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동아일보 주최 글짓기에서 초등학교5학년 때 금상을 받았을 때다.
신문에 실린 내 글 아래에 윤 석중 선생님의 심사평 중에"하고싶은 말을 꾸미지 않고 아름답고 솔직하게 표현한 글이다."라고 칭찬하셨다.
상을 받고 온 토요일이 지나고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월요조회를 할 때 교장선생님의 칭찬은 나를 학교의 스타로 만들었다. 교실에 들어가니 또 담임 선생님의 칭찬으로 이어졌고 어린 이때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칭찬에는 고래도 춤춘다는 말처럼 그야말로 춤추듯 신나는 유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솔직히 란 것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통하지를 않았다.
내게 은 귀 게가 생긴 후부터 우리 가족의 귀는 내가 접수했다. 특히 막내 오빠는 하루에 한번은 무조건 내 무릎을 끌어다 베고 눕는다. 귀지가 없으면 그냥 간질여 라도 주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미국에 다녀온 오빠에게 미제 손톱 미용 세트를 선물 받고 난 후에는 취미는 한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옛날에는 손톱깎이가 없어서 가위나 칼로 손톱발톱을 깎았었지만 미제 손톱깎이 덕분에 그렇게 나의 취미는 두 가지로 고정되었다. 귀 파주고 용돈 받고 손톱 깎아 주고 용돈을 받았다. 안주고 넘어가면 치부책에 외상이라고 적어 놓는다. 약속을 안 지키면 울고 땡 깡을 핀다. 큰오빠와 20년 18년 15년 12년 막내 오빠와는 10년 터울이다 보니 자식 같은 동생에게 안 주고는 못 견디었다.
이렇게 자라서 중학생이 되었다. 학년초에 환경 조사 서를 써야했다. 취미 특기 쓰는 곳에 취미 귀 파주기, 손톱 깎아주기 특기는 울고 보채기라고 썼다가 선생님께 장난 쳤다고 야단을 맞았던 것이다. 손바닥 세대 맞고 억울해서 책가방도 그대로 두고 울면서 집에 갔다. 한쪽 눈에 망막이 늘어나 수술을 할 지경까지 울었었다. 엄마 말씀하시길 귀엽게도 안 키웠는데 어리광을 핀다는 말 한 마디 했다가 아버지에게 쫓겨 날 뻔 하셨다고 한다. 그러니 학교는 물론 발칵 했다. 눈이 찢어지도록 우는 아이가 취미가 뭐고 특기가 뭔지 장난으로 꾸며댈 수 있는 머리가 아니라는 지론을 피셨다. 좋게 말하면 순진한 것이고 심하게 말하면 딸이 좀 부족하다는 뜻이었을까? 선생님은 나의 눈 높이를 맞춰주지 못했던 것을 늘 미안하게 생각하셨고 내가 3학년 올라가는 해에 전근을 가셨다. 그리고 우리 큰아이가 중학교 입학했을 때 딸아이 학교에서 목사님이 되신 선생님을 30년만에 다시 만났다.
딸아이에게 선생님께서 취미를 물어보니 햄 통신이라고 말했고 특기는 첼로라고 똑 부러지게 대답하였다. 옛날에 비하면 대학생 수준의 대답이라고 말씀하시던 선생님, 지금은 하나님 나라에서 평안하시리라 믿으며 제 작년 작고하신 선생님을 잊고 살다가 오늘에서야 잠시 추억해 보았다.
지금은 오빠가 아닌 남편에게 내세우는 귀 청소 손톱발톱 정리를 하다보니 취미이자 특기 거기에 또 한가지 사랑 받는 비결로 써먹고 있다.
남편 하는 말
"당신은 귀 간 지르는 것 말고 잘하는 거 아무 것도 없다. 그 기술 길이길이 보존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