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0일 수요일

오빠생각



막내 오라버니가 보고싶어서 모두 잠든 새벽시간에 주체 할 수없이 눈물이 흘렀다. 생활력이 없어지고 가끔은 가족들로부터 무시당하고 힘들어하고 일 을하고 있는 시간을 무척이나 즐거워하던 그 모습 너무 그립다. 오빠만은 내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더욱 그립다.

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몸도 에너지가 떨어지면 멈춰버리고 만다. 에너지가 고갈된 지친 육신이 나를 힘들게 한다. 머리로는 무엇이든 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남겨놓은 에너지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으니 모두가 올스톱이다. 
재충전을 해야한다고 충전의 시간이라고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나에게 최면을 걸 듯이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허무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길기만 하다.

누가 말했나. 삶은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만끽하는 것이라고,
천천히도 걸음걸이를 시작해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만끽도 달리기도 첫발을 떼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 
마음만 급하다.

2007년 10월 6일 토요일

일용할 양식


내 귀에 들리는 음악이 왜 이다지 슬픈 것일까.
아니, 기쁨을 맛 본지가 그 언제였던가! 하나님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오늘도 무엇을 먹을까 걱정한다.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이다니 대체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 엄마 맞아?
이렇게 아픈것은 뜻대로 살지 못한 벌이다.
오늘은 몸이 더욱 무겁다.
마음은 언제까지 무거울 것인가.
잠 속에 나를 가두고싶다.
자유하고 싶다.

2007년 10월 5일 금요일

은행나무와 달팽이

지난해 가을 비바람이 휘몰아치며 지나간 다음날 아침 매일 나가던 걷기 운동이 망설여질 만큼 너무 쌀쌀했다. 10층에서 내려다보는 공원 은행나무 아래는 은행잎이 떨어져서 전체가 노랗게 보였다. 요즘은 공원이나 길가 가로수로 여러 그루의 은행나무가 심어져있다. 그 중에 제일 큰 은행나무 아래는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가을이면 소일거리로 그곳에서 은행을 줍는다. 봄부터 그곳은 동네 다섯 분 할머니들의 아지트가 되었지만 그날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비 한번 내리면 저 은행들이 많이 떨어질텐데..."
갑자기 은행을 줍던 할머니의 말이 생각나서 그곳에 가 보기로 했다.
둘째 아이 태몽이 생각난다. 살구나무 아래 탐스런 주홍색 살구가 땅이 보이지 않게 많이 떨어져 쌓여 있었다. 나는 광주리에 담아 큰 방안에 채웠다. 문도 열 수 없도록 채우고 작은 창문을 열고 그곳으로 방안 가득 천장까지 채웠다. 너무 흡족하고 행복했던 살구나무아래의 풍경은 떠올릴 때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그런데 은행나무 아래에 펼쳐져 있는 살구처럼 생긴 은행 열매의 실체를 보는 순간 태몽에 보았던 그 진풍경을 실제로 보는 느낌이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딸아이에게 전화하여 와서 보게 했다. 태몽 이야기를 해 주었건만 별 흥미가 없는지 "이건 살구가 아니고 은행이잖아?"하며 그냥 웃으며 가버린다.
원산지가 중국인 은행나무는 화석식물로 침엽수 중에서 가장 미 진화 식물로 알려져 있다. 암, 수가 서로 마주 보아야 열매를 맺는 독특한 생리를 가지고 있어 사랑하면서도 함께 결합하여 살지 못하는 불행한 남녀에 비유하여 "은행나무 격"이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은행열매의 모양도 숫컷은 세모꼴이고 암컷은 두모꼴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암수 구별은 잎 모양을 가지고 구별한다는 일설도 있다.

은행나무는 염분이 있는 토양이나 조 풍에는 약하지만 대기오염에 대한 저항성도 강한 편이며 수 체 내에 독특한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병에도 잘 걸리지 않고 해로운 해충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도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제주도 및 해변을 제외한 전국에 분포되어있으며 도시의 가로수로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은행나무는 노거수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는 천년이 넘는 것으로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하여 보호되고 있다. 나도 몇해 전 직접 그곳에가서 보았는데 링거를 맞고있는 은행나무를 보면서 그 둘레에 입이 벌어졌었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겨 사원, 사당, 문묘 등에 암나무와 숫나무를 마주 심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에도 은행나무의 노거수는 사찰이나 향교, 부락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전해지는 전설로는 신라가 패망하여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던 중 짚고 가던 지팡이를 이곳에 꽂아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은행나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열매가 은빛 나는 살구의 겉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은행목이라고 하고, 방화, 방풍의 구실을 한다하여 "화방은행, 화방목" 또는 물을 뿜는 "공손수, 안개를 뿜는 은행나무라는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고 옛 문헌에 기록되어있다. 여러 가지 이유나 뜻이 포함된 여러 이름이 있으나 보통은 은행나무라고 부른다. 가을에 노랗게 물드는 부채꼴 잎은 가을을 알리는데 한몫을 한다. 둥근 열매도 잎처럼 10월이 되면 노랗게 익는다.

오후가 되니 은행을 줍던 할머니 한 분이 오셨다. 다른 분들은 매일 많이 주워 가는데 할머니는 한쪽 팔이 마비라서 얼마 줍지도 못하고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할머니는 "세상에...세상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하셨다. 한달 동안 주워 모은 은행을 아파트 토요장날에 팔아 7.000원을 벌어서 신발을 사셨다며 신고계신 누런 단화를 가리킨다. 아침부터 저녁 해가 질 때까지 난 은행나무 아래에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그날은 아무도 그 곳을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 관심도 없는 듯 가버린 딸아이는 커피를 끓여 보온병에 담고 1000원 짜리 김밥 두 줄을 사서 배달해주더니 저녁에 다시 나타나서 할머니 집까지 냄새 지독한 은행 두 자루를 함께 배달해 주어 착한 딸의 면모를 과시했다. 나도 지퍼 백으로 한가득 가져온 은행을 닦고 말리고 하는 동안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얼굴이 퉁퉁 부은채 몸살로 일주일을 고생했다.
문제는 은행을 까야 먹을 텐데 집안에 연장 통을 다 동원하여도 방법이 만만치가 않다. 망치로 때리면 짓이겨지고 뻰찌로 누르면 뭉개지고 이빨로 깨면 잘 되는데 시원치 않은 이빨 망가질 까봐 조심스러워서 그만 두기로 했다. 안타까워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한다.

"몸살하고 옷 타고 별당 아씨 얼굴처럼 되어 고생했는데 버릴라 하면 눈물 날 테지만 허물 다 벗은 것으로 한 자루 사다 줄 테니 우리은행에(보관 냉장고)맡겼다가 꼭 필요한사람 주면 안 되겠나."

말 듣기로 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고 날씨가 더워지면서 우리은행도 손님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은행은 천덕 꾸러기 신세가 되어 드디어 퇴출대상 1순위, 밖으로 나온 후 며칠 지나니 축축해서 그런지 곰팡이가 하나 둘 피기 시작했다. 버리자니 벌받을 것 같고 차라리 욕심 내지 말고 그때 할머니를 모두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 봄날 결국에는 난이 죽어나간 빈 화분에 쏟아 부어졌다. 흙도 없는 화분에 쏟아 놓은 은행들이 다른 화초들 물줄 때 더부살이로 물을 얻어먹고는 어느 사이에 베란다 구석에 놓여있던 커다란 화분에 싹이 터서 수북하게 콩나물처럼 올라오더니 푸른 잎이 한 가득 이다. 너무 많이 올라오니 한쪽에서는 말라죽기도 하고 새싹이 또 올라오고 몇 백 개의 은행 알이 모두 싹을 틔우며 자란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물만 열심히 뿌려주고 있는데 오늘은 애기 달팽이도 한 마리 출현했다. 그 작은 몸에서 두 더듬이를 쭉 빼내어 더듬으며 기어가고 있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잎과 노랗게 익어 가는 은행을 보고 있어할 이 가을에 콩나물 시루에 콩나물 자라듯이 자꾸만 넘쳐 올라오는 저 은행나무를 놓고 고민을 해야 하다니 정말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2007년 10월 2일 화요일

감나무


 530일 우리 집 근처 뷔페식당 들어가는 길가에 내 키 만한 작은 감나무에 꽃이 피었다.



610일 감 꽃을 세어보니 정확하지 않지만 38송이다..



623일 꽃도 지고 감이 열렸는데 모두 떨어지고 9개뿐이다


8월1일 세 개 남아있는 감이 익어간다
신기하다.


101일 오늘 감나무에는 두 개의 감이 남아있었다.
여름 장마에 굵은 줄기 두개 중에 1개가 찢어졌다.
봄에 보도 블럭 교체공사를 하면서 뽑아 버리려고 하는 것을 살려 달라고 말했더니 공사하시는 분이 나무 아래를 네모 상자처럼 테두리까지 만들어 감나무 집을 만들어 주셨다. 줄기가 2개 뿐인 작은 나무지만 꽃이 피고 감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신기하다고 말했다
언제 없어졌는지 감나무 아래에 "눈으로만 보세요,"라고 써놓은 나무 팻말도 사라졌다
소용없는 짓 인줄 알지만 메모지에 이렇게 써놓고 왔다.

"지금은 익지 않았으니 따지 마세요."


주홍빛으로 익어 가는 두개의 감, 마지막까지 아무도 만지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