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5일 화요일

당신 많이먹어



그 옛날 외동 딸이셨던 엄마는 식성이 까다롭기도 했지만 특히 과일을 싫어하셨다. 수박은 수박 특유의 냄새가 싫다고 하셨고 참외는 먹고 나면 어지럽다고 하셨다. 사과는 신맛이 싫고 포도는 송이에 유충이 붙어있는 것 같아 싫다고 하셨다. 복숭아는 털이 있어서...어떤 이유라도 붙여가면서 안 드셨다.
채소과일 토마토는 설탕을 버무려서 드셨을 정도다. 유일하게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은 연시, 홍시 뿐 이였다. 그러니 가을을 좋아하셨다.
변비가 몹시 심했던 엄마를 염려 하면서도 아버지는 가을부터 겨우내 연시를 떨어뜨리지 않고 사다 나르셨다.  

"당신 많이 먹어!"

아버지가 엄마에게 늘 하시던 참 정겨운 말이다.
관장을 해 주시면서도 홍시를 사다나르시는 아버지와 변비로 고생을 하면서도 엄마는 참 맛있게 드셨다.
홍시를 앞에놓고 나도 듣고싶은 말이다.

"당신 많이먹어!"






2013년 1월 12일 토요일

웃고싶어



하얀 목련꽃 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던 날 누가 자꾸만 휴지를 버리느냐고 말하던 아이가 30을 넘겼다.
파릇한 새싹들의 속삭임도 봄날의 따스함도 뜨겁고 강렬한 여름날의 열정도 나와는 관계없는 메마른 감정으로 변색된지 이미  오래전이다. 
컨디션 최상이면 황사 날아드는 가을날이고 그 나머지는 영하 20도의 바람까지 불어대는 차가운 마음속에는 한강보다 더 긴 줄기의 강물이 흐른다.
나의 꿈, 나의 희망, 나의소원까지도 어느새 어디론가 달음질쳐 떠나버린 세월앞에 엉켜버린 실타래를 앞에놓고 실처럼 가느다란 한가닥 소망 로또를 한장 구입했다.
환갑까지는 살고싶은데... 
한번만 활짝 웃고싶다.

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비오는 날의 수채화


밤낚시를 한다기에 동장군이 오기전에 마지막으로 따라나선 가을 밤낚시.
이천 낮선 개울가에서 밤낚시를 한다고 짐을 풀었다.
자정이 가까운데 낚시 2대를 펼쳐놓고 올갱이가 나왔는지 조사한다며 랜턴을 들고 혼자 저 멀리 사라져간다.

"나만 믿어~~"

무섭다는 나에게 한마디 해놓고...흐~미!
물흐르는 소리는 점점 음산하게 들리고 풀 벌레소리 또한 너무 신경쓰인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모든 상황이 난 무섭다.
겁먹은 목소리로 아무리 불러보지만 물소리 때문에 안들리는지 점점 멀어져간다.
휴대폰을 열고 카메라셔터를 이리저리 눌렀다.
낚시 캐미 작은 불빛만 보일듯 말듯 반짝인다.
가끔 언덕위로 자동차가 주춤하면서 지나가면 더욱 가슴이 덜컹거린다. 
행여나 차가 멈춰서서 사람이라도 내리면 어떻하지?
다시는 따라오지 말아야지를 수십번도 더 되뇌인다.
공포의 시간이 한참 지나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올갱이 한움큼과 손 바닥만한 빠가사리를 손으로 잡았다며 자랑스럽게 나타나서 랜턴 불빛을 비춰 보여준다.
소리없이 울고있는 내 얼굴을 비춰 보더니 하는 말이 걸작이다.

"모자 썻는데 왜 얼굴만 비에 젖었니?"

"아~ 혹시 이런것도 이혼의 사유가 될까?"

나의 기분 상관없이 천진스럽게 비오는날의 수채화 노래를 부르며 낚시대를 접는다.
음~그래! 마음을 돌리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그대로 행복하라고.
비오는날 컴컴한 밤에 나는 한폭의 수채화를 그렸다고 나의 뒤틀린 심보를 위로하기로.



2012년 8월 26일 일요일

더덕



울타리에 더덕꽃이 많이도 피었다.
올해도 사진 한장 남기지 않고 그냥 지나칠것 같은 느낌이들어 배터리도 얼마남지 않았건만 휴대전화로 한컷 찍었다.  
컴텨에 사진을 옮기며 잠시 들러본 블로그가 너무 썰렁했다. 
블로그 활동을 중단한지 2년은 훨씬넘은것 같다.
싫증나기도 했었고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블로그에 흔적이 없으니 허전하다.
더덕꽃과 함께 다시 블로그를 시작해야 할까보다.

2012년 5월 20일 일요일

남의 탓


남의 탓

 

5월 향기가 대단하다. 길가에 앉은뱅이 가로수 쥐똥나무 흰색 꽃이 눈과 코를 즐겁게 한다. 다글다글 핀 하얀 꽃이 지면 꽃송이만큼의 작은 열매가 열리고 가을이 되면 열매는 검게 익는다. 그 열매가 쥐똥같이 생겨서 쥐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산과 들, 골짜기에서 자라던 나무가 언제부터인가 도시의 도로변이나 도심공원에서 단정하게 이발하고 조경으로 환영받는 나무가 되었다. 매연 속에서도 잘 견디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편은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서 조금 늦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지인이 경영하는 오리농장으로 출발했다. 아직은 모임이 끝날 시간이 안 되었는데 전화벨이 울리고 비밀 이야기를 하듯 작은 목소리로 질문한다.

 

여보 그거 있잖아 길 가다가 당신이 좋아하는 향기 나는 나무 구청에서 나온 분들이 이발시키던 짱구 농장 울타리 나무 이름이 뭐지?”

이발 한 나무? 쥐똥나무?“

 

지난해 봄에도 그곳 울타리에 심어져있는 쥐똥나무 꽃향기가 참 좋았었는데 모임 친구들이 향기에 취해서 이야기들을 하는가 보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남자들의 토론은 각자 동의보감을 쓴 허준 선생 역할을 하는 듯했다. 피 토하고 피 똥 싸는 사람에게 쓰인다는 한약 재료라며 조금 전에도 알았었는데 나무 이름이 생각 안 난다며 큰 목소리로 말하는 친구를 향해 남편은 더 큰 목소리로 쥐똥나무라고 알려준다. 꽃향기에 취해서일까 한잔 술에 취해서일까 듣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들만 있는 듯 말과 말이 뒤엉킨 채 무척 즐거운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직 초저녁인데 전화벨이 울리고 15분 후에 아파트 입구로 택시비 가지고 나와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의 전화가 끊겼다. 아직 귀가할 시간이 아닌데 혹시 농담인가? 하는 생각으로 전화 확인을 해보니 같은 말을 한다. 언젠가 지갑을 잃어버린 후로는 음주 후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결심이 각인된 그이의 멘트다.

 

"택시비가 없어요. 짱구 엄마가 콜 불러서 나 먼저 집에 가라네. 나 지금 택시 탔어."

 

아파트 안으로 택시가 들어오려면 절차가 여간 복잡하지 않기에 큰길가로 나가서 마중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만치 택시가 잠시 섰다가 내 앞을 지나가기에 큰소리로 부르니 택시가 섰다. 창문이 마침 열려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기사님에게 나는 죄인이 된 것처럼 눈치를 보며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몇 차례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추스르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기사님 돈 벌러 빨리 가셔야 하니까 얼른 내려와요."

 

안쓰럽게 그이와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그이의 술 취한 모습이 너무 창피하다. 술 취한 사람은 목소리가 크다. 말도 많이 한다. 한말 또 하고, 다시 또 하고 시스템이 그 자리에 멈추나 보다. 관리실을 지나치려니 창피해서 죽을 맛이다. 최대한 빨리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했기에 우는 아기 달래듯이 꼭 안고 들어왔다. 거의 인사불성 상태에서도 신종플루 때문에 손을 닦아야 한다고 떠든다. 크게 앓는 소리, 신음 소리,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가 걱정이 될 정도로 가슴을 주먹으로 친다. 그 주먹을 부여잡아 저지하면서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 발을 대충 닦이며 혼잣말을 한다. .

 

술 깨고 나서 피 토하고 피 똥 싸면 약에 쓰려고 쥐똥나무 토론들을 했어요? 이런 날이 또 있으면 발가락부터 닦이고 손 닦이고 마지막에 입 닦아 줄줄 알아요. 녹음기 어디 있지? 녹음을 해 놓아야겠어!“

 

한 성질 하는 꼬챙이 같은 성격에 취중에도 자신의 주사를 증거로 남기기는 싫었는지 조용해지더니 잠들었다. 칡즙 들깨 찹쌀을 넣고 죽을 끓여 이른 아침 속을 달래 주었다. 절대로 잔소리는 안 하려고 했지만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은 남의 탓을 했다.

 

"허물없는 사이에 당신 술 약한 것 알면서 잠간 쉬게 하고 정신이 들면 보내주지 인사불성인 사람을 택시 태워 보내면 어떻게 해? 짱구엄마 정말 섭섭하네."

 

그이는 아무런 말이 없다.

남의 탓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