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13일 수요일

으름


충주에 다녀온 그이는 으름 한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아침 선산에 다녀오는 길에 산에서 따 가지고 온 모양이다. 
몸에 좋다기에 씨를 오도독하고 씹었다가 사망하는줄 알았다.
우~~c~~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해서 감기 약  2캡슐을 주었다. 
오후 사무실에서 전화가 온다 속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고 낚시나 가자고 한다. 
어천 방죽에 갔다. 
밤새워 잉어 한 마리 붕어 한 마리 잡아들고 돌아왔다. 
밤새우기에 체력이 달린다는 말에 마음이 저려온다. 
"아프지 말아요...제발, 사실은 나도 체력이 딸린다오."
 
아자! 아자! 

2004년 9월 19일 일요일

도심 속 풍경

불경기로 한숨이 깊어만 가는 요즘 추석이 다가와서인지 마주치는 표정들이 밝은 사람보다 어두운 분들이 더 많은 듯하다.
마음만 바빠지는 명절 추석, 가까운 이들에게 보낼 작은 선물과 상차림 준비물을 메모하면서 몇 해전보다 반으로 줄어든 시장비용을 확인하고 집을 나섰지만 마음은 천근만근이다.
도시의 풍경이 늘 그렇듯 바쁜 행인들이 나의 곁을 눈길 없이 지나쳐가고 더욱이 젊은이들 보다 나를 비롯한 중년의 모습에서는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긴 정신 놓은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맥없이 길을 걸으며 실실거릴 리가 있겠느냐만 나뿐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어두워 보인다. 그렇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기분을 고쳐먹기로 했다.

중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던데, 입은 미소 띤 모양으로 옆으로 힘을 주어 긴장하고 미간은 찡그리지 말고 눈은 최대한 동그랗게 힘주어 크게 뜨고 땅바닥만 쳐다보며 터덜터덜 걷지 않고 사뿐사뿐 주위를 살피면서 걸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횡단 보도 옆 대형 화분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마음을 고쳐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좋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회색 빛 도심 속 풍경을 회색 빛 마음으로 평소 무심히 보고 지나치던 그곳을 오늘은 주의 깊게 보게 되었다.
그야말로 빨, 주, 노, 초, 파, 남, 보. 그리고 하얀색 꽃까지 일곱 빛깔 무지개보다도 많은 꽃들을 번갈아 보면서 마음의 색깔도 변하는 자신을 느끼게 되었다. 주위에 모든 사물들이 정겹게 보려고 마음을 고쳐먹으니 정말 정겹기가 그지없다.
자동차의 소음도 매연도 먼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곱디고운 베고니아, 팬지, 페츄니어, 금잔화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한몫하고 있다. 비록 공기 좋고 물 좋은 대자연 속이 아닐지라도 작은 송이는 화분 안에 갇힌 상태일 지라도 활짝 꽃 피어 웃고 있는 꽃 무리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저 꽃들도 아름다움을 뽐내고는 있지만 지금 이 환경이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현재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황막하고 고되고 힘들다고 나 자신 많은 불평불만 좌절을 번복하며 살지 않는가? 꽃들을 보면서 짧은 시간에 무언가를 나 자신이 깨닿고있다. 만물의 영장인 내가 현실극복을 못하고 우울하다면 안될 말이다. 식물과 나를 견주어 생각하는 사이에 왠지 꽃들이 나에게 희망의 속삭임을 들려준 것 같은 기분에 발걸음이 한결 가볍기만 했다.

로터리를 지나려는데 이것은 또 어인 풍경이란 말인가?
내 마음에 들리던 꽃들의 속삭임이 아직도 들리는 듯한데 로터리 한가운데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흐뭇한 마음도 보너스로 주어진다.
 누구의 손길일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로터리 가운데 큰 시계탑을 중심으로 빙 둘러 꾸며놓은 시골풍경은 작은 마을을 축소시켜 옮겨 놓은 것 같다.
지게 위에 넘치듯 흘러내린 나팔꽃덩굴, 반쯤 깨어진 대형 항아리 속에 누렇게 익어 가는 벼이삭과 피에로 옷차림을 한 허수아비의 익살스런 표정도, 그 옆으로 조그맣게 만들어 놓은 담 위에는 기왓장도 올려져있고 그 아래는 올망졸망 여러 개의 항아리를 모아 놓은 장독대도 있고 그 곁에서 누렇게 익어 가는 커다란 늙은 호박 한 덩이가 나의 마음을 풍요하게 했다. 건강하고 튼 실한 토란줄기와 우아하게 하늘을 향해 쫙 펼쳐진 우산 같은 토란잎은 바라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그 옆에 나의 몸을 살짝 옮겨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얄팍한 지갑을 들고 장보러 가던 무겁던 발걸음은 가벼운 발길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콧노래도 흥얼대고 있었다. 거리거리마다 가꾸어 놓은 꽃들과 시골의 소박하고도 풍요한 모습을 그대로 재연해 꾸며 놓은 그 손길들 위에 감사와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

2004년 4월 5일 월요일

어머니의 소원(납골당)


이번 한식날은 3일 동안 선산 조상의 묘소를 재정비 한다고하니 우리 은두씨 죽어났다 생각하며 함께
충주에 갔다.
새벽길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길을 달려서 충주에 당도하였다.
1시간정도 눈을 붙이고나니 비가 끝이고 화창했다.

아침7시 산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또 시어머니 시아버지 묘소를 합장하기 위해서였다.
40년, 20년전 돌아가셨다는 조상님들을 어머니께서는 
늘 자주 찾아 뵙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으셨다는 말씀이다.
시부모님을 그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삶이 이렇게 숙연한 것임을 보았다. 

당신도 머지않아 가야하는 길 미리미리 생각했던 일을 이루고 싶다는 그뜻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어머니의 시어머니는 살아 생전에 화장 해줄것을 원하셨다고하신다. 그 뜻을 당신 살아서 이루고 싶으신것 이었다.

묵묵히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이는 은두의 모습도 참 예쁘고 기특하다.
착하고 곧고 바른 성품을 보니 괜찮은 남자다.

두 분을 화장하여 합장하여 산에 뿌리는 의식을 했다.
글쎄... 
이런 의식이 뭐 그렇게 중요 한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홀가분하고 소망하던 일을 마무리해서 지금 죽어도 조상들에게 떳떳한 기분도 든다고 하셨다.
올해가 윤2월이라서 어른들 수의도 만든다고 들하고 이장도 많이들 한단다.
모든 일이야 전문인들이 도와주었지만 내 은두는 너무 힘들었겠다.
일을 마치고 유언처럼 말씀하시는 어머니 말씀은 당신은 돌아가신 후에 화장하여 납골당에 있고 싶다고 하셨다.

후손에 다음 세대에는 누가 이곳 먼 산에 찾아 올 수 있느냐는 말씀이다.
참석하신 어른들과 어머니와 상의하여 훗날 4촌까지 함께 가족 납골당을 마련하자는 의견에 모두들 찬성하며 돌아왔다.
독백처럼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나는 망령은 나지 말고 살아야지..."

이장과 화장을 하는 동안 어머니와 산나물 정말 많이 띁었다.
달래, 냉이, 민들레, 씀바귀, 취나물.... 

산에서 내려와 옛날에 살던집이라며 그 주변에 노랗게 올라오는 잎사귀도 없는 식물이 머위꽃 이라며 알려주셨다. 이웃 어른들에게 인사를 시키며 집집을 모두 방문하며 산을 내려왔다. 아마도 거의 친척같은 분위기였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이웃과의 끈끈한 추억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양은 대접에 떠주는 색깔이 누런 식혜도 마시고 주먹만한 누릉지도 얻어들고 내려오면서 먹었다.
순박하고 가식없는 어른들이 정겹고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 은두는 말한다.

"엄마는 살아생전에 소원이 막내 이모까지 모두 먼저 하늘나라 보내고 마지막으로 천당 가고 싶으시다더라. 우리 엄마는 꼭 그렇게 될거야. ㅎ~
돌아오는 윤년에는 가족 납골당을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