

입에는 말이적고



얼마 전 한 달에 한번 모이는 친목 모임이 있었다.
아끼는 후배가 가정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어 지난달에 이어 이번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남편과의 별거로 오랫동안 고민하고 갈등하고 마음 아파하는 그녀였다. 그러니 당연히 그녀는 수다 잔치의 재물이 되었다. 걱정으로 시작된 화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에 대한 나쁜 평가로 바뀌었다.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내용에 추정이 보태지고, 나쁜 의미의 말들이 덧붙여지기도 하더니 끝내는 험담을 즐기는 분위기로 막을 내렸다. 그 동안 몰랐던 많은 이야기를 들으니 놀랍기도 하고 그녀에게 크게 실망하게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되새기며 정곡을 찌르는 아픈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별거 동기가 너 때문이라면서? 너, 마귀가 씌었구나. 늬 남편과 차라리 이혼해라. 너 같은 인간을 나는 경멸한다. 여우 짓거리 그만 하고 정신 챙겨라."

너무 많은 자존심을 건드렸다. 더 심한 말도 했다.
그녀는 나에게라도 위로 받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바른말을 해 준다해도 듣는 입장에서는 싫은 것은 당연지사고 염려도 조언도 지나치면 서운한 것이다. 엎어 졌으면 뒤집어지지나 말든지. 그들과 함께 흉보고 돌아서서 불과 한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녀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 세워 모진 말을 뱉어 버렸다. 내뱉어 허물을 만들기보다 침묵하는 편이 나았을 것을...

"언니, 죄송해요."

그녀가 왜 나에게 죄송하다고 해야하는 것인지, 내가 왜 그녀에게 사과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이라면 침묵하고 있을 것을, 괜스레 나서서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야 말았다. 친하면 친할수록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조심해야 할 것이 말이건만,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보니 할 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후회가 남았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고 아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는데 내말 속에는 사랑이 없었다.

"마귀가 씌었구나!"

내가 내뱉은 말을 생각하고 또 하고 내 안에 사랑이 없었음을 후회했다. 그녀에게 해댄 폭언은 내게 몇 갑절 큰 아픔이 되어 돌아왔다.

`입안에는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성자도 될 수 있다.`

법정스님의 오두막편지 표지에 쓰여있는 글을 문득 다시 곱씹어본다.
성자는 고사하고 금세 후회할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앞으로 말을 조심해야 할 일이다.

2007년 샘터 7월호 게재


2007년 7월 2일 월요일

엄마는 왜 나만 혼내?



작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후배는 유난히 빵을 좋아한다. 거의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사무실 건너편에 있는 제과점으로 향한다. 그날도 그녀는  열댓 발짝 정도만 올라가면 건널목이 있는데도 귀찮다며 차가 띄엄띄엄 다니는 틈을 타서 무단횡단을 한다. 빵을 사들고 돌아올 때도 빵 봉지를 한들한들 흔들면서 건너온다.
위험하다며 건널목으로 신호 지켜서 건너라고 몇 번이나 충고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대답한다. 

"걱정 마세요. 내가 뭐 어린앤가요? 차도 별로 안다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를 마중 나가는 길 이엇다. 길 건너편에서 아이가 엄마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면서 뛰어오는 것 이었다. 깜짝놀라 소리를 지르는  순간 아이 앞에 승용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급 정거를했다. 소스라치게놀란 그녀는 황급히 달려가 아이를 부둥켜안고  다친 곳이 없나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는 운전자에게 큰 소리로퍼붓는다.

"사람이 지나가는데 속도를 좀 줄여야지요."

"죄송합니다. 아이가 갑자기 뛰어들어서요. 저기 위가  건널목인데..."

운전자도 많이 놀랐는지 창백한 얼굴로 미안하다 말 하면서도 황당한 모양이다.
그녀는 딸아이 등을 힘껏 후려치면서 호통을 쳤다.

"엄마가 뭐라고 했어! 차 조심하라고 했잖아. 신호등을 보고 건너야지,  여기가 건널목이야?"

아이는 엄마가 때린 등이 아팠던지 팔을 등뒤로 돌려 만지며  울면서 대꾸했다.

"엄마도 신호등 안보고 건너면서 왜 나만 혼내!"

맞는 말이다. 왜 아이만 혼내느냐 말이다. 그 모습을 지켜 보면서 그녀에게도 아이 에게도 무슨말인가 해주어야 할 것 같았지만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옛말에 자식을 알려면 부모를 보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와 엄마는 가까이에서 늘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진정한 가르침은 본보기를 통해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작은 숲
2007년7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