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열아!
그대의 이름이 바뀌었구나.
미망인…
20년?
15년?
기억도 아득하다.
왕고들빼기 뜯으러 들판을 헤메이고 다니던 우리가 젊었던 그날들 생각나니?
그것을 삶아 나물 무치고 그것을 짓이겨 하얀 즙이 검게 변한 쓰디쓴 생즙을 만들어 "상처에 좋대요…" 라고 하면 너의 그 말 한마디가 끝나기가 바쁘게 "꿀꺽" 마시던 너의 남편이 눈에 어린다.
박하사탕 한개 입에 넣어주면 빙긋이 웃던 그 얼굴도 생각나고…
썩어 들어가는 발가락 과 복사뼈를 메스 대고 긁어내던 너의 모습도 기억에 남아있고 아픔도 못 느끼며 치료하는 손만 바라보는 너의 남편이 너무 측은해서 울컥 목이 막혀올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로 들어갔던 적도 있었지.
지난 기억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고 목이 메인다.
병원이 집보다 더욱 집 같았다는 지긋지긋한 병원생활 이제는 모두 끝내고, 너의 사람 하늘나라 가셨구나.
우리는 그 길을 일부러 계획하고 목적하지 않아도 이미 정해져있는 목적지이기에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야하는 이별의 아픔이지만 그래도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
물론, 어느 누구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야 하는 길을 우리보다 조금 먼저 가셨을 뿐이지만 말이야.
강건해야 환갑 장수해야 100년이라는 세상살이를 나라를 위하여 싸우셨고,
젊음을 그렇게 고엽제 침투 속에서 고생 하셨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으셔서 참 보기 좋았었지.
몸은 쇠약하여도 수열 이가 함께 있어서 슬픔보다 기쁨이 많은 삶이라고,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시던 분.
이제는 "수열아! 수열아!!!" 하며 이름 불러줄 그분이 안 계시구나.
젊은 나이에 물질 만족도 못 시켜주고 성적 만족도 채워주지 못해 늘 미안 하지만 마음만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널 사랑한다고 하루도 빠짐없이 '수열아! 사랑해!' 를 입버릇처럼 말하면 넌 언제나 입가에 미소를 잃지않고 '국어시간 되었네' 하며 덤덤하게 받아 넘기던 너, 그런 너의 말과 행동은 내가 봐도 사랑 스런 여인 이었어.
그런 너를 정말 너무 많이 사랑해서 그리도 오래 끄나풀을 쥐고 모진 목숨 연명하시더니 기어코 60세 생신을 채우지 못하고 그렇게 가셨구나.
딸셋, 아빠없이 결혼 시킬 훗날을 염려 하면서 못내 아쉬운 마지막 이별을 맞으셨다지?
본향 찾아가는 마지막 길 앞에 애 끓는 그 모습을 가족들이 추억할 때 마음 저림이 덜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수열아!
가을이다.
시원해서 좋다고 금방 말하고 돌아서면 마음속이 허전하고 쓸쓸함을 느끼게하는 가을 바람은 참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많은 장난을 치는 것 같애.
지금 아직은 혼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다고 말했지만 가을 바람 앞에서는 빈 깡통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다고, 누군가가 혼자 사는 여자라고 지나치듯 한 말에 분노하고, 허전함도 실감한다는 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성서에 나오는 과부의 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그래! 울지 말아라.
남들이 하는 말에 분노 하지도, 서운해 하지도 말고 말이야!
어쩌면 혼자라는 것이 미망인이라는 말이 과부라는 단어가 허전하고 텅 빈 마음에 비수로 와서 꼬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실임을 어찌하겠니.
너무 오랫동안 몸 고생과 마음고생까지도 동고동락한 너희부부 정말 그 동안 애쓰고 고생했다.
돌아 가신지 벌써 4개월이 되었고 이제 안장식을 모두 마쳤으니 그분도 이제는 편안한 집에 거하신것 같아 마음이 푸근하게 느껴진다.
이 가을의 바람도 나무도 잔디도 그리고 조화이긴 하지만 수만송이의 꽃밭 안에 둘러싸인 국립묘지의 수많은 묘비를 보면서 우리가 살고있는 아파트처럼 많은 분들이 모여 계시니 사후 세계일 지라도 외롭지 않을것 같은 느낌이 들더구나.
살아 생전에 더 살갑게 대할것을, 신경질 내지 말것을, 많이 만져 줄것을…
독백처럼 되뇌이는 자책 같은 말도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도 이제는 너에게서 한발짝 뒤로 물러섰으면 하는 바램이있다.
이제 슬픔거두고 그 동안의 희로애락을 추억하며 살아라.
너무 애통해하면 주름 생긴다.
몸 추슬러라.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우리만의 아름다운 가을을 느껴 보자꾸나… o k?
고 방영순님!
병마의 고통 속에 살아오신 날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아픔 없는 하늘나라에서 명복하소서!
- 대전 국립묘지 안장식에 다녀온날 수열에게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