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전 날이다.
이사 날짜가 잡힌날 하필이면 몸도 욱신욱신하고 감기가 오려는지 코가 맵다. 집수리를 한다고 엉망이고 괴로워하는 나를 그이가 24시 불 가마에 내려주고 갔다. 뜨겁게 목욕하고 마사지도 하고 찜질 방에 불 가마에 pc 방에 식당에 이곳저곳 들여다본다. 이사 해놓고 정리되면 데리러 올테니 편히 쉬란다.
착한 사람.
여기저기 사람들이 누워있다.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도 피운다.
몸이 개운 하려고 하루종일을 불 가마에서 지낸다는 사람도 있고 불 가마 회원이라며 일주일에3회 온다는 불가마 회원들은 남편 흉보기에 웃음을 참지 못한다.
나처럼 혼자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말할 사람도없고 오래도록 있으려니 개운하기는커녕 손으로 이불호청 돌려 짜놓은 것처럼 몸이 뒤틀리는것 같다. 저녁이 되니 나가고 들어오고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다.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눕는 사람들이 늘어가는데 더러는 잠을 자기위해서 들어오는 사람들 같았다.
나도 TV가 잘 보이는 장소로 옮기어 자리를 잡았다.
모두들 여기저기 누워 잠을 청하는데 혼자라서 벌러덩 눕기가 더욱 쑥스럽고 민망하다.
옆자리에 사내아이를 데리고 가족인 듯 세 식구가 자리를 잡는다.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눕고 내 옆쪽으로 어린이가 앉아서 쥐포를 먹는데 꼬릿한 비린내가 심하다.
내가 싫어하는 냄새다. 그러나 혼자 눕기 민망한데 가까이에 어린이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누워 TV를 주시했다. 얼마 후 어린이가 잠이 들고 두 사람은 일어나 아이 가슴에 수건을 포개어 덮어주고 매점에서 캔 맥주. 김밥, 오징어 ,스낵 과자를 사다 펼쳐놓고 맛있게 먹고 마신다. 나는 한번도 못해 본 광경이라 부럽다.
시간이 지나면서 누워있던 다른 사람들이 조용히 잠들어가고 간혹 기침소리도 들리고...
채널이 고정되어 있는 재미없는 TV는 혼자 떠들고 있다.
나는 이유가 있어서 작정하고 들어왔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내일 직장은 어쩌려고 여기서 밤을 보내는지 궁금했다. 옆자리에는 아직도 맥주를 마시고 있다. 참, 많이도 먹는다. 미안하긴 하지만 궁둥이를 그쪽으로 내밀고 돌아누웠다. 잠은 오지 않고 누워있으려니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닌데 그들의 말을 다 들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처음엔 부부인줄 알았는데 이야기 내용은 부부가 아니다. 술이 거나해진 여자는 계속 말하고 남자는 대답만 한다.
'자기야! 난 10년 동안 너무 착하게 살은 것 같애. 다른 것은 몰라도 자기한테만은 착했어. 내가 자기 명령을 거역한 적 한번도 없었지? 자기 마누라 보다 내가 자기를 더 많이 사랑하고 복종한다는것 내가 자부하는 건 그거야.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 안 그래? 말해봐!"
'그래..'
"참 세상 불공평해. 요즘은 쎄컨드로 살면서 연하 애인없고 외제차 없고 집 없으면 세상 헛 산거라는데 나는 자기밖에 없잖아! 자기는 나도 있고 마누라도 있고...자기는 나한테 잘해야돼!"
마누라 있는 남자 곁에서 불공평하게 10년을 복종하며 산다는 자기 푸념을 섞어 앙 탈을 부리는 것이다.
아무 말이 없는 남자의 표정이 궁금해지기에 용기를 내어 돌아누웠다.
남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겸연쩍은 듯한 표정으로 자고있는 아이를 번쩍 안고 잠자는 방이라는 팻말이 걸린 쪽으로 걸어 간다.
"자기야! 그냥 여기 있자. 자기야~자기야!"
남자는 여자를 힐끗 쳐다보고는 그냥 걸어갔다.
저 말없는 남자가 10년 동안 자기라고 불러주는 여인의 앙 탈을 들어주는 동안, 아이가 커가는 동안 그 마누라는 알고 살까, 모르고 살까. 별것이 다 궁금하다.
이삿짐 정리를 하다가 불 가마의 하루를 기억한다.
남자 등뒤에 대고 부르던 그녀의 콧소리 섞인 "자기야! 자기야!" 그 단어가 별안간 느끼해 진다.
혹시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라면? 내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처신을 해야할까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자꾸 연결 해보고 있다.
요즘 드라마를 보더라도 막장드라마다, 불륜이다, 내연녀다, 숨겨놓은 자식이다 이런 스토리들이 어제오늘 갑자기 일어난 일들은 아니건만 짧은 일생 나이가 들어갈수록 헷갈린다.
오늘아침 남편 출근길에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여보! 다녀오세요."
남편 하는 말,
"와 이라는데, 평소대로해라. 겁난다."
"잘못있으면 겁나야지."
"대체, 뭔 헛소리고, 아침 먹은 빵이 상했었나?"
될수있으면 '자기'라는 호칭은 쓰지 않기로 했는데 여보라는 호칭에 갸우뚱하는 그이 고개짓에 내 얼굴이 화끈했다. 안 하던짓 하려니 쑥스러워 원래대로 다시한번.
"자기야! 일찍 들어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