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인 나는 사비를 털어 서울에서 가까운 대천 해수욕장에 갔다. 겨울 바다의 바람은 무척이나 추웠다. 입이 얼어 말하는 발음조차 정확하지 않았어도 웃음소리만큼은 변함없었던 6학년 남자 반 친구들, 모래밭에 둘러앉아 짧은 기도를 마친 후 모래밭을 걷고 뛰고 사진도 찍었다. 그때만 해도 겨울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없던 시절이라서 식당이라고는 중국집 밖에 없었다. 짜장면과 야끼 만두로 점심식사를 하고 짧은 해가 지기전에 부랴부랴 되돌아온 한나절의 짧은 여행은 소년들에게도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때 당시 윤형주, 송창식씨의 하얀 손수건이라는 노래가 인기 있었기에 하얀 손수건이 많이 팔렸다고 한다. 나도 미도파에서 구입한 예쁜 하얀 손수건에 각자의 이름을 손수 수놓아 졸업선물로 주었다.
친구가 수술한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그 당시 고3 졸업반이면서도 함께 주일학교 반사였던 권 선생을 만났다. 까치라는 만화의 주인공과 머리가 똑같아 내가 붙여주었던 별명을 지금까지 친구들이 불러 준다는 까치 선생은 체구가 작아서 인지 모습이 별로 변하지를 않았다. 그런데 벌써 50대 후반이라니 나 늙어가는것은 모르고 세월이 빠르다는 말만 하고 있다. 이런 저런 옛 추억을 이야기 하다가 슬픈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 자살한 탤런트가 내가 일년동안 함께 하고 졸업여행을 다녀온 소년 이였다는 말에 마음이 아프다. 집에 돌아와 묵은 앨범을 꺼내 한참을 뒤적이다 그날의 사진을 찾았다. 내 팔짱을 끼고 활짝 웃고있다.
하얀 손수건의 의미가 이별이라며 이별 싫다고 말하던 소년, 손수건 대신 나에게 중등부로 올라와서 담임이 되어달라고 말했던 그 소년에게 20년 전 나는 이별의 하얀 손수건을 주었었다. 그 긴 세월 강산이 두 번이 바뀌도록 단 한번도 그 소년이 기억난적도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니 무엇이 그리도 바빠서 그를 잊고 살았을까. 참 미안하다. 그리고 안타깝다.
만남과 이별, 그것을 반복하면서 인생이 지나간다. 옛날 일 따위는 깨끗이 잊고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어제 일처럼 떠 올리게 되는사람, 생각하게 하는 사람. 먼저 떠난 사람들을 추억하며 나날을 진지하게 보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