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6일 일요일

더덕



울타리에 더덕꽃이 많이도 피었다.
올해도 사진 한장 남기지 않고 그냥 지나칠것 같은 느낌이들어 배터리도 얼마남지 않았건만 휴대전화로 한컷 찍었다.  
컴텨에 사진을 옮기며 잠시 들러본 블로그가 너무 썰렁했다. 
블로그 활동을 중단한지 2년은 훨씬넘은것 같다.
싫증나기도 했었고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블로그에 흔적이 없으니 허전하다.
더덕꽃과 함께 다시 블로그를 시작해야 할까보다.

2012년 5월 20일 일요일

남의 탓


남의 탓

 

5월 향기가 대단하다. 길가에 앉은뱅이 가로수 쥐똥나무 흰색 꽃이 눈과 코를 즐겁게 한다. 다글다글 핀 하얀 꽃이 지면 꽃송이만큼의 작은 열매가 열리고 가을이 되면 열매는 검게 익는다. 그 열매가 쥐똥같이 생겨서 쥐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산과 들, 골짜기에서 자라던 나무가 언제부터인가 도시의 도로변이나 도심공원에서 단정하게 이발하고 조경으로 환영받는 나무가 되었다. 매연 속에서도 잘 견디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편은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서 조금 늦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지인이 경영하는 오리농장으로 출발했다. 아직은 모임이 끝날 시간이 안 되었는데 전화벨이 울리고 비밀 이야기를 하듯 작은 목소리로 질문한다.

 

여보 그거 있잖아 길 가다가 당신이 좋아하는 향기 나는 나무 구청에서 나온 분들이 이발시키던 짱구 농장 울타리 나무 이름이 뭐지?”

이발 한 나무? 쥐똥나무?“

 

지난해 봄에도 그곳 울타리에 심어져있는 쥐똥나무 꽃향기가 참 좋았었는데 모임 친구들이 향기에 취해서 이야기들을 하는가 보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남자들의 토론은 각자 동의보감을 쓴 허준 선생 역할을 하는 듯했다. 피 토하고 피 똥 싸는 사람에게 쓰인다는 한약 재료라며 조금 전에도 알았었는데 나무 이름이 생각 안 난다며 큰 목소리로 말하는 친구를 향해 남편은 더 큰 목소리로 쥐똥나무라고 알려준다. 꽃향기에 취해서일까 한잔 술에 취해서일까 듣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들만 있는 듯 말과 말이 뒤엉킨 채 무척 즐거운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직 초저녁인데 전화벨이 울리고 15분 후에 아파트 입구로 택시비 가지고 나와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의 전화가 끊겼다. 아직 귀가할 시간이 아닌데 혹시 농담인가? 하는 생각으로 전화 확인을 해보니 같은 말을 한다. 언젠가 지갑을 잃어버린 후로는 음주 후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결심이 각인된 그이의 멘트다.

 

"택시비가 없어요. 짱구 엄마가 콜 불러서 나 먼저 집에 가라네. 나 지금 택시 탔어."

 

아파트 안으로 택시가 들어오려면 절차가 여간 복잡하지 않기에 큰길가로 나가서 마중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만치 택시가 잠시 섰다가 내 앞을 지나가기에 큰소리로 부르니 택시가 섰다. 창문이 마침 열려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기사님에게 나는 죄인이 된 것처럼 눈치를 보며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몇 차례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추스르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기사님 돈 벌러 빨리 가셔야 하니까 얼른 내려와요."

 

안쓰럽게 그이와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그이의 술 취한 모습이 너무 창피하다. 술 취한 사람은 목소리가 크다. 말도 많이 한다. 한말 또 하고, 다시 또 하고 시스템이 그 자리에 멈추나 보다. 관리실을 지나치려니 창피해서 죽을 맛이다. 최대한 빨리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했기에 우는 아기 달래듯이 꼭 안고 들어왔다. 거의 인사불성 상태에서도 신종플루 때문에 손을 닦아야 한다고 떠든다. 크게 앓는 소리, 신음 소리,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가 걱정이 될 정도로 가슴을 주먹으로 친다. 그 주먹을 부여잡아 저지하면서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 발을 대충 닦이며 혼잣말을 한다. .

 

술 깨고 나서 피 토하고 피 똥 싸면 약에 쓰려고 쥐똥나무 토론들을 했어요? 이런 날이 또 있으면 발가락부터 닦이고 손 닦이고 마지막에 입 닦아 줄줄 알아요. 녹음기 어디 있지? 녹음을 해 놓아야겠어!“

 

한 성질 하는 꼬챙이 같은 성격에 취중에도 자신의 주사를 증거로 남기기는 싫었는지 조용해지더니 잠들었다. 칡즙 들깨 찹쌀을 넣고 죽을 끓여 이른 아침 속을 달래 주었다. 절대로 잔소리는 안 하려고 했지만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은 남의 탓을 했다.

 

"허물없는 사이에 당신 술 약한 것 알면서 잠간 쉬게 하고 정신이 들면 보내주지 인사불성인 사람을 택시 태워 보내면 어떻게 해? 짱구엄마 정말 섭섭하네."

 

그이는 아무런 말이 없다.

남의 탓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2012년 5월 6일 일요일

어린이날

날씨가 눈부시게 화창하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목소리 크~게, 노래 부르던 유년의 그날들이 그립다.
눈꺼풀이 저절로 감길만큼 눈부신 이 좋은 날씨에 어이하여 홀로 앉아 외로움을 곱씹고 있는고!.
라일락 꽃잎이 휴지조각 처럼 떨어진 유치원 담 모퉁이를 돌아서니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어느 드라마에서 라일락 향기를 개미 똥 냄새라고 했었는데... 개미 똥은 어디가면 볼 수 있을까? 개미 똥 냄새가 정말 라일락 향기 일까? 별것이 다 궁금하다.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는데 벌써 그럴 나이가 된 것일까? 오늘 어린이날 선물을 받고 싶다고 낭군에게 전화를 걸어 투정을 부리다가 정신 차리라고 호통만 들었다. 
으~하하하~~~
아~오월! 
아카시아 꽃향기를 기다리는 오월에는 나의 사랑하는 두 딸의 생일이 들어 있다.
해산 달이라서 몸이 더 못 견디게 지치고 찌뿌둥 한가보다.
맥없이 헤메는 나의 정신줄을 점검하자. 
황혼을 준비 하면서...
위하여... 
아자! 아자!

2010년 11월 2일 화요일

아침 발기를 일으킨다 해서 조기라고



길을 지나는데 영광굴비를 싣고 영광에서 오늘 올라왔다며, 영광굴비 오늘만 만원이라고 발걸음을 멈추게한다. 그런데 사실은 매일 그자리에서 장사를 하는것 같은데 오늘도 오늘 하루라고 소리친다. 
시간이 바쁘지 않기에 기웃거렸다.
이쪽은 만원, 요쪽은 2만원, 요놈은 한마리에 만원...
그럼 그렇지.
만원짜리는 황새기 수준이다.
녹음된 목소리로 오늘만 만원이라고 외치는 성우 수준의 바리톤 목소리와는 달리 나이 지긋하신 분이다. 봄볕에 그으른 검은 얼굴과 거친손, 고희는 족히 지났을것 같은 모습이다.
유난히 생선을 좋아하시던 엄마때문에 학교 다닐때 생활기록부에 내 장래희망을 생선장사 라고 썼다가 선생님을 폭소하게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살짝 웃음이났다.
엄마가 좋아하던 엄마방식의 물고기이름, 조기새끼를 엄마 방식으로 조리해서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샀다.

조기는 맛이 좋은 것 만큼이나 영양가도 높다. 
비타민 A, B, C는 물론이고 칼슘, 인, 철 등이 고루 함유되어 있어서인지 심신을 안정시키고 설사를 멈추며 눈을 밝게 해준다. 그뿐이 아니다.
조기는 아침 발기를 일으킨다 해서 조기라고 부를 정도로 영양있고 약효가 있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조기는 구이, 찜, 조림 등 어떤 방식으로 조리해도 맛있어서 좋아하는데 좀 비싸서...
조기의 염건조품 굴비는 영광굴비가 유명하다.

2010년 9월 23일 목요일

콩쥐 팥쥐

할머니가 한강을 건너 사대문안에 사시던 작은아버지 댁에 가시면 언제나 맛있는 과자와 쵸콜릿 사탕을 가지고 오셨다. 그날도 연년생인 언니와 나는 긴 봄날을 울타리 밑에서 소꿉놀이를 했다. 빨간 벽돌을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고 들풀을 짓이겨서 김치를 담그고 흙으로 밥을 지어놓고 할머니가 오시면 드리겠다고 하며 놀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소중하게 접은 베 보자기를 주시며 들고 있으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언니를 우물가에 데리고 가서 얼굴과 손을 닦여 손을 잡고 오셨다. 그리고 나는 얼른 가서 혼자 닦으라는 것이었다. 몸이 약했던 언니는 공주 대접을 받으며 그렇게 보호를 받고 자랐고 나는 늘 무수리가 되어 심부름을 해야했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했다. 먹거리가 있을 때면 좋은것은 언니 먼저고 많은 것은 항상 언니 몫 이었다. 연년 생으로 태어나 젖을 미리 빼앗아 먹어서 언니는 약하고 나는 살이 탱글탱글 쪘다며 언제나 나의 차지는 나중이었고 조금이었다.

세수를 하고 돌아오니 베 보자기에 있던 그 큰 사탕을 게눈 감추듯이 다 먹었냐고 야단을 치시는 것 이였다. 나는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는데 욕심쟁이가 되어있었다. 꿀돼지가 되어있었다. 저지르지 않은 잘못을 빌고있는 두 손위로 후드득 눈물, 콧물이 떨어졌다. 베 보자기에 싸여있던 길고 가느다란 막대기로 내 작은 그 손등을 톡톡 때리는 할머니가 정말 미웠다.
할머니가 베 보자기에 싸 가지고 온 것은 솜사탕이었다.
얼마나 야속했었던지...

그렇게 언니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은 20년이 넘도록 한결같았다. 우리는 자라 어느 듯 어른이 되었고 언니는 결혼을 했다. 할머니는 언니가 언제 올지 손꼽아 기다리셨고 언니는 용돈도 풍족하게 드렸고 할머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해드렸다. 함께 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고 부모님에게보다 더 애틋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언니처럼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았고 할머니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던 10월의 어느 날 83세 할머니는 백도복숭아가 잡숫고 싶다며 올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한동안 오지 않는 언니를 무척 기다리셨다. 기다리는 모습이 나의 마음까지 쓸쓸하게 했다. 나는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대문에 들러 백도 3개 샀다. 할머니는 너무나 맛있게 2개를 잡수셨다. 한 개를 남기시며 이렇게 말씀 하셨다.
"내가 널 많이 기다렸어, 복숭아가 먹고싶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할머니는 나를 언니로 착각하고 계셨다.

"애야~ 늬 동생 시집 좀 보내라 시집갈 준비 다해놓았는데 계집애가 핵교만 맨날 왔다갔다하니 복숭아 살 돈도 없지, 늬가 준 돈으로 내가 복숭아 사먹으면 되는데 저 불쌍한 것 시집갈 때 줄라고 돈 통을 막아버렸어."

화초장 안에서 꺼내 보여주는 반짇고리와 열어 볼 수 없도록 수 십 차례 돌려 묶은 검정 고무줄 끈을 풀어 열어본 작은 경대 안에는 차곡차곡 모아놓은 많은 지폐가 있었다. 그 중에는 이미 바뀌어 쓸 수 없는 화폐도 있었고 금붙이들도 여러 종류 있었다. 자식들과 언니가 올 때마다 주고 간 용돈이나 선물들 같다. 내 혼수 준비를 하셨다는 말에 울컥 목이 메었다. 내리사랑의 평범한 진리를 곡해하고 살아온 못난 자신이 죄인처럼 느껴졌다.
할머니를 꼭 안아 보았다. 너무 작고 앙상한 몸은 내 품에 쏙 들어왔다. 아마도 마음먹고 안아본 것은 살면서 처음인 것 같았다.

"할머니 똥싸지 않을 거지?. 건강하게 살아야해, 알았지? 내가 할머니한테 이제 잘 할게. 알았지?"

다음날 아침 화장실 변기 머리 동그란 부분에 얼굴을 대고 잠드셨다.

철들자 망령 난다는 옛말이 있다.
효도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말도 있다.
요즘은 있을 때 잘해 라는 말도 있다.
할머니께서 복숭아를 못 드셨으면 나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날 그 작은 몸을 꼭 안아보지 못했다면 내 마음이 얼마나 쓰렸을까.
할머니에게 단 한번 만이라고 공주가 되고싶었던 어린날의 추억이 내게도 있었다.

할머니 올해가 쥐띠 해라는데 올해 나는 사랑 받는 팥쥐 할까, 착한 콩쥐 할까?
할머니 그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