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11일 토요일

세상구경

신작로가 끝나는 화단 끝 지점 모퉁이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전봇대를 이전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광고지 한쪽이 떨어져 요란스럽게 펄럭이는 광고지를 보고서야 그곳에 전봇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봇대에 붙여놓은 광고 전단 지에는 초록색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최종 부도처리...전 품목 1.000원~ 선착순 100명에게 라면 1box….

혼자 그 글귀를 읽고 또 읽고 땅바닥을 발바닥으로 한번 힘주어 비벼보고 다시 한번 또 광고를 읽었다.

"10시부터라...요즈음 돈벌이도 시원치 않은데 내일 아침 일찍 저곳에나 가볼까?

도대체 1.000원 짜리 라니 무엇을 가져다 놓고 팔기에 이런 큰 광고지를 붙이고 다니는 걸까하고 정말 궁금했다. 천원 짜리 가 무엇인지 구경도하고 필요한 것이면 몇 개 구입하자는 마음으로 그곳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예전에 보았던 코미디가 생각났다.

"체면이 있지...! 내가 옛날에 누구였는데...그럼! 내가 옛날에 누구였는데…아니지. 코미디는 코미디고 공짜 라면이 한 상자라는데……."

그러나 10시가 넘고 다음날이 되었지만 나는 그곳에 갈 용기가 없었다. 1000원 이라는 광고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자꾸만 생각났다. 그냥 가보면 될 것을 1000원 이라는 글귀가 유혹을 하건만 더군다나 공짜라면 1 박스를 준다는 문구가 더욱 신경이 쓰이고 내심 공짜 라면을 받고 싶은 군침이 돌건만 그런 속마음을 누군가 알아차리면 무슨 창피인가 하는 서푼짜리 체면과 자존심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공짜를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진다는데, 은근히 공짜를 기대하는 자신이 쩨쩨한 생각도 들었지만 선착순 100명이라면 집이 가까우니 시간 맞춰 가면 분명히 받을 것 같았다. 행사장인 그 대형 할인매장은 바로 집 근처 이었으므로 다음날도 집 주변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주차 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교통정리 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천원 광고의 위력은 대단했다. 설마 나처럼 공짜 라면을 타러 차까지 몰고 왔단 말인가, 아니면 물건이 정말 천원일까? 궁금했다. 손해볼일은 없을 테지 하는 마음에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그곳에 갔다.
커다란 현수막에 이렇게 써있었다.

"폭삭 망했습니다. 그냥 가져가십시오."

입구부터 요란했다. 남대문 시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라이브, 손뼉치고 발 북을 치며 화장품을 파는가하면 책에서나 보아왔던 각가지 한방 전통차 한약재등 시골 장터를 방불케 했다. 1층부터 5층까지 둘러보았다. 내 눈에 1000원 이라고 쓰인 코너가 보였다. 얄궂은 물건들이 쓰레기 더미처럼 귀퉁이에 쌓여있다.
물 속에서 건졌는지 얼룩진 아가 옷, 짝도 없이 흐트러져있는 비닐 신발 등, 길에 내다 버려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을 물건들이 뒤엉켜있었다. 광고만 천원 일뿐 브랜드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두어 9.900원부터 99.000원 까지 있었다. 
이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쌈직한 물건들을 구입하려고 여기저기 코너마다 뒤적이고 있었다.
어느 두 여인이 이불 보따리 만한 옷 보따리를 옆에 놓아둔 채 땀까지 흘려가며 열심히 또 고르기에 물어보았다.

"옷 장사하세요?

내가 물어 본뜻은 너무 많이 사는 것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이 의외였다. 시내 번화가에서 옷 집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잘 고르면 10배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고했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옷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가 있을 때 많이 구입하여 수고를 조금하면 많은 수익을 올린다고 말한다. 10배의 수익이라는 말에 놀라는 나를 촌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한다.

"옷은 브랜드가 돈이거든요. 명품 족들 보면 모르세요? 중고라도 몇십 만원 몇백 만원 없어서 못 팔아요.
짝 퉁 이라도 브랜드가 중요하거든요."

"그렇게 돈벌이가 되요? 그렇다면 해 볼만하군요!"

나의 질문이 하도 진지해 보여서 대답을 해주는 것이라고 인심 후하게 쓰는 투로 말한다.

"옷 장사 해보시게요? 우리 가게 내 놓았는데 생각 있으시면 구경오세요."

예쁜 옷이 그려진 명함을 한 장 주기에 받았다.
내가 모르던 세상구경을 실컷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하다.
그런데...공짜라면은 누가 받아갔을까……!? 


2005년 6월 7일 화요일

당신 떠난 그 아침에

당신 떠난 그 아침에 나는 물말이 밥을 
눈물과 섞어서 꾸역꾸역 한없이 퍼먹었습니다
마지막 잡은 하얗고 야윈 손은 이미 너무도 차가웠습니다.
털썩 주저앉은 채 다리를 일으킬 수도 없고 
손도 떨렸고 몸도 떨렸고 마음은 추웠습니다.

생사를 걸었던 애끓는 마지막 힘을 
무참히 덧없음으로 남기고 
나의 희망 당신은 어디론가 그렇게 가셨습니다
나의 애타는 마음을 너무도 잘 알면서
이별의 순간에도 전혀 모르는 타인처럼 
왜 그렇게 아무 말이 없으셨나요.

몸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진액 인양 
끝내 한쪽 눈에서 흘러내리던 눈물 한줄기
그것이 저를 아끼시는 당신의 마지막 사랑의 
표시이었음을 이제야 깨 닿습니다.

당신 얼굴도 
당신 모습도 
당신의 목소리도 함께 할 수 없음이 
너무 큰 슬픔이고 아픔입니다

그래도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기에
당신 떠난 그 아침에 
눈물 섞인 물말이 밥을 꾸역꾸역 퍼먹었습니다.




2005년 5월 24일 화요일

빈손의 의미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놓거나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는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그 동안 내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만큼 잡았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어둠이 몰고 오는 조용함의 위압감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공허한 침묵 속으로 나를 몰아넣고 오만과 욕심만 가득 찬 나를 묶어버린다,
어차피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걸 무엇을 욕심 내고 무엇이 못마땅한가,
오만과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내 손을 잡아 줄리 없고 용서와 배려를 모르는 한 어느 누구에게도 손내밀 수 없다,
얼마만큼 더 비우고 없어야 빈손이 될 수 있을까...


2005년 5월 20일 금요일

접시나물

지난 봄날 들판에 나가 나물을 뜯어 왔다.
집 주변 들판에 너무도 흔한 풀 포기를 예쁜 바구니도 아닌 검정 비밀 봉투에 꾹꾹 눌러 많이도 뜯어왔다. 남편이 먹어도 되는 나물이냐고 물어 보기에 접시나물 이라고 알려주었다. 오랜 시간을 다듬고 씻고 데치고, 물에 담가 놓았다가 참기름 냄새를 풍기며 접시 가득 그날 저녁 밥상에 올려 졌다. 
접시나물은 나른한 봄날 잃어버린 입맛을 돋구어 주는데 충분했다.
고추장을 넣고 냉면 대접에 썩썩 비벼서 그이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한 숟가락 남았을 때까지 집요하게 끝까지 수저를 붙들고 있었다.

"비빔밥 함께 먹을 때는 마지막까지 먹는 사람이 일찍 죽는 대요. 한날 한시에 죽으려면 마지막 한 수저는 남깁시다."

나의 말을 듣고 그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말 누가 만들어낸 말이야? 내가 새로 만든 말로 하자면 똑같이 나누어서 동시에 먹으면 한날 한시에 죽는다고... 남기기는 왜 남겨?"

그릇 긁는 소리에 둘이 마주 쳐다보며 웃음보를 터트리던 봄날이 생각난다. 성전 꽃꽂이 소재를 준비하던 나는 길가에 멋없이 피어있는 희고 작은 야생화를 한아름 안고 들어와 다듬기 시작했다.

" 뭐 그런 것도 꽃이라고 꽃꽂이 소재로 삼나?"

그이는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를 던진다.

"봄날 맛있게 먹었던 그 접시 나물이 자라서 이렇게 예쁜 꽃이 피었답니다."

꽃은 작아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꽃은 다른 크고 예쁜 꽃들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해바라기. 씀바귀. 구절초. 들국화 등, 크기만 다를 뿐 자세히 보면 모양은 거의 비슷하다. 아니? 내 눈에는 더 예쁘게 보였다. 키도 아주 크고 날씬하게 쭉쭉 하늘을 향해 자라서 계란 후라 이를 붙여 놓은 것처럼 생긴 작은 꽃이 앙증 맞기까지 하다. 나는 이 꽃을 참 좋아한다. 청순 가련하면서도 거칠어 보이고 야성적이면서도 진실해 보이고 사람들의 시선은 많이 받지 못하는 들꽃이지만 뿌리째 뽑아다 물에 담아 놓고 지저분한 이파리를 정성스럽게 다듬었다. 한동안 바라보던 그이는 바쁘게 서재로 들어가 시집을 찾아 가지고 나오더니 차려 자세를 하고 서서 시 한 구절을 읊어 주었다.

옥수수 닢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 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 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생략)
꽃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도종환 시인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썼다는 시인데 살아 있는 나에게 느닷없이 무슨 접시꽃 당신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참 매력 없기는? 내 마음을 몰라주다니 야속하다. 아무리 요즈음 불경기라서.... 돈을 좀...못 벌어다 준다고 감정까지 메말랐단 말이요?

"봄날 맛있게 먹었던 그 나물도 생각나고 해서 시 한 구절 읊조렸더니 비웃었단 말이지? 할망구 다 되었군."

크게 웃었다. 접시나물이라는 말에 접시꽃 당신을 읽어준 것이다.

"깔깔깔! 그런데 접시나물의 꽃은 접시꽃이 아니고 망초 꽃이랍니다, 그것도 개망초 꽃, 그 시에도 등장하네...시인이 논두렁에 난 망촛대와 잡풀 사이에 멍하니 서있었다고 거기, 시에 써 있잖어요."

"잉?? 그런데 왜...나물을 접시나물이라 하는 거야?"

"글쎄요. 남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그런 줄 알고있지만 어쩌면 나물 이름을 내가 틀리게 알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봄날 나물을 준비하던 모습도 지금 꽃을 다듬는 모습도 사랑스러워 보였다며 잠시 기쁘게 해주려고 시를 읽어 주었다는 그이의 말을 들으며 행복하다.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된답니다. 
오늘 당신을 시인으로 임명합니다.
통계청 뒤뜰에 올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접시꽃이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았는데 내일은 그이와 함께 접시꽃 사진을 찍으러 가야겠다.

* tip
개망초의 '개-'는 접두사가 아니고 실제로 뜻을 가진 실질형태소로서 "모두, 다"라는 뜻을 가진 '다 皆' 자입니다.


순수한 마음

시골양반 동창 가족모임으로 남이 섬에 도착했다. 
12년만에 와보는 곳이다.
60대에서 유아까지 그야말로 세대를 초월한 소풍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수건돌리기와 보물찾기 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수건돌리기에 걸리면 걸린 사람이 지적하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가운데로 나가서 장기를 자랑하며 흥겹게 놀도록 사회자가 리드를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공연을 펼쳤다. 노래는 물론이고 춤추는 몸짓은 환상 적이다.

우리가 자랄 때는 상상도 못했겠지만 만약에 있었다면 옛 어른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를 생각하면서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함을 새삼 느꼈다. 부모들도 자녀들도 즐거움으로 충만할 뿐 수줍음 따위는 없다. 악기도 필요 없이 입으로 악기소리를 내고 손과 발로 박자를 맞추고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빠른 랩을 부르고 연체동물에서나 봄직한 유연한 몸놀림의 축제는 답답하고 고단했던 어제의 일들을 모두 날려보내기에 충분했다. 잠시 내 머릿속은 촌스럽던 내 어린 시절 소풍을 떠올렸다.

상상 속 타임 머신을 타고 옛날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도 수건돌리기에 걸리면 가운데로 나아가서 노래를 불렀다. 물론 춤을 춘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아니 춤 자체를 몰랐던 것 같다.쭈뼛쭈뼛 앞으로 나가서 몸을 서너 차례 비비틀고 고개를 숙이고 얼굴은 발갛게 상기된 채 선생님께서 유도하는 사회에 맞추어서 노래 한 곡을 겨우 겨우 못내 불러야했었다.

"무슨 노래할까요?"

나의 대답은 선생님 외에는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개미 목소리로 제목을 말한 뒤 몸가짐을 추스른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한숨 섞인 심호흡을 하고 손바닥은 '쫘~악' 펴고 차려 부동자세를 한 뒤 고개를 반짝 치켜들면 시선은 저~멀리 허공을 향하고 눈을 끔뻑거리면서 뻣뻣하게 서 있으면 선생님께서 '시~작' 하고 외쳐주신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아~ 아~ 흑…!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 내어 불러 보건만 얼굴은 경련이 일어나 씰룩거리고 노래를 마치기전 눈물이 뚝 떨어지기 일수다. 즐거운 소풍날 점심 시간도 되기 전에 어두움이 찾아와 외롭고 쓸쓸한 분위기로 숙연해진다. 너나할것없이 거의 그랬었다. 동요나 가곡의 분위기가 그랬고 어른들 노래를 아이들은 잘 부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소풍날이므로 가라앉은 분위기는 금방 사라진다. 어디서 배웠는지 박수와 함께 앙코르하고 외친다. 외롭고 쓸쓸한 그 노래를 또 부르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노래 부른 이의 수고를 칭찬하려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앙코르, 이 부분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다.

다시 수건돌리기는 시작되고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쁘다는 친구가 걸렸다. 그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얌전히 걸어나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들릴 듯 말 듯 노래한다. "뜸북뜸북 뜸북새 숲에서 울고 따옥따옥 따오기...슬피 울건만...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가랑잎만 우수수수 떨어집니다. 그 친구 역시 곧 눈물이 떨어질 듯 말듯….하뿔사! 타임머신을 열고 추억 속을 헤매 이 다가 그만, 수건돌리기에 걸리고 말았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스스로도 싫어하는 부끄러움은 도대체 고쳐지질 않는다. 머리 속을 복잡하게 하는 순간의 긴장을 체념하듯 벌떡 일어섰지만 뾰족이 내세울 장기가 없다. 난 도저히 저들의 레퍼토리를 따라갈 수 없는 음치, 몸 치가 아닌가! 할 수 없이 어린 시절 그대로 재연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지금껏 보여졌던 나의 다른 모습에 순간 모두들 나뒹굴기 시작한다.
왜 눈물은 웃어도 나오는 걸까?

하하하….
우리들의 순수한 마음이여!내 마음의 노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