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10일 일요일

어색한 진리

건널목 앞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다.
언제인가 정지선 지키기 단속하는 광경을 보면서 정지선에 자동차 바퀴가 조금 닿으니 후진하는 운전자를 본 적이 있다.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의지가 대단해 보였다.
단속 중이던 교통경찰이 곁에서 보고 빙긋이 웃었다.
그곳에서 그 광경을 보던 많은 사람도 웃었다.
벌금 딱지의 위력이었다.
오랜 날이 지나고 다른 날 삼거리 같은 건널목 앞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다.
움찔움찔 움직이며 앞으로 온 차들은 건널목을 모두 점령했다.
그리곤 노랑 불도 들어오기 전에 붕~ 하고 달린다.
건널목 앞에 서 있던 여러 사람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바쁘면 어제 나오지 왜 이제 나왔어!"

그 말에 여러 사람이 웃었다.
그 말이 맞는 웃음인지 쓴웃음인지 그냥 지나치는 웃음인지 나는 모른다.
오늘 낮에 나와 청년 한 명이 빨강 신호등을 주시하며 건널목 앞에 서 있었다.
잠시 후 뾰족구두 소리를 똑똑 거리며 멋쟁이 여인이 아무 거침도 없이 느긋하게 길을 건넌다.
어디에서부터 뛰어왔는지 그 뒤로 고등학생 두 명도 뛰어서 건너갔다.
내 옆에 청년이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그도 건너간다.
혼자 서있는 내 모습이 민망하고 머쓱했다.
나의 마음속에서 '건너! 건너!' 하는 큰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잠깐 사이 내 모습이 어찌나 바보 된 기분이 들던지....
참되게 살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옳은 비유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작가 맥스 루케이도의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어색하게 하리라”


2005년 6월 30일 목요일

호상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정열이라는 까만 강아지가 똥차에 치어 죽었다. 
울고있는 나를 아버지 친구이신 새말(신사동) 아저씨가 보셨다. 딸이 없는 아저씨는 나를 보기만 하면 아버지에게 양딸로 달라고 데려가겠다고 하시며 친딸처럼 예뻐해 주셨다. 난 혹시 아저씨 집에 가게 될까봐 깍쟁이 짓을 하며 강력하게 싫다고 했다.
그런데 울고있는 나에게 귀가 번쩍 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아저씨 집에 개가 새끼를 세 마리 낳았는데 젖이 떨어지면 예쁜 강아지를 줄 테니 울지 말라고 손가락까지 걸어 약속해 주셨다. 울음을 뚝 그치니 엄마는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으실 뿐이었다. 아저씨가 가신 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아저씨네 강아지 새끼 낳은 거 맞아?"

"그래, 암놈은 없고 수놈만 세 마리 낳았다고 새끼도 못 낳는 숫놈들 얼른 길러서 잡아먹는다고 하시더라. 암놈이 아니라서 아마 주실 거다."

며칠 후 하얀 강아지가 우리 집에 왔다. 이름은 아저씨가 부르는 대로 백구라고 불렀다. 배가 고플까봐 엄마 몰래 내 밥을 덜어서 먹이고 밤이면 몰래 방으로 안고 와서 함께 자기도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엄마아버지는 질색을 하셨지만 가끔 목욕도 시켜주셨다.
나는 정열이의 죽음을 잊어버렸다.
백구와 행복하게 3개월쯤 지났다.
숙제하는 사이에 백구가 사라졌다. 아버지와 아저씨가 한강에 가셨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달려가다 털썩 주저앉았다.
저 멀리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너무 화가나서 울면서 아저씨가 타고 온 삼천리 자전거 앞 뒤 바퀴 바람을 다 빼버렸다.
40년 전에...

아저씨가 돌아가셨다.
93세의 호 상이다.
내 아버지 보다 20년을 더 사셨다.
우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나는 아버지 생각에, 옛날 생각에 눈물이 살짝 비쳤다.
상주인 아저씨 아들이 인사를 하다가 슬쩍 물어본다.

"아버님이 가끔 말하던 자전거 바람 빼 놓은 그 소녀?"

참, 왠 소녀...

까딱 했으면 상가 집에서 울다가 웃을 뻔했다. 말솜씨하며 보톡스를 맞았는지 너무 빵빵한 얼굴이 60 나이에 걸맞지 않게 보이는 그 오라버니를 보니 졸부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대단해보인다. 부의 여유라고나 할까? 순간적으로  그 옛날 양딸로 갈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을...ㅋㅋㅋ'

문상객들도 호상이라서 그런지 표정들이 그리 무겁지가않다.
아저씨의 영면을 기도합니다.

2005년 6월 22일 수요일

기분 좋은날



딸의 친구들이 모여 시끌벅적하다.
젊음, 아름답고 싱그럽고 명민한 그젊음에 문득 부러움을느낀다. 

나도 그 시절을 보냈건만…!
거울 속에 비친 까칠해진 내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씁쓸하게 입맛을 '쩌~억' 하고 다셔본다. 
마음속에 이상을 가지면 영혼이 늙지 않는다는 어느  광고를 보며 '말도안돼. 나이가들면 몸도 영혼도 늙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나이든다' 는 것에 예민해져 간다.
깔깔 거리며 돌아가는 딸들의 인사를 받고 돌아서는데 이런 말이 들린다.

"사키야! 너랑 엄마랑 함께 밖에 나가면 자매라고 하겠다."

"뭐야! 내가 늙어보여?"

딸이 친구를 향해 항의하는 명쾌함 웃음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빙긋이 웃었다.
빈 말 일수도 있는 그말에 기분이 조금 맑아진다.
언제적 들었던 노래가 내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혼자 온갖 고뇌 다 지고 있는 것처럼 우울해 할때는 언제고 
신나는 유행가가 저절로 튀어 나오다니!
주책맞게 어린아이처럼 딸들의 말 한마디에 힘을 싣다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오늘은 커피 말고 녹차를 마시기로 하고 다구를 비켜두고 대접으로 한사발 마시고 무슨 불로초라도 들이킨 것처럼 "아자, 아자!" 소리내며 벌떡 일어난다.
하지만 무릎에서는 '우두둑 뚝뚝' 뼈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쉬이 지친다.

'이러면 곤란하지. 딸들의 그 대화가 무색 하네!

그 녀석들의 평가는 진심 이었을까?
예의상 한 말이었을까?'
내가 이렇게 순간 기쁨을 느끼는것이 주책일까?
어찌 되었든 고맙다.
예쁜 딸들아!!!

월간 함께가는세상 2005년5월호 게재.

2005년 6월 18일 토요일

갯 메꽃

바다낚시를 자주 가는 친구부부의 안내로 우리부부는 영흥도라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사는 게 뭔지 늘 생각만 간절하던 바다낚시였었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드디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즐거움의 도가니였다.
큰고기 작은 고기 횟집에서 보았던 녀석들도 보이고 이름도 모르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를 잡았다. 낚시의 즐거움도 벅찬데, 보너스의 즐거움도 있다. 골뱅이 조개 게 해삼 성게 등을 잡는 것도 즐거움의 한 부분이었다. 물이 빠지면 왕성한 번식력을 가졌다는 어른 손바닥만한‘바다의 포식자 불가사리까지 놓치지 않고 사진에 담았다.

평소에 회는 별로 즐기지 않지만 그곳에서 먹는 회 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했다. 2박3일 동안 몸에 남아있는 에너지가  마지막까지 바닥 날만큼 낚시를 즐겼다. 바닷가 작은 산등성이에 해풍을 맞으며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의 아름다움도 일품이었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방파제 끝 비스듬한 언덕 돌 틈 사이에 갯 메의 푸르고 싱싱한 줄기들이 뻗어 내려와 자갈을 침상 삼아 기지개 펴듯 누워있는 모양은 그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곳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생선 비린내는 향수라 치더라도 생선 썩는 냄새가 참기 힘들게 악취를 냅다 풍기고있었다. 아무리 견디려 했지만 머리가 정신을 놓아버리려 한다.

"요것 봐! 요것 좀 봐봐!! 요따위짓거리 한 것들 뉘란 말이여 어!?
담배꽁초, 고추장 통, 비닐 봉지, 지렁이 상자…  에~구~ 김치 쪼가리도 있고…, 낚시꾼들 짓이여!!! 거럼! 낚시꾼들 짓이여! 쓰글 잡늠들 요따고 행동거지랄 하면 벌받을 기여! 하므….
오~메! 껌 밟았네, 요건 또 오똔 뇬 이 뱉은 겨… .
으~ 이구! 못해 먹것다. 못해 묵것써!"

아침나절 주차장근처 꽃밭 옆, 행 길을 청소하던 아주머니 두 분이 하이 소프라노 목소리로 낚시도구 챙기는 나를 향해 들으라는 듯이 하던 말이 머리 속에서 가시질 않아 씁쓸한데 이곳은 도대체 뉘 한 짓이란 말인가! 생선을 이리 많이 상자 채로 버리려면 왜 잡아 왔단 말입니까?
나는 바닷가방파제가 끝나는 그곳에 상자 채로 수북하게 버려져 썩고 있는 그 광경을 보면서 무슨 사정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좋았던 시간 한가운데 옥에 티로 남아있을 기억이다.

그 옆 돌 틈 사이에서 뻗어 내려온 아름다운 갯 메의 줄기는 힘차고 건강하게 뻗어 언덕 아래 자갈밭을 뒤덮고있었으나 식물도 냄새를 맡는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아무리 식물이지만 솔직히 인간의 비 양심을 보인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검은 해녀 복을 갖춰 입은 여인의 모습처럼 그렇게 싱그럽고 건강미가 넘치는 갯 메 덩굴, 다음해에도 그 자리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돌아왔다.
물론 쓰레기 더미는 버린 사람이 양심 껏 자진해서 치워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먼저 하면서 말이다.

아… 즐거움 또 하나,
똥꼬에 새끼손가락 만한 똥을 달고 꼬리 흔들며 따라다니던 식당에서 키우는 덧니 박이 시추 녀석도 웃음을 주었었다.


2005년 6월 13일 월요일

성형수술

마음도 울적하고 기분 전환을 하려고 미용실을 갔다가 옆자리에서 퍼머를하는 두 아가씨의 대화를 듣게되었다.

"언니, 언니~"

"어~왜?"

"언니는 어디 고치고 싶은데 없어?"

"......"

"내일 나랑같이 갈래?"

"어디를...?"

"병원에."

"어디 아파?"

"아니...눈하려고."

"아니 너 두 번씩이나 했잖아! 너 눈이 몇갠데  또해?"

"좀 마음에 안들어서..."

두번이라는 말에 거울 속 그녀를 슬쩍 훔쳐보았다. 수술 흔적이 남아있기는 해도 눈이 때꾼한것이 예쁘고 귀엽다. 잡지책을 보는둥 마는둥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날카롭게 책장을 넘기면서 수다는 계속되었다.

"의사가 뭐라고하는지 알아? 나같은 피부는 처음이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