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5일 토요일

인품도 명품이 되었으면

하얀 진이 묻어나는 상추 잎을 따고 마늘종을 뽑아 뚝뚝 자르고 찰 보리밥에 삼겹살을 노릇하게 구워 친구들을 행복하게 해주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를 만나고 오는 날은 신랑이 외박을 한다해도 용서가 되었을 정도로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넉넉한 친구였다. 배불리 먹고 더운 날씨에 뜨거운 숭늉까지 마시며, "돼지 똥 냄새 참 고약하다."고 말  하면 "너 돼지 고기 먹었어! 상추에도 마늘종에도 돼지 똥거름 준 거 너 모르고 먹었니?" 하며 친구들에게 늘 웃음도 주고 고기도 맘껏 먹여주던 풍요로운 친구였다. 몇 해 전부터 친구가 살던 곳이 신도시 개발로 승격되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신분도 상승되고 졸부가 되었다. 똥 돼지우리는 버섯 모양을 뒤집어쓴 멋진 별장으로 탈바꿈되어졌고 말로만 듣던 서울에 주상복합 대형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우리 집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친구의 집은 우리 집의 3배보다도 넓다. 집 구경하는 동안 무슨 미로 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어유! 정말 넓다. 너 집에서 신랑 부르려면 방송 해야하겠다."

"깔깔깔!!"

친구는 즐겁게 웃는다.
나는 부러움을 말하고 친구는 자랑만 하고 조상 님이 물려준 몇 만평의 땅, 버섯지붕 말고 강원도에 또 다른 별장과 농장, 제주도에 감귤농장 강남 빌딩에는 은행이 들어 왔다는 둥 자랑에 맞혀 대답하는데도 목이 아프다. 오늘은 친척 가족들이 집들이 겸 저녁을 먹는 날 이라서 옷에 신경을 좀 썼다며 어깨 위에는 붉은 장미도 한 송이 달려있는 잘잘 끌리는 드레스로 갈아입는다. 멋스럽다. 주책없이 그 분위기를 파악 못하고 일년에 두 번 봄가을로 복지관에 조금 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기금 마련을 위해 미숫가루와 여러 가지 현지 직송 농산물 주문을 받고 있다며 품목이 적힌 메모 지를 건네주며 권유했다. 촌스럽게 요즘 누가 미숫가루를 먹느냐고 말머리를 잘라버린다. "그래 난 촌스럽다. 너는 더 촌스럽던 돼지 똥이...?"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살지 않을 거라는 친구의 도도한 음성이 내 머리를 땅~하고 때리는 기분이다. 고생하지 말라며 남편이 불렀다는 출장 요리가 도착하고 뷔페 식단이 차려지고 왔다갔다 지시하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내 모습은 꿔다놓은 보리자루 같다. 저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별안간 돈이 많아지더니 세상이 콩알만해 보이는지 내 말은 안중에 없는 듯 건성으로 듣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섭섭했다.

"그만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너 똥(돈)통에서 너무 허구적대는 거 아냐?"

농담처럼 말하는 나에게 복지관 기금 참여는 다음에 생각해 보자고 한다.
"그래라, 내가 내년에도 이 짓하고 있으면 그때 보자."

예전 같았으면 억지라도 떠 맡겼을 텐데 말을 덮었다. 돈 많은 친구 앞에서 심사는 뒤틀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장만 점점 꽈배기처럼 꼬불꼬불 꼬인다. 오늘 아침까지도 부자된 친구가 자랑스러웠다. 몸은 비록 피곤하고 일에 파묻혀 살아도 늘 웃음 잃지 않고 넉넉하고 소박한 친구라고 많은 지인 들에게 칭찬하며 앞으로 좋은 일에 힘쓸 재목이라고 여기저기 여러 사람들에게 오지랍 펼쳐 잔뜩 기대하게 말을 해놓고 찾아간 친구는 예전 넉넉한 마음을 간직 하고있는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여러모로 본의 아니게 뻥쟁이가 된 것이다. 안 그런 것처럼 내숭을 떨려고 해도 친구 앞에서 표정 관리가 안 된다. 풍요에 넘치는 다른 세상을 사는 모습이 나를 주눅들게 했다. 의복도 가구도 고급, 고급, 고년의 성품도 고급으로 변한 듯 나보다 한술 더 뜨는 고상을 떨어 대니 돈이 좋긴 좋구나 인정을 하면서도 내 맘이 편치 않고 자꾸만 까칠해진다.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나는 도대체 뭐야! 나는 왜 물질복도 지지리도 없는 거야! 우리 신랑은 왜 땅도 없어! 울고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럽고 질투 났다.
대문 앞 넓은 입구 대리석에 내가 사 들고 간 빨래세제 선물 상자가 너무 작고 초라하게 덩그러니 놓여있다. 다시 들고 나오고 싶은 심정을 뒤로하고 뭐가 좋다고 방긋 웃으며 새집에서 행복 하라고, 가까이 살게 되었으니 자주 만나자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돌아섰다. 마음이 똥 돼지가 되어버린 친구에게 다른 어떤 것 하나도 부러워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은 하지만 정말 부럽다.

"오늘 아무래도 잔주름 몇 가닥과 검버섯도 추가로 생겼을 거야! 내일은 로또 복권이라도 한 장 사야지 이대로는 못 견디겠어!"

중얼중얼, 횡설수설, 터덜터덜 집으로 오는 길, 오늘따라 차도 많고 시끄럽고 큰길 하나 건너면 올 수 있는 길이 왜 이다지도 멀게만 느껴질까. 친구와 나를 저울질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도 마음도 무겁고 힘겹다.  빠른 걸음으로 만 보를 걷고 들어온 날도 내 튼튼한 대포 굴뚝 다리는 이렇게 아프지 않았다. 다리를 주무르며 다시 나를 가다듬는다. 이 모습 이대로의 행복을 감사하며 나누는 삶을 살자.
소크라테스의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그 재산을 자랑하고 있더라도,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있을 때까지는 그를 칭찬하지 말라." 

하루종일 샘나고 부러웠던 친구의 부를 마음 속에서 비우며 지금껏 살아왔던 나의 위치로 돌아간다. 바라건데 돈많은 친구의 인품도 명품 인품이라고 칭찬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2006년 7월 10일 월요일

층간소음

얼마 전 입주한 이웃 여인의 높은 목소리에 잠을 설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무엇을 하기에 문 여닫는 소리는 셀 수 없이 쿵쾅거리고 나의 인내를 시험이라도 하는 듯 며칠 들 이로 새벽 서너 시만 되면 떠드는 소리에 너무 화가 난다.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밤낮이 바뀌어서 지금이 활동하는 시간이라고 하기에 어쩌다 한 두 번이겠지 하며 참고 조용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웃은 모두 곤히 잠들어있는 이른 새벽에 아무래도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술 취해서 커진 목소리는 그렇다 치고 고요한 한밤중에 남녀가 고래고래 웃고 떠들면 밤에 잠을 자야 하는 사람들은 어찌하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밤은 잠을 자라고 어두운 것인데 세상이 좋아 전깃불이 불야성을 이루고 대낮처럼 밝다 하여 낯으로 착각하면 좀 곤란한 것 아닐까? 이제는 이곳에서 살아야 할 날들이 염려에 앞서 두렵기까지 하다. 몇몇 사람들의 이기적인 무질서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다. 솔직하게 여자가 야심한 밤에 술 취한 모습이 자랑거리는 아니라고 본다. 조용히 들어와 이웃을 생각하는 예쁜 마음도 가져 보면 좋을 것을 조절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요즈음 세상은 남의 눈치 안보고 나 하고싶은 대로하고 사는 것이 개성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사회는 기본적인 상식이나 양심까지 무너져 제멋대로 사는 무질서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아니, 그런 모습이 이미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자신을 통제하지 않고 자기주장대로 산다면 서로 신경이 곤두서서 짜증스럽고 피곤한 일이 아닌가.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윗집 여인은 지금도 쿵쾅거리며 밤의 고요를 깨뜨리고 있다. 험한 세상을 향해 대항하며 반항하는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보는 듯하다.
혹시 나는 이웃에게 이런 혼란스러움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남의 눈의 티만 보고 내 눈에 들보는 못보고 사는 것은 아닌지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는 밤이었다. 

어느덧 아침이다.
윗집 여인덕분에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 여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2006년 6월 20일 화요일

서비스 휴지 하나주세요.

언니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기에 급히 집을 나섰다. 광명인지 시흥인지 남부 경찰서 부근이라고 하기에 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강남 대로를 지나 사당을 지나 얼마쯤 가니 주유 비상등에 불이 켜졌다. 어제도 불이 들어 왔었는데 미쳐 생각을 못했다. 빨강 불이 들어오고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 마음이 불안했다. 퇴근시간과 맞물려 어찌나 차가 많은지 마음만 급할 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만 벌어지고 있었다.
주유소도 보이지 않고 차는 계속 밀리고 엎친 데 덮친다고 배까지 살살 아파 왔다. 일단 가변차선으로 가면서 주유소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를 않았다.
차선변경도 못하겠고 엉뚱한 길로 우회했다. 한참을 비상 깜박이를 켠 채로 주유소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반대 방향에는 보이는데 이쪽은 왜 없을까 하며 원망을 하고 있을 때에 더 이상은 안 되려는지 음악이 들려온다. 처음 듣는 음악소리다. 기름이 없어서 차가 서기직전에 나오는 음악인 듯 했고 다행히도 음악소리를 들으며 드디어 주유소를 찾았다. 차를 세우고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 주유를 하려니 이런 변이 또 있단 말인가!
핸드백 속에 있던 지갑이 안 보인다. 집에 전화를 하니 집에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속상하고 약이 올라서 눈물도 찔끔 나오며 울컥 목에 뭔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 해야 하나하고 궁리 중에 차에 있던 동전들을 주섬주섬 모았더니 3천원이 되었다. 주유하는 총각이 아르바이트 학생 같았다.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학생 미안한데요, 지갑을 모르고 안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기름이 없어요. 정말 미안한데.... 3000원 어치만 넣어주면 안될까요? "

창피해서 그냥 미소지으며 조용히 말했더니 주유 원이 못 들었는지…,

"네 에? 다시 크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창피했지만 크게 다시 말했다.
그 총각 큰 목소리로 외친다.

"3번에 3000원 주유합니다."

주유 구를 열고 기름 줄을 수~욱 넣는 척 하더니 그냥 뺀다. 창피하게 다시 큰소리로 외친다.

"3000원 주유 끝났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기름을 가지고는 병 문안도 못 갈 것 같고 집으로도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 정신을 어디에 빼놓고 다니는 거야! 기름은 미리 미리 넣고 다녀야지 날도 이제 쌀쌀해 지는데 도대체 사람이 왜 그렇게 정신이 없어!"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계속 핍박하는 말이 이어지고 있다. 더 이상 듣고 있으려니 그이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야속하게만 들리고 준비성 없이 길을 나선 내 자신의 잘못을 망각한 채 남편이 밉고 원망스러워 신경질을 내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출발을 하려니 눈물이 주르륵 뺨 위로 흘러내렸지만 눈물을 닦으려니 손수건도 없다. 창문을 열고 주유소 총각에게 "휴지 안 줘요?" 하고 말했다. 쳐다보고 웃는다.

"서비스 휴지 하나주세요."

주유 원은 휴지를 2개 주면서 또 웃는다.
그런 사이 그이의 전화는 계속 울려왔지만 받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잘못은 내가하고 원망은 남편에게 하고있는 것은 무슨 못된 심보인지, 속썩이며 버티고 싶었지만 그래도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전화를 받았다. 주유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여 입금을 해준 그이의 배려로 주유를 무사히 할 수 있었다. 편한 세상 살다보니 이런 방법도 있었다.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다는데…. 들은 풍월은 있어서 오늘 구세주가 되어준 그이에게 드라마에서 배운 대로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곰퉁아! 지금 드라마 찍나? 정신 똑바로 챙기고 운전 조심해서 다니라구!"

오늘 나는 곰퉁이다.



2006년 5월 21일 일요일

어머니의 노래

누군가가 말했듯이 세계의 언어이고 우주의 춤이라는 노래, 어느 누구든 한두 곡쯤의 애창곡은 있을 테고 또한 즐겨 부를 것이다. 내 어머니께서도 찬송가 외에 다른 두세 곡 정도를 애창곡으로 부르셨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학도야! 학도야! 젊은 학도야….`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연못가에 묻어 주.`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그야말로 운동권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늘 혼자 부르셨다. 층층시하 힘든 시집살이를 이겨내기 위한 혼자만의 시위 음악이었을까? 어쨌든 어머니께서는 찬송가와 몇 곡의 고전 음악 외에 다른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뵌 적이 없었다.
내 어머니의 음성은 평소 말씀하실 때의 저음 목소리와는 아주 다른, 소녀처럼 청아한 소프라노 음성으로 변하신다. 어느해 봄 야유 예배가 있었던 5월의 산야는 파릇파릇 푸르고 아름다웠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가까운 야외로 소풍 길에 오른 많은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저마다 풀 한 포기의 싱그러움까지도 감탄하면서 천지 창조, 신의 섭리를 찬양했다. 그렇게 야유 예배를 마친 후 제2부로 즐거운 노래자랑 시간을 갖게 되었다. 순서에 의해 사회자의 간단한 인사와 심사기준, 상품 등이 소개되었고 마침내 노래자랑을 시작하였다.
`오늘 노래자랑만큼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여하시는 것으로 원칙을 정하겠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찬송가는 자제하시고 오늘만큼은 각자의 18번을 마음껏 뽐내어서 준비한 상품을 많은 분들이 타 가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만약에 찬송가588장 중에서 부르시는 분이 계시다면 하느님께서 무척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여기모인 우리도 기쁨을 누릴수 있도록 에헤헤!!! 알아서 불러 주십시오.`
노래자랑은 시작되고 수줍으면 수줍은 대로 씩씩한 사람은 더욱 흥겹고 신나게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어머니 차례가 되었다.
`저 분은 예외‥. 찬송가를 불러도 할 수 없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모든 분들이 같은 생각을 할 때쯤 마이크를 통해 산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음의 음성으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모두들 잔디밭에 나뒹굴며 쓰러졌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상상도할 수 없는 어머니의 다른 모습을 처음 보는 우리 자매를 비롯한 모든 분들은 폭소와 함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놀라움 자체이었다. 분위기는 술렁였고 예의 상 `앙코르`가 아닌 또 다른 기대의 재창을 목소리 높여 외쳤다.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이번에는 가무도 함께 다음 곡을 부르셨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어머니의 변신 앞에서 포복 졸도하던 그때 그 시절 기억을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어머니의 93세 생신 날 허전한 마음으로 추억합니다.
햇살이 아주 좋은 날입니다.


`엄마! 아무 근심 걱정 없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지요?
너무 보고 싶어요.`


2006년 4월 5일 수요일

방순동 부고

▶방순동씨(전 경희대 사범대학장)별세,
방현수(동국대 교수).현준(사업).현택씨(삼성전자 부장)부친상
=2일 오전 2시 삼성서울병원,
발인 2006년4월4일 오전 6시, 3410-6902

작은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