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씩 잡고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각자 하루를 말없이 보냈다.
그이는 온종일 잠에 취해 있더니 저녁이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뭐 특별한 식사를 기대 하고싶은데 안되겠나?"
나는 음악소리 때문에 못들은 척 하면서 일부러 발장단을 쳤다. 그이는 슬그머니 딸들에게 다가가서 무얼 먹을까 물어본다. 아이들도 고개를 가로 저을 뿐 대답을 안 한다.
"경포대 갈까?"
그이 말에 아이들은 시큰둥한 표정들이다.
며칠동안 경포대 갈까? 정동진 갈까? 해돋이 보러 갈까? 벼르기만 하더니 이제는 모두들 포기했는데 준비를 하라고 크게 말한다.
"저녁은 경포대 가서 먹는 거야!"
이번에는 정말인 것 같아 아이들과 눈으로 가자는 신호를 한 다음 얼른 준비를 하고 출발을 외치며 좋은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신나게 바다를 향하여 달렸다.
차도 많았지만 휴게소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낸 관계로 경포대까지 4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경포대에서 하늘 한번 쳐다보고 검은 바다 한번 쳐다보고 바로 차를 돌려 정동 진으로 갔다. 방을 먼저 정하고 같은 건물에 있는 횟집에서 모음 회와 매운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새벽2시가 되어 역시 같은 건물에 있는 노래방으로 갔다.
아이들이 불러주는 노래를 몇 곡 듣다가 그이의 노래를 듣기로 했다.
딸아이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약혼자가 한오백년을 불러서 분위기가 썰렁해 졌다며 다투었다더니 그이는 누가 정주고 울라고 시킨 것처럼 금방 울 것 같은 심각한 표정으로 정주고 내가우네~~를 외쳐댄다. 한편으로는 재미있어 웃기도 했지만 여행 중 예의에 벗어나는 노래라고 나도 깐죽대며 한마디 했다.
여행 중에 생트집 잡는 것은 예의 지키는 사람 이냐며 버럭 화를 내고 나간다. 그이를 따라 아이들을 남겨두고 방바닥이 뜨끈뜨끈한 온돌방으로 먼저 들어왔다.
벼르고 벼르다 떠나온 여행지의 밤은 구들장을 짊어지는 것으로 조용해졌다.
아이들이 들어오더니 빨리 나가자고 성화를 대는 바람에 일찌감치 바닷가로 향했다.
모래사장에 서서 검은 바다에 파도소리를 들으며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다리는 바닷가의 새벽바람은 너무 춥다. 드디어 하늘과 맞닿은 저멀리 수평선 끝이 검푸른 듯 하더니 붉은 쇳물 덩어리 같이 해가 솟아올랐다. 모두들 딸기코가 되어 동태 되기 직전에 해님얼굴을 보았다.
일출을 카메라에 담고 주문 진으로 향했다.
주문 진 황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부두에 배 들어올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건어물을 여러 가지 구입하고 오니 오징어 배가 도착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내 팔뚝만한, 살아있는 국산 동해오징어 만원에 7마리라는 말에 5만원만큼 스티로폼 상자에 포장했다. 첫손 님이라며 5마리를 더 주어서 40마리다. 할머니는 돈에다 침을 퉤퉤 하며 퉁긴다.
오징어가 하늘 향해 먹물을 쏘는 바람에 옷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즐거웠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 일어났다.
유난히 회를 좋아하는 그이는 오징어 5마리를 꺼내어 오징어 회를 만들라고 한다.
다리가 손에 자꾸 달라붙고 살아 움직이는 오징어를 도저히 만질 수가 없었다.
꿈틀거려서 회를 못하겠다고 횟집에 가서 먹는 것이 절대로 비싼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삶아 먹으면 안되겠느냐고 하니 살아있으니 회로 먹고 싶다고 한다.
"달라붙어서 못하겠어, 죽여 줘요."
"쭉 째고 그냥 토막내라."
할 수 없이 슬쩍 기절만 시킬 생각으로 약간 뜨겁게 온수 물을 틀어서 담가놓았다.
슬그머니 와서 보던 그이,
"지난번 잉어처럼 또, 뜨거운 물에 퉁겼나!"
버럭 소리친다. 어찌나 크게 말하는지 순간 죄인처럼 싱크대 코너에 쭈뼛이 차려 자세로 서 있었다.
"나 미치겠다. 미치겠다." 하며 한숨을 길게 쉬더니 오징어 상자를 그대로 들고 나가버렸다.
난 죽여서 자르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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