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많이도 변해있는 강남의 대모산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몇 해전 졸업을 했지만 가끔 토요일이면 중학생이던 나의 딸들은 봉사활동 이라는 명목으로 그곳에 간다.
비닐봉투와 집게를 들고 손에는 면장갑을 끼고 휴지를 줍는다.
그곳에 다녀오면 몇 시간의 봉사활동 점수가 주어지고 내신 성적에도 반영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때는 어떠했는가?
토요일이면 송충이를 잡으러 대모산에 올랐다.
짝꿍과 한팀이 되어 서로 상대방이 잡은 송충이를 세어준다.
점수도 주어지고 가장 많이 잡은 학생은 공책이 상으로 주어지기도 했다.
소나무 가지를 꺾어 젓가락을 만들고 물 담은 미제 깡통에 잡아넣는다.
칭찬받고 싶어서 열심히 잡는다.
송충이 털이 땀으로 젖은 목덜미나 팔에 묻으면 따갑고 쓰리고 벌겋게 부어오른다.
그래도 칭찬받으려고 열심히 잡는다.
개수를 세다가 행여라도 마릿수가 틀리게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한 마리 두 마리 큰소리로 상대방이 잡은 마릿수를 세어가며 잡는다.
토요일이면 송충이를 잡으러 대모산에 올랐다.
짝꿍과 한팀이 되어 서로 상대방이 잡은 송충이를 세어준다.
점수도 주어지고 가장 많이 잡은 학생은 공책이 상으로 주어지기도 했다.
소나무 가지를 꺾어 젓가락을 만들고 물 담은 미제 깡통에 잡아넣는다.
칭찬받고 싶어서 열심히 잡는다.
송충이 털이 땀으로 젖은 목덜미나 팔에 묻으면 따갑고 쓰리고 벌겋게 부어오른다.
그래도 칭찬받으려고 열심히 잡는다.
개수를 세다가 행여라도 마릿수가 틀리게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한 마리 두 마리 큰소리로 상대방이 잡은 마릿수를 세어가며 잡는다.
18…. 내가 소리쳤다.
친구가 잡은 개수다.
19……. 친구가 소리쳤다.
내가 잡은 개수다.
한나절이 지나고
선생님께서 "자~ 그만" 하시면서 호루라기를 불어 우리를 부르셨고 몇 마리씩 잡았는지 본인이 잡은 숫자를 차례대로 말하라고 하셨다
친구와 나는 징그럽게 꾸물거리는 송충이깡통을 무슨 보물이라도 바라보듯 하면서 흡족해 하고 있었다.
"누가 제일 많이 잡았을까……."
하시며 깊이 파놓은 구덩이에 송충이를 쏟으라고 하셨다.
호명에 따라 숫자를 부르면 선생님은 기록을 하셨다.
호명에 따라 숫자를 부르면 선생님은 기록을 하셨다.
"조 상열 몇 마리?" 19마리요." 오~ 많이 잡았구나! 아직까지는 상렬이가 1등이네……?"
"zooin 몇 마리?"
'제가 19마리 구요…. 상렬 이는 18마리예요.'
일러바쳤다.
내가 1등이다.
공책은 내가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다음 차례 송충이를 구덩이에 쏟아 부으셨다.
나는 친구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선생님께 바로 말씀드리라고 말했지만 친구는 혓바닥만 낼롬 내밀 뿐 이었다.
순간 머릿속은 온통 송충이 한 마리를 바꾸어서 말한 상열 이의 비열함 때문에 울화가 치밀었다.
산에서 곧바로 종례를 하시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벌거숭이산을 푸른 산으로 만드는데 큰 몫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송충이 개수가 바뀐 것에 대하여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하교를 하고 집으로 오면서 송충이 한 마리 때문에 친구와 티격태격했다.
그렇지만 기운이 장사인 남자 친구와 결투를 하기에는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기에 끙끙 속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 엉엉 울기 시작했고 소심하기 짝이 없다는 꾸지람과 결국에는 아버지께 몇 차례 얻어맞고 훗날 큰 인물이 되려면 통이 커야 한다는 긴 설교로 끝이 났다.
얼마 후 여름방학을 하게 되었다.
생활 통지표 '학교에서 가정으로' 난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학업에 열심이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모든 일에 모범이 되는 학생입니다.
칭찬해주세요."
칭찬해주세요."
'가정에서 학교로' 난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쓰셨다.
"대모산 송충이 19마리는 우리 아이가 잡았답니다.
칭찬해 주십시오."
칭찬해 주십시오."
월간 샘터 2005년9월호 게재.

