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6일 일요일

살며 사랑하며

"자기야! 일찍 와요."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바삐 서둘러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삶은 고구마를 호일에 2알 싸고 생수도 1병 가방에 넣었다.
강아지에게 배낭 목줄을 걸고 아파트 뒤편 얕은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동네친구를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지난번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후유증으로 팔도 자유롭지 않고 왼쪽 무릎이 시큰거렸는데 이렇게 걷기 운동을 해서인지 평지와 다름없는 산이지만 며칠 지났을 뿐인데 오늘은 거뜬히 오를 수 있다.

"자기야. 나 산에 올라왔어요. 땀났어."
"알았어."

"나 바로 내려갈 거야!"
"알았어."

"자기 요즘 밥 잘 안 먹더라....점심은?"
"먹었어."

"뭐 먹었어?"
"밥."

"반찬은?"
"개구리 반찬."

"아~하하하!"

내 웃는 모습을 본 친구는 입가를 약간 치켜올리고 눈을 대굴거리며 말한다.

"원...별 전화를 다 하는군. 전화요금 아깝지도 않으신가? 그런데 신랑이 뭐라고 했기에 넘어가게 웃어?"

"알았다는데..."

친구는 눈을 흘기며 팅팅 거리는 말투로...

"불가사의야! 불가사의...."


(늬가 나를 어떻게 알겠니...
그래 불가사이, 배신 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오늘이 마지막 이라는 마음으로 살면 사랑 할 수 밖에 없다.) 

2007년 5월 2일 수요일

엄마에게 가는길

살아생전 빨강 꽃,
가신 님께는 하얀 꽃,
들은 풍월은 있어서 빨간 카네이션 꽃송이를 만지작거리다가 하얀 카네이션 두 송이에 얌전하게 리본을 묶었다.
부모님께 가는 길, 한참을 달렸다.
 
힐끗 쳐다본 옆자리에 놓인 두 송이 흰색 꽃이 왜이리 쓸쓸할까.
마음이 횡 하니 허전하다.
가던 길 되돌아서 다시 그 꽃집으로 향했다.
빨강 노랑 분홍꽃 한아름 골라 꽃바구니에 채우고 연분홍 리본을 달아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래봐도 저래봐도 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다.
살아생전 잘할 것을...
곁에 계실 때 더욱 살갑게 할 것을...
 
부모님 무덤 가에 햇님의 뜨거운 눈빛을 피하고 싶은지 고개를 푹 숙인 자주색 할미꽃 한 송이가 피어있다.
소박하고 청순한 어머니의 모습 같아 만지지도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단장된 잔디를 괜스레 뜯어내며 꺽꺽대는 눈물바람도, 사실은 그리움 핑계 삼은 내 설움의 통곡이 더 크다. 기도하고 쓰다듬고 언제 다시 온다는 기약 없이 돌아섰다. 아마도 내 마음이 기쁠 때 보다 쓸쓸하고 외로울 때면 다시 찾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 언제 울었느냐는 듯 운전대를 잡은 손으로 박자까지 맞추며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그 다음은 모르는데도 끝이 안 나고 입 속에서 계속 돌고 돌아서 나온다.
내가 왜이래 하며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느새 다시 입에서 흥얼거리고있다.
껌을 씹어도 그 노래가 나온다.
밥 먹고 양치까지 했건만 또 나온다.
왜 이런 현상이 오는 걸까? 내 입 좀 누가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겟다.
늦게 귀가한 옆 지기가 말한다.
 
 
"비도 많이 왔는데 아버지 어머니 산소 잔디는 잘 정리되었던가? 함께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내 마음도 전했겠지?"
 
피곤해서 눈꺼풀이 감기는 사람을 붙들고 하루일과를 보고한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것도 엄마 같았어.
허리가 구부러진 것도 엄마 같았어.
반쯤 피어있는 꽃을 보면서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싶은 엄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
난 확실히 좀 부족 한가봐!
할미꽃이 엄마인줄 착각하고 꽃에게 말하고 꽃보고 울었어.
뜨거운 햇볕아래 다소곳한 그 모양이 어떻게 보였는지 알아?
당신하고 연애 할 때 집에 안 들어갔던 그날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봐
염려하며 뜬눈으로 밤 세워 기다리던 엄마의 모습 같았어."
 


"봐라~봐라!! 단편 이가, 장편 이가... 소설 그만 쓰고 자자.

2007년 4월 28일 토요일

남편의 핍박




운동을 해야겠다.
아프지 말자는 뜻이다.
며칠 전 운동한답시고 좀 무리해서 걸었더니 몸살이 났다.
남편이 하는 말,

"어째 방아깨비 뛰듯 하더라."

졸지에 난 방아깨비가 되었다.

"그냥 평소대로 해라. 여러모로 관찰해본 결과로 당신은 매미처럼 사는 것이 주변사람 도와주는 기라."

평소에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고 조용하라고 하더니 매미라고 한다.
주사를 잘못 맞았는가 보다.
궁둥이가 딱딱하게 뭉친 건지 부운 건지 너무 아파 뒤척이는 사람에게 이번에는,

"엄살 좀 그만 하고 퍼뜩 일나라. 굼벵이처럼 뭉그적거리기는...."

이번에는 굼벵이다.
굼벵이가 아니란 것을 보여주려고 벌떡 일어나서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었다.

"어데 가는데... 늬 갈곳이나 있나?"

대답도 않고 보란 듯이 집을 나섰지만 그이 말대로 딱히 갈곳이 없다.
홈플러스에 가서 검정 쌀 1봉지와 두부 두 모 사들고 걸어오다 계단 위에서 넘어졌다.
두부 깨질까봐 버둥대다가 굴러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

"두부를 뭉그러뜨리지 팔을 부러뜨리는 곰탱이가 어디 있나?"

나 원 참! 이번에는 곰탱이다.
나의 인내심을 실험하려는지 계속해서 핍박이다.


"사람이 걸을 때 궁둥이를 살살 흔들면서 리듬을 타야지 목도개비처럼 뻣뻣하게 걸으니 허구 한날 넘어지지, 태생이 도도해 가지고는...쯧쯧"

이번에는 생명도 없는 나무 도개비로 변신했다.
보란 듯이 다시 매미로 변신하련다.
깁스한 팔 때문에 에어로빅은 못 따라하겠지만 맨손체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으 싸~~ 우~쌰! "

mbc 짧은글 긴 웃음)
2007년4월27일 강석우, 양희은의 여성시대3부 시그널 맨트 방송.
 

2007년 3월 24일 토요일

취미와 특기

어린이 동아일보 주최 글짓기에서 초등학교5학년 때 금상을 받았을 때다. 
신문에 실린 내 글 아래에 윤 석중 선생님의 심사평 중에"하고싶은 말을 꾸미지 않고 아름답고 솔직하게 표현한 글이다."라고 칭찬하셨다.
상을 받고 온 토요일이 지나고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월요조회를 할 때 교장선생님의 칭찬은 나를 학교의 스타로 만들었다. 교실에 들어가니 또 담임 선생님의 칭찬으로 이어졌고 어린 이때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칭찬에는 고래도 춤춘다는 말처럼 그야말로 춤추듯 신나는 유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솔직히 란 것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통하지를 않았다.

내게 은 귀 게가 생긴 후부터 우리 가족의 귀는 내가 접수했다. 특히 막내 오빠는 하루에 한번은 무조건 내 무릎을 끌어다 베고 눕는다. 귀지가 없으면 그냥 간질여 라도 주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미국에 다녀온 오빠에게 미제 손톱 미용 세트를 선물 받고 난 후에는 취미는 한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옛날에는 손톱깎이가 없어서 가위나 칼로 손톱발톱을 깎았었지만 미제 손톱깎이 덕분에 그렇게 나의 취미는 두 가지로 고정되었다. 귀 파주고 용돈 받고 손톱 깎아 주고 용돈을 받았다. 안주고 넘어가면 치부책에 외상이라고 적어 놓는다. 약속을 안 지키면 울고 땡 깡을 핀다. 큰오빠와 20년 18년 15년 12년 막내 오빠와는 10년 터울이다 보니 자식 같은 동생에게 안 주고는 못 견디었다.
이렇게 자라서 중학생이 되었다. 학년초에 환경 조사 서를 써야했다. 취미 특기 쓰는 곳에 취미 귀 파주기, 손톱 깎아주기 특기는 울고 보채기라고 썼다가 선생님께 장난 쳤다고 야단을 맞았던 것이다. 손바닥 세대 맞고 억울해서 책가방도 그대로 두고 울면서 집에 갔다. 한쪽 눈에 망막이 늘어나 수술을 할 지경까지 울었었다. 엄마 말씀하시길 귀엽게도 안 키웠는데 어리광을 핀다는 말 한 마디 했다가 아버지에게 쫓겨 날 뻔 하셨다고 한다. 그러니 학교는 물론 발칵 했다. 눈이 찢어지도록 우는 아이가 취미가 뭐고 특기가 뭔지 장난으로 꾸며댈 수 있는 머리가 아니라는 지론을 피셨다. 좋게 말하면 순진한 것이고 심하게 말하면 딸이 좀 부족하다는 뜻이었을까? 선생님은 나의 눈 높이를 맞춰주지 못했던 것을 늘 미안하게 생각하셨고 내가 3학년 올라가는 해에 전근을 가셨다. 그리고 우리 큰아이가 중학교 입학했을 때 딸아이 학교에서 목사님이 되신 선생님을 30년만에 다시 만났다.

딸아이에게 선생님께서 취미를 물어보니 햄 통신이라고 말했고 특기는 첼로라고 똑 부러지게 대답하였다. 옛날에 비하면 대학생 수준의 대답이라고 말씀하시던 선생님, 지금은 하나님 나라에서 평안하시리라 믿으며 제 작년 작고하신 선생님을 잊고 살다가 오늘에서야 잠시 추억해 보았다.
 지금은 오빠가 아닌 남편에게 내세우는 귀 청소 손톱발톱 정리를 하다보니 취미이자 특기 거기에 또 한가지 사랑 받는 비결로 써먹고 있다.
남편 하는 말

"당신은 귀 간 지르는 것 말고 잘하는 거 아무 것도 없다. 그 기술 길이길이 보존해라."

 


2007년 3월 21일 수요일

갈등


 

나는 덩굴성 식물을 좋아한다.인내심도 강하고 끈기도 있어보이고 꽃 향기도 좋고....등등..찍어놓은 사진을 찾다보니 새콩, 하박쪼가리, 내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인동초도 있다. 작년에 찍은 등나무 꽃과 칡꽃을 찾아놓고 보다가 칡과 등나무를 골랐다.둘다 올리기로 했다.
나의 느낌만 그런지 모르겠으나 요즘 우리나라 정치계..... 모양새?를 보는것 같은느낌이다.   

갈등葛藤,
갈(葛)은 칡이고 등(藤))은 등나무를 일컫는다. 
사전에는 견해· 주장· 이해관계 따위가 서로 달라 적대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라고 써있다. 
우리는 많은 갈등 속에서 세상을 산다. 자신이 아주 잘났다고 하는 사람도, 그렇지 못하다고 겸손한 사람도 갈등이 없을 리가 없다.
‘칡덩굴과 등나무 덩굴은 서로 얽히는 방향이 달라서 칡은 오른쪽으로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는다고 한다.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Conflict..충돌, 대결)칡 나무와 등나무는 모두 콩과 식물로 꽃 꼬투리나 모양도 비슷하게 생겼다. 단지 등나무는 흐린보라색이고 칡꽃은 진보라 색깔이다. 같은 덩굴 식물 콩과로 사촌간이지만 둘이 하는 짓을보면 서로 종잡을 수 없이 뒤틀어가며 순을 뻗는다. 그렇게 주변 다른 나무등걸에 줄기를 칭칭 휘감고 올라간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밀고 당기고 누르며 비비꼬며 올라가는 모습에서 갈등과 불화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