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7일 화요일

당신 떠난 그 아침에

당신 떠난 그 아침에 나는 물말이 밥을 
눈물과 섞어서 꾸역꾸역 한없이 퍼먹었습니다
마지막 잡은 하얗고 야윈 손은 이미 너무도 차가웠습니다.
털썩 주저앉은 채 다리를 일으킬 수도 없고 
손도 떨렸고 몸도 떨렸고 마음은 추웠습니다.

생사를 걸었던 애끓는 마지막 힘을 
무참히 덧없음으로 남기고 
나의 희망 당신은 어디론가 그렇게 가셨습니다
나의 애타는 마음을 너무도 잘 알면서
이별의 순간에도 전혀 모르는 타인처럼 
왜 그렇게 아무 말이 없으셨나요.

몸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진액 인양 
끝내 한쪽 눈에서 흘러내리던 눈물 한줄기
그것이 저를 아끼시는 당신의 마지막 사랑의 
표시이었음을 이제야 깨 닿습니다.

당신 얼굴도 
당신 모습도 
당신의 목소리도 함께 할 수 없음이 
너무 큰 슬픔이고 아픔입니다

그래도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기에
당신 떠난 그 아침에 
눈물 섞인 물말이 밥을 꾸역꾸역 퍼먹었습니다.




2005년 5월 24일 화요일

빈손의 의미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놓거나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는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그 동안 내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만큼 잡았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어둠이 몰고 오는 조용함의 위압감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공허한 침묵 속으로 나를 몰아넣고 오만과 욕심만 가득 찬 나를 묶어버린다,
어차피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걸 무엇을 욕심 내고 무엇이 못마땅한가,
오만과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내 손을 잡아 줄리 없고 용서와 배려를 모르는 한 어느 누구에게도 손내밀 수 없다,
얼마만큼 더 비우고 없어야 빈손이 될 수 있을까...


2005년 5월 20일 금요일

접시나물

지난 봄날 들판에 나가 나물을 뜯어 왔다.
집 주변 들판에 너무도 흔한 풀 포기를 예쁜 바구니도 아닌 검정 비밀 봉투에 꾹꾹 눌러 많이도 뜯어왔다. 남편이 먹어도 되는 나물이냐고 물어 보기에 접시나물 이라고 알려주었다. 오랜 시간을 다듬고 씻고 데치고, 물에 담가 놓았다가 참기름 냄새를 풍기며 접시 가득 그날 저녁 밥상에 올려 졌다. 
접시나물은 나른한 봄날 잃어버린 입맛을 돋구어 주는데 충분했다.
고추장을 넣고 냉면 대접에 썩썩 비벼서 그이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한 숟가락 남았을 때까지 집요하게 끝까지 수저를 붙들고 있었다.

"비빔밥 함께 먹을 때는 마지막까지 먹는 사람이 일찍 죽는 대요. 한날 한시에 죽으려면 마지막 한 수저는 남깁시다."

나의 말을 듣고 그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말 누가 만들어낸 말이야? 내가 새로 만든 말로 하자면 똑같이 나누어서 동시에 먹으면 한날 한시에 죽는다고... 남기기는 왜 남겨?"

그릇 긁는 소리에 둘이 마주 쳐다보며 웃음보를 터트리던 봄날이 생각난다. 성전 꽃꽂이 소재를 준비하던 나는 길가에 멋없이 피어있는 희고 작은 야생화를 한아름 안고 들어와 다듬기 시작했다.

" 뭐 그런 것도 꽃이라고 꽃꽂이 소재로 삼나?"

그이는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를 던진다.

"봄날 맛있게 먹었던 그 접시 나물이 자라서 이렇게 예쁜 꽃이 피었답니다."

꽃은 작아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꽃은 다른 크고 예쁜 꽃들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해바라기. 씀바귀. 구절초. 들국화 등, 크기만 다를 뿐 자세히 보면 모양은 거의 비슷하다. 아니? 내 눈에는 더 예쁘게 보였다. 키도 아주 크고 날씬하게 쭉쭉 하늘을 향해 자라서 계란 후라 이를 붙여 놓은 것처럼 생긴 작은 꽃이 앙증 맞기까지 하다. 나는 이 꽃을 참 좋아한다. 청순 가련하면서도 거칠어 보이고 야성적이면서도 진실해 보이고 사람들의 시선은 많이 받지 못하는 들꽃이지만 뿌리째 뽑아다 물에 담아 놓고 지저분한 이파리를 정성스럽게 다듬었다. 한동안 바라보던 그이는 바쁘게 서재로 들어가 시집을 찾아 가지고 나오더니 차려 자세를 하고 서서 시 한 구절을 읊어 주었다.

옥수수 닢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 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 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생략)
꽃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도종환 시인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썼다는 시인데 살아 있는 나에게 느닷없이 무슨 접시꽃 당신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참 매력 없기는? 내 마음을 몰라주다니 야속하다. 아무리 요즈음 불경기라서.... 돈을 좀...못 벌어다 준다고 감정까지 메말랐단 말이요?

"봄날 맛있게 먹었던 그 나물도 생각나고 해서 시 한 구절 읊조렸더니 비웃었단 말이지? 할망구 다 되었군."

크게 웃었다. 접시나물이라는 말에 접시꽃 당신을 읽어준 것이다.

"깔깔깔! 그런데 접시나물의 꽃은 접시꽃이 아니고 망초 꽃이랍니다, 그것도 개망초 꽃, 그 시에도 등장하네...시인이 논두렁에 난 망촛대와 잡풀 사이에 멍하니 서있었다고 거기, 시에 써 있잖어요."

"잉?? 그런데 왜...나물을 접시나물이라 하는 거야?"

"글쎄요. 남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그런 줄 알고있지만 어쩌면 나물 이름을 내가 틀리게 알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봄날 나물을 준비하던 모습도 지금 꽃을 다듬는 모습도 사랑스러워 보였다며 잠시 기쁘게 해주려고 시를 읽어 주었다는 그이의 말을 들으며 행복하다.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된답니다. 
오늘 당신을 시인으로 임명합니다.
통계청 뒤뜰에 올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접시꽃이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았는데 내일은 그이와 함께 접시꽃 사진을 찍으러 가야겠다.

* tip
개망초의 '개-'는 접두사가 아니고 실제로 뜻을 가진 실질형태소로서 "모두, 다"라는 뜻을 가진 '다 皆' 자입니다.


순수한 마음

시골양반 동창 가족모임으로 남이 섬에 도착했다. 
12년만에 와보는 곳이다.
60대에서 유아까지 그야말로 세대를 초월한 소풍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수건돌리기와 보물찾기 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수건돌리기에 걸리면 걸린 사람이 지적하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가운데로 나가서 장기를 자랑하며 흥겹게 놀도록 사회자가 리드를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공연을 펼쳤다. 노래는 물론이고 춤추는 몸짓은 환상 적이다.

우리가 자랄 때는 상상도 못했겠지만 만약에 있었다면 옛 어른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를 생각하면서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함을 새삼 느꼈다. 부모들도 자녀들도 즐거움으로 충만할 뿐 수줍음 따위는 없다. 악기도 필요 없이 입으로 악기소리를 내고 손과 발로 박자를 맞추고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빠른 랩을 부르고 연체동물에서나 봄직한 유연한 몸놀림의 축제는 답답하고 고단했던 어제의 일들을 모두 날려보내기에 충분했다. 잠시 내 머릿속은 촌스럽던 내 어린 시절 소풍을 떠올렸다.

상상 속 타임 머신을 타고 옛날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도 수건돌리기에 걸리면 가운데로 나아가서 노래를 불렀다. 물론 춤을 춘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아니 춤 자체를 몰랐던 것 같다.쭈뼛쭈뼛 앞으로 나가서 몸을 서너 차례 비비틀고 고개를 숙이고 얼굴은 발갛게 상기된 채 선생님께서 유도하는 사회에 맞추어서 노래 한 곡을 겨우 겨우 못내 불러야했었다.

"무슨 노래할까요?"

나의 대답은 선생님 외에는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개미 목소리로 제목을 말한 뒤 몸가짐을 추스른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한숨 섞인 심호흡을 하고 손바닥은 '쫘~악' 펴고 차려 부동자세를 한 뒤 고개를 반짝 치켜들면 시선은 저~멀리 허공을 향하고 눈을 끔뻑거리면서 뻣뻣하게 서 있으면 선생님께서 '시~작' 하고 외쳐주신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아~ 아~ 흑…!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 내어 불러 보건만 얼굴은 경련이 일어나 씰룩거리고 노래를 마치기전 눈물이 뚝 떨어지기 일수다. 즐거운 소풍날 점심 시간도 되기 전에 어두움이 찾아와 외롭고 쓸쓸한 분위기로 숙연해진다. 너나할것없이 거의 그랬었다. 동요나 가곡의 분위기가 그랬고 어른들 노래를 아이들은 잘 부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소풍날이므로 가라앉은 분위기는 금방 사라진다. 어디서 배웠는지 박수와 함께 앙코르하고 외친다. 외롭고 쓸쓸한 그 노래를 또 부르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노래 부른 이의 수고를 칭찬하려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앙코르, 이 부분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다.

다시 수건돌리기는 시작되고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쁘다는 친구가 걸렸다. 그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얌전히 걸어나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들릴 듯 말 듯 노래한다. "뜸북뜸북 뜸북새 숲에서 울고 따옥따옥 따오기...슬피 울건만...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가랑잎만 우수수수 떨어집니다. 그 친구 역시 곧 눈물이 떨어질 듯 말듯….하뿔사! 타임머신을 열고 추억 속을 헤매 이 다가 그만, 수건돌리기에 걸리고 말았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스스로도 싫어하는 부끄러움은 도대체 고쳐지질 않는다. 머리 속을 복잡하게 하는 순간의 긴장을 체념하듯 벌떡 일어섰지만 뾰족이 내세울 장기가 없다. 난 도저히 저들의 레퍼토리를 따라갈 수 없는 음치, 몸 치가 아닌가! 할 수 없이 어린 시절 그대로 재연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지금껏 보여졌던 나의 다른 모습에 순간 모두들 나뒹굴기 시작한다.
왜 눈물은 웃어도 나오는 걸까?

하하하….
우리들의 순수한 마음이여!내 마음의 노래여!



2005년 5월 19일 목요일

괭이밥


내가 어렸을 때우리 집 장독대 주변에 소복소복 돋아나 있던 괭이밥을 오늘 아파트 화단에서 담 아래에서 만났다. 노랑꽃이 피고 지고 곁에 가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톡'하고 터져 흩어지는 아주 작은 씨앗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괭이밥을 자세한 이름을 몰라서 어른들이 부르는 대로 나도 셩 이라고 불렀었다. 아마도 싱아처럼 신맛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었나보다.
괭이밥은 전국의 길섶이나 들판에서 자란다. 하트모양의 쪽 잎이 거꾸로 3개 모여 잎자루가 길게 뻗은 끝에 한 장의 잎으로 어긋나게 붙어있다. 클로버의 모양과 비슷하지만 털이 없다. 이른 여름과 가을에 노란색의 꽃이 핀다. 지금 아파트 화단 양지쪽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꽃이 지면 창 모양의 열매가 생기고 그 껍질이 마르면 등 부분이 갈라져 종자를 퍼뜨린다. 전초에 레몬산, 말레인산, 포도주산, 칼슘, 싱아산 성분이 들어있다, 특히 봄철에는 잎에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지만 싱아 산은 1/10 정도로 적게 들어 있다.     
   
동의에는 괭이밥 전초를 구충약, 수렴 약, 월경주기 조절 약으로 쓰지만 그러나 갑상선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쓰지 않는다고 기록되어있다.
민간에서는 괭이밥 전초를 이뇨, 건위, 식욕 촉진 약으로,. 적리, 간담도, 열성 질병에 달여 먹으며 전초를 찧어서 옴이나 사마귀를 없애는데, 벌레 물린 곳에 붙이기도 하고 상처에 바른다고 전해진다.
그 옛날 먹거리가 귀해서 그랬을까? 괭이밥을 한 움큼씩 뜯어서 시다고 찡그려 가면서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요즈음은 웰빙 식단용 샐러드에 괭이밥이 쓰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