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진이 묻어나는 상추 잎을 따고 마늘종을 뽑아 뚝뚝 자르고 찰 보리밥에 삼겹살을 노릇하게 구워 친구들을 행복하게 해주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를 만나고 오는 날은 신랑이 외박을 한다해도 용서가 되었을 정도로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넉넉한 친구였다. 배불리 먹고 더운 날씨에 뜨거운 숭늉까지 마시며, "돼지 똥 냄새 참 고약하다."고 말 하면 "너 돼지 고기 먹었어! 상추에도 마늘종에도 돼지 똥거름 준 거 너 모르고 먹었니?" 하며 친구들에게 늘 웃음도 주고 고기도 맘껏 먹여주던 풍요로운 친구였다. 몇 해 전부터 친구가 살던 곳이 신도시 개발로 승격되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신분도 상승되고 졸부가 되었다. 똥 돼지우리는 버섯 모양을 뒤집어쓴 멋진 별장으로 탈바꿈되어졌고 말로만 듣던 서울에 주상복합 대형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우리 집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친구의 집은 우리 집의 3배보다도 넓다. 집 구경하는 동안 무슨 미로 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어유! 정말 넓다. 너 집에서 신랑 부르려면 방송 해야하겠다."
"깔깔깔!!"
친구는 즐겁게 웃는다.
나는 부러움을 말하고 친구는 자랑만 하고 조상 님이 물려준 몇 만평의 땅, 버섯지붕 말고 강원도에 또 다른 별장과 농장, 제주도에 감귤농장 강남 빌딩에는 은행이 들어 왔다는 둥 자랑에 맞혀 대답하는데도 목이 아프다. 오늘은 친척 가족들이 집들이 겸 저녁을 먹는 날 이라서 옷에 신경을 좀 썼다며 어깨 위에는 붉은 장미도 한 송이 달려있는 잘잘 끌리는 드레스로 갈아입는다. 멋스럽다. 주책없이 그 분위기를 파악 못하고 일년에 두 번 봄가을로 복지관에 조금 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기금 마련을 위해 미숫가루와 여러 가지 현지 직송 농산물 주문을 받고 있다며 품목이 적힌 메모 지를 건네주며 권유했다. 촌스럽게 요즘 누가 미숫가루를 먹느냐고 말머리를 잘라버린다. "그래 난 촌스럽다. 너는 더 촌스럽던 돼지 똥이...?"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살지 않을 거라는 친구의 도도한 음성이 내 머리를 땅~하고 때리는 기분이다. 고생하지 말라며 남편이 불렀다는 출장 요리가 도착하고 뷔페 식단이 차려지고 왔다갔다 지시하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내 모습은 꿔다놓은 보리자루 같다. 저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별안간 돈이 많아지더니 세상이 콩알만해 보이는지 내 말은 안중에 없는 듯 건성으로 듣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섭섭했다.
"그만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너 똥(돈)통에서 너무 허구적대는 거 아냐?"
농담처럼 말하는 나에게 복지관 기금 참여는 다음에 생각해 보자고 한다.
"그래라, 내가 내년에도 이 짓하고 있으면 그때 보자."
예전 같았으면 억지라도 떠 맡겼을 텐데 말을 덮었다. 돈 많은 친구 앞에서 심사는 뒤틀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장만 점점 꽈배기처럼 꼬불꼬불 꼬인다. 오늘 아침까지도 부자된 친구가 자랑스러웠다. 몸은 비록 피곤하고 일에 파묻혀 살아도 늘 웃음 잃지 않고 넉넉하고 소박한 친구라고 많은 지인 들에게 칭찬하며 앞으로 좋은 일에 힘쓸 재목이라고 여기저기 여러 사람들에게 오지랍 펼쳐 잔뜩 기대하게 말을 해놓고 찾아간 친구는 예전 넉넉한 마음을 간직 하고있는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여러모로 본의 아니게 뻥쟁이가 된 것이다. 안 그런 것처럼 내숭을 떨려고 해도 친구 앞에서 표정 관리가 안 된다. 풍요에 넘치는 다른 세상을 사는 모습이 나를 주눅들게 했다. 의복도 가구도 고급, 고급, 고년의 성품도 고급으로 변한 듯 나보다 한술 더 뜨는 고상을 떨어 대니 돈이 좋긴 좋구나 인정을 하면서도 내 맘이 편치 않고 자꾸만 까칠해진다.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나는 도대체 뭐야! 나는 왜 물질복도 지지리도 없는 거야! 우리 신랑은 왜 땅도 없어! 울고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럽고 질투 났다.
대문 앞 넓은 입구 대리석에 내가 사 들고 간 빨래세제 선물 상자가 너무 작고 초라하게 덩그러니 놓여있다. 다시 들고 나오고 싶은 심정을 뒤로하고 뭐가 좋다고 방긋 웃으며 새집에서 행복 하라고, 가까이 살게 되었으니 자주 만나자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돌아섰다. 마음이 똥 돼지가 되어버린 친구에게 다른 어떤 것 하나도 부러워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은 하지만 정말 부럽다.
"오늘 아무래도 잔주름 몇 가닥과 검버섯도 추가로 생겼을 거야! 내일은 로또 복권이라도 한 장 사야지 이대로는 못 견디겠어!"
중얼중얼, 횡설수설, 터덜터덜 집으로 오는 길, 오늘따라 차도 많고 시끄럽고 큰길 하나 건너면 올 수 있는 길이 왜 이다지도 멀게만 느껴질까. 친구와 나를 저울질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도 마음도 무겁고 힘겹다. 빠른 걸음으로 만 보를 걷고 들어온 날도 내 튼튼한 대포 굴뚝 다리는 이렇게 아프지 않았다. 다리를 주무르며 다시 나를 가다듬는다. 이 모습 이대로의 행복을 감사하며 나누는 삶을 살자.
소크라테스의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그 재산을 자랑하고 있더라도,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있을 때까지는 그를 칭찬하지 말라."
하루종일 샘나고 부러웠던 친구의 부를 마음 속에서 비우며 지금껏 살아왔던 나의 위치로 돌아간다. 바라건데 돈많은 친구의 인품도 명품 인품이라고 칭찬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