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10일 목요일

그림 같은 꽃


어둠이 깔리기 전 저수지 근처 길가 화단에 하루종일 비바람 맞고 덩그런히 피어있는 장미의 모습은 중후한 중년의 여인상을 느끼게 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들 한다. 사람의 내면도 외면의 아름다움도 꽃에 비유한다.
그래서 일까? 꽃이 피고 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일생을 그대로 비유하고 있는 것 처럼 보여진다.  
아무리 화려한 꽃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들꽃도 그렇게 피었다가 그렇게 가는 것.
온실에서 곱게 피어 고운 사랑 받은 꽃이나 이름없이 보는 이도 없이 들판에 핀 꽃이나 우리 모두의 끝은 그곳인 것을….
어찌 보면 측은하게 까지 보이는 비에 흠뻑 젖은 장미꽃을 사진으로 남기기는 하였으나 아무리 보아도 물감으로 그려진 것 같은 모양이다. 빨간빛도 분홍빛도, 그렇다고 노랑 빛도 아닌 물감 뒤섞인 듯한 야성의 매력을 주는 장미를 만나게되어 한동안 기쁨 안에 서 있었다.
꽃잎이 떨어질 듯 말 듯한 노화된 장미꽃에서 순간 나의 모습을 본다.

화성 천천리 저수지에서.


2005년 2월 9일 수요일

그녀의 이름은 은총


성직자의 며느리
정씨 가문의 맏며느리
부모의 기도가 축복이 되고
행복의 열매는 넘치고도 흐른다.
사랑 안에서의 행함 나눔의 섬김
솔선하고 전파하는 사랑의 파수꾼

목소리도 활기찬 행복 선교사
눈물의 기도를 타국에 뿌리며
가족의 그리움을 뒤안길에 숨긴 채
이별의 아픔을 기도하는 언니로
엄마의 무언까지도 알아듣는 딸로

착한 남편의 눈망울을 

사랑하며 살아온 세월.
부인 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물
아들과 딸 보물의 소유자

남편의 모습 속에 어릴 적 키우던
황소를 연상하는 여인
어머니의 모습도 반려자의 모습도
적당히 닮아 가는 샤론의 장미꽃
사랑의 여인

그 이름 은총.
고기 싫어 풀 먹을래.
풀 싫어 고기 줘!
세월 속에 타협은 자연히 이뤄지어
풀과 고기를 함께 먹을 수 있는
화평 속에 여인

그 이름 은총

2005년 2월 3일 목요일

주문진 오징어

일요일 말들이 없다. 
책한 권씩 잡고 하루를 보냈다. 
귀에는 각자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눈은 책을 들여다보고 세 식구의 모습이 똑같다. 
휴일인데 그이는 오늘도 바쁘기만 하고, 나라 임금님 보기보다도 힘들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보다. 저녁에는 뭐 특별한 식사라도 기대 하고싶은데 희망 사항일 뿐이고 또 무얼 먹을까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대답을 안 한다. 
"경포대 갈까?"

내 말에 아이들이 또-오? 하며 시큰둥한 표정들이다.
"결심했어! 저녁은 경포대 가서 먹기로 하는 거야!"

이렇게 큰 소리로 말했지만 믿지도 않는다. 
며칠동안 경포대 갈까? 정동진 갈까? 해돋이 보러 갈까? 벼르기만 하고 한사람이 모른 척 신경을 안 쓰니 이제는 모두들 포기했는지 나의 말을 짜증스럽게 받아들인다.
아이들 반응이 더욱 속상한 마음이 들어 그이에게 전화를 걸어 일방적으로 통보하길 여행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7시까지 사무실로 가겠으니 기다리라고 일요일인데 뭐 그리 쉬지도 못하고 바쁘냐는 질문까지 미처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숨 가쁘게 해댔다.
디카 챙기고 모두 모자 달린 잠바를 입고 혹시 그이 추울까봐 무스탕도 여벌로 챙기고 목도리까지 준비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공부 판이 깨졌는지 직원4명과 중국에서 여행 나온 친한 친구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공부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중국어로 말하는 것을 대충 들으니 그림 맞추기 공부란다. 화가 났지만 좋은 기분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달렸다. 경포대에서 저녁을…! 오~우 고함을 치면서 웃고 떠들고 다 큰 녀석들이 시끄럽다.
용인 휴게소에서 요기를 하기로 하고 들어간 식당에서 가락국수 김밥 자장면 짬뽀옹, 이렇게 각기 다르게 시켰다. 도대체가 음식도 통일이 안 된다. 아유! 요즘 시쳇말로 쪽팔린다고 해야하나?

하루를 즐기고 서울로 돌아오는 맞은편 차량행렬이 볼만하다. 남들은 휴일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을 우리는 출발하였으니 반대 차선과는 달리 차가 별로 없었으니까 신나게 1등 하면서 달렸다. 휴게소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낸 관계로 경포대까지 4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경포대에서 하늘 한번 쳐다보고 검은 바다 한번 쳐다보고 바로 차를 돌려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정동 진으로 갔다.
횟집에서 모듬 회와 매운탕으로 저녁을 거하게 먹고 새벽2시 노래방이 한 건물에 있는 민박으로 방을 정하고 노래방으로 갔다. 아이들은 일본노래 엄마는 이 정석의 '첫눈이 오네요' 를 그이는 '정주고 내가 우네' 를 불렀다. 휴게소에서 음식 시킬 때처럼 노래부르는 취향도 각자 개성대로 부르는 것이 재미있어 웃기도 하지만 그이의 노래가 너무 웃긴다. 누가 정주고 울라고 시킨 것처럼 심각하게 부르는 모습을 보니 마음에 안 들었다. 여행 중 예의에 벗어나는 노래라고 생트집을 잡았다. 여행 중에 생트집 잡는 것이 예의 지키는 사람 이냐며 버럭 화를 내며 나가버리는 그이를 따라 방바닥이 뜨끈뜨끈한 온돌방으로 돌아왔다. 
벼르고 벼르다 떠나온 여행지의 밤은 구들장을 짊어지고 잠을 자는 것으로 조용해졌다.

7시42분이 해뜨는 시각이라면서 아이들은 5시30분부터 나가자고 보챈다. 2시간이 넘도록 모진 바람을 맞으며 모래사장에 서서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모두들 딸기코를 해 가지고 동태 되기 직전에 해님얼굴 보았다. 일출을 카메라에 담고 둘이서도 한 장 찰깍, 네 식구가 함께 한컷 "찰칵" 사진으로 남기고 아침은 주문진에서 먹기로 하고 또 달렸다. 그 유명한 황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부두에 배 들어올 시간이, 1시간쯤 더 기다려야 한다기에 건어물을 여러 가지 구입했다.
오징어 배가 도착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내 팔뚝만한, 살아있는 국산 동해오징어 만원에 7마리라는 말에 직원들에게도 준다며 40마리를 스티로폼 상자에 가득 샀다. 첫손임이라고 5마리 더 주셨다. 그리고 돈에다 퉤퉤 하며 침을 퉁긴다. 꽁치는 40(사십) 마리에 만원, 포장하는데 5 천원 그것도 샀다. 오징어가 하늘 향해 먹물을 쏘는 바람에 옷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즐거웠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 일어났다. 
일단은 점심을 먹은 후에 사무실 직원들 나누어주러 간다는 그이는 오징어 5마리를 꺼내어 오징어 회를 만들라고 했다. 다리가 손에 자꾸 달라붙고 살아 움직이는 오징어를 도저히 만질 수가 없었다. 꿈틀거려서 회를 못하겠다고 횟집에 가서 먹는 것이 절대로 비싼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삶아 먹으면 안되겠느냐고 하니 살아있으니 회로 먹고 싶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슬쩍 기절만 시킬 생각으로 약간 뜨겁게 온수 물을 틀어서 담가놓았다.
슬그머니 와서 보던 그이 버럭 소리친다.

"지난번 잉어처럼 또, 뜨거운 물에 담가놨지!"

어찌나 크게 말하는지 순간 죄인처럼 싱크대 코너에 쭈뼛이 차려 자세로 서 있었다.

"나 미치겠다. 미치겠다." 하며 한숨을 길게 쉬더니 오징어 상자를 들고 나가버렸다.
난 죽여서 자르려고 했는데. 




2004년 10월 13일 수요일

으름


충주에 다녀온 그이는 으름 한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아침 선산에 다녀오는 길에 산에서 따 가지고 온 모양이다. 
몸에 좋다기에 씨를 오도독하고 씹었다가 사망하는줄 알았다.
우~~c~~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해서 감기 약  2캡슐을 주었다. 
오후 사무실에서 전화가 온다 속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고 낚시나 가자고 한다. 
어천 방죽에 갔다. 
밤새워 잉어 한 마리 붕어 한 마리 잡아들고 돌아왔다. 
밤새우기에 체력이 달린다는 말에 마음이 저려온다. 
"아프지 말아요...제발, 사실은 나도 체력이 딸린다오."
 
아자! 아자! 

2004년 9월 19일 일요일

도심 속 풍경

불경기로 한숨이 깊어만 가는 요즘 추석이 다가와서인지 마주치는 표정들이 밝은 사람보다 어두운 분들이 더 많은 듯하다.
마음만 바빠지는 명절 추석, 가까운 이들에게 보낼 작은 선물과 상차림 준비물을 메모하면서 몇 해전보다 반으로 줄어든 시장비용을 확인하고 집을 나섰지만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도시의 풍경이 늘 그렇듯 바쁜 행인들이 나의 곁을 눈길 없이 지나쳐가고 더욱이 젊은이들 보다 나를 비롯한 중년의 모습에서는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긴 정신 놓은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맥없이 길을 걸으며 실실거릴 리가 있겠느냐만 나뿐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어두워 보인다. 그렇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기분을 고쳐먹기로 했다.

중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던데, 입은 미소 띤 모양으로 옆으로 힘을 주어 긴장하고 미간은 찡그리지 말고 눈은 최대한 동그랗게 힘주어 크게 뜨고 땅바닥만 쳐다보며 터덜터덜 걷지 않고 사뿐사뿐 주위를 살피면서 걸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횡단 보도 옆 대형 화분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마음을 고쳐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좋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회색 빛 도심 속 풍경을 회색 빛 마음으로 평소 무심히 보고 지나치던 그곳을 오늘은 주의 깊게 보게 되었다.
그야말로 빨, 주, 노, 초, 파, 남, 보. 그리고 하얀색 꽃까지 일곱 빛깔 무지개보다도 많은 꽃들을 번갈아 보면서 마음의 색깔도 변하는 자신을 느끼게 되었다. 주위에 모든 사물들이 정겹게 보려고 마음을 고쳐먹으니 정말 정겹기가 그지없다.
자동차의 소음도 매연도 먼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곱디고운 베고니아, 팬지, 페츄니어, 금잔화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한몫하고 있다. 비록 공기 좋고 물 좋은 대자연 속이 아닐지라도 작은 송이는 화분 안에 갇힌 상태일 지라도 활짝 꽃 피어 웃고 있는 꽃 무리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저 꽃들도 아름다움을 뽐내고는 있지만 지금 이 환경이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현재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황막하고 고되고 힘들다고 나 자신 많은 불평불만 좌절을 번복하며 살지 않는가? 꽃들을 보면서 짧은 시간에 무언가를 나 자신이 깨닿고있다. 만물의 영장인 내가 현실극복을 못하고 우울하다면 안될 말이다. 식물과 나를 견주어 생각하는 사이에 왠지 꽃들이 나에게 희망의 속삭임을 들려준 것 같은 기분에 발걸음이 한결 가볍기만 했다.

로터리를 지나려는데 이것은 또 어인 풍경이란 말인가?
내 마음에 들리던 꽃들의 속삭임이 아직도 들리는 듯한데 로터리 한가운데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흐뭇한 마음도 보너스로 주어진다.
 누구의 손길일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로터리 가운데 큰 시계탑을 중심으로 빙 둘러 꾸며놓은 시골풍경은 작은 마을을 축소시켜 옮겨 놓은 것 같다.
지게 위에 넘치듯 흘러내린 나팔꽃덩굴, 반쯤 깨어진 대형 항아리 속에 누렇게 익어 가는 벼이삭과 피에로 옷차림을 한 허수아비의 익살스런 표정도, 그 옆으로 조그맣게 만들어 놓은 담 위에는 기왓장도 올려져있고 그 아래는 올망졸망 여러 개의 항아리를 모아 놓은 장독대도 있고 그 곁에서 누렇게 익어 가는 커다란 늙은 호박 한 덩이가 나의 마음을 풍요하게 했다. 건강하고 튼 실한 토란줄기와 우아하게 하늘을 향해 쫙 펼쳐진 우산 같은 토란잎은 바라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그 옆에 나의 몸을 살짝 옮겨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얄팍한 지갑을 들고 장보러 가던 무겁던 발걸음은 가벼운 발길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콧노래도 흥얼대고 있었다. 거리거리마다 가꾸어 놓은 꽃들과 시골의 소박하고도 풍요한 모습을 그대로 재연해 꾸며 놓은 그 손길들 위에 감사와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